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애기들입니다.'에 해당되는 글 418건

  1. 1996년 6월 9일 일요일 흐림 2003/06/25
  2. 책을 훔치다 2003/06/25
  3. 익명의 힘을 빌어 2003/06/25
  4. 참 하고 싶은 일이 많아 2003/06/22
  5. 오라메디 2003/06/05
  6. 개미 2003/06/05
  7. 굳이 스물아홉살일 필요가... 2002/12/19
  8. 스물아홉살의 죽음 2002/10/06
  9. 극복할 수 없는 불성실함에 대해서 2002/10/05
  10. 영현이. 2002/09/12
'자유'를 보러가는 길이다.
그런데 난 매우 자유롭지 못하다.
뼛속까지 깊은 나의 빈곤감.
그 빈곤감은 나를 차갑고 메마른 구두쇠로 만들어버렸다.
물질적 풍족함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해 줄 수 있으리라
나는 누구를 만나야 하나?
나는 가난한 이를 만나야 한다.
나처럼, 가난해서 늘 분노해야 하고
열등의식으로 똘똘뭉친 울화를 가져야 한다.
세상에 적대감을 느끼고 세상에 겁을 먹어
표범처럼 날카롭게 경계하는 눈빛을 지닌 맹수여야 한다.
나는 가난해서 누구를 사랑할 수가 없다.
철저하게 물질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에.
인간이란 아무리 반항해도 세계의 일부분이다.
조건부 사랑이란 얼마나 위대한 물질의 힘인가.
누구나 다 조건부 사랑을 하고 있다.
극구 부인하더라도. 그들은 행복할 것이다.
나도 행복하고 싶었다.
이제 나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이란 부르주아지들의 언어이다.

결국은 내탓이다.
내가 바다처럼 넓고 깊지 못해서
세상에 적대감을 갖지 때문이다.
내가 못났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이 싫다.

나는 세상이 지겹다.
내겐 자유가 없다.
나는 빈곤한 자로써 열등한 자로써 세상을 증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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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5 15:14 2003/06/25 15:14

책을 훔치다

from 우울 2003/06/25 15:09
비어즐리 삽화의 '살로메'를 갖고 싶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

책을 읽은지 너무 오래되어서
아무것도 쓸 것이 없다.

1996년 5월 10일 금요일 맑음

....
글은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대해 쓴다할지라도 자신의 내면에 투영된 세계를 보는 것이므로.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기.
따라서 그의 내면이 풍족하지 않다면
풍족하지 않은 글만이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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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5 15:09 2003/06/25 15:09

익명의 힘을 빌어

from 우울 2003/06/25 14:31
이 곳에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외롭다.
이 곳에 온다는 것이 증명해 주는 것은 그것 뿐이다.
새벽 4시 46분,
외로움을 증명하고 있다.

의미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냐고 묻는다면
왜 그 무언가가 있지 않냐고 하고 싶지만
그 무언가는 없다고 다들 그러지 않는가

외로움의 농도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농도 이상인 경우에
누군가가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허용되는가

자기검열에 대해서

허용치를 한참 밑도는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는 것은
검열이 부족한 탓이다.

이 곳에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자기검열이 부족한 고토는 허용치 이하의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익명의 힘을 빌어 외로움을 증명하고 있다.

혹은

살아있음을 인정받으려하는 것이다.
의미와 마찬가지로
내가 있다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고
내가 있음을 증명하는 인간들만이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의미의 부재와 같은 현상히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누군가 내가 있음을 진실로 증명해주지 않는다면
너무나 외로운 것이다.

'그가 매혹적이었고, 웃었고,
양 한마리를 갖고 싶어했다는 것이
그가 이 세상에 있었던 증거야.
어떤 사람이 양을 갖고 싶어한다면
그건 그가 이 세상에 있다는 증거야.'

꺽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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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5 14:31 2003/06/25 14:31

참 하고 싶은 일이 많아

from 우울 2003/06/22 14:42
참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책도 읽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음악도 듣고 싶고

글을 쓰고 싶고
그림을 그리고 싶고

생각해 보니 그게 다다.

그런데, 나는 한 번에 한가지 밖에 못한다.
책을 읽을 때는 책만 읽어대고
영화를 볼 때는 영화만 줄창 봐대고
음악을 들을 때는 음악만 들어대고

그림을 그릴때는 글을 못쓰겠고
글을 쓸 때는 그림을 못그리겠고

몇 주, 혹은 몇 달 간격으로 그런 걸 반복하다보면
그 무엇도 제대로 한 것 같지가 않다.

게다가 중간중간 돈을 버는 일을 꽤 많이 해야하니까...

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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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2 14:42 2003/06/22 14:42

오라메디

from 우울 2003/06/05 23:08
요새 좀 한가하다 보니 엄청 바빠졌다.
대체 한가한 꼴을 보지 못하는 개토인 것이다.
한동안 멀리 했던 술과도, 조금은 서먹하지만 가까워져가고
그동안 못만났던 친구들을 만나고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이것저것 들쑤시고 다니느라

원래는 좀 쉴 생각이었는데...
맘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덕분에, 입안이 온통 헐어 버렸다.
혀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특히
아랫입술 아래쪽 입안에 난 허연 구멍에는 자꾸 이가 닿아서
넘넘 아프다.
아프다....쩝.

세상은 넓고 할 일은 지인짜 많다...

아, 어쨌든 그와중에
현재는 사라졌지만 지난주에는 볼안쪽 입안에도 구멍이 있었다.
내 옆 자리에서 일하는 형아가
오라메디를 바르면 좋아진다고 했다.
순진한 나는 굉장히 무서웠지만
형아가 괜찮다고 했다.
분명히 이상한 맛이 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형아는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평소에 그다지 자상하지 않던 형이
직접 오라메디를 손에 들고 발라주겠다고 했다.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ㅠ_ㅠ
.
.
.

그것은 풀이었다.
초등학교때 색종이 붙이는데 이용하던 그 풀을 잘 굳혀서
입안에 넣는 것이다.
나는 답답해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입안에 끈적끈적하게 철썩 달라붙어서 잘 떼어지지도 않았다.
닦아내도 닦아내도...오라메디는 무슨 플라나리아처럼
계속 증식하는 것만 같았다.
찝찌름한 그 맛도 매우 싱거운 것이 플라나리아를 먹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무서웠다.
나는 오라메디가 싫어...

그래도 입안에 구멍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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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05 23:08 2003/06/05 23:08

개미

from 우울 2003/06/05 00:00
내가 사는 방에는 개미가 굉장히 많다.
매 벽면마다, 매 구석진 곳마다
한번에 열마리 이상의 개미들을 발견할 수 있다.
각각의 개미들을 서로 구분하려는 노력은 해보지 않았지만
어쨌든
한동안 개미들을 관찰하고 있어 본 결과
현재 방바닥이나 벽에 나타난 열마리의 개미들은 끊임없이
벽 뒤의 다른 개미들과 로테이션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서, 벽 뒤에는 내가 알 수 없는 숫자의 개미들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왕국이 건설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명백히 있다.

나는 그 왕국(들)의 신이다.
신은 전지전능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가구 및 기타 그들이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고
가끔 천재지변을 내려 그들을 괜히 벌하고
내 삶을 살아갈 뿐이다.
게다가 나는 우연히 그들의 신이 되었다.
나도 사실 처음 이 방에 이사와서 그들과 조우하였을 때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사실,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그들이 살고 있다는 것 뿐이다.

어린시절 개토는 개미를 죽이는 잔인한 친구들을 슬며시 경멸했었다.
(대놓고 한 적은 없다.)
하늘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무언가가 내려와
나를 짓눌러 죽인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하지 않은가?
칸트의 정언명법적인 삶을 살아온 개토로서는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을 남이 당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개미들을 눌러 죽인다거나 하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이 된다는 것은 그래서 상당히 괴로운 일이다.
개토는 요새 개미들에게 다양한 방식의 천재지변을 겪게 하고 있다.
발등에 올라와 나를 문다거나
떨어져있는 음식에 떼지어 꿈틀대고 있다거나 하면
신은 매우 짜증이 난다.

어제는, 우선 스카치 테이프로 눈에 띄는 녀석들을 잘 눌러죽였다.
나중에는 개나 고양이 털을 옷에서 뗄때 사용하는 룰러로 개미들을 눌러 죽였다.
아스팔트를 다질 때 쓰는 룰러 차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 차를 아주 크게 만들어서 인간들을 둘둘둘 눌러 죽인다고 생각해 보자...
안해도 된다...

룰러를 굴리면 그 밑에서 개미가 두두둑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고통스럽다.
룰러의 테잎에 여러가지 자세로 터져있는 개미들은 모일 수록
매우 징그럽다.
역겹다...

개토가 여름에 주로 사용하는 제모제는 '내즈'라는 제품이다.
6만원 가량 하는데, 가격대비 상품가치 짱이다.
슥슥 발라서 쫘악 떼어낼때의 그 쾌감,
비교적 완벽에 가까운 제모력이 매우 마음에 드는 제품이다.

그건 그렇고,
나 뿐만 아니라 내 방 개미들도 '내즈'를 매우 좋아한다.
내즈는 천연성분인데, 상당히 달착지근한 모양이다.
내즈가 떨어져 있는 곳에는 개미들이 떼로 모인다.

그래서,
어제는 내즈를 이용해 수백마리를 죽여볼까 생각했다.
미끼를 놓고 녀석들이 나오면 룰러로 쫙 밀어버리는 것이다.
손톱만큼의 내즈를 개미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꺼내놓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개미들이 내즈 근처에 가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인가?
일단 물러나서 침대에 누워 먼 곳에서 관찰을 시작했다.
1시간이 지났다.
깜짝 놀라 깨어 내즈를 다시 보았지만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또 30분이 지났다.

너무 졸려서 내즈를 치우고 잤다.

영악한 놈들.
맛있는 것에는 위험이 따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일까.

그런데, 내 방 개미들은 가구를 먹는 것 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워낙 청소와 설겆이를 하지 않으니
가구보다 맛있는 음식이 도처에 깔려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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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05 00:00 2003/06/05 00:00
없었는데...
이상한 글을 쓰고는 한참을 안들어와 버렸다.

너무 바빠서 숨을 쉴 수도 없을 정도였다.
숨쉴 틈이 생겨도 숨 쉴 여유는 없었다.

오늘 할 일이 모두 끝나는 날이 올 줄이야...
낼 할 일만 하고 나면,
이제 좀 덜 바빠지겠지...
기대하고 싶지만, 또 두려워.
생각지도 않았던 다른 일이 날 기다리겠지.
하루, 일주일이나 혹은 한달, 그정도의 휴식으로는 바쁨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 주지 않을 것 같다.
사실은, 영영 쉬었으면 좋겠어.

일하고 싶어질 때까지...

피곤한데 놀고 싶다. 뭐하고 놀지?
젤 간편한게 TV를 보는 건가?
난 TV를 잘 보지 않는데, 요새들어 어쩌다 시간이 생기면 TV를 볼까 생각이 든다.
다른 뭔가를 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고 피곤하니까...
다른 뭔가에 집중하기엔 앞으로 올 일들에 너무 불안하니까...
아무 생각 없게 해주는 TV...
그래도 보지 말아야지...보고 나면 허탈하잖아...

집이 더럽다. 그리고 너무...내버려져 있다...
혼자 있는 것이 재미없다...아웅...아웅...
그렇다고 누구와 같이 있고 싶은 것도 아니야...
피곤해...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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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19 13:13 2002/12/19 13:13

스물아홉살의 죽음

from 우울 2002/10/06 23:35
나이와 현재의 삶에 대해서
굳이 연결시켜 생각하는 습관은 없지만
요새는 그런 생각이 들어...

스물아홉살 즈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치를 갖게 되는 것 같다.

더이상 자신의 힘만으로 자신을 살려둘 수 없을 만큼의 무거운
견디기 힘든 반복과 극복할 수 없는 그 무엇들

자신을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끝없이 고민하던 스스로에게 종지부를 찍어주고 싶기도 할만큼의

그래서 버텨오고 버텨오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고 시체를 끌고 다니면서 살아간다.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을 쳐보지만
나는 정말 살고 싶은 것일까

나를 죽이고 나면 시체의 무게만 견디면 돼.

.
.
.

헤드윅을 보았다.
어떤 이들은, 나를 죽이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으니
사치스러운 고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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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06 23:35 2002/10/06 23:35
불성실함을 극복할 수가 없다.

누군가가 "왜 좋아해?"라고 묻는다면
장장 한시간씩은 열변을 토할 수 있을거야.
도대체, 그 말들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생각도 해보지 않은 말들이 천연덕스럽게 술술 흘러나오는 것이
혐오스러웠던 기억도 있는데
이젠, 그런 혐오감조차 사라져버렸다.
"정말 좋아해?"라고 진실가득한 눈으로 묻는다면
구차하게 거짓말이나 늘어놓겠지.

사실은, 아무것도 사랑한 적이 없어.
불성실하게, 적당하게.

왜 나는 사랑하지도 않는 것을 사랑하는 것처럼
말하기를 잘 하는걸까?

나의 분노도, 나의 사랑도 너무나 불성실해서
사실은 공중을 부유하는데
그저 단어들의 무게가 사람들을 짓누르곤 해.

어디엔가, 내가 성실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내가 성실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지
내가 근본적으로 성실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 거라고 강변해 왔지만,

슬프게도 나는 불성실한 인간인지도 몰라.

성실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그래도 나름대로는 애썼는데
나는 이제 성실함을 두려워하게 된걸까?

자신을 다 쏟고도 초라할 결과를 두려워하게 된걸까?

원래 그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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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05 23:20 2002/10/05 23:20

영현이.

from 우울 2002/09/12 14:41
그 아이의 이름은 영현이가 아니다.
하지만, 실명을 밝힐 수는 없으니까 영현이라고 부르겠다.

외고입시를 준비한다는 중학교 2학년 아이,
매일 학교에 가고,
학교에서 돌아와
학교수업 진도를 훨씬 앞당겨서 고등학교 수업을 들으러
월수금 종합반 학원을 다닌다.
종합반 학원에서는 매일 엄청난 양을 숙제를 내 준다.
그걸 다하려면 잠 잘 시간이 부족하다.
보통, 새벽 1시에 잠들어서 아침 7시에 일어난다.

학원 외고입시반에서는 자주 시험을 본다.
외고입시반에 남기 위한 시험이다.
그 시험에서 떨어지면 외고입시반에 있을 수 없다.

목토, 주말에는 수학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학원에 다닌다.
거기서 내주는 숙제도 영현이는 전부 해낸다.

영현이는 성실하다.
성실하지 않고는 그 상황을 버텨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소홀히 했다가는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자신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영현이가 나와 만나는 시간은 화요일 저녁 시간,
수업시간에 영현이는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나와 다른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면서
왜 휘파람을 부느냐고 물었더니
하모니카를 불고 싶어서 그런다고 했다.
하모니카를 불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휘파람으로 하모니카 불 듯이 연습하고 음계를 익힌단다.

다같이 생각할 시간을 갖고 있는데
내가 영현이를 바라보자
영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아, 집에 가기 싫어..."

"왜?"

"집에 가면 바느질 해야 돼요."

"숙제야?"

"네."

"..."

"단어장이 너무 어려워요."

"그래? 뭔데?"

"그냥, 많이들 쓰는거요. 외울 게 너무 많아요. 좋은 단어장이라는데."

"..."

"할게 너무 많아요. 아, 짜증나..."

...

교실문을 나서면서도 영현이는 아쉬운 듯 이야기한다.

"아, 집에 가기 싫어..."

영현이의 투덜거림은 몇달전부터 수업 전반에 걸쳐 계속된다.
그나마, 그런 투덜거림을 할 수 있는 일주일에 단 한시간일텐데,
나는 그걸 듣고 있기가 너무나 힘들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아이들이 미쳐간다.

지혜는, 모자를 쓰지 않고는 밖에 나오지 않는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지혜는 어떤 면에서 왕따다.
아이들은 매일 모자를 쓰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공부에 몰두하는 지혜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아마도 지혜에게 모자는 사람들과의 벽일 것이다.
지혜는 그 벽을 넘어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분당 아이들은 공부를 엄청나게 해야 한다.
성남 다른 지역아이들이 학원 한 군데 다닐 수 없어서
교과서만 공부하는 동안
그 집 한가족 생활비만큼 들어가는 학원비를 들여서
초인적으로 깨어있는다.

자기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이상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조금씩 미쳐가는 걸 보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다.

스스로가 미쳐가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게
사실은 가장 괴로운 일이다.
아이들은 부끄러워 하면서 내 눈을 쳐다본다.

그러면, 그 모든 무게를 견뎌내고 있는
불안한 눈동자가
너무나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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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12 14:41 2002/09/12 1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