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펙 준전시상황의 칼날은 누구의 목을 겨누는가?

평화가 무엇이냐 2005/11/11 01:36
진보네님의 [트랙팩 21: NO! APEC] 에 관련된 글.

한때 아름다웠던 이 세상을 앞장서서 수탈해온, 파괴해온, 착취해온 우두머리들이 부산에 모인단다.
그래서 요즘 이 땅은 언필칭 '준전시상황'이란다.
경찰들이 골목골목마다 배치되어 행여 요주의 인물들이 싸돌아다니지는 않는지 유심히 눈을 흘긴다.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차출된' 군인들까지 노란 모자와 빨간 잠바를 입고 몽둥이를 든 채 지하철 역사를 어슬렁거리며 테러범 색출에 혈안인 모습들이다.
 
우리가 언제 군인들보고 테러범 잡아내라고 피같은 세금을 갇다 바쳤나?
1980년 5월 광주로 차출되어 시민들 때려잡는데 앞장 섰던 특전사 군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수도를 지키라고 만들어놓은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인들까지 동원되어 거리를 활보하며 준전시상황이랍시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손에 들려진 진압용 몽둥이는 누구를 겨냥한 것인가?
아펙을 맞이해 테러의 위협이 어느 때보다도 높다며 평범한 시민들에게까지 공포감을 조성하는 이 준전시상황의 칼날은 누구의 목을 겨누고 있는 것인가?
 
약자의 입장에 설 때 비로소 진실이 보이는 법이라고 어느 늙은 한국인 아나키스트가 이야기한 바 있다.
아펙을 빙자해 공권력을 총동원, 전쟁을 벌이고 있는 그 '적'은 명목상으론 테러리스트란다.
그렇다면 그 테러리스트가 우리의 구체적 현실에서는 누가 되는가?
바로 이주노동자들이다.
네팔에서, 방글라데시에서, 인도네시아에서, 필리핀에서 그리고 그밖의 여러 나라에서 고단한 삶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안간힘을 써 한국에 온, 그래서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열심히 일해온 피부색이 약간 다를 뿐인 노동자들.
한국의 지독한 민족주의=인종차별주의 망령에 밟히고 억눌려온 사람들.
한국인들의 갖은 차별과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의 살인적인 폭력을 온몸으로 견뎌내야했던 사람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제는 새로이 테러리스트라는 딱지가 붙어, 골목골목을 지키고 선 경찰들의 불심검문을 피해 다녀야 한단다.
자칫 잘못해 불심검문에 걸려 '주민등록증'을 제시하지 못하고, '미등록'이라는 신분이 적발되기라도 한다면 경찰에 의해 개, 돼지처럼 끌려가 외국인 보호소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이주노동자 감옥에 갇히게 되고, 조만간 이 정든 땅을 강제로 떠나는 비행기에 실리게 된다.
 
그래서 요즘 이주노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몸을 사리고 있다고 한다.
오늘 만난 라디카 언니의 전언이 그렇다.
얼마 전에도 길거리에서 친한 친구들이 끌려갔다고.
잡혀갔다고 한다.
온갖 누명에 이제는 테러리스트라는 잘못된 딱지까지 붙은 채 살아가는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에게 친구란 어느날 갑자기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그래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그런 존재이어야만 할까?
라디카 언니는 길거리에서 친구들과 네팔어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외국어를 '지껄이면' 골목골목마다 도사리고 있는 경찰들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마음놓고 모국어로 이야기하기도 힘든 상황.
친구들과 함께 마음놓고 길거리도 활보하기 힘든 상황.
집안 골방에 틀어박혀 이 젠장맞을 파괴의 우두머리들이 하루빨리 이 차별의 반도를 떠나기만을 기다려야만 하는, 아니 그 수괴들이 떠난다고 해서 한민족 순수한 혈통에 기반한 완강한 민족주의에서 자라나고 이윤추구라는 자본의 이해와 결부되며 정책으로 굳어진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도라는 이름의 노예제도가 끝나지 않는 한 하루도 불안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수만명의 아시아의 친구들.
그리고 그 친구들의 우울한 눈빛을 나는 오늘도 보았다.
편안한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이 친구들에게는 사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물어본다.
대가리들이 모여 떠들 때 그놈들을 지켜준다는 총부리는 누구를 겨누고 있는가?
 
아펙 준전시상황의 진실은 이것이다.
공권력의 칼날은, 민족주의의 칼날은, 인종차별의 칼날은, 가진자들의 서슬 퍼런 칼날은 이 땅 가장 힘 없고 목소리 낮은 사람들, 이주노동자들의 목을 정면에서 겨누고 있다.
 
19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다고 인종차별은 끝나지 않았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쓸고 간 미국 대도시 뒷골목에 남은 것은 가난한 유색인종들의 시체들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지금 이주노동자들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고 있다.
분노의 활화산은 지구 어느 곳에서도 타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군인의 총부리와 경찰의 몽둥이는 가장 소외되고, 가장 차별받는 그래서 가장 커다란 울분을 토해낼 수 있는 사람들을 언제나 겨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라디카 언니가 담담하게 말하던 사라진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준전시상황이라는 말에서 돌연 깊은 슬픔과 동시에 깊은 분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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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1 01:36 2005/11/11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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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ce 2005/11/11 11:19 Modify/Delete Reply

    어제 ytn에서 부산의 경계상황을 자세하게 보도해 주더군. 재밌던 것을 안티아펙의 무리를 그저 싸잡아서 범죄유발자들이라고 했던가? 하여간 바다와 산과 빌딩과 거리 곳곳의 '치안유지'라는 그들의 엄청난 '과소비'에 놀랄뿐이었지.

  2. 붉은사랑 2005/11/12 18:19 Modify/Delete Reply

    빨간모자에 노란잠바요^^

  3. 2005/11/12 23:52 Modify/Delete Reply

    예. 맞아요. 빨간모자와 노란잠바. 전 그들을 보면 속으로 '노빨'이라고 부르거든요. 그래서 순서가 좀 헷갈린 것 같아요. 뭐 그리 중요한 사항은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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