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줄로 꽁꽁

나의 화분 2006/01/23 22:49

주말마다 팽성에 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도 4주가 흘렀다.

내가 트로트를 즐겨 듣지 않는 것처럼 나이가 드신 대추리나 도두리 주민들은 내가 부르는 노래를 그리 흥겨워 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내가 계속 대추리에 가는 이유는 거기에 이런 사람도 오고 저런 사람도 오고, 다채로운 사람들이 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보여주기 위해서만이 아니고 다양한 사람들이 연대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직접 느껴보기 위해서다.

실제로 찻집에 앉아 있다보면 꽤 다채로운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벽화 그리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 주민들에게 머리를 해주러 미용전문가들도 오고, 무슨 평화프로그램으로 청소년들이 떼거지로 오는가 하면, 친구가 대추리에 왔다고 그남을 보러 무작정 ?아온 부랑아 같은 사람도 있고, 개미처럼 연신 일을 하는 활동가들도 있고, 나처럼 노래를 부른다는 핑계로 찻집에 죽치고 앉아 세월을 보내는 베짱이 같은 인간도 있다.

꾸물꾸물 모여드는 인간들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솔부엉이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마을 주민이 직접 진행하는 이 라디오 방송에는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소식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에 노래들도 나오는데, 태진아 같은 가수들이 부르는 트로트가 주종이다.

'밧줄로 꽁꽁(= 사랑의 밧줄)'이라는 제목의 노래도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지 못하도록 밧줄로 꽁꽁 묶어버리라는 가사다. 

이 노래에 어른들은 뜨거운 호응을 보내는 것 같은데, 난 왜 자꾸 고문 당하는 사람이 떠오를까.

너무나 사랑해서 밧줄로 묶고 싶다면 그건 S&M에 가깝다.

밧줄에 묶인 사람의 심정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 노래가 끝나고 진행자는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마을과 주민들의 마음을 이 노래처럼 꽁꽁 묶고 싶다'고 말한다.

그 절박한 심정이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난 어떤 이유로든 밧줄에 묶이고 싶지는 않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찍는다고 한다.

그리고 어쩌면, 정말 어쩌면 나도 거기에 출연하게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한복을 입고서 말이다.

오 마이 갓!

한복을 입느니 차라리 밧줄로 꽁꽁 묶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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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3 22:49 2006/01/23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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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매닉 2006/01/24 18:05 Modify/Delete Reply

    은근히 좋아하는 기색인걸...
    사진 꼭 찍어서 올려줘야 해.
    이왕이만 머리도 길게 땋아서 돕동자가 되어버는 것은 어떨른지...

  2. canna 2006/01/25 10:28 Modify/Delete Reply

    ㅋㅋ...sm과 조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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