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

평화가 무엇이냐 2006/01/27 19:37
황조롱이님의 [대추리 '차 한잔 하실래요'] 에 관련된 글.

어제는 서울 신촌기차역 부근에 있는 아름다운 책방에서 천성산 살리기와 새만금 갯벌 살리기 운동을 함께 해온 친구들이 모두 모여 조그만 시와 노래의 밤을 열었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시와 노래와 동화구연과 퍼포먼스를 준비해왔다.
그곳에 있기에 힘이 되는 소중한 친구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우리들은 다시 힘을 냈다.
 
어제 나는 대추리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연탄난로를 피워 온기가 밤새 지속된 대추리 찻집에서 잠을 자면서 혹시 연탄가스에 중독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잠이 들었는데, 다행히 아침에 일어나보니 내 머리는 깨끗했다.
메이짱이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자라면서 겁을 주었지만 난 일산화탄소 중독보다도 추운 것이 더 걱정이었다.
그리고 기왕 죽는다면 대추리에서 죽는 것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더구나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는 것은 뒤끝이 없고, 고통도 없이 깨끗하게 끝난다.
 
뮤직비디오 촬영할 시간이 부족해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기로 했었다.
그 시각은 나에겐 아직 한밤중이나 다름 없었다.
뒤척이며 잠이 들었다가 아차, 하는 것이 있어서 깨어보니 신기하게도 7시 20분이었다.
그런데 너무 피곤했다.
에이, 모르겠다, 그냥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스르르.
 
누가 방문을 두드렸다.
시계를 보니 9시다.
아뿔사.
부시시한 모습으로 일어나 전날 하지 못했던 뮤직비디오 촬영을 했다.
자두와 동소심과 메이짱이 내 뒤에서 춤을 추고, 랩을 했다.
촬영 기간 내내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완성된 뮤직비디오는 곧 공개될 것이다.
내가 보증하건데, 이것은 정치선전물이 아니라 100% 코미디물이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수원으로 향했다.
다산인권센터에 가서 친구들과 한 시간 남짓 영어로 수다를 떨다가 시간이 늦어 다시 자전거를 끌고 신촌으로 왔다.
 
이젠 자전거로 오가는 평택이 더 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에서 대추리에 이르는 그 긴 길 모퉁이모퉁이 하나하나가 내 기억 속에 차츰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길 지나면 어디가 나오고, 또 저 언덕을 지나면 내리막길이 얼만큼 이어지는지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어느 곳에서 특히 조심을 해야 하는지, 어디에서 쉬어가면 좋은지도 알게 되었다.
대추리가 점점 편해진다.
그리고 처음으로 대추리에 들어와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서울과는 너무나 다른 그곳.
언젠가 이 자석 같은 곳을 벗어나 내 삶의 새로운 터전을 잡게 된다면 아마도 지금의 대추리의 모습과 비슷할 것 같다.
그때까지는 일단 대추리에 좀더 자주 다니면서 나를 적응시켜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1번 국도를 따라 북진하는데,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난 배가 고파 더 이상 자전거 페달을 밟을 수가 없었다.
밥을 먹고 좀 쉬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저녁 8시가 지나있었다.
서둘러 아름다운 책방으로 가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넉넉하고 따스한 마음을 나누고 있다.
반갑다, 친구들아.
활동가 친구들과 애국자가 없는 세상에서 사는 소박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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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7 19:37 2006/01/2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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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ori~ 2006/01/29 02:00 Modify/Delete Reply

    돕..건강도챙겨^^
    아자아자^^

  2. 누릉지 2006/01/29 12:14 Modify/Delete Reply

    당신과 영어로 수다 떠는 건 언제나 잼나요~! ㅋ
    메리 설~~~!! ^^

  3. 2006/01/31 14:04 Modify/Delete Reply

    토리/ 노래를 그렇게 열정적으로 만드는 당신이 부러워.
    누릉지/ 나도 일주일에 한번 하는 것이 좀 부족해요. 좀 더 자주 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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