이주노동자 소하나 이야기

경계를 넘어 2005/10/04 18:35
이주노동자 소하나가 10월 5일 수요일 오전 9시 비행기로 한국을 출국합니다.
오늘 방금 전에 인천공항에서 소하나에게서 전화를 받았어요.
다행히 '출국허가'를 받았다고 하는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8년 전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와 지금까지 열심히 노동하며 살아온 소하나.
그런데 그 현대판 노예제도인 연수생 제도를 통해 들어온 산업연수생들은 이제 한국 정부에 의해 불법체류자로 낙인 찍혔죠.
단지 정부가 등록하라고 마련해놓은 서류들을 갖추지 못해서 미등록 상태로 있는 것일 뿐, 법을 어긴 것도 없으니 불법이라는 말은 애초에 가당치도 않은 말이죠.

그런 사람들이 한국을 나가려해도 한국 정부는 마치 탐관오리가 가난한 민중의 고혈을 쥐어 짜듯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무거운 벌금을 물려왔습니다.
한국 경제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차별 없이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나가려는 사람들에게도 벌금을 물리는 등 갖은 차별을 일삼아왔죠.
그리고 나가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가차 없는 폭력을 휘두르며 강제추방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소하나를 비롯한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노동비자 쟁취와 강제추방 분쇄를 외치며 2003년 11월부터 명동성당에서 1년이 훨씬 넘도록 농성투쟁을 하기도 했죠.
소하나 역시 농성투쟁을 하면서 마임팀 '전태일'의 일원으로 집회 때마다 멋진 마임을 보여주기도 했어요.
 
농성투쟁이 끝나고 소하나는 피자매연대와 가까이 지내게 되었고요, 저도 소하나와 이야기 나눌 기회가 늘어났습니다.
소하나가 들려주는 인도네시아 이야기들.
한국처럼 야채가 비싼 곳에서 어떻게 채식을 하느냐며 채소가 어디서든 쑥쑥 자라고 가격도 정말 저렴한 인도네시아로 채식을 하는 사람은 꼭 가봐야 한다는 것.
인도네시아는 자전거를 많이 타서 자기도 학교 다닐 때 내내 하루에 왕복 40km씩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다는 것.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전 대통령이 자기 고향 출신이라서 동네 사람들이 매우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의 여성들을 강제로 끌어내 위안부로 삼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의 여성들 역시 일본군에 끌려가 위안부가 되어야 했고, 그밖에도 일본 제국은 이루 말로 하지 못할 만행을 저질렀다면서 자신은 그래서 일본이 싫다고도 말했어요.
아시아 민중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성 같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일본을 비롯해 강한 국가를 지향하며 다른 나라를 맘대로 침략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한 민중의 본능적 저항이겠죠.
 
소하나는 말했어요, 한국 정부가 나가려는 자신에게 벌금을 물리면 차라리 나가지 않고 한국에 있겠노라고요.
저는 소하나가 왜 고향땅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소하나가 품고 있는 고향땅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한국에 있겠다는 그 말이 얼마나 가슴 아픈 말인지 느낄 수 있었어요.

정말 다행히도 소하나는 출국 허가를 받았다고 해요.
이제 남은 건 소하나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도 배고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겠죠.
우리들과도 계속 연락을 하긴 할꺼에요.
그래도 이렇게 일찍 떠나니까 무척 아쉽네요.

소하나에게 무슨 작별의 선물을 할까 한참을 고민했는데요, 별로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매닉은 내게 '너같으면 친구에게 무슨 선물을 주겠느냐'고 묻길레 '나같으면 달거리대를 바느질해서 선물하지' 했거든요.
그런데 소하나는 달거리대가 많기 때문에 그건 필요 없는 선물이 될테고..

고민을 하다가 한국 음악 씨디를 주기로 했어요.
느림이 그러는데 소하나가 왁스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하데요.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왁스의 베스트 앨범이 있네요.
이걸 사서 카드랑 함께 줘야지 생각하고 부랴부랴 사무실에 있는 종이를 가지고 예쁜 카드를 만들어서 거기에 느림과 내가 뭐라고 적었어요.

그리고는 음악 가게들을 돌아다녀봤는데, 아무리봐도 왁스의 베스트 앨범은 품절이네요.
그냥 정규 앨범들만 있는데... 어떤 걸 사야하나 고민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최근에 발매된 거미 3집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왠지 모르게 소하나가 거미의 노래들을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거미 3집을 샀답니다.
이미 짐을 챙긴 소하나에게 별로 무겁지 않는 선물이 될 듯 싶네요.
게다가 그 앨범 6번 트랙이 '오늘은 헤어지는 날'이에요.
거미 2집은 들어봤는데, 3집은 들어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괜찮을 듯 해요.
음악을 들으며 소하나도 우리들을 그리워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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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4 18:35 2005/10/0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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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라돌이 2005/10/06 00:07 Modify/Delete Reply

    박기영 5집도 참 좋은데, 담에 소하나님에게 박기영을 들려줘봐.

  2. 돕헤드 2005/10/06 01:16 Modify/Delete Reply

    그러고 싶은데 이미 소하나는 인도네시아로 떠났단다. 나중에 우편으로 그 씨디를 보내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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