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경계를 넘어 2006/03/10 01:37

인터넷에 접속해 한국어를 읽을 수 있고, 한국어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포르투 알레그레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밤 12시 정도까지 지속되는 국제회의 일정과 토론과 사람들과의 만남과 데모와 시위와 직접행동과 또 그런 것들을 준비하기 위해 소모되는 시간들에 파묻히다 보면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갖는 시간이 식사 시간과 잠자는 시간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좋다.

이곳은 커피를 먹고싶은 만큼 넉넉히 그리고 언제나 먹을 수 있다.

한 때 나는 커피만 마음껏 마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진한 브라질 커피를 홀짝거리며 짬을 내 이 글을 쓴다.

 

음식도 최고다.

김치도 없고, 두부도 없고, 버섯은 아예 찾아볼 수조차 없지만 대신 파파야, 망고, 바나나, 사과, 오렌지, 포도 등의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싱싱한 푸른 야채도 넉넉하다.

콩으로 만든 요리도 맘에 든다.

채식을 하기에 나쁘지 않다.

 

사실 무엇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나는 소용돌이 한가운데 휩쓸리고 있는 느낌이니까.

한국어를 쓰지 않은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지난 며칠 잠깐씩 간절히 한국어로 대화를 나눌 상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이외에는, 괜찮다.

영어가 익숙해졌고, 내 거의 모든 생각과 느낌을 어쨌든 표현할 수 있으니까 그것이 굳이 한국어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항공사에서 짐으로 부친 내 가방을 잃어버렸다.

중요한 것들이 많이 들어있는 가방이 통째로 없어진 것이다.

서울을 떠나 파리에 잠시 들렀다가 상파울로 도착해 보니 내 짐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처음엔 내 짐이 파리에 있다고 했는데, 이제는 아예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일주일 동안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사실 급하게 필요한 것은 등에 매는 조그만 가방에 넣어갖고 왔기 때문에 그리 커다란 불편함은 없지만 내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허전함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난 물건을 내 목숨처럼 아낀다.

내 소지품을 난 잃어버리지 않는다.

항공사에서 내 가방을 되찾기 힘들 것 같다면서 들어있는 물건들의 목록과 가격을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했을 때 거의 하루동안 아무런 생각도 활동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속이 하얘졌었다.

난 그 목록을 작성하다가 중간에 이렇게 적었다.

 

"내 물건을 잃는 것 마치 내 아이를 잃는 것 같아요.

지금 경찰서에서 아이 실종신고서를 작성하는 기분이에요.

당신이라면 아이가 얼마짜리인지 계산할 수 있겠어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내 물건을 꼭 찾아주세요.

돈은 받고싶지 않아요.

그저 내 물건들만 고스란히 받았으면 해요."

 

그리고 팩스를 보냈다.

하루 뒤 다시 연락이 왔다.

이렇게 적으면 자기들이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없어진 가방에 들어있는 물건들의 목록과 가격을 적어서 다시 보내달란다.

그래서 오늘 아침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그 어두운 가방 안에서 이리저리 휩쓸렸을 내 소지품들의 얼굴을 하나둘씩 떠올려 보았다.

그 친구들은 안개가 걷히듯 차츰차츰 기억 위로 올라왔지만, 가격을 매기는 것은 정말이지 할 짓이 못됐다.

내가 영어로 작성해 가져간 A3 크기의 4장짜리 팽성 농민들의 투쟁소식을 담은 유인물의 가격은 얼마인가?

그것을 얼마라고 적는 순간, 마치 그것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서 얼마를 망설였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그저 물건일 뿐이라고, 얼마나 상심이 크고, 얼마나 분노스러운지 이해는 하지만 없어졌거니 생각하고 단념하라고 한다.

그것들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북극에 있더라도, 아마존 한가운데 그 가방이 떨어져 있더라도 나 혼자라서라도 찾으러 가겠으니 어디에 있는지만 알려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그들은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음은 아프지만 달려드는 일들을 모른척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나는 이곳 포르투 알레그레에 명확한 목적을 갖고 오지 않았나.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지구 반대편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조그만 땅 촌구석 팽성에서 벌어지는 그 중요한 싸움을 브라질, 온두라스, 엘 살바도르, 칠레, 쿠바, 파라과이, 멕시코, 베네수엘라, 과테말라, 도미니카공화국, 아르헨티나, 미국, 캐나다, 인도네시아, 네팔, 인도, 필리핀, 팔레스타인, 이란, 남아프리카공화국, 벨기에, 이탈리아, 네델란드 그리고 채 적지 못한 많은 고장에서 온 수많은 활동가들, 농민들, 어민들, 원주민들, 그리고 빼앗긴 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더 널리 알려야 한다.

토지를 지키려는 싸움은,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는 싸움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절박하고 감동적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이곳에서 나는 가진 것이 없다.

자전거도 없고, 기타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옷가지도 없고, 친구도 없고, 편하게 누워 일상을 즐길 공간도 없고, 맛있게 표고버섯을 구워먹을 부엌도 없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언어도 모르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들이 왜 우는지 알 것 같았다.

혼란스럽고, 두려워서 우는 것이다.

난 울 수조차 없었다.

매달려 내 말을 할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살아온 곳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가 깨닫게 되었다.

난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갖고 있다.

풍족하고 행복한 삶이다.

 

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이후 단 하루도 투쟁없이 저항없이 흘러가지 않았다.

나는 투쟁을, 저항을 내 일상의 영역까지 끌어들였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전경들과 부딪히지 않는 날이라도 나는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그래서 잠을 자지 못하고 피곤에 지친 몸을 커피로 달래며 새벽에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 '여성의 날 행동'을 하러 갔을 때에도 그건 내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끊임없이 이어지는 매일매일의 투쟁이었다.

또다른 하루였던 셈이다.

물론 감동의 크기는 날마다 다르긴 하지만.

 

내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삶이 계속 된다는 것이다.

저항이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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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0 01:37 2006/03/10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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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mlist 2006/03/10 08:40 Modify/Delete Reply

    나두...내 물건들에 마음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해서 이름을 붙여주고 절대 버리지 못하는데. 거의 십몇년전에 집에서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땀에 젖은 셔츠를 입고있었던 교양관 앞에서의 그 시간이 기억나요.(돕은 기억을 못하겠지만 ^^)

  2. 2006/03/10 22:01 Modify/Delete Reply

    :)

  3. 지음 2006/03/11 02:35 Modify/Delete Reply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아직도 아이들을 잊지 못하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흑.

  4. 무화과 2006/03/12 10:44 Modify/Delete Reply

    돕 내가 화요일날 사무실가면 유인물 제대로 해서 올려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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