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심주의

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8/05/16 02:24
재영님의 [제12회 인권영화제를 시작해요] 에 관련된 글.

안녕하세요.
피자매연대에서 일하고 있는 조약골입니다.
 
검열을 반대하고 거리상영을 선택한 제12회 인권영화제 준비를 하신 모든 분들께 연대와 존경을 보냅니다.
아주 사소한 지적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편지를 씁니다.
 
저는 평소 '서울중심주의'에 대해 무척 예민하게 느끼면서, 서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부지불식 간에 서울중심주의에 빠져 있음을 자주 지적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 3.8 여성의 날 행사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는데, 진보적인 언론에서 이 행사를 다루면서 '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고 쓴 적이 있었습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야 시청 앞이라고 하면 서울시청이라고 알아듣겠지만 전주에 사는 사람은 시청 앞이라고 하면 이것이 전주시청인지 아니면 부산시청인지 제주시청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마치 시청은 서울시청 하나인 것처럼 서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부지불식 간에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울중심주의의 폐해입니다.
 
'종로'도 서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무턱대고 사용하는 장소입니다.
마치 서울에만 종로가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 같습니다.
어떤 행사를 여는 안내장에 보면 그냥 장소가 '종로' 뭐 이런 식으로 나와 있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그런데, 종로는 서울만이 아니라 수원에도 있습니다.
 
'대학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진보적인 사람들도 서울의 대학로를 알릴 때 그냥 '장소: 대학로'라고 쓴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습니다.
 
- 올해 메이데이 집회는 어디에서 열리죠?
장소: 대학로
 
그런데요, 경산시에도 대학로가 있다는 것 아시는지요?
영남대학교 앞 거리가 대학로입니다.
또한 전주시에도 대학로가 있습니다.
즉 대학로는 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행사를 대학로에서 연다고 하면 도대체 이것이 어디 대학로인지 저는 헷갈리게 됩니다.
서울의 혜화동 근처에 있는 대학로인지 아니면 경상북도 경산에 있는 대학로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전주에 있는 대학로인지 항상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부지불식 간에 '모든 행동은 서울에서 일어난다'고 여기고 있는 듯 같습니다.
 
차별에 매우 민감하다는 사람들이 여는 행사에도 이렇게 서울중심주의, 즉 서울 이외의 지역을 차별하는 문구들을 저는 여러 번 발견하였고, 조심스레 이것들을 지적해왔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나 예민하지 못함을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너무나 많은 차별이 존재하고 있으며, 저 역시 이런 차별에 항상 노출되어 있고, 그래서 이런 것을 느낄 때마다 볼 때마다 지적하지 않으면 그 차별은 사라지지 않기에 스스로 자각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제12회 인권영화제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다는 문구를 보고 든 생각을 다시 한번 지적합니다.
물론, 마로니에 공원은 서울 대학로에 있는 것이라 굳이 대학로 앞에 '서울'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넣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과잉반응을 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저는 이 행사가 어느 지역에서 열리는지 좀더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피자매연대 활동을 하면서 매일매일 많은 사람들에게 우편물을 발송합니다.
피자매연대에서 대안생리대와 재료를 주문하는 사람들은 지역별로 참으로 다양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일이 배송지 주소를 적어놓은 것을 저는 매일 보게 됩니다.
서울 사람들은 시 이름이나 구 이름을 빼고 주소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삼동 몇 번지로 보내주세요' 하는 주문글이 올라오는 것이죠.
이것이 다 서울에 거주하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서울 이외의 행정구역에 사는 사람이 이렇게 자신의 주소를 쓰는 경우는 사실 별로 없습니다.
예를 들어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2동에 사는 사람이 '사2동 **번지로 달거리대 보내주세요'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제 말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셨으리라 봅니다.
서울중심주의 말고도 이 사회에는 다른 많은 차별과 억압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의 커다란 차별을 없앤다고 해서 다른 종류의 차별들이 저절로 사라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차별이든 그 존재를 인식하고 그것을 없애나가려는 노력을 간단없이 기울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영화제를 준비하시는 분들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시지 않을까 나름대로 추측해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긴 편지를 적습니다.
 
요즘엔 너무도 힘든 일들이 많고, 시간도 부족합니다.
하지만 시간을 내서 5월 30일부터 6월 5일까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제12회 인권영화제에 꼭 가보겠습니다.
 
거리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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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6 02:24 2008/05/16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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