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 소프트

잡기장
컴퓨터로 뭔가 하길 좋아하는 지각생,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아는 만큼 주위사람에게 가르쳐주기 좋아하는 지각생, 그래서 컴퓨터 관련해서 공식, 비공식으로 교육을 많이하게 되는 지각생이다. 마치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알고 준비해놨다고 하는 듯한, 그래서 딱 원하는 것만 한 가지 방식으로 하게 되는 윈도우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의 여지가 있고, 직접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리눅스를 좋아하는 지각생이다. 내가 하려는 것이 이미 누군가가 다 짐작해서 준비한 한가지 방식으로만 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끔찍한 일이다.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여러 가지의 방법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비록 그 과정이 좀 피곤할지라도.

그래서 새로 어떤 장치를 추가하고 시스템 전체 외연을 바꾸는 것도 좋아하긴 하지만, 지각생의 일차적 관심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시스템을 어떻게 다양하게 활용해 볼 것인가"이다. 사람의 심리도 일단 나를 기준으로 내면으로 들어가 보는 것을 좋아하고, 컴퓨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쉽게 말해, 지각생은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많다. 같은 하드웨어도 어떤 소프트웨어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가능성의 폭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컴퓨터를 잘하는 지각생"으로 날 알고 있는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는 관점이 다른 것 같다. 사람들은 "하드웨어"에 관심이 더 많다. 눈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일까? 컴퓨터 교육을 한 뒤에 받는 질문은 뜻밖에도 그 본 내용이나, 다른 소프트웨어 - 운용에 대한 질문보다는, "내가 곧 컴퓨터를 사려고 하는데, 어떤게 좋아? 어떻게 얼마에 싸게 살 수 있어?" 그리고 시간되면 같이 혹은 대신 사달라는 내용을 함축한 질문이 많다. 그러면 난 대답한다. 잘 몰라. 인터넷 검색해봐. ㄷㄴㅇ 사이트 정도는 알려준다. 귀찮아서 그러냐면, 아니다 실제로 지각생은 컴퓨터 하드웨어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다.

물론 어떤 PC든 조립할 수 있고, 컴퓨터 구조에 대해 개념은 잡고 있으므로, 전혀 모른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모르는 것은 "최근에 어떤게 유행인가(좋은가)" "어떤 어떤 모델들이 있고, 각각의 세부 사양, 장단점은 무엇인가" 하는 것들이다. 즉 만물박사나 하드웨어매니아가 알고 있는, 그런 세세한 정보의 데이터베이스가 내겐 만들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관심도 없다. 그냥 있으면 쓴다. 필요할 때는 그냥 그때 그때 검색해보거나, 컴퓨터 파는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난 그저, 지금 구석에서 뒹굴고 있는, 사람들이 쓰다 팽개쳐 놓은 저 컴퓨터를 어떻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볼까에 더 관심이 많다. 그리고 지금 내 컴퓨터를 가지고 또 뭘할 수 있을까? 부품을 업그레이드 하지 않고도 어떻게 더 잘, 숨가쁘지 않게 달리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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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사랑하세요? 누군가 물었다. 난 일각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말한다. 물론이죠. 그러자 다시 그 사람이 묻는다. 내가 자전거를 사려해요. 어떤게 좋아요. 난 여기서는 잠시 망설인다. 그리고는 말한다. 좀 알아보신 거 있어요? 인터넷에서라던가. 다른 사람들에게라던가. 아니요. 그럼 제가 잘 아는 사람 소개시켜 줄께요. 그리고는 더 그 얘기를 하지 않는다.

내가 답을 잘못했다. 자전거를 사랑하세요? 라고 물었을때 난 이렇게 답했어야 정확히 답한 것이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합니다. 무지, 끔찍히요. 자전거는 그걸 위해 필요하기때문에 좋아하고, 필요한 만큼만 조금씩 알아가고 있죠.

언젠가부터, "자전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때 부담을 느낀다. 그 사람들과 만나 얼마 있지 않아 시작하게 되는 대화의 화제 때문이다. 열에 아홉은, 자전거의 모델, 각 부품에 대한 얘기로 들어간다. 그러면 역시 세부적인 하드웨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놓지 않은, 해 놨다 해도 평소에 기억하고 다니고, 부차적 관심밖에 없는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내가 아닌 사람들끼리는 한참 신나게 이 부품은 어떻고, 저 모델은 어떻고 그러며 한참 얘길 한다. 내 자전거가 조정이 잘 안되어 있다, 관리는 이렇게 하는 거다. 얘기는 지속된다.

그런게 물론 필요한 얘기이긴 하다. 안전하게 타기 위해서, 더 쾌적한 "라이딩"을 위해서, 다른 초보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정비 요령 많이 알면 알수록 좋고, 그러려면 부품의 명칭과 특성은 알아둬야 한다. 하지만 그래서 그 다음은? 안전하게, 편안하게, 익숙해질때까지 자전거를 탄 다음은? 자전거를 타는 것 자체가 목적인가?

자전거를 탈때는 어떤 느낌인지,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스쳐가는 바람, 지나치는 풍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이런 감상적인 것 말고도, 도로를 탈때 어떤 요령이 필요한지, 어느 길이 안전하거나 빠르거나 혹은 느낌이 좋거나, 어떻게 즐길 수 있다는, 그런 실용적인 내용이라도 "소프트웨어"에 대해서 얘기하는게 나는 좋다. 하지만 보통 이런 얘기는 오래 지속된 적이 많지 않다. 사실 나조차도 표현력의 부족과 무심함으로 많이 날려버리곤 하니 더 화제를 이끌어가진 못한다.

타다 보면 아무래도 계기가 있어 조금씩 장치들에 대해 알아가길 한다. 안전을 위해 간단한 자전거 정비방법, 주요 부품 명칭등은 분명 초기에도 집중해서 알아둘 만한 것이긴 하지만 때때로 어떤 사람들 보면 너무 그것에만 집착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난 자전거 매니아야. 그런 사람은 십중 일고여덣은 "하드웨어" 매니아인 것 같다. 그 사람들이 쏟아내는 얘기를 유용하게 접수하긴 하지만 조금 있다보면 지쳐간다. 이 사람은 자전거 타는 걸 정말 좋아하는 걸까. 그냥 다른 전자제품 매니아 같은 경우던가, 뭐든지 새로운 기계 장치를 먼저 써보는 걸 좋아한다던가, 남들에게 과시하는 걸 좋아하는 마초근성인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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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이해하기 쉽고, 과시하기도 쉬운) 하드웨어에 대한 관심이 눈에 안보이는(이해하기 어렵고, 놓치기 쉬운)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심보다 앞서는 것은 마치 한국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성향인 듯 싶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꼴불견인 "지나친 돈바름"도 그런 것 중 한가지. 쓸데없이 엄청나게 비싼 자전거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담스런 기능복으로 빼 입고, 자기의 힘을 과시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라이딩을 하는 것을 보면 내가 처음 자전거를 산 후 한동안 느꼈던 감정이 생각나 부끄러워진다. 마구 빵빵거리는 사람, 같이 가는 사람들 혹은 자전거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 괜히 불안감과 열등감을 심어줄 만한 사람들을 보면 갑갑하다.

얼마전에 한강에서 자전거 번개를 하다 그날 처음 배운 사람을 위해 자전거를 하나 빌렸다. 아주 단순한 부품으로 이뤄졌고, "뽀대"가 안나는 자전거였지만, 그걸 잠깐 바꿔탈때 나는 똑같은 즐거움을 느꼈다. 어떤 자전거를 타느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전거를 어떻게 타느냐도 분명 중요하다.

그리고, 컴퓨터쟁이니까 빼놓지 않고 이말도. 컴퓨터도 하드웨어만큼 중요한게 소프트웨어다.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컴퓨터는 결정론적 설계를 가졌지만, 비결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치다. 사용자가 실제로 쓰는 과정, 그 과정에서 컴퓨터는 완성되고, 다시 만들어진다. 그게 다른 가전 제품과 컴퓨터의 차이다. 주어진 대로 그냥 윈도우에 익스플로러, 독점 소프트웨어만 쓰지말고, 자유소프트웨어를 사용하자. 리눅스까지 쓰는게 부담스러우면 웹 브라우저만이라도 모질라 불여우로 바꿔보시라. 둘을 같이 쓰면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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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8 18:08 2007/05/1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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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007/05/18 19:00 URL EDIT REPLY
1페이지 이상은 잘 안 읽는 관계로 전반부만 읽고...ㅡ.ㅡ;;
-내가 곧 컴퓨터를 사려고 하는데, 어떤게 좋아? 어떻게 얼마에 싸게 살 수 있어요- 기껐 소프트웨어 강의 하고 이런 질문을 받으면...ㅋㅋ~.~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저는 그렇게 대답했어요, 어떤 용도로 쓸것이며, 얼마나 여유있어요??..."싼게 장땡입니다!!"...(예외분들도 있지만요...ㅎㅎ)
토토 2007/05/18 22:08 URL EDIT REPLY
이것을 정녕 지각생이 쓴 글이란 말인가...
자꾸 훌륭해지면 적응 안되잖아 ㅋㅋ
지각생 2007/05/19 16:24 URL EDIT REPLY
요한// 싼게 장땡이죠 :)

토토// -_- 부끄럽게 웬 훌륭. 어쨌든 감사 ;;
요한 2007/05/19 19:35 URL EDIT REPLY
그러다 잘못 고르면 싼게 비지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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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teOn 설치/실행 방법

매뉴얼
지각생님의 [리눅스에서 네이트온을, JaTeOn!] 에 관련된 글.

자테온(jateon)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은 지금까지는 두가지인 것 같습니다.
1. JRE가 무엇인가, 어떻게 설치하는가?
2.설치후에 실행파일이 없다.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가?

우선 JRE(Java Runtime Environment) 란 자바로 만든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말합니다. 우분투/데비안 사용자라면 sun 의 JRE을 시냅틱 패키지 관리자를 이용해 쉽게 설치할 수 있습니다.

실행파일이 없는 것은 윈도우처럼 *.exe 파일이 생성되는 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실행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java 라는 명령어가 jateon.jar 를 불러들여 실행을 하게 됩니다. jateon.jar 를 그냥 더블클릭하면 파일 압축 프로그램이 열리는 분이 많을텐데(설치한 직후에는 특히) JRE를 설치한 후에는 그걸 이용해 구동할 수 있습니다. 윈도우에서 "파일 형식" 지정하듯 하면 *.jar 를 더블클릭할때 항상 java가 구동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1. JRE설치하기
 시냅틱 패키지 관리자를 엽니다. 화면 상단의 메뉴중 "시스템" -> "관리" -> "시냅틱 패키지 관리자"를 선택합니다. 관리자 권한이 필요하므로 암호를 묻게 되는데, 자기 암호를 입력해주면 됩니다.

"검색" 버튼을 누르고, "JRE"를 입력합니다.



검색을 누르면 JRE 관련 패키지 목록이 나타납니다.


필요한 것은 sun-java6-jre 패키지입니다. 이름 옆의 체크박스를 클릭한 후, "설치 표시"를 선택해주면 패키지 설치 대상으로 지정됩니다.

필요한 다른 패키지(의존성이라고 합니다)가 설치 안되어 있으면 알아서 함께 설치해줍니다. "표시"를 클릭합니다.



이제 설치 준비가 됐습니다. 관리자에서 "적용" 버튼을 누릅니다.




한번 더 확인하는 질문을 하는데, "적용"을 누르면 알아서 파일들을 다운받고, 자동으로 설치를 진행합니다.





약관에 동의하는지 중간에 물어보는데 "Do you agree with the DLJ license terms?" 질문 옆 체크박스에 체크하고, "앞으로"를 누르면 계속 진행합니다. 이후에는 따로 손쓸 필요가 없이 JRE가 설치됩니다.


2. jateon 설치
 자테온 홈페이지에서 자테온 최신버전을 다운받습니다.(자료실) 5/16 현재 최신버전은 오픈 베타 0.20c 입니다.
 자테온이 사용한 라이브러리인 SWT도 구해야 합니다. 홈페이지 설명을 참고하세요.
 위 링크에서, 대개 swt-3.3M6-gtk-linux-x86.zip 를 받으면 됩니다. 미러사이트를 선택하라고 나오는데, 기본 미러는 지금 다운이 안되고, Daum의 미러가 잘 작동합니다.
 

 다운 받은 후 압축을 풀면 swt.jar 라는 파일이 있습니다.

 다운받은 자테온의 압축을 풀고, swt.jar를 그 압축 푼 디렉토리(이제부터 자테온 디렉토리라고 하겠습니다) 안에 있는 "lib"디렉토리로 복사해주면 됩니다.

3. jateon 구동
 자테온 디렉토리에 있는 jateon.jar 를 더블클릭했을때 압축관리자가 열린다면 아래 과정대로 해봅니다.
 - jateon.jar 파일을 마우스 오른쪽 클릭, "등록정보" 선택
 

 - "다른 프로그램으로 열기" 탭 선택

 - 목록에서 "Sun Java 6 Runtime" 선택
 - 닫기.

이제 jateon.jar 를 더블클릭하면 jateon이 실행됩니다. 이제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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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6 21:16 2007/05/16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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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007/05/16 21:36 URL EDIT REPLY
...ㅡ.ㅡ;; 또 책을 사던가 해야지 아예 기본부터 틀렸군...이럴 줄 알았어...게시판 같은 곳을 뒤져도...워낙 기초적인 부분이었는지 언급이 없더군요...^^;;
지각생 2007/05/16 21:40 URL EDIT REPLY
대개 매뉴얼이, 그 부분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실제로 막히는 부분은 다른 곳에 있는데 본 매뉴얼은 그런게 "생략"되어 있죠. 사실 따로 설명할 성격의 것이긴 하지만 초보자에게는 하나 하나 찬찬히 찾아 익히기가 어렵지요. 이런 전 과정을 다 설명하려면 피곤하긴 하지요.
요한 2007/05/16 22:07 URL EDIT REPLY
다른 곳에서 또 쓰려고 이렇게 자세한 메뉴얼을 만든 거라면 몰라도...저처럼 함량미달은 대충 틀린곳만 지적해주세요..^^암튼바로성공~^^(이렇게 그림까지 붙였는데 못하면 접시물떠와야지...ㅡ.ㅡ;;)
지각생 2007/05/17 00:32 URL EDIT REPLY
필요한 모든 사람을 위해 매뉴얼을 만든겁니다. 성공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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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덧칠

잡기장
지각생님의 [식어감] 에 관련된 글.

어두칙칙한 좁은 방에서 감정의 설사를 지린 후 밖에 나왔다. 자전거를 못타지만 차가운 날씨는 머리를 맑게 해준다. 어제 밤에 자전거를 타고 피곤하고 시간이 늦어 집에 안가고 또 미문동 방에서 잤다. 오늘은 인터뷰도 있고 해서 집에 와서 씻고 옷 갈아입고 나가려고 한다.

오랫만에 지하철을 탔다. 사람은 많지 않다. 편하게 자리에 앉아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상황. 연습장을 꺼내고, 내가 조금 전에 싸지른 덩어리를 생각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한거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누군가에 대한 실망과 원망의 마음이 저 아래에 계속 쌓이고 있던 걸 은연중 드러내고 싶었다. 나 지금 쉽지 않다고. 힘들다고. 좀 알아주면 안돼? 그런 마음이 밖으로 나오지 않거나, 나올때는 반대로 표현된다. 받고 싶을때 더 주려한다. 그것이 내 "오바"의 원인이다.

연습장에 내 감정과 의식의 흐름을 기록하다 보니 내가 모른 척하던 내 생각이 드러난다.

* 건강한 척 한다고 건강해지는 건 아니다. 지금 나는 정신적으로 약해져있어. 무슨 히코꼬무리? 같군.
* 황폐해진 내면이 그냥 드러나는 중이야.
* 서로 합의하지 않은 걸 기대하고 있군. 혼자만의 바람. 어차피 누구도 해줄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을 특정 사람에게 전가하고 있는 거지. 그런게 그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고, 거리감 혹은 좌절감을 느끼게 할 지도 몰라. 그러지 말자.
* 내가 외로우면 누군가 외로움을 풀어주길 기대하지 말고, 다른 이의 외로움을 들어주자. 하지만 어떻게? 나도 "응급 조치"는 필요한 거 아냐? 호흡이 곤란하니 일단 인공호흡을 받아야 하는 거 아냐? 그런 상황이 아닐까? 아니면 내 증상에 대해 과대망상을 갖고 있는 걸까
* 하여든 달래야 하고, 숨 돌리고 나면 내가 찾아나서야지.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만 과도하게 들러붙지 않게 되길.

그림을 그린다. 감정의 고착. 어릴 적 어디엔가 고착되어 있는 감정의 찌꺼기. 응어리. 그 끈적 찐득한 액체에 발이 잠겨, 늘러붙은 한 마리 새. 날개짓을 하고 있지만 버둥거릴뿐 벗어나지 못한다.

그림을 잘 못그린다는 건 내 가장 큰 아쉬움이다. 어제 블랙보드를 하나 사서 미문동방에 걸어놨다. 펭귄 그림을 그리려 했는데 망쳤다. 둥그런 외관과 날개를 그리고 눈과 부리, 검정과 흰 부분의 경계를 그리다 보니 점점 이상해졌다. 그래서 계속 손질을 가했는데 그럴수록 펭귄이 아니라 이상한 괴물이 되어간다. 지나친 손질, 덧칠. 그 생각이 나자 내 지금 상황을 표현할 단어를 기억해냈다. 그래, 난 감정을 계속 덧칠하고 있어. 지나치게 자주 손질을 가하고 있지. 전체 그림에 대한 상은 갖고 있지 않고 부분적인 데만 몰두하지. 내버려둬도 좋을 것을 계속 손대고 있어. 그렇게 망치는 그림은 지워버린다. 그리고 종이를 뜯어 구깃구깃 접는다. 그리고는 휴지통에 넣는다. 어쩔때는 그것도 누가 볼까봐 서랍이나 가방에 넣어놓는다. 온전히 끝까지 그린 그림도 많지 않고, 사람들에게 보여준 그림도 별로 없다.

* 솔직하게 지금의 내 상태를 드러내는게 무에 문제인가. 이런 내가 싫다면 할 수 없는거지.

하지만 이 말이 옛날과 다르게 틀린 것은, 이 블로그는 더 이상 "얼굴 없는 지각생"의 블로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오프라인에서 아는 사람도 생기고, 너무 많이 알고 있거나 감정의 찌꺼기가 쌓여 곤란한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쓰지 않고 있다. 예전에 했던 그런 말을 하지 못한다. 그나마 그런 말을 하고 나서, 모두에게 공개된 장소에 털어놓고 회피할 수 없게 되고 나서야 나는 내 자신을 조금더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그러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블로그에는 그런 예전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왠지 집 놔두고 엉뚱한 곳에서 방황하는 것 같은 심정.

* 자유로워지고, 치유해서, 건강을 회복하자. 그래서 다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다.
* 저지르고 나니, 걱정이 되고, 수습을 위해서라도 조금 더 생각하게 되는구나. 끝없는 수습, 덧칠, 그러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자.
* 성숙, 혹은 극복 과정을 자랑해도 된다. 하지만 원래 어두웠던 것, 출발점을 덮지는 말자. 덧칠하지 말자. 그럴수록 나 자신을 잃어갈거야. 나로부터도. 내 블로그..

여기서 지하철을 내렸다.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또 다른 곳에서 출발한 생각이 고개를 디민다. 난 그것이 뭔지 안다. 2차적 의식이랄까. 내가 연습장에 마치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늘어놓는 것처럼 하고 있을때 그걸 관찰하고 있는 또 하나의 나. 그게 말한다. 지금 나는 부끄러운 나를 감추기 위해, 또 덧칠하기 위해 이런 말들을 블로그에 어서 올리고 싶어 안달하고 있구나. 사람들에게 나 극복했어요. 잠시 흔들렸을 뿐 나는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들은 옛날에 다 했다고요. 라고 말하고자 하는구나. 지금껏 그래왔듯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고 교묘하게 내 감정을 포장하고 배치해서 늘어놓고 있구나. 누군가 사 가거나 적선해주길 기다리는 것처럼.

내 불안과 열등감은 아무 근거가 없는게 아니다. 계속 내 지금의 상태를 숨기고 뒤처진 나를 배제하고 있으니 외연에 비해 내적 성숙이 이르지 못하는 거다. 어느 순간에서 멈춰 있는 거다. 지금의 내 상태를 인정해야돼. 나는 깊이 있고 진지했다기보단 차라리 심각해지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고 말하는게 더 적당할 수 있다. 나는 돌덩이 속의 조각을 볼 수 없고, 완성된 그림에 대한 상 없이 밑그림만 그리고 부분에만 끙끙거리다 던져버리고 만다. 끝없는 덧칠과 손질, 지워버림, 감춤의 반복은 내 감정, 내 모습을 잃게 하고 있다.

그래, 그 말이 맞다. 나는 빨리 이 글을 쓰고 싶어다. 회복하고 있다는 것, 내가 살짝 드러낸 부끄러운 감정을 덮어버릴 수 있는 "깊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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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6 14:28 2007/05/1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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