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노트 : 활동가 친구에게

희망을 노래하라 2006/01/30 20:06
며칠 전 대추리 찻집에 갔을 때 메이짱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 소- 주- 를 좋- 아- 하 -는  활 / 동/ 가 친 구~♪
 
내가 만든 '활동가 친구에게'의 한 소절이다.
기분이 좋아졌다.
왜냐하면 메이짱이 흥얼거리던 그 소절은 이 노래 전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화룡점정의 마음으로, 길고도 길게 느껴졌던 이 노래 작업에서 제일 막바지에 이르러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기울여 만든 부분이기 때문이다.
 
노래를 만들다보면 떠오른 좋은 멜로디들, 좋은 리듬들을 그냥 버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만들고 있는 노래와 맞지 않아서, 또는 다른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아무리 좋은 멜로디라도 과감히 던져버리는 거다.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이 무수한 도자기를 부숴버리듯, 시를 쓰는 사람이 무수한 원고지를 찢어버리듯, 나는 무수한 멜로디들을 만들어 냈다가 그냥 흘려보냈다.
어차피 그렇게 지나가 버린 것은 결국 나중에 나에게 다시 되돌아오는 법이다.
 
활동가 친구에게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전반부에 나오는 흥겨운 리듬과 신나는 멜로디로 이뤄진 부분(A)과 중간에 나오는 침착한 리듬에 약간 비장하지만 우울한 음들이 이어지는 부분(B)이다.
이 두 부분을 극적으로 이어주는 것이 바로 메이짱이 흥얼거리던 소절이다.
서로 다른 흐름을 하나로 맺어주는 가장 중요한 소절이었던만큼 사람들의 기억에 남도록 만들어야 했다.
메이짱의 흥얼거림, 일단 성공이었다.
 
이 노래를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이 완전히 다른 두 부분을 어떻게 하나의 곡으로 녹여낼 것인가 였다.
이 두 부분이 만나는 부분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워야 하며, 곡의 전체 진행에서 볼 때 이렇게 나눠질 수밖에 없었던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하고, 또한 가사의 흐름과도 일치해야 한다.
 
처음 보라돌이가 쓴 가사를 보았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이걸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심장이 녹아 들어갈 정도로 힘들겠다는 것을 알았다.
그 어느 때보다 깊이 침잠하지 않으면 이 가사와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곡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것 같았다.
가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여기에는 반가운 인사, 미안함, 곧 이어지는 분노와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 어쩔 수 없이 항상 가까이에 있는 슬픔, 그래서 펑펑 울기도 하지만 화를 내지 않으며 조곤조곤 설명하는 쓸쓸한 뒷모습, 안타까운 마음으로 깊은 애정을 담아 친구에게 바라는 것들과 함께 길을 걷는 친구에 대한, 그리고 결국은 자신에 대한 존경 등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어떻게 하나의 곡에 모두 담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가사를 수십 번 수백 번 읽어낸 다음 내가 해야 했던 일은 여기서 살릴 가사와 없앨 가사를 적당히 나눠보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이 가사에서는 빼고 싶은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다 살리고 싶었다.
같은 시인 친구가 쓴 시를 바탕으로 만든 노래 '언니들이 넘는 산'에서는 과감하게 시를 자르고, 옮겨서 노래에 맞게 편집했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고, 또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가사를 그대로 다 가져가기로 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노래가 가사에 질질 끌려 간다'는 느낌을 주게 할 수도 있다.
랩이 아닌 이상, 노래에 맞게 가사들을 변형시키지 않으면 노래와 가사가 동등한 무게로 자리해 균형이 잡혀 있다는 느낌을 줄 수가 없다.
실제로 이 노래를 들은 느림의 평가가 그랬다.
가사를 모두 살리다보니 '약간 지루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반가운 인사와 미안함과 바람과 존경을 담은 A부분 그리고 분노와 죽음과 슬픔과 쓸쓸함이 나오는 B부분을 만들 때 나는 각각의 소절들에 약간씩 변형을 주었다.
같은 A부분이라도 똑같은 멜로디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달라지고, 리듬도 조절을 했다.
B부분도 마찬가지여서 분노와 죽음을 표현한 부분과 쓸쓸함과 비장함을 담은 부분을 전체적으로 비슷하게 들리면서도 세부적인 감정을 살리기 위해 다르게 만들었다.
 
이렇게 가사를 모두 살려 복잡하게 만들다 보니 사람들은 이 노래를 '조약골 버전의 보헤미안 랩소디 같다' '오페라를 만들었느냐' '클래식 음악 같은 분위기다' 라고 평가했다.
맞는 소리다.
일반적인 대중음악에서, 그리고 민중가요에서도 친숙하게 듣게 되는 a-a'-b-a의 단순한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아날레'에서 '우리의 노래는 총보다 강하다'에서 그리고 최근의 '애국자가 없는 세상'에서 이런 단순한 구조를 채택했다.
사람들과 함께 길거리 시위에서, 집회에서 그리고 어디서든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자 했기에 단순하고 친숙한 노래를 만들게 된 것이다.
 
그런데 활동가 친구에게는 이런 일반적인 구조가 아니었다.
나는 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 전혀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이 곡을 썼다.
이 곡을 쓰기 전 나는 정형화된 틀 안에 갖혀 괴로워하고 있었고, 나의 한계를 기분좋게 뛰어넘은 노래들을 만들고 싶다는 불가능해 보이던 소망을 키우고 있던 참이었다.
활동가 친구에게라는 시를 읽게 된 것은, 한계라는 것이 무작정 뛰어넘는다고 넘어지는 것이 아님을 새삼 각인하고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던 참이었다.
 
나는 운이 좋았다.
일상의 모든 면에서 나를 치떨리게 하는 자본주의국가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에 맞서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기울여 투쟁하는 아름다운 활동가 친구들이 주위에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노래를 만들 수 있는 힘은 그런 친구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보냈던 경험들에서 나왔다.
분명한 것은 활동가 친구에게가 내 음악여정에 있어서 신기원을 열어주었다는 점이다.
이 노래를 만들면서 나는 드넓은 세상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것 같았다.
그 세상으로 한걸음씩 들어가려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란 결국 한걸음씩 걸으며 이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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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30 20:06 2006/01/3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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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k 2006/01/31 10:25 Modify/Delete Reply

    독특한 노래라고 인정. 모든 예술이 대중적일 필요는 없지만, 느림의견대로 조금 지루하긴 했어. 가사를 과감히 잘라버리는 건 어떨까 싶던데...작사가라고 참견하는 건 아니야. 팬으로써의 의견. 새해복많이받아.

  2. 2006/01/31 14:03 Modify/Delete Reply

    이 곡은 이미 완성이 되었기 때문에 가사를 잘라낼 수는 없다네. 나중에 편곡을 할 때 지루하지 않게 잘 해봐야 겠어. 팬으로써의 의견은 잘 참고하도록 할께.

  3. 2006/02/02 00:49 Modify/Delete Reply

    진심으로 행복했어.
    돕이 행복한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러주었기 때문에.

  4. 2006/02/02 18:49 Modify/Delete Reply

    나도 너가 이 노래를 들어주고 좋아해줘서 진심으로 행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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