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

from 우울 2006/12/14 12:39

[한번 쓰인 작품은,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니까.]

- 다카하시 겐이치로 -

 

진실을 쓴다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야.

자신만 속이지 않으면 돼.

내 글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야.

존재라는 것은 모두다 부조리 그 자체여서

모든 인과의 사슬속에는 미싱링크가 있기 마련.

책임이라는 것을 지기 위해서 진실을 쓰려는 것은 아니야.

설명할 수 있는 것, 알고 있는 것만을 쓰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

오히려 설명하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쓰는 것인걸.

 

참 미묘한 사고방식의 차이인데,

나는 많이 쓰고 고치고, 버리고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쓴다면 확신을 갖고 쓸거야.

이것이 여기 있어야만 한다는 확신. 그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확신.

있어야 할 자리에 그것이 아니면 안되는 것들을 둘거야.

나는 그게 진실이라고 생각해.

 

 

 

 

그래. 나는 고리타분해.

세상의 모든 글들이 출판될만 한 것이고

모든 창작물들은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야.

나는 어떤 창작물들은 특별하다고 생각해.

진실한 것이라면 뭐든지.

진실이 합리적이고 명확한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

진실은 부조리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개토의 존재가 부조리하다고 해서

개토의 존재가 의미없는 것은 아니잖아.

오히려 부조리 하기때문에 아름답고 슬프고 빛이고 어둠이고 그 자체인거잖아.

 

나는 진실이 있어서 그걸 쓰겠다고 말하겠어.

나에게는 진실이 보이니까.

비록 하찮은 진실이라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2/14 12:39 2006/12/14 12:39

from 우울 2006/12/13 17:10

나는 무슨 새라도 된 것 같다.

파닥파닥 파닥파닥 살겠다고 퍼드득거린다.

어미새는 매에게 잡혀갔어.

나는 막연하게 그것을 알고 있다.

배가 고프고 눈앞은 뿌옇거나 너무 맑다.

소리나지 않는 부리로 찢어지는 비명을 내지른다.

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앙상한 날개를 퍼득거린다.

나는 오늘 약간 미친 듯 하다.

 

누가 나를 좀 멈춰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2/13 17:10 2006/12/13 17:10

친구에게 II

from 우울 2006/12/13 17:01

나는 변명을 하고 있는 걸까?

어지러운 과거들로 현재의 게으름을 윤색하려는 걸까?

나는 자신이 없어.

어렵거나 혹은 쉬운 말들로 나와 과거를 연결하려는 모든 분석은

그저 텅 빈 말들일 뿐인 경우가 많아.

 

과거가 나의 현재를 이렇게 만들었다 할지라도

내 현재에 대한 내 책임이 그렇게 쉽게 사라져주는 것은 아니지.

나는 그것들을 이겨내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이 아니라

그 모든 일을 겪은 사람으로써 번듯이 서야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스스로에 대해 죄인이야.

 

게다가

나는 어쩌면 그 모든 것에 대한 치유의 과정을 겪었는데도

여전히 내 현재의 게으름을 위해

변명거리로 그 석회처럼 굳어버린 가루날리는 건조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

 

 

 

어찌되었건 나는 내 영혼을 구출해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으로 가야하는데

라면이 나를 막는다.

 

피곤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2/13 17:01 2006/12/13 17:01

친구에게

from 우울 2006/12/13 16:47

내가 오늘 이렇게 중구난방 뛰어다니는 이유는 아마도,

내 머릿속이 이렇게 근질근질 움찔움찔 거리는 이유는 아마도,

너에게 대답을 하기 위해서 일거야.

 

개토는 왜 그렇게 성의없는가에 대한 대답.

왜 아무 것에도 노력하려들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

개토는 정말 그런 개토를 그대로 둘 것인가에 대한 대답.

글이라도 하나 정말 처절하게 써보라는 너의 그 선뜻한 사랑에 대한 대답.

그 대답을 성의있게 하기 위해서

개토는 정말 온 머릿속을 헤집어냈어.

정말이야.

아마도 그래서 내게 네가 필요한가봐.

 

머릿속을 뒤집고 또 뒤집어 풀풀 날리는 먼지를 가득 뒤집어 쓰고

꾸불꾸불 좁고 물컹한 골목들을 지나 늪에 빠지고 산에도 오르면서

나는 생각했어.

답을 찾아야해. 답을.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야. 정말 그랬던 건 아니었어.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찾기 힘들었는지도 몰라.

그 초라하고 또 초라한 대답.

그 한가운데 앉은 건 그저 상처받아 여기저기 비뚤어지고 자라지 못한 작은 영혼.

 

나는 그 영혼을 구해내야해.

누구보다 멋진 글을 쓰거나 누구보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나는 이미 죽음 한가운데 들어앉아버린 그 영혼을 구해내야해.

그 영혼으로 내가 어떻게 무언가의 진실을 바라보겠니?

 

칼을 들고 엄마의 목을 조른 아빠를 봐.

내복을 입고 있어.

눈앞에 하얀 빛들이 있어. 나는 그 빛아래 발기 발기 찢겨지겠지.

발끝부터 가슴까지 깁스를 하고 1년 동안 누워있는 거야.

깁스한가운데에는 대소변을 보기위한 구멍이 뚤려있었지.

사촌동생은 이불을 걷어 날 놀렸어.

방안이 그림에서나 나오는 원근감을 가져.

내가 있는 구석은 콩알만한데 아빠는 거대한 빗자루로 나를 때리고 있어.

빚장이는 내 침대끝에 앉아 성경을 읽고 있고

나는 메탈리카의 음악을 최대 볼륨으로 들어.

내 몸 위에 올라탄 검은 시체를 봐. 나는 그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찢긴 스타킹과 공허하던 아랫도리의 느낌.

 

대표적인 것만 뽑아보았어. 너무 대표적이라 이제 닳을대로 닳아져 고통조차 없어.

나는 무척 담담하면서도 흥분되어 있어.

이런 것을 왜 쓰는 걸까?

그런 것들이 정말 내 영혼을 상처입힌 걸까?

자존심이 강한 내가 말하지.

나는 그런 것들로 상처받지 않아. 나는 내 인생을 살거야.

 

하지만,

 

미묘하게도 나는 자꾸 내 손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숨어버려.

산다는 게 너무 아름답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어쩌면 내가 위에 쓴 것들과 내 영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지도 몰라.

나는 처음부터 그랬던 걸지도 몰라.

 

하루에 다섯번씩 죽고 싶다고 생각하기.

 

사실은 살고 싶어. 살고 싶지. 왜 아니겠어?

그러니 여즉 살아있겠지.

 

개토는 재능이 많은 아이야.

할 수 있는게 많을거야.

사랑해주는 이들도 많아.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해.

남들이 받지 못해 안달난 사랑들.

 

개토는 그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거 같아.

 

사랑을 똑바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아.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건 왜 일까?

 

답을 쓰려고만 하면 머리가 흐려져.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

 

어지럽다...

 

내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이런 나라도 버리지 말아달라는 것뿐...

나중에 다시 써볼께.

 

하루종일 먹는 것을 잊고 있다가, 방금 라면을 먹었더니 너무 피곤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2/13 16:47 2006/12/13 16:47

쓰렉 개토

from 우울 2006/12/13 13:23

가벼운 것은 좋다.

쓰렉 개토.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쓰렉 개토.

슈렉과 발음이 비슷해서 슈렉이 담고 있는 이미지들을 포괄함과 동시에

쓰레기로서의 정체성이 드러나니 금상첨화다.

 

쓰렉 개토.

가볍다. 너무 너무 가볍다.

이대로 날고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2/13 13:23 2006/12/13 13:23

일본 작가

from 우울 2006/12/13 12:53

내친 김에 분류하기 시리즈.

 

일본작가들의 글은 정갈하다. 더러운 이야기조차 정갈하다.

우리말로 쓰여있는데도, 종이가 갓 삶아 빨아 널어놓은 흰빨래 같다.

옅은 세제냄새가 난다.

 

미국의 소설들은 비장하다. 무언가를 내면에 품고 있든 없든 비장하다.

일본소설들은 그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같은 주제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미국소설이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역설할 때, 일본소설은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고 말한다.

프랑스소설은, 그 모든 것을 유모어로 여긴다.

모든 것을 비웃고,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비웃는다.

비웃는 자신을 비웃는다.

첫문장만 읽으면 알 수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2/13 12:53 2006/12/13 12:53

0.5도씨

from 2006/12/13 12:43

새벽3시, 그녀는 잠이 오지 않는다.

체온이 0.5도씨 정도 올라있다.

이 시간에 그녀의 체온은 언제나 0.5도씨 정도 더 높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0.5도씨의 차이로 더워진 피는 그녀의 몸에서 습기를 증발시키고 몸을 건조하게 만든다.

입술도 손끝도, 발끝도 부풀어 오른다.

낮동안 피가 돌지 못하던 곳까지 구석구석 피가 돌면서 그녀는 온전히 깨어난 새로운 사람이 된다.

피곤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대답해야할 너무 많은 질문들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아주 오래 질문들을 외면해왔다.

질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질문들은 산더미처럼 그녀의 옆얼굴에 쌓여있다.

고개를 돌리자 질문들이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린다.

 

나는 그와 잠을 자야하는 걸까? 혹은 자면 안되는걸까? 그렇다면 왜? 와 같은 대답하지 않아도 될 질문부터 주문해둔 청소기는 언제 도착하는 걸까?, 나에게 맞는 진실의 크기는 얼만한 것일까?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나는 지금 잠을 자야하는 걸까? 일어나서 책을 읽을까? 그에게 뭐라고 대답하면 성의있어지는 걸까? 내일은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까? 회사에 가면 피곤할까? 의외로 피곤하지 않을까? 다음 프로젝트의 컨셉은 귤로 할까? 아님 레몬으로 할까? 다시, 그와 잠을 자면 뭔가가 달라질까? 대답하지 않아도 됨.

 

그런 생각마다에 각각의 대답들을 얼기설기 얹어두던 중에 그녀는 몸을 열심히 더듬고 있는

그를 문득 느끼게 된다.

몇시간 전부터(!) 무심히, 끊임없이 그를 밀어내는 그녀의 몸을 그는 끝도 없이 만지작 거린다.

허벅지에 놓인 손을 치우면 다른 손이 가슴으로 올라온다.

가슴에 놓인 손은 그 손을 밀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놓지 않는다.

잠이 든 가운데서도 그는 집요하다.

그녀는 그에게 들리도록 끙끙대면서 그를 밀친다.

그의 몸이 활처럼 굽혀지고 등과 발은 멀어졌지만 그럴수록 머리와 손은 그녀에게 파고든다.

 

"제발 좀 개토를 내버려둬! 혼자있고 싶단 말야!"

 

그가 눈을 뜬다. 겁먹은 눈. "누구 손이 개토를 만졌지?"

 

그는 멀리 떨어진다. 이불도 3분의 1만 덮는다. 이내 잠이 든다.

그녀는 다시 상념에 잠긴다.

나는 어떤 진실을 말하게 되어있는걸까? 나는 언제쯤 내게서 죽음을 몰아내거나 함께 살아가게 되는 걸까? ...

 

그를 본다. 아이처럼 자고 있다. 그의 머리를 당겨, 그의 몸쪽으로 이동한다.

그는 추처럼 무겁다.

그의 손을 들어 등 뒤로 돌리고 그의 머리를 가슴에 묻는다.

그는 자연스럼게 몸을 움직여 그녀의 몸에 밀착한다.

와 같은 사랑이야기는 좀 그래...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를 바라본다. 아이처럼 자고 있다.

그의 머릴를 감싸 가슴속에 밀어넣고 그의 허벅지에 다리를 두른다.

그의 몸에서 달착지근한 땀냄새가 난다.

0.5도씨 때문이다.

 

그의 몸을 둘러싼 더운 호흡들이 미묘하게 자극적이다.

그는 자면서도 그녀의 감정변화를 쉽게 눈치채고 대담하게 그녀의 엉덩이에 손을 얹는다.

"손치우지 못해!"

그의 손이 얼른 제자리로 돌아간다.

 

아, 즐거운 인생.

 

 

 

 

 

글이나 그림은 정직하다.

나 이상의 것이 그려지지 않는다.

무모함과 무지함, 혹은 스스로에 대한 관대함으로

그걸 그려보지만

나자신이 싫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미묘한 개인적 감정의 변화들을 공들여 표현하는 것에 대해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아하면서도 기껏 할 줄 아는 것이 그뿐이다.

마음가짐의 변화가 아니라 환경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혼합프레스 컴플렉스 꿈을 꾸었다.

컴플렉스 덩어리가 된 듯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2/13 12:43 2006/12/13 12:43

표현하는 자

from 우울 2006/12/13 11:56

개토의 기준에 의하면 세상에는 세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람들을 어떤 기준으로 분류한다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가끔은 분류하지 않고는 못배길 때가 있다.

이 분류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일쑤여서 사실은 굉장히 조심해야 하지만

블로그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매우 관대해진다.

어디까지 관대해도 되는 걸까에 대한 질문은 어딘가에 남겨둔 채로.

 

다시 돌아가서 개토의 기준에 의하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유지하는 자와 변화시키는 자

(어슐러 르귄의 분류를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그는 이를 존재화는 자와 행동하는 자로 부르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표현하는 자이다.

 

세부류의 사람들은 또다시 각자 두 종류로 나눌 수 있게 된다.

역시 편하게, 나 자신에게 관대한 표현을 사용하자면,

진짜(좋은)와 가짜(나쁜) 정도가 되겠다.

 

나는 언제나 좋은(진짜) 유지하는 자에 대한 외경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내가 그런 존재를 꼭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6종류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고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아직 나쁜(가짜) 표현하는 자에 속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언젠가는 진짜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표현하는 자가 진짜가 되려면,

그들은 삶의 진실을 보아야만 한다.

표현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

그것이 가만히 있는 것이건, 움직이고 있는 것이건,

그 진실을 정확하게 보고 거짓없이 옮기는 것.

 

내가 표현하는 내용이 비록 아주 작은 삶의 부분이라도

나는 그것이 섬세하고 아슬아슬하게 장식된 화려한 장식품이기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명확한 진실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뿌연 내 삶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

가끔은 눈앞이 맑아지면서 삶이 보일때가 있다.

 

언듯언듯 번득이는 진실.

그것을 셀수 없는 이름 가운데 하나로 어느 지점에 고정시키기.

 

 

 

 

 

 

친구의 말대로 한참 더 처절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그에게 내 마음을 전혀 표현하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전달할 더 좋은 어떤 표현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내 마음을 보내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2/13 11:56 2006/12/13 11:56

다독 다독

from 우울 2006/12/11 11:44

당신의 고양이 님의 다독 다독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훗.

 

어찌그리 다독 다독 스러우신지.

 

그래요. 그래.

저도 사랑받고 싶고 업되고 싶고 그릉그릉 하고 싶다고요.

 

췟. 퉤.

자존심 상해.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 다독이는 걸 잘 못한다.

훗. 개토지만 할 수 있을지도.

 

한참...고양이님의 블로그에 들어가서 어디에 덧글을 쓸까 헤매다가

결국 돌아와서 독백이다.

바보. 쓸애기. 개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2/11 11:44 2006/12/11 11:44

레디

from 우울 2006/12/11 11:13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밥먹고 잠자고 수업듣고 집회나가는 시간 외에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었다.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하고 싶은 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뿐.

 

흠...좋은 시절이었다.

 

최근에는 그때보다 훨씬 많은 자유시간을 가지고도

늘 너무 마음이 바쁘다.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만화책도 보고 컴퓨터게임까지 해야한다.

하루에 한가지씩만 해도 일주일이 후딱 가버린다.

사실, 하루에 한가지씩은 무리고

보통 일주일에 한가지를 몰아서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한달도 후딱 간다.

특히 게임의 세계는 현실세계만큼이나 넓어서

사실 한가지 게임의 끝은 존재하지 않으니...

게임세계에 충실하면 할 수록 현실의 나는 껍데기만 남아 잠이나 자고 밥이나 먹는게 다다.

 

가끔은 돈버는 일도 해야하니...

돈이 절실해도 누가 돈되는 일을 시켜주면 그 사람이 얼마나 미운지 모른다.

바빠 죽겠는데.

 

사실, 바쁘다는 생각은 안해봤다.

이래저래 쓰다보니 꼭 그런 것처럼 느껴져서 써놓고 나니 우습다.

일시키는 사람들이 밉기는 하지만.

 

 

 

 

이 생활과 안녕할 시간이 된건가?

삶의 단계단계에 언제나 미련은 없었다.

돌아보면 언제나 피맛만 나니, 돌아볼 필요는 없다.

전투모드 레디.

레디...레디..레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2/11 11:13 2006/12/11 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