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반 단전 한 달째를 맞이한다

꼬뮨 현장에서 2010/08/20 05:13

두리반에서 오두희 선배가 만든 다큐 "남일당 이야기"를 봤다.

이 영상은 85분짜리인데, 용산참사가 벌어졌던 2009년 1월 20일부터 장례식이 끝나고 남일당을 나오던 2010년 1월 25일까지 총 371일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을 만든 오두희는 꼭 나같은 사람이다.

거리두기 같은 것은 하지 못한다.

30년간 치열한 활동가로, 스스로 고백하는 바 '전문시위꾼'으로 살아온 오두희는 현장에서 어느새 농민이 되고 어느새 주민이 되고 어느새 철거민이 되고 어느새 농성 당사자가 된다.

그처럼 현장이 어울리는 사람이 없다.

 

그런 그는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마치 내가 기타를 들고 다니듯 말이다.

어느새 주민이 된 그에게, 또 그의 카메라에게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카메라의 REC 버튼이 눌러져 있다는 사실을 개의치 않고 사람들은 가슴 속 깊은 곳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다.

그 앞에서 서럽다고 울기도 하고, 남 흉도 보고, 자기 신세한탄도 한다.

동료에게, 동지에게,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그의 카메라는 그저 잘도 돌아가고, 주목을 받지 못해온 현장의 사람들은 억눌렀던 마음 속 응어리를 녹여낸다.

 

용산참사 같은 주제를 다루는 다큐들은 보통 유가족들이나 용산범대위, 대규모 집회, 검찰, 재판, 추모제, 장례식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두희 감독의 '남일당 이야기'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하지만 용산참사 현장을 이끌어가는데 가장 궂은 일을 도맡아 해왔던 용산4상공 철대위 소속 철거민들이 주인공이다.

그들과 어울려 남일당 부엌과 생활방에서 살았던 오두희 감독이 아니었으면 현장에서도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농밀한 목소리가 담긴 이런 영상이 절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난 일찍이 오두희 활동가에게 바치는 노래 '활동가 친구에게'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두리반에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가슴이 아팠다.

용산참사는 내게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문제다.

하루하루가 나에겐 용산참사의 연속과도 같다.

미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아물지 않은 용산참사 현장의 상처들이, 두리반에서 활동하며 누적된 피로와, 작년 한 해 레아에 살면서 내가 겪었던 일들 그리고 371일 간 남일당에서 살았던 용산4구역 철거민들의 아픔을 통해 다시금 아려왔다.

85분 내내 나는 1분 1초도 그 영상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았던 장소가 단전 30일째로 접어드는, 고통스런 극한 투쟁의 현장 '작은 용산' 두리반이어서 더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전기를 달라고 두리반이 두 번째로 낸 긴급구제신청마저 국가인권위가 기각했다는 긴급한 소식을 들은 뒤 영화를 보며 나는 내내 또 두리반이 한국전력에 대해, GS 건설에 대해, 마포구청에 대해 어떻게 싸워야할지 대응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지금 스크린에 걸려 돌아가는 용산4구역 철대위 식구들의 서울시청 앞 점거농성과 일인시위와 선전물 배포와 추모제 활동 등을 보며 두리반의 상황에 일일이 대응을 해봐야 했다.

다큐멘터리 자체가 쉬운 내용이 아닌데, 나는 지금의 현실과 끝나지 않은 과거, 두 개의 리얼리티 가운데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피곤했고, 가슴이 아팠다.

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지 많았다.

난 등장인물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감독의 한 컷 한 컷에 대해, 지금 두리반의 현실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에게는 차분히 정리하고 싶은 과거일수도, 누구에게는 어느새 잊혀진 아득한 추억일수도 있는 것들이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벌레들처럼 내 혈관을 타고 꿈틀거리며 심장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 같았다.

오두희 선배 말마따나 철거민 운동은 운동권 내에서도 3D업종이다.

그래, 난 용산참사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다시 또 어쩌자고 작은 용산에 빠져든 것인가.

올 1월, 용산을 나오면서 모두들 그렇게 이야기했다.

용산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그 끝나지 않은 용산은 지금 당신의 삶 어디쯤에 있는가?

개발악법에 저항하던 사회적 약자들이 국가의 무자비한 공권력에 의해 생명을 잃어야 했던 용산참사는 지금도 두리반에서, 팔당에서, 성미산에서, 이포댐에서, 4대강에서 계속되고 있다.

고요하고 차분하게 살고 싶은 나는 용산참사로 생명을 잃은 열사들을 오늘도 잊지 못하며 전기가 끊겨 간신히 태양광 발전기로 선풍기 한 대와 알전구 한 개를 켜놓고 두리반 평일 행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이메일을 쓰고, 성명서와 보도자료를 쓰고, 보내고, 올리고, 뿌리고, 기타를 치며 두리반 앞 길거리에서 며칠 후면 내 생일 멤버들과 블루스맨 하헌진과 즉흥 잼을 하다 시끄럽다고 출동한 경찰관 두 명과 실랑이를 벌이고, 또 인터뷰에 응하고, 유채림 선생과 새벽 늦게까지 앞으로 두리반이 나아갈 바에 대해 고민을 나누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는, 오늘 나는, 두리반 단전 한 달째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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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0 05:13 2010/08/20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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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씨앗(산길) 2010/08/20 09:31 Modify/Delete Reply

    돕,더운여름에 두리반에 계신 분들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돕처럼 치열하게, 자신이 살아내야 할 길을 온 에너지를 다해 살아가기 쉽지 않은데..

  2. 나비 2010/08/20 16:05 Modify/Delete Reply

    내가 보기에 두희 언니랑 돕은 많이 다른데 어떤 점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네.
    다음에 만나면 얘기해주삼.

    • 2010/08/20 16:51 Modify/Delete

      한 가지 점에서 볼 때 꼭 나같다고 한건데, 카메라를 들고 있는 그의 위치라든가 입장이라든가 그런 것이 농성당사자로서의 자신에 기반한다는 거야.

      나역시 기타를 들고 노래를 할 때 그렇거든.
      제3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촬영 대상에서 약간 거리를 두고 객관성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 것 같거든. 용산참사든 4대강이든 두리반이든 두희 언니는 그 안에 들어가 현장과 하나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것 같아.

      예를 들면 루시드 폴이 '거기 사람이 있었네'라고 노래하는데, 두희 언니나 나는 '내가 거기 있었네' 식으로 노래를 할 것 같거든.

  3. 무나 2010/08/23 10:07 Modify/Delete Reply

    돕, 여전하구나! 난 요즘도 회사와 집을 오가며 여전히 비실비실 시들어가고 있단다. 두리반 가고 싶은데 솔직히 좀 두렵다. 용산처럼 깊숙이 그곳 상황에 빠져있는 너와 한발짝이 아닌 10발짝 이상 물러나 있는 내가, 서로 마음을 나누긴 쉽지 않은 것 같아 두렵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마음깊이 응원할게~ 언젠가는 만날 날이 있겠지^^

    • 2010/08/24 12:07 Modify/Delete

      그래. 무나, 반갑다. 나도 사실 내가 너무 깊숙히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해. 내가 속이 좁아서,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꾸 싫은 소리를 하게 되거든.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나를 이해해달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서 안그럴려고 해도 쉽지 않아. 응원 고마워. 나도 널 항상 응원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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