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울 잠입 성공!

꼬뮨 현장에서 2006/05/15 22:24
매닉님의 [울화병의 정체는?] 에 관련된 글.

얼굴이 화끈거린다.
어제 범국민대회에 참가하러, 그리고 대추리에 잠입하러 평택 시가지에서부터 계양5거리로, 다시 본정3거리로, 그리고 산과 들을 넘어 신대4리로, 도두1리로 두 발로 돌아다니며 뜨거운 햇빛을 하루종일 맞았더니 그새 얼굴이 탔나보다.
 
경찰은 이번 범국민대회를 철저하게 원천 봉쇄했다.
그 과정에서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권리와 자유가 침해되건 아랑곳하지 않고 무조건 막무가내로 주변 모든 도로를 경찰차량을 동원해 틀어막았다.
군문대교에서부터 원봉이 시작되었다.
드넓은 대교가 시꺼먼 경찰들로 빽빽히 채워졌고, 집회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 둔포로, 아산으로, 안정리로 그리고 다른 어느 곳으로 가려던 사람들의 흐름도 강제로 막히고 말았다.
통행금지 조치가 취해진 계엄 상황도 아닌데 도대체 경찰이 이렇게 마구잡이로 주어져 있지도 않은 권력을 남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의 횡포를 가만히 두고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다리 위에 모인 수 백명의 집회참가자들은 맨몸으로 길을 내려 애썼다.
그러나 헬맷과 방패와 장봉과 기타 진압장구로 무장한 바퀴벌레같은 전투경찰 떼거리는 쉽사리 밀리지 않았다.
 
결국 다리 위에서 두 시간을 소비한 우리는 흩어져 산별적으로 수천의 본대오가 모여 있는 본정리로 향하기로 했다.
택시와 전철 등을 타고 최대한 본정리 가까이 접근해 논길과 산길을 통해 본정리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져 계양5거리에서 다시 만났다.
거기서부터 본정리까지 쭈욱 이어진 논둑길을 따라 수 백명의 집회 참가자들이 개미떼처럼 줄줄이 걸었다.
논에 발이 빠져 신발이 진흙투성이가 된 참가자들도 있었다.
끝없이 우리들은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본정리를 향해 걷고 또 걸었다.
나도 그 한 점이 되어 걸었다.
멀리서 그렇게 점점히 같은 흐름으로 흘러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물방울 같았다.
크기와 모양은 모두 다르지만 하나로 모이면 거대한 물결이 된다.
큰물이 되어 솟구쳐 흘러 방조제며 철조망을 모두 휩쓸어버릴 잠재적 힘을 저 물방울 하나하나들은 갖고 있다.
 
지금 그 물방울들이 집결하고 있다.
따로따로 흐르던 물들이 지금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평택 농민들의 삶을 철저히 파괴하려는 자들에 의해 하나로 모여 들고 있다.
대추리, 도두리 들판을 저들의 굴삭기가 깎아내면 낼수록 평화의 물방울들은 그곳으로 스며들 것이다.
모이고 모여 마침해 거대한 물줄기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집결하고 있다.
잠재적 힘을 모으고 있다.
민중들이 할 일은 그저 낮은 곳으로 흘러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집회가 끝나고 나는 개인적으로 대추리 잠입을 시도했다.
황새울 영화제도 열릴 예정이었고, 거기서 노래도 하고 통역도 해야 했지만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픈 내 욕망을 도저히 잠재울 수 없었다.
본정리 농협부터 수십 겹으로 진을 치고 막고 있는 경찰들의 그물망을 산을 넘고 들을 건너며 피해갔다.
나에게 뭐라고 소리치며 따라오려는 경찰을 따돌리며 무사히 황새울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도두1리 앞까지 갈 수 있었다.
황새울 벌판은 벼가 자라던 예전의 녹색이 아니라 경찰과 군인 그리고 철조망과 군용 장비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끔찍했다.
저곳을 기어서라도, 땅을 파고서라도, 헤엄을 치면서라도 대추리로 들어가야 한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황새울 근처에 도열한 전경들은 험상궂게 생긴 '1001'이었다.
설령 본정리에서 시위대에 밀려 뚫린다고 해도 황새울 들판으로 시위대가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저들은 가장 악명 높은 전투경찰들을 가장 안쪽에 배치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혼자서 저곳을 기어서 통과한다는 것은 그저 불가능한 꿈에 가까워보였다.
그렇게 포기하려던 찰나, 우연히 시민방송 기자들이 타고 있던 차가 지나갔다.
대추리로 들어간다고 하길레 얻어탔다.
그때부터 경찰들의 검문이 시작되었다.
저들은 길 곳곳에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10번 가까이 검문검색을 했다.
취재를 하러 온 기자라고 해도 쉽사리 들여보내지 않았다.
전투경찰과 전투군인(보병들)을 지나 마침내 대추리로 들어올 수 있었을 때 난 너무나 감격스러워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전투경찰에 시달린 터에 도저히 살아서 대추리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반가운 얼굴들이 대추리에 모여 있었다.
인사를 하고, 악수를 하고, 대추리 노인회관에서 꿀맛 같은 저녁을 먹었다.
 
이렇게라도 대추리에 들어오니 꼭 고향에 온 것 같았다.
지친 몸 때문에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으로 노래를 부르고 하니 어느새 황새울 영화제가 시작이 되고 있었다.
황새울 영화제에 참가하러 온 사람들도 내리 쪽에서부터 경찰들과 힘든 싸움을 하면서 겨우 들어올 수 있었다.
대추리 평화동산이 점차 사람들로 메워졌고, 인권홛동가들이 펼쳐보인 멋진 차력쇼가 시작되었다.
날은 저물고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하루의 고통을 모두 잊게해줄 정도로 행복한 밤이었다.
차력쇼를 펼쳐보인 활동가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지금 이 시각, 이 자리에, 이 사람들과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내가 왜 그렇게 기를 쓰고 황새울에 오고 싶었는지 나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조그만 물방울들이 하나로 모이면 얼마나 큰 힘을 낼 수 있는지도 그제서야 느낄 수 있었다.
열렬히, 열렬히 나는 박수를 쳤다.
손바닥이 따갑도록 환호했다.
보름달이 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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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5 22:24 2006/05/15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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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cked from 2006/05/16 21:55 DELETE

    Subject: [평화,평택-황새울영화제]우리 아름답게 살아야지

    서울에서 평택역까지 수많은 역들을 거쳐거쳐, 구비구비 시골길을 돌아 우리가 내린 곳은 내리 삼거리. 대추리는 원천봉쇄되었다 하고 그래서 대추리 대신 모였다는 본정리까지도 가지
  1. 검은사슴 2006/05/15 23:01 Modify/Delete Reply

    와~~

  2. human 2006/05/15 23:31 Modify/Delete Reply

    저도 어제 황새울 영화제에 꼭 참가하고 싶었는데....

  3. 나루 2006/05/16 10:08 Modify/Delete Reply

    걸어다니는 네비게이션, 돕 덕분에
    이런 저런 지름길로 안내를 해주고 택시기사를 설득해서
    본정리까지 갈 수 있었는데 중간에 그만 돕을 놓쳐버려서...
    황새울 영화제에는 들어가지 못했어요
    저도 달군이랑 현근이랑 만우씨랑 몇 몇 사람이 더 모여서
    본정리에서 도두리로 넘어가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던걸요
    담에는 꼭 붙어서 따라다녀야지...달, 정말 예뻤겠군요

  4. 매닉 2006/05/16 14:31 Modify/Delete Reply

    돕이 황새울에 잡입할 수 있었던, 요인은 집단에 의존하지 않는 그의 철저한 개인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룹으로 가면 꼭 잡히고 한 둘이 가면 경찰도 뚫더라.

  5. navi 2006/05/16 15:42 Modify/Delete Reply

    저도 혼자 가서 들어갈 수 있었던 듯;
    혼자 들어가면서 우기면 됨.-_-

  6. 리우스 2006/05/16 22:14 Modify/Delete Reply

    너무 행복허셨을 거 같애요... 그날 꼭 걸어서 대추리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저는 이번에 너무 안일했어요...

  7. 에밀리오 2006/05/17 08:51 Modify/Delete Reply

    참고 해야겠군요 +_+ 나중에 저도 경찰 뚫고 들어가서 뭐라도 해봐야겠어요~ 우워~ (산타면 되려나;; 강 헤엄치면 되려나;;; 지도 부터 구해야겠군요;; )

  8. slowpeace 2006/05/17 16:50 Modify/Delete Reply

    와~~ 들어갔구나. 그 보름달 가슴속에 꼭 간직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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