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면 열대우림이 파괴된다

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6/01/25 23:54

난 커피를 많이 마신다.

담배와 술을 하지 않는 대신 커피는 남들의 대여섯배를 마신다.

커피라는 제국주의 작물의 소비에 대한 고민, 왜 없었겠는가.

커피라는 서양인들의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유색인종들의 삶이 찢겨 나갔는가.

그리고 지금도 얼마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곡물을 재배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땅에 커피를 심으면서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예속되어 있는가.

안다.

이런 정보나 자료들은 알려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세하게 찾아낼 수 있다.

 

대추리 찻집에서 일을 하다가 식사 시간이 되어서 해밀과 함께 노인회관에 밥을 먹으러 갔다.

주민분들이 정성들여 차린 밥을 감사히 먹고 나서는 나는 그분들이 손수 타주시는 커피를 습관적으로 받아들었다.

그들은 내 옆에 앉아있던 해밀에게도 커피를 권했는데, 해밀은 '커피를 마시면 열대우림이 파괴된다'고 짧게 말하고는 마시지 않았다.

그 말은 커다란 울림이 있었다.

해밀은 오래동안 환경운동과 평화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그의 이 한 마디에는 치열하게 현실을 살아온 사람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잘려나가는 나무들이 바로 내 눈엔 보이지 않았지만 내 머리 속으로는 커피 재배지를 확보하기 위해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있는 불도저들과 포크레인이 생생히 그려졌다.

그건 내가 외면하고 싶은, 그러나 회피할 수는 없는 진실이었다.

 

몇 년간 자신에게 수없이 되풀이 해서 물었던 질문이 되돌아온다.

나 한 명이 커피 소비를 중단한다고 해서 무엇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고민 없이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여기에 어떻게 균열을 낼까 고민하는 것이 먼저이지, 개인이 커피를 끊느냐 마느냐 고민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 아닌가.

이것도 하지 말라, 저것도 하지 말라, 너무 내 몸만 가혹하게 대하는 것은 아닌가?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개인적 실천을 중요시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집단적 변혁운동의 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가?

 

나는 지금 커피 플렌테이션에서 일하던 케냐 여성들에게 말을 걸고 싶다.

이윤의 논리에 따라 커피 재배를 강요해온 대기업에 종속되어 고용불안과 기아에 시달리던 그들은 힘을 모아 커피 재배를 거부하고 그 밭에 식량작물을 재배함으로써 삶의 주체로 당당히 설 수 있었다.

이런 용감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나도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들에게 나는 얼마나 떳떳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내 뼛속까지 커피 자본의 독이 퍼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암보다도 더 무섭다.

아, 내가 갈 길은 앞으로 또 얼마나 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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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5 23:54 2006/01/25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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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cked from 2006/01/26 03:18 DELETE

    Subject: 최근 밀크커피에서 블랙커피로 어렵게 전환했는데;;;

    돕헤드님의 [커피를 마시면 열대우림이 파괴된다] 에 관련된 글. 오우~ 최근 밀크커피에서 블랙커피로 어렵게 전환했는데;;;(아직도 가끔 밀크커피가 어른거려..)이글읽으니 녹차를 먹어야 하나
  1. 달군 2006/01/26 00:12 Modify/Delete Reply

    저번에 썼듯이 채식을 해볼까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을때 온갖생각이 들었었는데. 저는 그런의미에서 채식을 한다면 담배도 커피도 끊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요즘 돕이 몇년간 해왔던 질문을 저도 하고 있구요. 그런데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한편으로는 잘모르겠다는 말이 회피라는 생각도 들고..
    그렇지만 자신이 무엇을 소비하는가/ 욕망하도록 되어왔는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소중한 시간들인것 같아요.

  2. 2006/01/26 00:50 Modify/Delete Reply

    내가 무엇을 소비하는가, 욕망하도록 되어 왔는가 알게 되면 될수록 끔찍해져요.

  3. Ax3 2006/01/27 00:55 Modify/Delete Reply

    차를 직접 길러서 그걸 따서 우려드시는건 어떤가요. 저는 이번봄부터 서울에 올라가면 그렇게 하려고요.

  4. 이유 2006/01/27 03:51 Modify/Delete Reply

    아, 정말 구구절절 가슴을 치네요. 달군님의 말씀도 그렇고.
    저는, 정말 창피하게도, 약 한 달 가량 채식을 하다가 포기하였어요. 지금도 가끔 고기를 먹을 때면 이것이 음식이기 이전에 살아있는 동물이었을 적이 머리 속에 떠오르면서도 먹고 있답니다. 고백하기 창피하네요. 그런데, 저의 이런 고민과 갈등을 주위(특히 제 가족)에서는 관계불화요인이라고 지적해요. 참 어려운 일...

  5. 티코 2006/01/27 13:37 Modify/Delete Reply

    '커피이야기'던가요..일전에 그거 보고 어찌나 충격받았던지...물론 제대로 만들어 먹는다면 정신 건강에 이로울 수도 있겠지만요..하긴 어디 그게 아닌게 어디 있나요 뭐든 '제대로'만 하면 좋지만 제대로 만들지 않으니...쩝...우유나 커피나 그만큼 자본에 의해 변질된게 또 있을까 싶습니다.

  6. 티코 2006/01/27 13:39 Modify/Delete Reply

    사실 커피를 그런 이유로 먹지 않기도 하지만(문제는 싸다고 여기저기서 공짜로 내주는 그런거..헉..싸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법 누군가 공짜로, 혹은 싸게 얻는다면 그만큼 비싼 대가를 치르는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말아야겠죠?) 그 보다 이상하게 그 쓴맛이 입에 달라 붙지 않더라구요 설사도 하고..그 보다 율무가 더 당기던데..ㅎㅎ 율무..캬..

  7. 까마귀 2006/01/27 19:16 Modify/Delete Reply

    아나클랜에서 채식에 관한 주제로 게시글을 올렸던 녀석입니다.
    커피 또한 그런일이 있군요. 아무튼 저는 프림이 무슨 성분인지 몰라.
    일단, 마시지 않고있는데.. 듣고보니 제가 유자차를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실패를 두려워하지말고, 새로운 발판으로 삼는다면,
    그런것들이 더 쉬워지리라 생각됩니다.
    채식하게되면서 스트레스가 매우 컸는데, 이런 생각하니
    마음이 다시 조금은 차분해지더군요.
    그러기에 저는 베지테리안이 아닌 베건을 하면서도
    견딜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이것을 선택하게되면서
    나름대로 정신적인부분에서 조금은 성장한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3년전 제가 펑크밴드를 시작하면서 성장을 그만둿다고
    친구들에게 이야기 한건 잊지않아요.)
    어쨋거나, 약골님의 블로그에 처음 글을 남깁니다.

  8. 까마귀 2006/01/27 19:18 Modify/Delete Reply

    아, 한국에도 아나코 펑크? 는 아니지만.
    정말로 아나코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아나코사상을 기초로 한
    펑크 레이블이 있답니다.
    그 부분중 저도 하나구요. 한국에서 이런 것은 처음으로 알고
    있기에(여고생해방전선을 제외한..) 더욱 힘내고 제 친구들도 저도 자세한 정보에 대한것은 없지만, 노력하고 있답니다.

  9. 누네즈 2006/01/29 01:51 Modify/Delete Reply

    채식이든 이런 커피 같은 문제든 저는 주는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게 되는 것 같아 좀처럼 뜻대로 못하겠더군요. 매번 길게 설명하기도 힘들고 상대쪽에서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구요. 그래서 저는 정말 결정적이지 않다면 일단 주면 받습니다.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곳에 힘을 집중하구요. 그리고 그렇게 무조건 거절하지 않고 가까워진 사람들에게 제 의견을 기회있을 때 마다 차분히 전하려합니다. 제 생각에는 돕헤드님은 충분히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아니 최선을 다해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커피가 그 일을 하는데 도움을 준다면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만, 당장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생각은 항상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자본과의 긴장을 놓치 않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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