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은 한국의 팔레스타인이 될 것인가?

평화가 무엇이냐 2006/03/07 22:10

평택은 한국의 팔레스타인이 될 것인가?
- 비폭력직접행동으로 팽성을 지킨다

2006년 2월 평택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여러모로 팔레스타인과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쌀농사를 짓는 대추리, 도두리의 너른 땅 285만평을 농민들로부터 빼앗아 전쟁기지를 확장하려는 시도가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올리브 농사를 지어온 팔레스타인의 땅이 이스라엘 점령자들의 탱크에 의해 강제로 빼앗기는 상황이 오늘도 아시아 대륙 서쪽 끝에서 벌어지고 있다. 포크레인으로 땅을 갈아엎고, 불도저로 가옥을 부수는 모습은 팔레스타인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제 얼마 후면 이와 비슷한 모습을 한국의 팽성에서 보게 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 한국의 대기업이 만든 포크레인이 팔레스타인 가옥을 파괴하는데 동원된 모습이 사진에 찍혀 전 세계에 공개된 바 있다. 다른 나라의 평화활동가들을 통해 이 사실이 한국에도 전해졌는데, 제발 이런 망신이 한국의 땅에서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요즘 팽성의 농민들이 절박하게 외치는 구호는 '올해도 농사짓자'이다. 농민이 땅을 빼앗기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삶의 터전을 지키면서 생명을 가꿔내는 일일뿐만 아니라 식량안보를 지키고, 평화를 지키는 일이다. 이는 팽성의 농민이나 팔레스타인 농민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은 점령촌을 만들고, 이스라엘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고속도로를 만들고, 팔레스타인을 거대한 감옥으로 만드는 고립장벽을 건설하기 위해 총을 든 군인들을 동원해 팔레스타인 농민들이 정성스레 가꿔온 올리브 나무들을 베어내고 뽑아내며, 가옥을 부순다. 한국의 국방부는 총을 든 군인을 직접 보내는 대신 무술에 뛰어난 용역깡패들을 동원해 사람들을 쫓아내고 팽성에 남아 있는 집들을 부술 것으로 예상된다.


팔레스타인 가옥을 부수러 들어오는 불도저에 맞서 돌을 던지는 어린이의 모습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많은 팔레스타인 민중들과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활동가들은 비폭력 방법으로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폭력에 맞서왔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국가는 그 속성상 폭력을 독점하기 마련인데, 특히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세계 4위의 군사력이라는 막강한 폭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식의 대항폭력으로는 이를 이길 수 없다. 이스라엘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구를 몇 번이나 파괴하고도 남을 정도의 핵무기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하는 인간의 무지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음을 알려준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서라도 폭력에 대해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것은 정당하기도 하고, 또한 폭력의 부당함을 널리 알릴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폭력을 사용하는 방법이 위계적인 조직에 의해 엘리트적으로 이뤄진다면, 비폭력은 본질적으로 민중지향적이며, 수평적인 방법을 따른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저항은 강력한 국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조직적인 저항이라기보다는 각 지역을 중심으로 한 민중들의 풀뿌리 저항에 가깝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 곳곳에 점령촌과 검문소와 고립장벽을 설치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조그만 마을들로 갈갈이 찢어놓았다. 이렇게 분리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병원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이산가족을 만나러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이동할 자유가 없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흔히 국가주의에 물든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을 가리키며 나라 잃은 서러움과 핍박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라가 있어도 서러움과 핍박은 여전하다. 나라가 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팽성의 농민들을 보면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 150여명은 이미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님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였다. 평택시에서는 올해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위한 예산을 한 푼도 배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알아서들 하라고, 국가에서는 곧 그 땅을 접수할 계획이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천명한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준다며 세금을 뜯어가던 정부가 실제로 민중들을 위해서 한 것이라고는 멀쩡한 토지를 빼앗아 전쟁을 준비하는 미군기지로 바꾸겠다는 협박과 폭력밖에 없음을 절실히 자각한 팽성 농민들은 결국 정부의 권위를 부정하고 '자치'를 선포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처럼 팽성의 농민들도 비폭력의 방법으로 맞서고 있다. 그리고 이는 많은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내고 있다. 지난 1월 팽성의 트랙터 7대가 10박 11일간 전국의 주도 도시를 돌며 장장 1200km의 평화행진을 벌인 바 있다. 비폭력의 방법으로 미군기지 확장의 부당함을 널리 알리고, 민중들이 팽성으로 모여들어 곧 정부가 자행할 공권력을 빙자한 폭력에 맞서자고 간절히 호소한 것이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500대의 트랙터가 팽성으로 모일 계획이라고 한다. 대추리에는 평화촌이 만들어지고 있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일일주민으로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변호사들은 법률상담으로, 예술가들은 그림과 노래로 팽성의 평화를 지켜가고 있다. 마을의 분위기는 달아오르고 있지만 긴장감은 더욱 높아져 가고 있다. 전투경찰과 용역깡패와 포크레인이 곧 들이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팽성으로 모여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구체적인 폭력 상황에 대비한 비폭력직접행동훈련이 필요하다.


팔레스타인에서는 2003년 3월 16일에 레이첼 코리라는 평화활동가가 비폭력직접행동의 방법으로 이스라엘 불도저를 막아서다가 목숨을 잃은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비폭력직접행동을 무모하고 위험한 방법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비폭력 훈련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비폭력행동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으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폭력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에 대해 상해를 입히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폭력적인 방법이다. 그렇다면 재산을 파괴하는 것은 어떤가? 맥도날드를 파괴하고, 핵무기를 싣고 가는 잠수함을 파괴하는 것은 폭력인가, 비폭력인가?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프랑스 군대가 기지를 확장하기 위해 라르작 지방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하려고 한 1970년부터 이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인 유명한 반세계화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는 비폭력 운동가이기도 하다. 10년 간 비폭력의 방법으로 투쟁해 결국 라르작의 승리를 이끌어낸 조제 보베는 직접 대추리 마을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는 한국의 팽성이 제2의 라르작이 될 것이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그는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에 맞서 1960년대 알제리 민중들이 독립을 위해 어떻게 비폭력직접행동으로 싸웠는지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직접 트랙터를 몰고 가 맥도널드를 파괴하는 상징적인 행동을 벌여 투옥되기도 하였다. 그에 의하면 사람에게는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상징적으로 재산을 파괴하는 것은 비폭력행동이다.


물론 재산이나 기물 파괴를 폭력으로 여기는 활동가들도 많다. 그렇다면 경찰이나 용역깡패에게 욕을 하는 것은 어떨까? 언어폭력 역시 폭력이라고 보는 활동가들부터 그 정도는 비폭력행동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비폭력직접행동은 보통 비폭력행동에 대한 견해가 비슷한 사람들이 소그룹으로 모여 행동을 벌인다. 이런 소규모의 활동조(affinity group)들이 포크레인이 밀고 들어오는 급박한 상황에서 재빠르게 대처할 수 있으며, 수평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간디는 폭력집단이 훈련하는 것에 비해 비폭력 실천을 하는 사람들은 그보다 몇 배 더 많은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폭력 실천이야말로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폭력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냉정하게 비폭력 대응을 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서양의 많은 활동가들은 이미 1970년대부터 다양한 비폭력직접행동을 벌여왔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들은 비폭력 행동은 '상징적'이어야 하며,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제 보베가 맥도널드를 공격한 것은 세계화를 반대하는 민중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보베 개인은 이 행동으로 1년 가까이 옥살이를 해야 했지만 세계 각지에서는 가진자들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뜨거운 운동이 불타올랐다. 1999년 시애틀에서 WTO 각료회의 회담장을 전 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비폭력직접행동 활동가들이 몸으로 봉쇄한 것은 매우 창의적인 행동이었다. 전혀 새로운 방법이었기에 경찰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창의적인 행동이 반복되면 그 효과는 반감되기 마련이다. 이후 계속된 세계화 반대 시위에서 비폭력 활동가들은 매번 다시 봉쇄작전을 썼지만 경찰은 한번 속지, 두 번 속지 않았다.


올 봄 팽성에서 계속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수십년 간 뿌리를 박고 살아온 땅에서 강제 추방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래서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포크레인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핵무기의 파괴력이 아무리 엄청나다고 해도 결국 이를 막을 수 있는 힘은 평화를 염원하는 민중들에게서 나온다. 이들이 팽성으로 몰려가 비폭력의 방법으로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 비폭력을 연습하며, 머리를 맞대고 상징을 찾아내고, 창의적인 전략을 짜내야 한다. 비장하고, 절박하게 말이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는 말자. 지금 팽성은 팔레스타인 같아 보이지만 제 2의 라르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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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7 22:10 2006/03/07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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