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우울 2006/12/17 01:13

 

눈이 많이 왔다.

김상이 있으면 같이 나가서 눈사람을 만들텐데.

김상에게 전화가 와서 눈이 온다고 하길래

눈사람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김상이 만든 눈사람.

존앤 쪼매나타...ㅋㅋ

내일 김상이 온다.

 

없으니까 블로그를 많이 하게 되는데.

가끔은 김상이 없는 것도 좋아.

게다가 눈사람 사진이 든 메일도 받았다.

가끔은 떨어져 있는 게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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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7 01:13 2006/12/17 01:13

쓰레기

from 2006/12/17 00:58

1996년 여름 뉴욕 웨스트 112번가의 아파트로 이사했을 때

내가 가진 짐이라고는 티셔츠 3장과 청바지 2벌,

이모가 남긴 황토색 트위드 재킷 한벌,

엠마뉘엘 카레르의 '콧수염'이라는 페이퍼백 한권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들어있는 낡은 갈색 가죽가방 한개 뿐이었다.

 

그나마 티셔츠 하나, 청바지 하나는

이삿짐을 나를 때(?) 입고 있었기 때문에 짐이라고 하긴 뭣한 면이 있다.

소설책은 뉴욕으로 오는 버스를 타기 전에 대합실에 있는 간이 서점에서 산 것이었다.

 

대학 수업이 시작되기까지는 2달 정도 남아있었지만,

나는 그 전에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도시를 나에게 친숙한 곳으로 만들어 두고 싶었달까.

 

부엌 겸 침실 겸 응접실의 방 하나짜리 아파트에는

허리높이 정도의 냉장고 한개와 매트리스 하나가 놓여있었다.

내게 필요한 전부였다.

 

빨래하기가 싫어서

일주일씩 같은 옷만 입고

뉴욕의 온 거리를 쏘다녔다.

어차피 모르는 사람들 뿐이어서 옷에 케찹과 마요네즈의 기름때가 묻어있어도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스니커의 뒷축은 거리의 아스팔트에 닳을 대로 닳아서

걸을 때면 아스팔트의 우둘투둘한 면이 발바닥에 느껴졌다.

 

고등학교때부터 쟈니 조의 식당에서 일하면서 모든 돈은

뉴욕에서 빠듯하게 생활할 경우 3개월 안에 바닥날 터였다.

하지만 겁날 것은 없었다.

아무 것도 잃어버릴 게 없어 아무 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

 

아침에 집 앞의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한 개 사먹고는

저녁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하루종일 아낀 식비로 길거리 문구점에서 질 좋은 노트와 데생용 연필을 사기도 하고

서점에서 얇은 화집이나 소설책을 사기도 했다.

일주일만에 45kg에서 43kg으로 몸무게가 줄었지만

얼굴과 머리칼에서는 윤기가 돌았다.

 

나는 모든 것을 노트에 그렸다.

심지어 타임즈 광장의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던

펄프픽션까지도(나는 그 영화를 두달동안 서른번쯤 보았다) 보이는 대로 노트에 옮겼다.

내 노트의 펄프픽션에는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에 나오는 인물들보다 더 펄프픽션적인 인물들이 출연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풍족한 시절이었다.

 

나는 그 여름의 뉴욕에서 쓰레기를 만났다.

센트럴 파크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파란 새를 그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는 내가 앉은 벤치 반대편 끝쪽에 앉아서

내가 그리는 파란 새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가까이 오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라고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쓰레기야.

 

나는 가만히 있었다.

 

나는 내가 쓰레기임을 인식하기도 훨씬 전에

우주의 어느 한복판에

누군가의 손으로부터 아주 가볍게 던져졌지.

그것이 누구였는가는 내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만큼이나 중요하지 않은 문제야.

나는 아주 오랫동안 생각했어.

나는 누구인가 하고.

나는 이곳에 왜 던져졌는가 하고.

 

그녀는 잠깐 눈을 감았다.

오른손에는 내가 정말 싫어하는 스타벅스의 종이컵이 들려있었지만

커피가 아닌 무언가 다른 것이 들어있는 것처럼

아주 가벼워 보였고

컵바깥쪽에 커피자국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흔적들이 말라붙어 있었다.

왼손에는 쓰레기통에서 주운 것이 틀림없는,

베어 문 부분이 심하게 갈색으로 변한 사과를 들고 있었다.

눈을 뜨고 파란새를 바라보면서, 그녀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쓰레기로 살아왔지.

아무도 내가 누구인지 관심갖지 않았어.

거리를 굴러다니면서 가끔은 밟히기도 하고

쓰레기통에도 몇번 들어갔었지만

용케 살아남아 이곳까지 왔어.

 

지독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깊은 곳부터 우러나오는 가벼운 냄새가 그녀에게서 내게로

바람을 타고 전달되었다.

 

그 냄새가 너무나 당연해서 나는 조금 놀랐다.

그녀는 꽤나 찢겨져 있었지만

그런대로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언뜻 키치하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클리셰는 아닌 것이 확실했다.

 

이 때를 기다려 왔어.

 

그녀의 목이 잠겨있었다.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지.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조절한 뒤에 그녀는 말을 이었다.

 

내 안에 찬란히 빛나는 무언가가 있어서

때가 되면 드러날 거라는 걸.

나는 그래서 내 주름을 몇번이고 접고 다시 접었어.

더 멋지게 아스팔트에 문질러지기 위해서 사람들의 발밑으로 뛰어든 적도 많았지.

무서웠지만, 하이힐 아래로도 들어가 본적이 있어.

나는 정말로 오래 기다려 왔어.

너도 알겠지만, 나는 여러번 포기하고 싶었어.

소각장으로 가는 쓰레기차안으로 뛰어들어버릴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어.

하지만 나는 기다렸어.

 

나 역시 그녀를 오래 기다려 온 듯 했다.

 

나는 노트에서 새 종이 한 장을 찢어 그녀를 집어들었다.

그녀는 아무런 저항없이 노트에 집혀 내 집까지 옮겨졌다.

 

냉장고에서 피클 병을 꺼내 내용물을 비우고

따듯한 물을 틀어 수세미로 문질러서 병의 겉면에 붙은 종이를 깨끗하게 떼어냈다.

종이타월로 병의 물기를 완전히 닦아낸 뒤

쓰레기통에서

며칠전에 산 책에 끼어있던 크림색 두꺼운 광고지를 꺼내어

피클병 뚜껑보다 약간 작게 오려 뚜껑에 적힌 글씨를 가렸다.

풀이 없어서 한블럭 건너에 있는 문구점에 허겁지겁 달려갔다 와야 했다.

남은 광고지의 여백에 나는 아주 공들여 두꺼운 글자를 그렸다.

G.A.R.B.A.G.E.

그리고 글자들을 오려내어 피클병에 붙였다.

제법 깔끔했다.

 

그녀를 병에 담아 창틀에 올려 놓았다.

검은 하늘 바탕에 색색의 조명이 반사되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다.

 

나는 그녀를 그렇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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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7 00:58 2006/12/17 00:58

소심한 사람들...혹은

from 우울 2006/12/15 14:26

나는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본다.

갑자기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

겨우 며칠 사이에.

 

달콤한 쿠키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뜻, 유행할 줄 알았던 몇개의 장치를 내세우기까지 했다.

 

어떻게 하면 민폐를 끼치지 않고 예전으로 돌아갈까...

천천히, 천천히, 그래 천천히...숨을 깊게 쉬고...

 

 

 

흥분제라도 먹은 것 같다.

이 발작적인 집착.

 

이 자리는 거북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어.

눈을 감고, 깊은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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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5 14:26 2006/12/15 14:26

먹는 문제

from 우울 2006/12/15 13:39

달군님의 [요즘 먹는것들] 에 관련된 글.

최근 거울보기가 민망하게 말라버렸다.

은근 구석구석 뭉친 살들이 있어서 보기 흉한 건 김상만 알지만

어쨌든 나는 겉보기 말라깽이라

조금만 말라도 무지 말라보인다.

어깨가 좁아서 그런거라고, 살이 없어 그런게 아니라고! 강변해봤자

비웃음만 당하니 그냥 참고 만다.

 

근데, 최근엔 내가 봐도 참 가관으로 말랐다.

이유는 한가지, 잘 안먹기 때문이다.

 

인생의 3분의 2정도는 익힌 야채를 먹지 않고 살아왔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편식에는 이유가 있는 게 이상한 거다.

남들과 밥도 같이 먹어야 하고 사회생활도 유지하려다보니

자연스럽게 아주 조금씩 먹게는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익힌 야채에 아주 익숙해질 수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신선한 음식들이다.

야채는 익히지 않은게 좋고,

아마도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회인 듯 싶다.

 

고기를 많이 먹고 살아왔다.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냥 굽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엄마가 해준 밥을 먹어본지 10년은 족히 넘었다.

그런데도 나는 음식에는 완전 젬병이다.

10년 가까이 내 부엌을 가지고 살았는데도 할 줄 아는 음식이 몇개 안되는데

그게 다 술안주들 뿐이다.

친구가 집에 와서 골뱅이 소면에 밥을 차려줬더니

비웃었던 기억이 난다.

잘 못하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음식하는 걸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 거 같다.

아마, 싫어하는 편에 가까운 듯 싶다.

 

밥반찬으로 제일 많이 먹은 건 아마 삽겹살이거다.

그냥 굽기만 해서 쌈싸먹으면 되니까.

김상은 내가 조림음식은 싫어하는 줄 알았단다.

모든 생선, 모든 고기는 무조건 구워 먹으니까.

 

 

문제는,

최근에 내가 고기를 먹는게 싫어진 거다.

그냥 조금씩 싫어져서 대체 먹고 싶지가 않아졌다.

있으면야 먹지만 내 손으로 해 먹기는 내키지 않는다.

김상때문에 그냥 하기도 하지만 역시 당기지는 않는다.

 

그럼 나는 뭘 먹고 살아야 하나?

이게 당면 문제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지만,

매일 맛난 음식을 해먹는 삶과

매일 캡슐만 먹는 삶 둘 중에 하나를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주저없이 캡슐만 먹는 삶을 택할 타입이다.

죽을 때까지 맛난 것 못 먹고 살아도 좋다.

 

그리하여,

세상에 요리를 안해도 되는 먹을 음식이 진짜 없다.

연두부는 그냥 먹어도 된다기에 10봉이나 사서 밥대신 매일 먹었는데

먹고 나면 너무 추웠다.

데워 먹어야 하는데 집에 전자렌지도 없고

(사실 나는 전자렌지 기피증이 있다.

어린 시절에 '플라이'라는 영화를 본 다음부터 전자렌지에 음식이 들어갔다 나오면

분명 무언가 다른 존재로 변형되었을 것 같아서 못 먹는다.)

찜통에 찌자니 너무 거하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본 뒤부터는 아예 밥먹는 거 자체가 귀찮아졌다.

 

점심에는 밖에 나가서 떡볶이를 사먹었다.

 

달군 글을 보고 나도 좀 번듯한 음식을 해먹어 볼까 했지만

역시나 압박이.....

 

에효...개토도 좀 상큼하고 발랄하고 성실해보이면 이상할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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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5 13:39 2006/12/15 13:39

예전에 어떤 아이가

from 우울 2006/12/15 12:41

당신의 고양이님의 [엄마는 외계인] 에 관련된 글.

예전에 어떤 아이가, 밥 샤코치스의 소설들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대목이라고 하면서,

이런 어머니를 갖고 싶다 했었다.

그녀가 그립다.

 

아이는 부엌의 조리대 앞에 앉아 금고처럼 생긴 냉동실의 알루미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냉동실에는 그의 어머니가 쇠고기와 다른 식품들 사이에 냉동된 채 누워 있었다.

아이는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죽어서도 어머니는 호텔의 다른 손님들처럼 보일 뿐이었다.

특별한 요구를 하면서도 친절함이나 서비스를 원치 않은 채

다른 사람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 번도 아이에게 키스를 해준 적이 없었다.

꼭 어머니의 정을 보일 필요가 있으면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아이는 지금껏 어머니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서본 적이 없었다.

오직 단 한 번, 고등학교 시절 사랑하는 애인을 잃고 개로와하던

아이를 끌어안고 어머니는 설헙게 눈물을 흘려주었다.

아버지와 이혼하기 1년쯤 전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밤늦게 아이의 방으로 들어오셔서 크게 라디오를 튼 뒤

아이를 안아주었다.

그날 밤 어머니와 아이는 오열했다.

 

어머니는 아무 연락도 없이 뉴욕에 도착했다.

손가방 하나와 가죽 표지의 소설 몇 권, 여러 벌의 수영복과 터키식 긴 소매옷,

그리고 화장품을 들고 나타났다.

어머니가 떠나온 파리는 겨울로 접어들던 참이었다.

어머니가 평생을 통해 남겨놓은 것은 마치 외국어처럼

모호하고 생소한 것들 뿐이었다.

아이는 늘 어머니와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 밥 샤코치스, 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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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5 12:41 2006/12/15 12:41

오늘은 편지가 와있지 않았다.

그래서 좀 ... 그렇다.

조금 기운빠졌달까? 훗. 열심히 보내란 말이닷!

 

어느 블로그에 들어갔는데

 

[놀랍지 않은가]하기에 뭔가 하고 클릭했다가

딸꾹! 놀라버렸다.

그래, 한번 쓰인 글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수 밖에 없는거다.

 

그건 그렇고 조금은 버거워서

사실을 밝히는 것이 나을 것 가터.

개토는 "개토 아닌 것이 토끼도 아닌 것이"의 줄임말이다.

원래는 "개색희도 아닌 것이 토깽이색희도 아닌 것이"라고 나를 부르던

한 친구가 귀찮이즘의 압박으로 줄여부른 별명이었다.

 

게토레이라거나, 빈민지구 게토라거나, 광개토라거나 개가 토한거라거나 그런 거 아니다.

 

그렇게 굴러다니는 이름도 조낸 의미심장한 이름도 아닌

그저 아무데서나 잘 뛰어다니고 널브러져 자고 쪼매나서 지어진

모호한 정체성의 결과다.

 

이번 한번만 딱 쓴다.

조낸 쑥스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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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5 11:56 2006/12/15 11:56

용의 눈물

from 2006/12/15 02:16

그는 그녀의 목에 칼을 대고 있다.

살색 골진 내복을 입고.

칼은 무딘 부엌용 도루코.

지겹다.

 

[왜 말리지 않지? 왜 바라보지 않지? 너는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니?

울어. 울면서 나를 말리란 말이다. 눈물을 흘려. 나를 보고 울어!]

 

 

그는 대륙전에서 살아 돌아왔다.

75kg에서 53kg의 몸무게로.

22kg은 어디로 간걸까?

세계의 전체 에너지는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22kg은 무엇으로 변환되었을까?

 

굉음, 어디에도 굉음 뿐이다. 누군가의 손이 눈앞으로 날아간다.

오른손에 들려있던 총은 어디간 걸까?

 

나는 그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6개의 총알이 몸에 박힌다는 것. 오른손이 날아가서 왼손으로 총을 들었다는 것.

그리고 세상이 까맣게 된다는 것.

 

그들은 왜 싸웠을까? 혹은 왜 그곳에 있었을까?

 

스위스의 병원에서 그는 몰핀대신 알코올을 주입당한다.

몰핀은 비싸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 알코올 중독. 중독. 중독.

 

그는 그 엄청난 역사적 무게를

내게 지운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했듯이.

그리고 또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했듯이.

 

나는 전쟁통의 고아처럼

이리저리 튀어다닌다.

숨을 곳을 찾아서.

죽음이 드리워져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가 되어

나는 그의 고통을 보지 못한다.

 

엄마의 고통도 보지 못한다.

 

나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인간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계장치다.

 

 

 

물을 삼키는 법을 잊어버렸다.

물을 삼키지 못해도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다.

아무도 내가 물을 삼키지 못한다는 것을 모른다.

 

어느 부분인가가 말라가고 있다.

음식물에 섞이지 않은 신선한 물만으로 적셔질 수 있는 곳.

갈증을 느끼지만 물을 삼킬 수는 없다.

내 몸은 아주 작은 자살을 한다.

 

그는 나를 보고 있다.

들킨 걸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요.]

[나는 다 알고 있단다.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하렴. 혼내지 않을께.]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요.]

 

알코올냄새가 짙게 뿜어져 나온다.

 

[말하라고 했다.]

[...]

[말하지 않으면 때려준다.]

[...]

[말하라고 했잖니. 왜 말을 안해! 말을 하란 말이다.]

 

무언가가 내게 날아든다.

나는 공처럼 둥글게 몸을 만다.

마음으로 아버지를 죽인다.

소리없이 눈물이 흐르지만 그것은 마음의 눈물이 아니다.

육체가 흘리는 피일 뿐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숫자를 센다.

숫자가 아득이 멀어져 간다.

멀어져 가서는 사라진다.

 

 

 

잉크는 얼룩진 손으로 내 얼굴을 닦아준다.

 

눈물에 그의 얼룩이 내 얼굴로 옮겨질 것 같아.

 

잉크의 손에는 PEACE 라는 글자가 공업용 잉크로 찍혀 있다.

물론 잉크가 스며들게 하기 위해 그의 아버지가 칼로 그 글자들을 새겼기 때문에

잉크자국은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가 깊은 곳은 깊은 만큼 잉크자국이 넓다.

 

소각로에 사람들이 또 들어갔어.

 

그건 사람들이 아니야. 이미 죽었잖아.

 

... 소각로 옆에 또 장이 섰어. 난 시계를 갖고 싶어. 진짜로 움직이는 초침이 있는 시계. 언니, 구경하러가. 이번에 들어간 ...그...그 ..그 [사람]들 중에 진짜 높은 [사람]들도 있었어. 시계가 있을꺼야.

 

어차피 사지도 못해. 갖고 싶어지기만 할껄 뭣하러 봐.

 

잉크는 [사람]이라는 말을 작게 얼버무린다.

잉크는 내 손을 이미 이끌고 있다.

잉크는 작다. 나도 작지만 그 아이는 더 작다.

작은 머리 뒤쪽에 칩이 박힌 자리에는 투명한 실리콘 뚜껑이 덮여있다.

우리는 시계를 살 필요가 없다.

그래도 잉크는 시계를 갖고 싶어 한다.

부자들은, 그런 옛날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

소각로 옆 장에는 그런 물건들이 나올리가 없다.

크게 손상되었거나 덜 손상된 칩들이 일련번호에 따라 값이 매겨져서

늙은이들에게 팔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총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총을 갖고 싶다.

 

칩은 우리의 전부다.

나는 칩으로부터 말을 배웠다.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나면 누구나 아이의 머리 뒤쪽에 칩을 설치하게 되어있다.

칩은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한다.

우리에게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은 칩 뿐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칩이 고장나면 새 칩으로 교환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소각로에 서는 장에서 칩이 교환된다.

칩이 없다면 우리는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시간이 몇시인지,

아침이 언제 오는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칩은 나이에 맞춰 프로그램된 수학과 언어, 과학, 역사 등의 지식을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모든 칩이 같은 것은 아니다.

부자들은 정부에서 칩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만의 칩을 만들어 쓴다.

 

잉크는 소각로 지기의 딸이다.

그녀는 매일 들어오는 시체들을 확인하고 매일 내게로 달려온다.

 

시계는 없네...언니가 천천히 걸어서 그래. 아까는 있었던거 같은데. 언니가 천천히 걸어서...

 

말꼬리가 사그라든다.

총도 없다. 있다 해도 우리같은 어린애들에게 보여지지는 않는다.

 

소각로주변에는 때때로 유리구슬같은 것이 뒹굴곤 한다.

시체들의 몸에서 나온 유리조각이 녹아 둥근 유리알이 된 것이다.

가끔은 아주 동그란 것도 있다.

나는 유리구슬을 찾아 바닥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있다!

 

파란 유리구슬이다. 이물질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투명한 푸른색이다.

모래나 머리카락같은 것이 섞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총알처럼 둥글다.

구슬치기를 하기에는 총알이 좋지만, 이런 유리구슬은 그냥 갖고만 있어도 좋다.

 

잉크에게 구슬을 준다.

 

이거 가져. 용의 눈물이야.

 

잉크의 눈이 구슬만해진다.

 

용이 뭐야?

 

나는 잉크의 질문에 깜짝 놀란다. 잉크는 내 말을 놓치는 법이 없다.

 

용이 뭐지?

나도 모르게 그냥 입에서 나온 말이다.

나는 용이 뭔지 급하게 생각하면서 

잉크를 데리고 늙은이들 틈을 지나 하수도 골목으로 가

비어있는 둥근 하수도 안으로 들어갔다.

 

용은 바다에 사는 거대한 동물이야. 이 구슬처럼 바다색깔이라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

 

바다색깔이 이런 색이야?

 

응, 바다는 이런 색이야.

용은 바다 밑바닥에서 가끔 하늘로 솟아오르는데

우리 머리보다 훨씬 더 먼곳에 있는 투명한 하늘까지 날아오를 수 있대.

 

투명한 하늘까지?

 

응, 투명한 하늘까지.

 

정말 투명한 하늘이 있어?

 

그럼. 거기서 용이 눈물을 흘리면 이렇게 파란구슬이 되어 떨어지는 거야.

 

용은 왜 울지?

 

...

 

용은 왜 울어?

 

용은 전쟁때문에 울어. 사람들이 쏘는 총에 맞은 용들이 죽어서.

사람들은 서로를 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보이지 않는 용들을 죽인 거야.

용은 죽은 용들때문에 울어.

 

잉크야, 우리도 언젠가는 전쟁때문에 죽어.

네가 죽으면 내가 널 위해 울어줄게.

 

잉크의 작은 몸을 끌어안고 나는 울기 시작했다.

잉크도 덩달아 울기 시작했다.

한번 울기 시작하니 멈춰지지가 않았다.

잉크의 손에 꼭 쥐어진 눈물 위로 잉크의 잉크가 번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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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5 02:16 2006/12/15 02:16

담배

from 2006/12/14 23:16

엄마는 오늘 담배를 피운다.

피우면 안되는데.

아빠가 없기 때문이다.

아빠는 먼 곳에 있다.

다용도실에서 찬바람에 얼굴도 손도 발도 내놓고

차갑게 빛나는 불빛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하얀 입김과 연기를 내밀었다.

나는 다용도실 유리문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지만 엄마는 내가 없는 것처럼 다시 하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돌아와. 내게서 죽음을 몰아내줘.

나는 무서워. 어둠이 다가오고 있어. 차가운 불빛들은 진짜가 아니야.

나는 이곳에 혼자 있어선 안돼.]

 

엄마는 유리로 된 성안에서 나와 온기가 도는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단단한 소파위에 나와 함께 앉았다.

나는 엄마를 지킬 수 없다.

엄마의 차가운 손이 내 무릎에 놓인다.

처음에는 그냥 차갑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무릎을 움직일수가 없게 되었다.

깊은 호수의 표면이 겨울빛에 얼어가듯이

내 몸은 조금씩 조금씩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얼어간다.

호수에서처럼, 얇게 언 수면아래로 미지근하거나 혹은 뜨거운 피가 천천히 흐르고 있다.

 

엄마는 페로시타스에게 걸어가고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걷는다.

 

 

[나를 데려가. 아이는 내버려둬.]

 

 

발끝은 페로시타스의 그림자 아래 있다.

그림자가그녀를녹이고있다아니벗기고있는걸까?

그림자에닿은부분이까맣게타들어간다.

 

[그것이 되찾아졌다

무엇이? 영원성이

그것은 태양과 함께

가는 바다] *

 

하늘은 검다.

백합의 독기가 가득한 좁은 방

육각의 석영으로 된 방안에서

태양의 낙하지점에 앉아

용처럼 날고 있는 프테라노돈을 바라본다.

 

혹은

 

하늘은 하얗다.

습기가 가득한 뜨거운 대지위에

초록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아마란타인 한송이만이 신기루처럼 박혀있다.

 

나를 데려가 줘.

타는 듯한 삶의 빛으로부터 거둬가 줘.

 

영원이 두렵지 않은가?

 

나는 순간이 두려워.

 

너는 태양을 품고 있어. 붉은 화염에 휩싸여 하늘을 나는 그것은 배인가?

아니, 그것은 용이구나. 미스릴로 만들어진 심장을 가진 기계용인가?

질투로 시퍼렇게 멍든 얼굴을 온기가 없는 석회가루로 화장한 달인 줄 알았더니

들끓는 용암으로 가득한 끝없는 동굴이었구나.

나는 너를 품을 수 없어. 나는 너를 거둘 수 없어.

내앞에 내민 발을 거두어라.

 

너는 물체의 온기를 빨아들여 무게를 없애주는 존재가 아니던가?

태양은 그저 작은 별일뿐. 언젠가는 스스로를 태워없앨 나약한 존재.

나를 받아들여. 나를 받아들여.

 

지옥이 있다면 그러하겠구나. 그 고통 속에 죽음이 너를 데리러 올때까지

부조리속으로 쉴틈없이 내던져 지거라. 내 그늘에는 네가 쉴 곳이 없다.

 

그녀는 그곳에 그대로 있지만

페로시타스는 에메랄드 속으로 사라진다.

두개의 에메랄드는 쩡 소리를 내며 어둠의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가는

잉걸불이 사라지듯 아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어둠속으로 녹아든다.

 

그녀는 또 담배를 피우러 간다.

심장에 담배끝을 대어 불을 붙인다.

 

 

* 랭보의 영원 마지막 구절. 번역은 정확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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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4 23:16 2006/12/14 23:16

김상이 집에 없다

from 우울 2006/12/14 18:14

김상이 집에 없다.

김상이 이 시간에 집에 없는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거늘,

어제부터 마음이 불안하다.

김상은 일요일까지 집에 오지 않는다.는 생각때문에.

저녁이 되어도 개토는 혼자 집에...냥이 두마리와...

 

집안이 싸늘하다.

 

일요일에 만든 닭도리탕을 태워먹었다.

얼마남지 않아 다행이긴 하지만, 아깝다.

바닥부분에 눌어붙은

근본을 알 수 없는 것들은 남겨두고 나머지를 퍼다가 저녁으로 먹고있다.

 

김상이 없으면 나는 밥도 잘 챙겨먹지 않는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런게 나다.

 

며칠새 살이 좀 빠졌다. 빠졌다 해봐야 1~2kg 정도지만

내 전체 몸무게를 생각하면 적은 양은 아니다.

그런데, 욕조에 들어가 앉으니 허리둘레에만 눈에 띄게 둥근 살의 테가 둘렸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각종 오락을 즐기기 때문이다.

집중하면 배가 고파지지 않아서 자주 먹는 것을 잊는다.

그래서인가 몸은 배둘레에 비상식량을 비축해두나보다.

 

몇해 전인가 한참 일에 묻혀 지낼때

가스렌지 아래 싱크대 안에, 친구에게서 받은 감자를 스무알 정도 넣어놓았다.

아무것도 해먹지 않고 살던 때라 넓은 싱크대 아래 공간에 달랑 감자 스무알뿐.

아마 서너달쯤 지나서였나보다.

라면을 끓여먹자고 싱크대를 열었을 때 가히 그 안은 장관이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살던 성 둘레를 감싸고 있던 가시덩굴이 아마 그랬을까? 

감자덩굴이 싱크대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둡고 퀴퀴한 싱크대안에서 감자는 무럭무럭 싹을 틔워 냈던 것이다.

 

말이 장관이지, 징그러움의 극치였다.

나는 감자 싹의 그 미끄덩하고 희끄무레한 녹색과 붉은색이 꼭 뱀같아서 무섭다.

꿈에 나올까 무서운 장면이었다.

구석에는 쪼글쪼글하게 쭈그러든 할머니 손처럼 감자들이 모여있었다.

 

메두사같았어...

 

그냥, 음식을 태워먹고 나니 그때 생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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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4 18:14 2006/12/14 18:14

성격자가진단테스트

from 우울 2006/12/14 13:08

혈액형별 성격이라던가, 별자리별 성격이라던가

하여튼 무슨 성격진단 테스트 결과를 받았다하면

주변에서 '참 쪽집게다', '어쩜 그리 신빙성이 있냐' 난리들이다.

개토의 성격자가진단 결과를 본 김상 왈, 이거 만든 사람 진짜 대단하단다.

 

개토는 다른 의미에서, 이거 만든 사람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50개의 질문으로부터 243개인가의 인간형을 분류해내고

각 분류에 맞게 사람들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일까?

이걸 만든 사람들은 어떤 방법을 썼을까?

대체 이걸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지?

심리학과 통계학이 사용된걸까?

초안은 설문같은 걸 이용했을까?

허, 거참 궁금하다.

대체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다.

 

반도체 제작 공정을 설명해준다면 차라리 논리적이겠지만...

뭐랄까 제작 과정이 참으로 의심쩍은 무언가이다.

 

어쨌든 누군가, 그 해석부분을 쓰신 분, 꽤나 유머러스 하시고 호감가는 분이십니다.

겉보기엔 아주 평범하실 듯한 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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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4 13:08 2006/12/14 1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