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사회부 김기자에게

꼬뮨 현장에서 2010/08/13 02:10

경향신문 사회부의 김기자님,
안녕하세요.
조약골입니다.

저는 올해 계속 두리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는데요, 두리반은 230일째 강제철거에 맞선 농성을 진행중입니다.
그리고 오늘로 24일째 단전입니다.

전기 없이 산다는 것, 어떤 것인지 혹시 짐작해보셨는지요?
선풍기도, 냉장고도, 핸드폰 충전도, 컴퓨터도, 형광등도, 백열등도 없습니다.
전기밥솥도 없어요.
가스불에 밥을 합니다.
반찬을 만들면 30도가 넘는 실내 온도 때문에 음식이 곧 상해서 다음 끼니가 되면 또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화장실에 갈 때도 넘어질까봐 겁이 나서 조심조심 해야 하는데, 선풍기조차도 없이 연일 폭염주의보가 발효되던 지난 24일간을 버티며 잠을 자다간 그 숨을 멈추게 하는 무더위 때문에 새벽에도 세네번씩 깨어서 찬물로 샤워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가면서 얼마나 발걸음을 조심해야 하는지...

 

그럼에도 우리 두리반의 하루하루는 전쟁과도 같아서, 마포구청에서 일주일을 항의농성하고, 한국전력 앞에 집회도 하고, GS 건설의 유령 시행사인 남전디앤씨 사무실도 찾아가고, 국가인권위에 항의방문 가고, 하루에 귓구멍을 막아놓은 그 각각의 기관들 임직원들과 전화통화를 수십 통씩은 해야 합니다.
또 기자회견 하고, 긴급 항의문화제 조직하고, 짐들을 운반하고, 노래하고, 발언하고, 기자들에게 연락하고, 보도자료 만들고, 사진 찍고, 회의하고, 두리반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다 보면요 하루에 밥을 차분히 앉아 먹을 10분의 여유조차 없다 이겁니다.
그런 날들이 24일째에요.
인간이 버틸 힘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두리반 사람들은 초인적인 힘으로 그 지옥같은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용산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라간 심정으로 두리반 사람들이 버티고 있다면 혹시 짐작을 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경향신문 2면 하단에 두리반이 광고를 싣기로 했습니다.
광고 단가를 많이 할인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또 그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 나는 이를 악물고 글을 쓰고 문자를 날리고 편지를 쓰고 일일이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렇게 저희들이 573명을 모았습니다.
두리반에 전기를 얼른 되돌려 달라고, 우리의 절박한 호소를, 그렇지만 가장 준엄한 외침을 담아 경향신문에 내보내기로 했어요.

그런데 마감을 1시간 남겨두고 갑자기 광고국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윗선의 지시가 있어서 두리반의 선언광고를 삭제했다고요.
GS 건설이 경향신문의 최대 광고주라고, 밉보이면 GS 건설로부터 광고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죠.
우리들은 광고국장과 또 광고국 유** 과장과 지겨운 전화통화를 반복해야 했어요.

"경향신문 법률팀에서 지시한 사항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말만 그들은 반복적으로 되풀이 했습니다.
저는 경향신문 법률팀의 연락처를 알려달라, 직접 통화해보겠다, 광고를 삭제한 이유가 무엇이냐 지겹도록 따져 물었습니다.
지난 한 달간 GS 건설의 유령 시행사 남전디앤씨와 마포구청 도시계획국장, 총무국장 등등 직원들 수십 명과, 그리고 한국전력 본사의 법무실장과 한국전력 서울지역본부의 임원과 한전 서울본부 서부지점의 부장, 차장에 이르는 모든 임직원들과 두리반에 전기를 달라고 목숨을 걸고 만나고 전화하고 따지고 요구하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 해보았습니다.
그걸 다시 경향신문 광고국 직원과 또 해야 했습니다.
참, 가슴이 아팠어요.
광고국 직원은 책임이 없다는 것 저희도 너무나 잘 압니다.

저는 두리반 강제철거 반대 대책위에서 활동을 하면서 언론에 알리는 일도 하고 있어요.
오늘 밤 경향신문에 우리의 소중한 광고가 나가지 못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듣고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입니다.

경향신문이 먼저 대기업에 알아서 기는 것인지, 아니면 GS 건설로부터 명확한 지침을 받은 것인지, 도대체 경향신문의 누가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 경향신문 사장실에서 내려온 지시인지, 그 윗선이 도대체 누구인지, 전략기획실인지, 왜 경향신문은 그동안 두리반 기사를 쓰지 않은 것인지 두리반 대책위에서 논의하면서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일도 하루종일 이 문제를 갖고 논의할 것입니다.

김기자님.
저는 양심과 정의와 도덕을 믿는 사람입니다.
저는 예술가이지만, 잘못된 세상에 맞서서 옳은 것을 위해 싸우는 사람입니다.
노래할 때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지만 마음 편하게 노래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가슴이 아픈 사람입니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1년을 살면서, 그리고 그 전 평택 대추리 마을에서 농민들과 1년을 함께 살면서, 그리고 그 전 새만금에서... 제 지나간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실망이 큽니다.
경향신문에 대해 가졌던 내 애정만큼이나 실망이 큽니다.

어떻게 된 연유인지, 제게 속시원히 설명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용산참사 현장을 날카롭게 누비던 김기자님의 용기를 발휘해 제 속이 시원하게 설명을 해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이메일로 답장을 주셔도 좋습니다.

두리반 광고가 나가지 못한 2010년 8월 13일 새벽에
조약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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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3 02:10 2010/08/13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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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치미 2010/08/13 14:27 Modify/Delete Reply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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