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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중-용서할 수 없는 자라도 이해할 수는 있다.

혜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전날까지 헤드폰과 이어폰을 만드는 전자제품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혜정은 거기에도 노조가 생겼다며, 단지 교정이 넓어서 선택했다는 대학에선 인근 성수공단의 체불임금을 남겨둔채 야밤의 제품반출을 시도하는 구사대와 몸싸움을 하던 여공들이 다쳤다며 분개하더니  채 1학년을 다 마치지도 않고 사라졌다. 티비에서는 가자 북으로! 를 외치는 대학생들을 몽둥이로 두들기는 영상이 편집 속에서도 연신 내비쳤고 대통령직선제에도 유유히 권좌를 장악한 우익이 세를 과시하는 가운데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연신 빨아대는 흡혈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 한국의 민주화는 끝났어. " 라고 백기완의 낙선을 두고 더 이상 희망을 볼 수 없다고 인하대의 운동권이라는 친구오빠가 말하더라며 혜정은 6월 항쟁은....우리들의 승리가 아니야....라고 중얼거렸다. 그 애는 더 이상 문학소녀가 아니었다. 오래도록 사춘기의 몸살을 앓던 내성적이고 연약하기만 하던 아이도 아니었다. 아빠에게 맞은 뺨의 붉은 손자욱을 가리던 반항하는 십대도 아니었다. 스물 하나, 그 후로 그의 인생을 철저하게 규정했던 이십대의 운동권 인생을 그 애는 모든 인연을 끊고 잠적하는 것으로 본격화했다.

그 애가 다닌 학교는 서울에서 몇 안 되는 독문학과가 있는 4년제 종합대학교였다. 꿈이 없어.....사회에 나가 뭘 하고 싶은 지 모르겠어서, 고교를 졸업하자 마자 취직을 하는 건 아무래도 아니라며 고 3의 수험생 생활을 그야말로 공부에 매진했던 그 애였다. 왜 독문학과를 가느냐고 묻자, 여자아이들이 선호하는 사범대나 영문과를 가는 건 시집 잘 가려고 가는 것 같아서 싫고 법대는 너무 어렵고 또 웃길 것 같고 경제학과는 수학 때문에 안 된다며, 독일철학을 원서로 공부하고 싶어서? 하지만 사실은 그저 전혜린의 분위기에 딸려가는 거라고 말하면서 혜정은 배시시 웃었다. 그런데 독일어는 불어만큼의 분위기도 없고 발음이 자기가 내기엔 너무 뻘쭘하다며 게다가 짜라투스트라에서 슈바빙의 안개 낀 아침을 느끼긴 어렵겠다면서 그냥 번역된 독일의 원전들을 보기도 바쁘다고 혜정은 한창 쏟아져나오기 시작하는 맑스엥겔스 저작들을 사는데 용돈을 다 털어넣고 있었다.  그 애와 대학의 낭만을 느껴본 건 아직 학생운동을 하는 선배들의 귀여운 후배 노릇을 하고 있던 오월의 축제와 골방에 처박혀 세미나합숙을 마친 후 조금 남은 여름방학끝에 한가로이 교정을 거닐었던 며칠 뿐이었다.

" 아무리 읽어도 주체사상은...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이건 유물사관이랑도, 변증법하고도 인식론적으로 연계가 안돼. 휴우.... "  혜정은 한숨을 쉬며 자신의 직속 선배와 대판 싸웠다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고민했다. 혜정과 자유롭게 맥주를 마시고 엠티를 핑계삼아 가까운 춘천에라도 다녀오고 싶었던 윤 진은 고민하는 혜정에게 할 말이 없었다. 데모가 뜨던 말던 별로 영향이 없었던 예술가들의 무리 속에 있는 윤 진에게 아무런 비난도 비판도 하지 않는 혜정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 너까지 이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어. 나두 확신이 없는데 뭐...." 그리고 덧붙였다.  혁명 후 러시아에서도 예술가들은 단죄의 대상은 아니었어. 그랬어야 한다고 생각해. 인간의 역사는 사회혁명보다 더 큰 틀거리 속에 있다고... 윤 진은 그 애가 보는 소설책을 잘 몰랐던 것처럼 그 애가 소장하고 있던 사회과학 서적도 한 장 떠들어본 적이 없었던 지라 무슨 소린지 하나두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자신을 특별히 여기고 있다는 느낌은 확실히 받았었다.

그런데 자기에게조차 한 마디 말도 없이 그야말로 뾰로롱 사라졌다. 그 애의 학과 선배들 중 이름을 들을 적이 있는 사람을 과사무실에서 만났다. 안 그래도 혜정의 아빠가 온 학교를 뒤집어놓고 갔다며 아주 학을 떼었다며 진저리를 치면서 말했다. 사실은 자기들이 기껏 키워놓은 후배를 피디그룹에서 빼갔다고. 과에서 자기를 같은 동아리에 있는 3학년 언니의 따라지라고 부른다고 삐져서 말하던게 생각났다. 혜정을 주체성있는 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언사에 윤진은 그 애가 보다 낮이나 밤이나 처박혀 살던 동아리실을 찾았다. 2학년 알피라는 화학과의 우직스러워보이는 여자가 여름방학 후 동아리엔 거의 안 나타났다면서 학생회관이 아닌 대운동장 스텐드 밑의 구석진 곳에 자리잡은 학내에서 거의 유일한 피디써클이라는 곳의 동아리실을 알려주었다. 맨날 밥먹자고 쫓아다녔지만 가뭄에 콩 나듯 한 번씩 학생식당에서 자리를 함께 했을 뿐이라며 네모난 얼굴의 예비역이 우리 쪽으론 안 왔다고 한다. 대체 이, 부지만 서울시내 제일로 넓다 뿐이지 학생운동은 쓰다만 플랭카드와 신나냄새로 꽉 찬 한 동의 학생회관을 중심으로 문과대와 사회대 앞의 민주광장 안에서 다 이루어지고 있는  이 손바닥만한 행동반경을 갖고 있는 학생운동권에서 혜정은 어디로, 어느 선을 타고 빠져나갔단 말인가?

나름 주변을 정리하는데 순서를 밟고 상대를 배려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했던 혜정이었다. 중학시절 몇 안 되는 친구들과 멀어지는 것도 천천히, 고등학교의 패거리들과 함께 어울리다가 얽혔던 남학교의 후까시들과 인연을 끊는 것도 입시공부를 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만나 설득하느라 1년 여가 걸려서 윤 진으로 하여금 울화통이 터지게 하던 소심가였다. 윤 진은 그 애가 데모를 한다고 시내에 택이 있다고 비택이라 말할 수 없다고 혼자 몇 번이고 버스를 갈아타고 나가는 것을 보고, 그리고 저녁에는 일곱시 뉴스를 통해 자욱한 최류가스 속에서 몽둥이찜질을 당하며 피투성이가 된 대학생들과 아우성치는 시민들을 카메라에 잡은 영상을 보면서 몇 번이나 말하려고 했었다. 혜정아, 너에겐 어울리지 않아. 그 작은 몸으로 옥쇄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처럼 팔에 팔을 걸고 군중들 속에 있어봤자 몰아치는 전경들보다 더 빨리 튀는 너의 그 동지들의 발에 채여 너의 전력질주는 소용이 없을 거라고. 학생운동도 대학시절의 빼놓을 수 없는 낭만 중 하나라고 뻔뻔스럽게 읊어대며 인민에 대한 사랑을 떠드는 입술로 취업준비를 착실히 하는 도서관에서 건진 잘 빠진 여학생과의 키스와 함께 대학이라는 또 하나의 기득권을 결코 놓치지 않으려는 우리 시대의 대학생들이 하는 운동 속에서 너는 또다시 고립될 꺼야. 입시에 매몰되었던 고등학교에서처럼. 부모의 직업이라는 귀속계급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었던 기독사립학원의 중학교에서처럼. 하지만 그 애의 고집스럽게 꾹 다문 입술은 대학에서의 한 계절, 한 계절이 갈수록 더욱 다시 벌어지지 않았고 간간히 웃음을 날리던 순진한 표정에는 침울과 의혹이 도사린 비장함이 갈수록 짙어져갔다. 맑스주의가 답을 주지 않는다면....삶의 진리는,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나는 여기서 답을 찾아보겠어. 끝까지 가 볼꺼야. 대학생이 아닌 노동자들 속에서. 노동자계급만이 희망이야. 60년대 빈농이었던 아빠가 도시빈민에서 부동산폭등기에 한 몫 잡은 걸 기화로 자수성가에 성공하면서도 구질구질한 가난과 설움 속에서 습성화된 가부장적 폭력으로 가족들을 공포와 불안 속에 살게 한 어린시절을 혜정은 용서할 수 없어했다. 우리 부모가 자기 노동력에 기반한 자영업주가 아니라, 그래서 쁘띠비지의 간사하고 비열한 속성을 내성화하지 않고 하루 품으로 하루도 버티기 힘든 공장노동자로 살았다면 그래서 아마 계속 가난하고 일상의 불편에 온 에너지를 소진하며 어쩌면 자식들을 대학에 보낼 돈이 없어서 피지배계급의 재생산에 머물렀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과 소박한 품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그건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집단으로서 존재하는 프롤레타리아만이 가질 수 있는 계급성에서 나오는 연대의식에서 나오는 인간애라고. 혜정은 그 기대와 희망의 끈을 힘겹게 붙들고 있었다. 분명히 그 애는 다시 공장으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 학생아르바이트가 아닌, 먹고 살기 위해 취업을 갈구하는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 울산? 아니면 인천? 학교의 선배들이 아니라면, 그 애가 함께 한 ' 동지' 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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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중-여.우.사.이

의외로.

혜정을 만나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학교가 다르다는 것이 이렇게나 불리한 조건일 줄을 중학교 때는 몰랐다. 반이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윤 진은 지난 시절이 아쉽게 느껴졌다.

우연을 가장하지 않고 그 애의 학교 앞에 갈 수 있었지만 한 번 가 보니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교 후 외대 앞에서 보자니 도착하면 저녁시간이 되어버렸다. 한국사회에서 학생신분으로 산다는 것은 직장인으로서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침자율학습은 수당없는 조출이었고 야간자율학습은 제 돈내고 밥 사 먹으면서 매달리는 성과를 위한 야근이었다. 실적을 내지 못 하면 여지없이 열반으로 좌천되거나 경쟁에서 열외로 밀리는. 황금같은 주말에도 피곤에 지친 몸을 일으키지 못 한 채 방바닥에 붙어있다가 하루 해가 뉘엿뉘엿해져서야 정신이 돌아오지만 월요일을 생각하면 외출은 한참 고심한 끝에야 감행할 수 있는 사치였다. 뭐...이런 싸이클에 혜정이 충실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한국의 고등학생들에게 주어진 일상의 규제와 스트레스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 오늘은 야자 있는데. "

반포까지 가는 피아노레슨이 있는 날을 피해 혜정의 학교 앞에 왔지만 도무지 하교하는 학생을 볼 수 없어 들어가본 교정에서 들은 말이었다. 그렇게 말한 여자애는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메고 정문에서 바로 바라다보이는 2층짜리 교사 안으로 쏙 들어갔다. 교실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 국기가 게양된 조회대 뒤의 현관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거울을 가운데 두고 왼쪽 오른쪽 2층을 가리키는 화살표 옆에 서무실, 교무실, 도서실 등의  팻말이 써 있었다. 대부분 입실을 끝낸 듯 몇 안 되는 남녀 학생들이 각자의 짐을 지고 바쁜 듯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따라서 가 보니 2층의 왼쪽에 양호실, 그 뒤로 피아노실이란 팻말이 붙어있다.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지만 혜정과는 인연이 없는 곳이다. 문득, 미션스쿠울이었던 중학교에서 해마다 있었던 합창대회가 생각났다. 그 애는 엘리야의 하나님이란 노래에서 하이소프라노파트를 맡았었다. 엉망이었다. 연습 때 반주를 맡은 아이가 결석을 해서 윤 진이 대신 피아노를 치면서 보았던 지휘를 맡은 아이도 지도를 하던 음악선생님도 그 곤혹스러움을 참는 표정이란 !  아이들이 꺼려하는 하이소프라노에서 그 애를 뺄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고 계속되는 불협화음에 그 애는 아이들이 첫음을 시작한 후에 슬쩍 섞여드는 수법을 쓰더니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고 대회날에 이르러서는 그냥 입모양만 보여주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음치라고나 할까....그러기도 쉽지 않았을텐데...개인적으로 친했던 음악선생님은 기말고사 성적을 정리하면서 " 이 애는 필기는 백점인데 실기점수를 합산하니 평균 이하로 떨어지네...이거 참 내가 준 점순데 츳츳....." 하면서 상위권에 랭크된 우수학생의 평균을  자신이 끌어내리는 것 같다며  미안해 했다.  빙긋 미소를 떠올리며 윤 진은 도서실 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감독선생이 아직 들어오지 않은 듯 여기저기 의자를 끌고 책들을 늘어놓는 아이들이 눈에 띄였다. 그 속에서 나는 딴세상이요 하듯 고개를 쳐박고 열공 중이거나 사색? 중인 아이들로 구성된 도서실 야자의 수용자들은 그래도 영수 열반으로 편재되어 교실에서 야자를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우월감으로 위로받고 있었다. 혜정의 말에 의하면 그랬다. 부산하게 수다를 주고 받는 패거리 들 속에서 일어나는 혜정은 옆엣 아이들에게 웃으며 뭐라고 말하더니 문 쪽으로 나왔다. 가슴에 교과서는 아닌 듯한 책 몇 권을 껴안고 있었다. 윤 진을 보고 깜짝 놀란다. 저번처럼 더듬진 않는다. 야자 있는 날이라고 방금 아래층에서 들었던 말을 한다.

" 근데 넌 어디 가? "

" 아, 아직 시작 전이거든, 얼른 교무실에 다녀올려구. 선생님한테 빌린 책을 갖다드려야 해서. "

슬쩍 들여다본 책의 제목은 들어보지 못 한 것이었다. 머나먼 쏭바강? 제 2의 성? 이게 뭐지? 윤 진은 선생님이 빌려 준 책이니 의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껄적지근한 것이.... 그 애를 따라가서 교무실 앞에서 기다렸다.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는데  종례를 마치거나 감독을 들어가거나 하는 선생님들이 오락가락 하면서 교무실은 한창 분주한 판이었다. 열려진 교무실 문 사이로 그 애가 젊지만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는 여선생과 얘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윤 진은 그런 옆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밝고 편안한 표정으로, 보통의 선생과 제자 사이에선 발견하기 어려운 유대, 신뢰, 호감과 애정 같은 것이 그들 사이에 흘렀다. 교무실을 나오는 그 애의 가슴엔 또 다른 책이 한권 소중히 품어져 있다. 8억인의 나라...이건 또 뭔가요? 윤 진은 그 애가 중학시절과 다르지 않게 교과서 아닌 책들을 읽는 걸 계속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근데 인문계고교에서 학생에게 문학서적도 아닌 책을 대 주는 선생이라?

" 넌 야자시간에 혼자 책 보냐?"

" 하하...그게...수업시간에 실컷 본 교과서를 또 들여다본다는게 지겨워서..."

암기로 되는 과목들이라면 모를까 고교에서 시험기간에 공부하는 것으로 좋은 성적을 내기는 어려울텐데 하고 윤 진은 생각했지만 중학시절 최상위와 최하위를 오르내렸던 그 애의 석차를 알고 있는 윤 진은 여전하군 하는 생각을 했다.

" 입시, 걱정 안 돼? "

" 글쎄....내가 상정한 목표가 아니라...  "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고 혜정은 말했다. 저렇게 독서에만 열중하다가 소설가라도 되려나 했더니 아닌게 아니라 시를 쓰고 있다고, 국어선생님이 봐 주신다고 한다. 친해 보였다. 보통, 여학생들은 젊은 남자선생을 좋아하는데, 좀전에 교무실에서 핑크빛 베개를 책상 위에 떡하니 올린 채 하얀 얼굴을 파묻고 자고 있던 남자선생도 무척 젊어보였다.

" 하하하, 그 선생님 대학 졸업하고 처음 부임한 영어선생님인데, 인기 캡이야. 얘들이랑 뒤밟아서 집도 아는데 단칸방에서 자취하고 있더라고. "

이 혜정, 너 스토커냐? 뒤 밟는거 습관된다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슬쩍 기분이 나빠지는 윤 진이었다. 야자를 땡땡이치라곤 차마 할 수 없어서 윤 진은 다른 친구 얼굴이나 보고 가겠다며 혜정과 도서실 문 앞에서 헤어졌다.  땡땡이를 칠까 말까를 고민하는 듯 관리 안되는 표정으로 혜정은 문 안으로 떠밀리듯 들어갔다. 그 애의 자리 근처에서 예의 그 ' 네 명'의 멤버들인 게 분명한 아이들이 손짓하는 게 보였다. 중학 때와는 달라진 혜정의 일부였다. 곧 그 애들에게 뭐라고 하면서 웃음을 떨구고 있는 혜정, 그다지 자연스러워보이진 않는다.

중학시절 혜정이 패거리 속에 있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그 애의 초등학교동창생말고 친하게 지내는 한, 두명이 있다는 건 강당이나 체육시간에 반복적으로 곁을 지키던 얼굴을 보아 알고 있다. 그 중 한 명이었던 학교의 유명한 날라리는 학년이 바뀌자 그 애의 곁에서 보이지 않았고 혜정이 그 날라리친구들 속에 묻혀다닌다는 얘기도 없어서 은근한 걱정을 털어버렸던 생각이 났다.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그 애는 혼자 중학교의 교문을 총총히 빠져나갔었다. 하교길에서 보았던 그 애의 어깨 혹은 옆얼굴은 늘 심각한 가정문제라도 있는 양 굳어있었고 조그마한 입을 꾹 다물고 발밑만 응시하고 걷는 고집스러운 모습이었다.

" 고등학교 와서 새친구들은 많이 사귀었어? "

" 응...글쎄...."

혜정은 1학년 때 짝궁과 지금도 자주 만난다고 했다. 자기는 절대로 갈 수 없는 이과를 선택해서 다시 한 반이 될 수 없었다고 말하면서 실의에 찬 표정을 보였다. 넌...친구 따라 강남가냐...하는 생각을 하며 개랑 많이 친한가 봐? 하고 떠보자 교환일기도 썼다고 한다. 윤 진으로선 흉내도 못 낼 일이었다. 아무리 하기 어려운 말이라도 걍 면전에서 얘기하는 게 낫지, 편지는 커녕 수업시간에 종횡무진 날아다니던 쪽지 한 장에도 제대로 된 문장을 써 본 적이 없었던 윤 진이었다. " ? " 아니면 " OK "  혹은 쌩까는 게 윤 진이 하는 대답의 다였다. 혜정이 중학시절 유일하게 조회대에 올랐던 것도 교내 백일장에서 입상을 했을 때였다. 그 애는, 윤 진이 초등학교시절 숙제검사로 겨우 썼던 일기를 지금도 매일 쓰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릴 없이 교정을 돌아보았다. 개교 3년 차의 학교답게 새 건물, 깨끗한 벽이었다. 본관 뒤에 있는 ㄷ 자 모양의 교사는 공주사대의 건축물을 모방한 것이라더니 2층까지 뻥 뚫려 시원해보이는 회랑은 자못 넓어서 중학교 때 강당건물의 천정 높은 홀을 생각나게 하였다.  강당건물의 홀을 나오면 잘 손질된 화단과 작은 연못도 있는 야트막한 언덕이 고등학교 교사를 지나 야외음악당까지 이어져있는 중학교의 넓은 교정을 혼자 걷고 있는 혜정을 점심시간이나 때로는 아이들이 다 하교한 시간에도 발견할 수 있었다. 피아노연습을 하고 나오다가,  그 애가 학교의 뒷산으로 가는 건 아닐까 하고 윤 진은 한참이나 지켜보았었다. 그 애는 그렇게 혼자 산책하기로 학교에서의 모든 자유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러나 교실의 의자에 붙박히지 않을 수 있는 시간들을 다 때우기에 이 공립고등학교는 너무 작은 부지 위에 세워져있었다. 게다가 운동장을 포함하여 학교의 한쪽 면은 높이 솟아있는 가림막으로 둘러쳐져 있었는데 그 얇은 천은 알알이 박힌 검은 가루로 잿빛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건강을 위해서라도 산책하면 안될 것 같은 교정이었다.

정말 의외였지만 고등학교에서 혜정은 꽤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에는 네 명의 패거리와 하교길을 함께 하더니  그 패와 또 다른 공식적인 써클활동도 하고 있었다. 스카우트 입단식이 있다며 1박 2일 엠티를 간단다.물론 그 앤 걸스카우트다. 그런데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보이스카우트와 함께 간다는 것이었다. 윤 진은 골치가 아팠다. 일일찻집 앞에서 길거리 헌팅을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남녀공학에서 써클활동을 하는 아이들의 진짜 목적은  건전한 이성교제의 공간을 허가받는 거라고, 여고에서 국제로타리활동을 하는 애들과 함께 싸잡아 비난하던 정원의 말이 떠올랐다.  혜정이 학교의 남학생들 얘기를 하는 걸 본 적은 없었지만, 걸스카우트 대장이 그 책을 빌려주던 국어선생님이라는 것 또한 들어 알았지만,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고 스카우트 활동까지 하는 혜정이 남학생들의 주목을 받거나 적어도 자연스럽게 남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많을 것은 쉬이 예측되는 일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예측이 빗나갔다는 것을 윤 진은 여름방학 때쯤엔 확신할 수 있었다. 혜정은 나날이 떨어지는 성적과 함께 담임의 관심을 잃어갔고 체력장의 윗몸일으키기나 달리기 같은 데서 강단으로 승부하는 기록치 외에 모두가 어울려 하는 피구나 발야구에서의 순발력은 제로 수준이라는 걸 드러내면서 아이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져갔다.그리고 써클활동을 하는 아이들의 부티나는 의상과 소지품, 화젯거리에 어울리는 흉내도 낼 수 없었던 혜정은 보이스카우트는 고사하고 걸 스카우트의 동기들 사이에서도 경원시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혜정은 여름방학 때는 스카우트에서 지리산을 간다고 했다. 그건 5박 6일이나 되는 일정이었다. 거길 가기 위해서 아빠와 한참을 싸웠다고도 했다. 부모님 두 분 다 가게에 매여 하루 종일 일하면서 삼남매를 키우는 혜정의 집에서 고등학교 써클활동은 쉽지 않은 사치이기도 했다. 혜정은 정말로, 단지, 스카우트 대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 그 국어선생이기 때문에 써클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게 더 나쁘다는 걸 오래지 않아 윤 진은 느꼈다.

어느날, 지리선생님이 잡혀갔다고 우울해하던 혜정은 학교가 난리가 났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아침 자율 학습에 늘 턱걸이하는 시간에 도착하던 혜정은 칠판 위 태극기 액자 옆과 천정에 붙어있던 몇 장 밖에 못 보았지만 온 학교에 총학생회장 직선제를 요구하는 벽보가 나붙었다는 것이었다. 학생주임과 교련, 생활지도부선생을 주축으로 한 우악스러운 포스의 남자선생들이 몽둥이를 들고 그 벽보를 뜯어내며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느라 뛰어다닌 끝에 겨우 소란이 가라앉았지만 학교는 오랫동안 귀엣말과 숨은 회합 속에서 긴장과 분주함을 이어나갔다. 그런 것 같다고, 3학년 선배들의 민주 어쩌고 하는 조직에 맨날 꼴찌를 도맡으면서도 관동별곡을 가르치는 시간에 이 험한 산중에서 가마를 메고 진땀을 흘리는 하인들에게 수려한 산천경개가 눈에 들어왔겠냐며 꼬집던 작문선생님이 연루되었고 더불어 그 국어선생님도 딸려갈지도 모르겠다며 혜정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 옆얼굴엔 입시공부에나 매여있어야 하는 자신을 한심스러워하는 자괴감이 깃들어있었고 혜정은 그 우울과 소외감 속에서 국어선생님에게 시가 아닌, 장장 10장에 이르는 편지를 써 보냈지만 아무 답변도 받지 못했다며 슬퍼했다. 그리고 간첩혐의로 잡혀갔던 지리선생님을 면회하고 온 국어선생님에게서 곧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증거도 없는 조작사건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그러나 다시 교단으로 돌아오지는 못 할 것 같다면서 혜정은 고통스럽게 말했다.  

" 지리 선생님의 그 표정이 잊혀지지 않아..."  끝없이 떠들거나 진도나가 달라고 요구하는 학년톱의 부잣집 아이와 같은 교실에 있다는 것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지긋이 자신들을 쳐다보던 지리선생님 앞에서 너무나 부끄러웠다는 얘기를 혜정은 비감하게 읊조렸다.

그 후 고 3이 되어 입시준비를 하겠다던 혜정은 대학을 가지 않으려면 취직을 하거나 시집을 가라고 아빠가 말했다면서 주변을 정리했었다. 뭉쳐다니던 패거리 중에 키가 큰 한 친구는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인문계고교 3학년에 특별학급으로 편성된 취업반으로 갔다가 2학기부터는 공장을 다닌다고, 전국이 데모로 들끓었던 여름 이후 계속되는 노동자파업의 물결 속에서 그 애가 어찌되었을 지 모르겠다며  혜정은 답답해 죽겠다며 눈물을 흘렸다.그리고 입시가 끝난 그 겨울 그 애가 다니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소식을 뚝 끊었던 혜정은 대학 1학년을 마치기 전에 잠적했다.  이 혜정, 여기서 우리가 사랑을 이야기하기에 대한민국의 고등학교는 너무나 척박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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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중-청춘 그리고

" 윤 진 아닌데, 지금은. "

" ......? "

" 엄마 성으로 바꿨어. 이 진이야.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

" 아, 그래....."

말을 많이 삼키는 편이다. 혜정은.

부러 묻지 않는 듯, 잠시 다른 화제거리를 찾느라 고심 중인게 눈에 보였다.

" 원래 별거 중이셨어. 몇 년 전부터. 아빠랑 동거하는 여자가 임신을 해서. 엄마는 원래 다른 사람에게 의존적인 성격이 아니어서 별로 상처 안 받는 것 같더라구. 교회에서 야학하시다가 지금은 공부방하셔. "

월급을 받는 지 안 받는 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 일을 인생에 처음 만나는 자유처럼 즐거워하며 해나가고 있었다. 68학번인 엄마는 대학 때도 사회운동에 참여하신 것 같았다. 써클 선배였던 아빠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재학 중에 윤 진을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결혼을 했을까 의심스러웠다. 울 오빠를 포함해서 남자들은 다 사기꾼에 이중인격자야. 고모는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엄마에게 써클을 그만두라고 강요했다며 아빠의 학생운동경력을 폄하했다. 과연 대학을 중퇴한 엄마와 결혼생활을 시작하고도 군대에 졸업에 정해진 코스를 하나두 놓치지 않으려던 아빠는 일찌감치 학생운동 써클에서 발을 뺐고 80년 광주사태가 있었던 해에도 열심히 등화관제를 지키며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말라고 엄마를 단속했다. 인습으로부터의 독립을 자아실현의 전단계처럼 여기고 있는 엄마에게 아빠는 왜 그리 어렵게 풀려고 하냐며 이해할 수 없어 했고 직장에서 매일 보던 여자동료와 마음을 나누더니 몸도 나누게 되었었다. 내가 운동할 때는 늦게 들어오던 안 들어오던 말 않더니 왜 직장일로 밤새고 오는 것은 인정을 못 하냐며 아빠는 운동이 인생이었던 것과 다르지 않게 지금은 직장에서의 일이 내 인생이라며 존중해달라고 요구했다. 지역유지 정도는 되었던 할아버지의 맏이였던 아빠가 돈이나 출세를 염두에 둔 게 아니라는 건 엄마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빠의 일이 엄마의 인생은 아니었다. 물론 대학때의 운동은 두 사람 모두에게 인생이었지만. 그걸 어떻게 한 줄에 놓고 비교하나...엄마는 넑두리했고 두고 온 써클의 동료들과 야학의 아이들을 가슴 속 돌덩이로 누르며 가슴 아파 했다. 엄마는 무엇보다 자신의 판단미스 때문에 괴로워했다. 왜 그와 결혼하는 걸 통해 평생 운동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바보같은 생각을 했을까......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엄마는 태내에서 7개월이 다 되어 눈도 깜박깜박하던 아이들을 죽인 것에 괴로와하며 평생을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심정으로 산다며 한탄했다. 무엇보다도 그 모든 일을 자신의 선택으로 실행해 왔던 것에 엄마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했다.

그런데 비해 공부방을 운영하는 엄마는 아주 날개를 단 것처럼 자유스러워했다. 피곤하고 힘든 생활이었음에도 그걸 감내하는데 한치의 고뇌도 없이, 스스로 페이스를 조절해가며 잘 해 나가고 있었다.

덕분에 윤 진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혼자 고민하고 연구해야 했지만 할아버지나 아빠의 영향을 차단해 준다는 좋은 점이 더 많은 것이 엄마의 이혼이었고 새로운 이름으로 사는 현재의 생활이었다.

" 아, 물론 나도 별로 상처 안 받았어. 지금도 앞으로도. "

윤 진은 고심할 꺼 없다는 듯이 줄줄이 늘어놓고 혜정을 쳐다보았다.

알았다는 듯 혜정의 소리없는 미소에 윤 진은 활짝 웃는 미소로 답했다.

편지는 결국 못 썼지만 사탕부케같은 안개꽃을 받으며 환하게 얼굴을 펴는 혜정을 보며 윤 진은 쪽팔렸지만 열심히 들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 너무 늦은 답장이지? "

" 응? "

하...기억 못 하나? 그럴리가?

" 아...응...아냐...괜찮아....고마워...."

뭐가? 혜정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고 있는 걸까? 윤 진은 자기도 잘 모르는 감정을 섣부르게 표현하려 애쓰고 있었다.

" 무엇의 답장인 지 아는 거야? "

" ......"

아주, 약았다. 조금만 난처해도 금방 말을 삼켜버린다. 이 혜정.

" 편지의 답장일까? 아니면 초컬릿의 답장일까? "

 입을 닫자 마자 윤 진은 아차 싶었다. 지뢰 밟았다. 젠장 !

빨갛게 달아오른 그 애의 뺨 위로 금방 눈물이 주륵 흐르는가 싶더니 턱 밑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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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중-화이트데이

윤 진은 불쾌함을 뚝뚝 떨어뜨리며 학교에서 인기를 잃어갔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기를 학수고대했다는 듯,  연락을 뚝 끊고 집에 처박혔다. 아이들에게 성을 바꾼 것에 대해 설명하기도 귀찮았다. 엄마는 취직을 생각하는 듯 날마다 무슨 수험서같은 걸 들여다보고 있었고 사춘기의 성에 눈 뜬 듯, 동생 이수도 하루종일 말이 없었다. 방학 전부터 눈에 띄게 친절함을 싹 거둔 윤 진의 태도에 여자아이들은 질색을 하며 아우성을 쳤지만 부모의 이혼이라던가 복잡한 가정사에 대한 소문을 동정어린 쑥덕거림으로 확장해 가며 조용히 멀어져갔다.

여자애들의 동경이란게 뭐 그 정도인게지, 윤 진은 상처받을 일 없다는 듯이 피아노레슨 시간을 늘리면서 이쯤에서 진로를 결정해야 하나 하는 고민에 머리가 아팠다. 피아노 학원 선생은 예대 입시를 전문으로 하는 학원이나 개인교습을 해 줄 만한 교수를 소개시켜주겠다며 엄마에게 연락을 달라고 했다. 엄마, 지금 그럴 상황 아니거든요 !  윤 진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짜증이 났다. 자신의 일을 혼자서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 화가 나고 답답했다. 결혼 후 한 번도 직장생활을 한 적 없는 엄마가 이제와서 취직을 한다는 게......그걸 그냥 두고 볼 수 밖에 없다는 것, 어떻게 해도 한계선 안에 있는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 괴로웠다. 이럴 때 남자아이들은 엄마를 대신해 학교를 그만 두고 취직을 한다. 흔히 보아왔던 드라마 속에서 보던 것처럼, 자신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속상했다.

긴 겨울이었다.

윤 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울이란 걸 알았다. 한없이 외롭고 쓸쓸했다. 독립적이라는 것과 고독하다는 것이 같은 말이 아니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혜정, 그 애가 말 없이 학교를 다니면서 과연 외로와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랬다면 그 정도의 편지를 던져두고 그냥 참아낼 수 있었을까? 세상에 혼자 밖에 없다는 듯 까칠하게 아이들과의 친교에 담을 쌓고 지내던 그 애가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가 뭘까? 외로워서? 그래서 남자친구를 만들고 싶었을까? 윤 진은 확 치밀어오르는 스트레스를 느끼며 책상 서랍을 열었다 다시 닫았다. 젠장...

발렌타인데이 쵸컬릿을 주겠다며 정원이 만나자고 했다. 롯데리아에서 만났다. 연방 얼굴을 붉히면서도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정자와 민희가 나이트에서 부킹을 했다는 얘기, 자기도 남자애들에게 붙잡혔지만 금방 빠져나왔다는 얘기, 거기서 그 후까시의 남학생들이 그 멤버 그대로 각자 여자아이 하나씩을 끼고 왔더라며, 그 중에 곱슬머리 애는 천연파마인게 분명하다며 걸려도 학생주임도 뭐라 못 할 꺼라는 얘기, 윤 진은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정원은 늘 누군가의 약점을 들춰 비웃으며 자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뭐 ! 그렇게 파마가 하고 싶어서 맨날 아침마다 고데기로 지져 머리끝을 다 태우고 다니냐, 너는?

새학년 새학기가 되어 정원과 한 반이 되지 않은 걸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며 이제 그만 여자아이들의 아이돌을 졸업하고 싶은 맘으로.  "공부해야 돼" 라는 말로 오는 전화를 모두 끊었다. 새로 입학한 1학년들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지만, 주변에 여자아이들이 모이는 일은 없어졌다. 다른 애들처럼 자율학습으로 학교에 남지도 않았고, 예대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선생들도 다 알고 있었기에 수업이나 시험에 예민하게 굴지 않았다. 피아노 학원을 옮기진 않았지만 1주일에 두 번, 엄마의 친구의 친구라는 음대교수의 레슨을 받기로 하였다. 반포 서래마을까지 왕복 2시간을 길거리에 뿌리며 윤 진은 이제 습성이 되어가는 사색에 잠기기 좋은 기회로 삼고 있었다. 삼월 첫 주가 가고 있었다.  

 고속터미널 역에서 유난히 꽃다발을 짐처럼 싸안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 걸 이상하다 생각하다 보니 교실에서 아이들이 화이트데이 어쩌고 하던 게 생각났다. 아, 발렌타인데이......초컬릿회사의 상술이라더니 그럼 이번엔 사탕공장의 상술인가? 어쨌든 꽃집은 또 한 번의 씨즌을 맞겠군. 윤 진은 지하철 맞은 편 자리에 지친듯 앉아 제 몸보다 큰 두 다발의 꽃들을 무릎으로 버텨놓은 채 잠들어 있는 젊은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가씨처럼은 안 보였지만 아줌마스럽지도 않아서 꽃집을 생계로 하느라 꾸밀 틈이 없는 듯 화장기 없이 파리한 안색을 하고 있었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미혼모나 애딸린 이혼녀를 연상시키는 그 얼굴이 신문지로 둘둘 말았슴에도 그 희고 작은 꽃송이송이들을 연두빛 가는 가지들과 함께 환하게 내어놓고 있는 안개꽃 무더기 속에서 스러질 듯 안타까왔다. 윤 진은 외대 근처 그 애의 학교가 어디쯤인가를 더듬었다. 생긴지 얼마 안 되는 그 애가 다닌다는 고등학교는 우리들의 중학교 앞을 흐르던 개천을 뒤에 두고 막 흐드러지고 있는 개나리로 덩쿨담을 진 뚝방길의 끄트머리, 굴다리 건너 동네 안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학교 앞엔 조그마한 책방과 문방구 하나, 그 외엔 학교 주변다운 점이 별로 없어 그냥 한적한 주택가처럼 보이는 그 골목 어디께에서 윤 진은 정문에서 하교하는 남녀 고교생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피아노 악보를 넣고 다니는 캔버스가방 하나만 달랑 어깨에서 흔들거리며 구멍가게 앞 아이스크림 냉장고 앞에 서 있자니 여학생들은 흘끗흘끗 돌아보며 지나가고 남학생들은 수상한 눈초리로 흝고 간다. 오래 서 있긴 좀 쪽팔리는군...어쩐다 하며 고민을 시작할 때 쯤 한무더기의 왁자한 여자애들 수다패가 눈 앞을 홱 지나간다. 그 구석에 팔짱에 팔짱을 끼고 웃음소리 속에 묻혀 스러질 것 같은 그 애의 옆얼굴이 보였다. 한 명만 뻬고 키도 다 그만그만해서 작은 축이었던 그 애는 뒷모습도 다 보이질 않는다. 재가 저렇게 크게 웃고 떠들며 몰려다니던 애였던가? 윤 진은 지난 가을, 일일찻집 앞에서 보았던 그 애의 모습에 이어 나이트에서 짝을 지어 춤을 추며 맥주를 마시는 그 애의 모습이 주말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이쁘지도 않은 것들이 끼만 있어서 저렇게 넷이서 한 패인 것처럼 보이는 여자애들은 누구도 발걸음 한 번 흐트리지 않고 버스정류장으로 나가기 전 코너에 자리잡은 떡볶이집 안으로 곧장 사라졌다. 윤 진은 골치가 아프다는 생각을 하며 스트레스가 확 올라오는 걸 억누르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 자리를 지킨지 3일 째, 그 애가 혼자 나오는 걸 발견했다. 표정없는 얼굴로 그 애는 정문에서 바로 꺽어져 학교 담장을 따라 죽 이어지는 골목길로 쏙 사라졌다. 서둘러 뒤를 쫓았다. 아, 뒤를 밟는 거 이렇게 하는 건가 보군. 그 길을 가는 애들은 별로 없었다. 중학교 앞 인도를 두고 굳이 뚝방길을 따라 걷는 애들이 별로 없었던 것처럼. 그 애는 중학교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뒷모습을 하고 있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중단발, 하나도 자라지 않은 것 같은 작은 키, 가을에 입었던 것을 봄에도 똑같이 입는 듯 체크무늬의 플레어스커트, 가방만큼 큰 보온도시락통을 촌스럽게 어깨에 메고 혼자 타박타박 걷고 있는 게 어제, 그제의 떡볶이집 패거리 속의 그 애와는 영판 다른 아이처럼 보였다. 반쯤 고개를 푹 숙인 듯 그 애의 머리가 반토막 밖에 안 보여서 더 작아 보였다. 윤 진은 금세 그 애의 걸음을 따라잡았다. 저만치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 횡단보도도 없는 찻길이 보였다. 행인들이 많아질 것 같은 느낌에 윤 진은 별로 준비도 없이 " 야, 이 혜정 - " 하고 불렀다.

화들짝 놀란 듯 그 애의 등이 심하게 움찔했다. 뭔 생각을 저리도 골똘히...츳...

돌아본 그 애는 금방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아보는 것이 틀림없었다.

" 이 혜정 맞지? 영광중학교 나온. " 이건 준비한 멘트다. 윤 진은 자신이 탤런트로 나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천연덕스럽게 우연을 가장했다.

" 아......윤......"

" 어, 놀랐어? 본 듯한 얼굴이어서, 너 나 기억해? "

그 애는 금방 말을 잇지 못 했다. 길거리에 우뚝 서 버린채 건너다보는 그 애의 얼굴을 낯빛 하나 안 바꾸고 윤 진은 마주 바라보며 서 있었다.

" 윤 진......여긴 어떻게... "

" 친구 만나고 가는 길인데? 너도 여기 다니는 구나? " 아, 이것도 준비한 멘트인데 해 놓고 보니 그 애의 편지 속에 학교 이름이 있었다는 생각이 났다. 순간적으로 그 애의 얼굴이 파래졌다가 곧 하애졌다.

" 집에 가는 길이야? "

윤 진은 서둘러 말을 이으며 걸음을 떼었다. 그 애도 덩달아 가던 길로 걸음을 옮기며 응 하고 대답한다.

" 너는? 어디 가? "

" 글쎄, 올 때는 시내에서 오느라고 몰랐는데 집에 가려니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 헷갈려서. "

" 버스 정류장 이 쪽 길 아닌데 " 하며 그 애는 정문 쪽을 돌아보았다, 너무 많이 왔다고 생각하는 지 다시 앞을 보며 " 저 쪽 옆으로 돌아 죽 나가면 버스 지나는 큰 길이야. "

" 넌 어느 쪽으로 가는데? "

" 난 아무데로나... 걸어서 가, 집 별로 안 멀어. " 

" 그래? 중학교 때보다 가까운가 보네? 맨날 걸어다녀? "

" 버스 타면 한 정거장 밖에 안 돼. 내려서 또 걸어가야 하니까. "

중학교랑 우리 집 정도 되나 보군. 윤 진은 혜정이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해서 슬쩍 그 애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계속 자라고 있는 윤 진으로서는  살짝 숙인 그 애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키도 쪼끄만게 맨날 고개는 푹 꺽고 다니니...원

니네 학교엔 중학교 때 아이들이 많은가 어쩐가 문과랑 이과 중 어느 쪽을 택했나 하는 류의 떠올리기 쉬운 질문을 주고 받으며 버스 다니는 큰 길에 이르자 혜정은 횡단보도 앞에서 잠시 고민을 하는 듯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보았다.

" 왜? "

" 버스 정류장, 일루 가나 절루 가나 비슷한데...."

이 쪽은 학교가 있는 방향인데? 학교 앞 버스 정류장을 말하나 보군. 그럼 저쪽으로 가야지. 혜정의 집으로 가는 길이 학교 쪽일리는 없을 테니.

" 나 땜에 버스정류장 쪽으로 온거야? 너네집은 어디로 가는데? "

" 아냐, 나두 여기 찻길 따라서 가. 저 쪽으루 "

" 그럼, 글루 가. 저 쪽 버스정류장에서 타면 되지. 온 방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손해보는 것 같쟎아. "

잘 모르는 동네였지만 혜정의 집 쪽이면 중학교도 멀지 않을 테고 윤 진의 집과도 그럴 것이었다. 근데 학교에서 집까지 한 정거장 밖에 안 된다면 저쪽 정류장 근처인가 본데 흠....너무 짧은데.

하지만 중학 3년 내내 이만큼 많이 얘기를 나눠본 적도 없었다는 것에 윤 진은 만족스러웠다. 얘기 나눠보니 중학교 때랑 하나두 느낌이 다르지 않은 것이 일일찻집이며 나이트며 떡볶이집에서 수다떨던 그 애는 그 애가 아닌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애와 헤어져 집에 오는 길에 꽃집에 들렀다. 화분을 빼면 꽃보다 사탕이 더 많아서 이게 꽃집 맞나 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하얀색, 분홍색, 주홍색, 노랑색 장미들과 색색가지 리본들 사이에 서 있자니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탕을 빨아먹는 그 애의 모습은 도대체 상상이 안 되어서 안개꽃 한다발을 품에 안고 한참을 서 있자니, 중년의 꽃집 아줌마 나름 코디를 해 준다는 듯 연초록 가지 사이에 도롱도롱 작은 애기사탕을 매달고 있는 연분홍 장미 몇 송이를 안개꽃 속에 꽂아주며 이럼 어떠누 하신다. 좋네요. 하며 윤 진은 반짝이 포장지로 폭 싸 안고 돌아와 제 방의 유리화병에 물을 담아 꽂았다. 근데 이걸 어쩌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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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중-여자 대 여자

그 애를 다시 보았다.

그 애가 나를 보지 못 했으므로 만났다라곤 할 수 없다.

 

고등학생들 때론 중학생들이 인근에서 모이는 작은 대학로, 외대 앞에서였다.

가을 축제의 끄트머리,  그 순진하다 못 해 아기자기한 시화전이며 그림전시회, 작은 찻집 같은 걸 낭만스럽게 여길 수 있는 것은 낙엽 떨어지는 교정을 남자 아이들과 함께 걸을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몇 안 되는 남녀공학의 여자아이들까지 일일찻집의 티켓을 방패막이 삼아 한껏 멋을 부리고 서툰 화장발에 앳띤 웃음을 흩날리며 가을날의 까페거리로 원정을 나왔다.

윤 진은 유난히 달라붙는 정원과 또 다른 두 여자애들과 함께 미팅을 나온 참이었다. 그 애의 학교와 가까운 곳이라는 게 윤 진의 작은 이유였지만 스스로도 마음 속에서 드러내지 못 했다. 정원은 자기가 끈덕지게 졸라대어 인근 남학교 애들과 주선한 소개팅이었으면서 윤 진의 마지못해 하는 승락에 순수하게 기뻐하지 않았다. 뭔가 껄적지근했다. 그러나 윤 진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막상 거리로 나와 보니 생각보다 차가운 10월의 바람에 성큼 다가온 겨울의 초대장을 받은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아렸다.

일일찻집은 외대 정문에서 바로 건너편 버스정류장 앞의 작은 점포에서 있었다. 평소에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파는 인지도 없는 분식체인점인 듯 내부엔 테이블도 몇 안 되었다. 거리로 내다보이는 창유리엔 유치한 형광색종이에 몇 가지 메뉴와 가격을 매직으로 적어 붙여놓았다.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금색은색 띠종이로 체인을 만들어 여기저기 걸어놓은 폼이 여자애들이 별로 참여하지 않은 일일찻집의 주관처를 알려주고 있었다.

" 진아, 여기 ! 여기야, 일루 와서 앉아 ! "

정원이 소리쳐 부르는 통에 작은 찻집, 몇 모이지 않은 아이들의 주목을 받은 김에  윤 진은 슬쩍 그 네들의 얼굴을 슥 둘러보았다. ' 여기 올 리가 없지. ' 그 수줍음 많던 애가 이런 데 오겠냐, 나두 참 바보같다....

" 남자애들은 벌써 와 있어. 이제 민희랑 정자만 오면 돼. "

" 어, 그래......"

이렇게나 어색한......윤 진은 점퍼를 걸치지 말고 마이라도 입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만그만한 남자애들 넷이 검정색, 남색, 카키색 그리고 베이지색의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나름 신경쓴 듯 브랜드 로고가 내비치는 티셔츠를 대조적인 화사한 색깔로 골라입고 짧은 고수머리를 귀 뒤로 빗어넘기고 이마를 확 들어낸 앞머리에는 힘껏 후까시를 주고 있다. 나이보다 조숙해 보이는 정원이를 넷이서 상대하면서 실컷 분내를 즐기고 있던 그들은 윤 진의 등장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창 자라는 중에 있는 그들은 학교에서 가장 키가 큰 윤 진에게 아직 못 미쳤고 돋았다 잦았다를 반복하며 벌건 여드름자국을 가리지 못 한 얼굴은 윤 진의 희고 멀쑥한 낯빛에 기가 눌려 채 벌어지지 못 한 어깨를 움추리게 하는 듯 했다.

" 아...저기...윤 진이 저...그...윤 진이었냐..."

남학교의 뚜였던 듯 미팅을 주선한 후까시 하나가 이마에 땀을 흘리며 버벅거렸다. 정희여고의 윤 진이라면 알 만한 애들은 다 알았다. 키 크고 훤칠한 맨리, 공부도 피아노도 영어도 잘 한다는 자이언트, 타학교까지 여학생들의 팬클럽, 아니 팬덤이 형성된 나이트, 가끔 수상한 소문까지 따라 다니는 키 큰 여자애 하나 때문에 일대의 남학교에선 걸프렌드 만드는데 엄청 애를 먹고 있었다. 대체 왜 이 보이쉬한 여자애가 미팅 같은데를 !  사춘기의 꽃몽우리들이 한층 붉게 부풀어오르며 남자애들은 낭패한 빛을 역력히 드러냈다.

민희와 정자가 오기 전에 남자애들은 자리를 일어섰다. 정원이 소지품 뽑기 같은 건 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짝을 짓지 않고 다 함께 몰려다닐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 재네들, 저렇게 보내면 안 되는 거 아냐? "

" 글쎄? "

" 민희랑 오면 뭐라구 하냐? 잔뜩 기대했을 텐데..."

" 글쎄? 어디 가서 헌팅이라도 하던지..."

정원의 걱정없다는 듯 태평한 말에 윤 진도 이게 별 일 아닌 건가? 하는 생각이 설핏 들었다. 하기야 짝짓기하고 나가게 되었으면, 그도 난감한 노릇이었다. 개중 가장 키가 크다던 남자애도 자신과 엇비슷해보였는데 사소한 일에 목숨거는 남자애들이 저와 함께 걷는 걸 견디겠나 싶기도 하고... 자신으로서도 더 볼일이 없는데 걍 싱겁게 집에 가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진아, 안되겠다. 토껴야겠어 ! "

" 뭐? "

갑자기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더니 정원이 팔을 잡아끌며 나가자고 했다. 떴어 ! 어멋 ! 어떡해 ! 사방이 부산하게 움직이더니 삽시간에 일일찻집은 파장하는 폼이었다. 학생지도부 선생들이 학생들이 주관하는 일일찻집을 단속한다는 것이었다. 아, 이럴꺼면 티켓은 왜 팔아먹은 거냐구? 윤 진은 자기가 낸 돈은 아니지만 억울해하는 학생들의 심정에 함께 했다. 불건전한 이성교제를 조장하는 모임이나 회합을 금한다는 교칙을 강조하던 담임의 말이 떠올랐다. 이 정도면 건전하구만, 내 참.

시내로 나가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정원은 방금 떠나온 길 건너의 일일찻집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와 지긋이 살펴보는 학생지도부 선생의 찌푸린 미간을 정면으로 쳐다보다 생긋 웃기까지 했다. 남잔지 여잔지 원...츱... 뭐라 한 마디 더 할까 말까 잠깐 망설이던 학생지도부 선생은 등 뒤로 휙 지나가는 남녀의 풋내를 감지한 듯 이내 발길을 돌렸다. 이런 젠장... 윤 진은 확 스트레스가 올라왔다. 뭐가 즐거운지 생글거리는 정원이 아니었으면 꽥 소리라도 한 번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누르며 시선을 돌렸다.

길 건너 버스 정류장 근처에 좀 전에 헤어진 남자애들이 주루룩 서서 불쾌한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불쌍한 것들...민희와 정자는 일일찻집이 취소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결국 오지 않았다. 교보문고에 가자는 정원의 말에 따라나서기는 했으나 윤진은 이렇게 될 것을 정원이 몰랐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별로 귀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이 근처에서 햄버거나 먹자고 할까 고민하며 건너편 가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때 눈 속으로 그 애의 작은 어깨가 파고 들었다. 초가을엔 일러보이는 체크무늬의 머플러를 촌스럽게 두르고도 곁에 선 남자애들에 비해 반도 안 되어 보이는 어깨, 변함없이 뻗쳐대는 반곱슬의 중단발머리카락 속에  목덜미를 감춘 채 곤색 마이 아래로 같은 계열의 체크무늬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치마는 잘 안 입더니? 윤 진은 어떻게 길 건너로 가서 아는 체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며 그 애를 주시했다. 그리고 그 애가 곁에 서 있던 남자애들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금방 그 개중 키 크다던 후까시의 얼굴이 확 밝아지는게 건너편에서도 똑똑히 보였다. 저의들 패거리에게 뭐라 속닥인다. 다 같이 고개를 돌려 그 애를 훑어본다. 그 애가 돌아보는 뒤편 롯데리아의 창 안으로 비치는 여자애들을 함께 돌아본다. 곧 남자애들이 그 애를 따라 롯데리아로 들어간다. 저것들이?

윤 진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재가 길거리 헌팅을 한거냐? 저 애가? 기가 막히는 구만....많이 컸다, 이 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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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 노래

그 애의 편지가 온 것은 여름방학 중이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골치가 아팠던 윤 진은 그 애의 편지를 책상 속 발렌타인데이의 초컬릿 상자 밑으로 밀어넣은 채 잊어버렸다. 슥- 읽어 보고 아무 감흥이 안 오는 그 애의 편지는 그 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지난 달, 여느때처럼 첫번 째 일요일의 데이트를 즐겼지만 아빠는 웃고, 떠들고, 맛잇는 음식과 선물을 사 주고 저녁해가 기울기 전에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엄마는 초인종 소리만 듣고 거실 창가에서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가 지난 몇 해 째 보아온 아빠의 얼굴을 엄마는 이제 알아보지 못 하는 게 아닐까? 그들은 부부였지만 서로 얼굴을 마주 하지도 식당을 함께 가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들처럼 마구 싸우는 것도, 서로 미워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들을 데려오고 데려다 주는 와중에 얼굴 한 번 스치는 것, 애매한 시간대에 외식으로 저녁밥을 해결하는 것 정도에도 그들은 함께 하지 않으려 했다. 어린이날, 아빠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기 위해 엄마와 하루종일 떨어져있어야 한다는 것에 동생 이수는 아무리 말해도 이해하려 하지 않아했다.

" 왜 ! 엄마랑 아빠랑 함께 갈 수 없냐구? 얘들은 다 그렇게 간단 말야. 엄마 아빠 다 같이 놀러간다구 ! "

양 손에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가운데서 걸어가는 그림을 이수는 연출하고 싶어했다. 윤 진은 ' 너의 그 그림에 나는 어디 있냐.... 이 나쁜 외아들아....' 속으로 뇌이며 엄마를 도와 이수를 끌고 아빠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행 버스를 타곤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수가 태어나기 전에는 '진이 에미야' 하고 엄마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윤 진은 자신을 제끼고 이수아범, 이수에미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왜 다른 집처럼 맏이의 이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지 못 했다. 거기에 반발한 것은 엄마였다.

" 이수를 외아들처럼 부르지 마세요. 진이 동생일 뿐이에요. 왜 항상 진이를 없는 듯이 취급하세요? "

" 버릇없는 년, 따박따박 말대답은 !  내 자식 내 맘대로 부른다. 니가 뭔데 상관이냐 ! "

할머니가 눈총을 주었지만 할아버지는 늘 함부로 말을 했고 엄마는 결코 거기에 익숙해지지 못 했다.

스트레스는 적응이 되는게 아니라고- 나중에 엄마는 말했다.  할아버지의 맏아들이었던 아빠는 결혼 1년 만에 이혼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면서 분가를 요구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결국 이혼을 하는 것에 할아버지의 탓을 얼마만큼 할 수 있을까?

자식들에게 심각한 얘기라곤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아빠에 비해 엄마는 늘 진지했고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기를 요구했다. 그리고 지금 그게 부담으로 다가와서 윤 진은  네 살 아래의 동생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동생은 언제까지나 초등학생인 듯 귀엽게만 굴었고 약간의 의젓함에도 대단한 어른이라도 된 양 칭찬을 받았다.

" 그래서? 생활비 주던 건 어떻게 한대, 아빠가? "

엄마는 요즘 들어 더 파리해진 얼굴에 그늘을 만들며 슬쩍 이수를 건너다보았다. 중 1 의 남자아이, 무슨 말을 들어도 그 말의 사전적 의미조차 제대로 파악을 못 한다. 하물며 말 속의 느낌을 어찌 캐치하랴.

" 아빠 이름으로 되어 있는 신당동 집, 엄마 명의로 바꾸기로 했어. 월세가 나오니까. "

" 흠....그럼 지금까지랑 바뀌는 것도 없지 않나? 뭐가 문젠데? 엄마, 얼굴 좀 펴라. 우리 괜찮다니까. 애도 아닌데 왜 그래. "

" 아빠가 너희들을 굳이 데려가겠다고는 하지 않지만.....호적을 정리하겠다고 내가 말했단다. "

엄마는 이후의 양육을 책임지겠다는 말, 아이들의 이름에 아빠가 아닌 자신과의 유대를 표시하겠다는 등의 주장을 생략했다.

" 요컨대, 아빠성에서 엄마성으로 바꾸라는 말인거지? "

" 진아, 네가 원한다면 말이다. 이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그 때 다시 의논할 꺼니까. 지금 학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었고. "

" 그러니까, 내가 선택하란 말이군. 이수는... "

이수는 할아버지가 인정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빠가 새로 한 결혼에서 아들을 낳기 전에는. 혹은 그 뒤에도.

이수를 낳기 전에 엄마는 두 번이나 임신을 했지만 할아버지의 요구로 두 번 다  중절 수술을 했다. 다 자란 아그들을 !  눈물을 훔치던 고모는 딸은 사람도 아니냐며 엄마의 분노와 상처에 함께 했었다.

윤 진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 한다. 이수가 태어나고 윤진은 처음으로 유치원이란 데를 갔다. 가사와 양육을 혼자 감당하기에 늘 힘겨워했던 엄마는 그럼에도 항상 배가 불러있었고 부자연스러운 출산의 후유증으로 갖은 합병증을 달고 살았다. 착하고 순한 아빠는 그러나 집안일을 돕는 것을 자연스러워하지 않았고 무리한 분가로 인해 겨우 반지하방에 살게 된 일상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아빠를 대신해 할아버지와 싸운 것은 늘 고모였다. 별로 성과는 없었다. 세번 째 임신에서 이수가 태어나자 할아버지는 " 우리 며느리가 큰 일 했구나 ! "  하시며 신당동에 단독주택을 사 주셨다.  " 진이도 아직 어린데 ! " 하고 안타까워하며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오며 약 이주일간 적응훈련을 시킨 것은 고모였다. 엄마는 4년 만에 다시 갓난아이를 돌보며, 그러나 결혼 초와는 현격히 쇠약해진 몸으로 악전고투하느라 윤 진을 돌아보지 못 했다. 엄마는 윤 진에게 혼자 하라고 말했다. 화장실 가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하지만 하루 한 번 윤 진을 불러 하루 일과를 묻고 관심을 보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윤 진은 엄마에게 자신이 친구처럼 대해지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경험했다.

윤 진은 스스로 선택해서 성을 바꾸기로 했다. 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도 우스운 짓이었다. 그 동안 자신의 밑으로 이수 외에 또 다른 동생이 생길 지도 모르는데...게다가 아빠의 호적에서 엄마 혼자만 정리되어 퇴출된다는 것은 너무......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딸들을 너무 많이 잉태했다는 이유로 그 딸과 함께 이름을 올리는 것도 허락받지 못 한다는 것은 ! 엄마가 남을 수 없다면 윤 진은 엄마와 함께 떠나는 것을 택하기로 했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엄마의 유일하고도 소박한 소망이니까.

' 내가 엄마와 함께 할께요. ' 윤 진은 속으로 뇌이며 책상 앞에 앉았다. 서랍 속 발렌타인데이의 초컬릿, 그 추운 겨울밤에 손을 오그리며 들고 있었던.  그 애의 눈은 기대와, 모진 슬픔을 견디는 고집스러움으로 빛났었다. 한 마디만 더 했다면 너와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윤 진은 감흥없이 씌여진 그 애의 편지를 다시 꺼내 보았다.

 

To 윤

불쑥 편지를 보내 놀라지나 않았는지?

혹시라도 나를 기억하지 못 하는 건 아닐까 망설여지기도 하고.

새로운 학교 생활은 어떠니, 친구도 많이 사귀었겠지?

중학 3년 동안 한 번도 같은 반이 되지 않아서 아쉬웠는데...

그래도 늘 친구가 되고 싶었었어.

혹시라도 마음이 내키면 답장을 주지 않겠니.

그럼 안녕.

                                                 from 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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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 노래

해마다 삼월이 오면 미처 답하지 못 한 편지를 숙제처럼 안고 있었다.

윤 진이 그 애를 안 것은 중학교 들어가자 마자 바로였다. 교실 뒷문에서 빼곰히 고개를 내밀던 수줍음 많던 그 애는 늘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작은 어깨 만큼이나.

복도의 반대편 끝에 있는 그 애의 교실에 갈 일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닥 중요하지도 않았다. 친구들은 함께 졸업한 동창생들에서 새로운 학교의 새로 사귄 아이들로 교체되어 가고 있었고 이상하게도 주변은 친하지 않아도 항상 아이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윤진이 보기에 자기 반에 있는 그애의 동창생은 그애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 타입이었다. 터울 많은 언니, 오빠 그리고 강아지 얘기를 엄마 얘기보다 더 많이 늘어놓는 그 애의 동창생은 늦동이 막내답게 마냥, 밝고 화사했고 꼭 그만큼 철이 없었다. 담임의 수학수업을 좋아했고 그보다 더 신출내기 남자영어선생을 좋아했지만 원하는 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아 시험날에는 싱글벙글 웃고 있다가 한참 뒤 성적표를 나눠주는 날에 눈물을 찔금거렸다. 대체로 자신과  비슷비슷한 부류의 아이들 속에서 총각선생들 중 누가 가장 멋진가를 두고 열을 올렸으며  하교 후에는 정문 앞의 떡볶이집에서 한참을 떠들다가 버스를 타고 사라지곤 했다.  혼자 있거나 책을 읽는 것은 본 적이 없었지만 체육시간엔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부진했다. 윤 진은 같은 학교 출신으로 무척 친한 듯 보이는 그 애의 교실에 갈 때마다 혼자 오도카니 앉아 뭔가를 열심히 읽고 있는 그 애가 눈에 들어왓고   같은 시간대에 운동장을 나와 체육수업에 참여하는 그 애가 전력질주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오래 매달려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 제법, 악바리야... "

윤진은 그 애와 마주 서서 손을 흔드는 그 애의 동창생 뒤에서 중얼거렸지만 뒤를 돌아본 그 애의 동창생은 무심히 윤 진을 지나쳐 소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네들의 왁자한 수다 속에는 그 애도, 윤 진도 감히 스며들기 어려운 험담의 릴레이와 자기 변호에 교묘히 섞인 자화자찬, 그리고 방어적인 집단주의가 있었다. 윤 진의 주변에서 기쁜 듯 웃고 얼굴 붉히면서 친하고 싶다고 말하는 솔직함, 사람에 대한 순수한 호감의 표현을 그네들에게선 느낄 수 없었다. 마치 공동주택의 연합한 주부들처럼 경쟁과 시기와 질투를 이면에 둔 채 우리는 하나라며 손 잡고 연대를 과시하며 다른 모든 타인들을 자신들과 맞선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그런 집단주의가 있었다. 아무도 그네들을 인정하지 않았고 주시하지도 않았는데도 그랬다.

오히려 그 애가 울음을 터뜨려 흐느끼고 있는데도 그 애의 동창생은 공연히 쪽 팔리고 있다는 표정으로 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애매한 몸짓으로 엉거주춤했다.

윤 진은 그 애가 눈에 자꾸 걸렸다. 하지만 같은 반이 아니었고 눈에 걸린 횟수만큼 말을 나눠볼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왜 그 애가 자꾸 눈에 띄지? 하고 윤진은 잠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지나가는 말이라도 한번 걸어보기엔 그 애는 항상 너무 멀찍이 있었다. 복도의 저 뒤에서 걷고 있거나, 운동장의 저 끝에 서 있거나,  강당 근처의 구석진 화단 옆에 앉아있거나 하는 그 애를 볼 때마다 윤 진은 ' 재가 혼자 저기서 뭐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눈길이 마주쳐 아는 체라도 한 번 할라치면 이미 그 애는 다른 데를 쳐다보거나 생각에 잠긴 듯 아래를 보고 있거나 들고 있던 책을 펼치곤 했다.  ' 뭐 딱히 할 말도 없는 데...' 윤 진은 애써 그 애의 근처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러기엔 윤진의 손을 잡고 있는,  팔짱을 끼고 있는 동급생들이 항상 너무 많았다. 윤진은 자신을 둘러싼 친구들에게 관대했고 그들의 히어로가 되는 것에 나름 보람도 느끼고 있었다. 자신에게 기대감을 갖고,  사소한 친절에 행복해하는 걸 보는게 즐겁고 뿌듯했다. 여자아이들이 자신의 보이쉬함을 크게 보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뭐 어떠랴 싶었다. 윤진이 생각하기에 예쁘장한 여자아이들은 충분히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하며 그 섬세하고 보드라운 정서를 맘놓고 표출하며 사는게 좋을 것 같았다. 케사르가 제대로 했다면 클레오파트라의 이집트가 굴욕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으면 그 아름다운 처자가 몸을 던져 나라를 구한 것도 모자라 죽음에까지 이르렀겠는가...로미오가 우물쭈물하지 않았다면 오드리 헵번으로 하여금 어둠침침한 무덤에서 일어나 독약을 먹는 일 역시 없었을 것이다. 윤진은 얼마전에 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나온 비비안 리가 잊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아름답고, 위풍당당한 그녀가 사랑을 하는 모습은 얼마나 귀엽고 애달펐는지 !   윤진은 애슐리같은 타입이 정말 싫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이 멜라니라구? 그건 자기기만이었다. 그는 그저 용기가 없거나 아니면 안주적일 뿐이었다. 레트 버틀러가 속좁게 굴지 않았다면 비비안 리는 정말 행복하게 자신의 우수성을 조잡한 남편만들기작전에 허비하지 않고 탁월한 농장경영주로서 발휘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윤진이 들어본 금언 중에서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말은 "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남자, 그러나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 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알 수 없는 것은 '여자들' 이었고 사랑스러운 것은 자신의 감정과 능력을 표현하는 '그녀' 였다.  윤진은 자신이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여자이기 때문에 안된다? 그런 말을 엄마한테서 들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윤진은 아들과는 다른 딸로서 키워지지도, 그렇게 대해지지도 않았다. 그가 재능을 보인 피아노를 엄마는 아주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죽 하게 해 주었지만 그걸 공부와 연관지은 적은 없었다. 성적을 잘 받아오면 칭찬을 해 주셨지만 못 했다고 해서 꼭 잘해야 한다고 비난하지도 않았다. 윤진은 공부나 독서에 열의나 흥미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잘 하고 싶었다.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러고 싶어서였다. 자신이 아는 한, 위인전의 모든 위대한 인물들은 꼭 학교성적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그것에 힘입어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뜻대로 항해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도 열심이었으며 또 당당했다. 비록 연인을 잃거나 사랑의 보답을 받지 못 하는 일도 없지 않았으나 그건 그들이 정직하고 성실한 노력을 다 했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윤진은 위대한 인물이 되고 싶었고 엄마도 그리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엄마가 이혼하는 일이 발생했을 때도 그건 별로 흔들림이 없었다. 엄마는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온 것 같았다.  이혼하기 수년 전부터 별거가 계속 되었고 아빠에겐 아빠의 인생이 있는 거니까라고 엄마는 말해왔었다. 아빠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야하게 되었다고 엄마가 말하면서 이혼수속을 밟을 때 엄마는 좀 힘들어보였다. 윤진은 왜 자신이 엄마의 상담자가 되지 못 하는 지를 알 듯 하면서도 몹시 서운했다. 엄마에게 자신은, 학교에서 발렌타인쵸컬릿을 선물하는 여자애들에게보다 더...든든한 기사가 되고 싶었다.

발렌타인데이, 윤진은 지금도 책상 서랍 안 고즈넉히 잠자고 있는 발렌타인데이의 초컬릿상자와 편지를 생각했다. 그 애는 자신의 집을 어떻게 알았을까...한번도 마주 앉아 얘기해 본일이 없는데...그렇게 늦은 밤까지 그 애는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를것인가 말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던 것일까? 추워보였던 얼굴, 찬기가 확 끼쳤던 손가락, 그 애는 윤진이 얼결에 초컬릿상자를 받아들자 마자 휙 돌아서서 어두운 골목 속으로 사라졌다. 아...혼자 가기엔 위험한데...윤진은 그리 생각하여 내내 마음에 걸렸지만 방학이 끝나고 바로 이어진 졸업식 후 그 애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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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의 친구들

열 다섯에서 스물 하나가 되던 가을까지 사랑을 갈구하는 여정이 계속되었다.

동급생들에 비해 항상, 너무 나이가 많은 축이었던 나의 사랑은 친구를 가질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에 댓가를 요구하듯 과중한 기대와 의미를 상대에게 부여하였다. 결국 실재하는 인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보다, 자주 심각한 대상화의 오류에 빠졌으며 그들이 나를 이해하는 경우는 거의 한 번도 없었다. 그랬을 것 같다.

그가 나의 설정대로 움직여준다는 것? 그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으며 대부분의 상황은 사춘기적 감수성에 침몰한 소녀와 그 외연화한 모습에서의 소심함, 냉정함, 어설프게 맘을 읽히는 순진함에 눈길을 주는 동급생 사이의 조금 진한 우정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것이었다. 그 경계선의 사랑은 공상의 나래를 접는 일상의 현실인식과 혼자만의 산책, 혼돈의 글쓰기, 그리고 밤의 퇴폐를 병행하는 이중성 속에서 위태롭게 계속되었으며 미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청소년기의 자아는 가히 분열적이었다.  

 

의식과 현실세계의 이질감이 심해질 수록 혜정은 입을 꾹 다물었고, 열 일곱과 열 여덟 사이에서 치열했던 마음의 내적 암투는 청춘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현실세계의 승리와 함께 명백해진 첫사랑의 상실을 통해 혜정을 종국적으로 쓰러뜨렸다..... 87년 6월 항쟁으로 봇물되어 터져나오기 직전의 1, 2년, 그 시대의 우울함은 일종의 풍조였고 사조였으며 어른도 아이도 사로잡혀 절망으로 추락한 고름덩어리였다.

 담임은 교련과목을 맡고 있었다. 학년상 3년 터울인 오빠의 검정색 개구리 무늬의 교련복을 떠올리게 하는 여자교련은 그러나 그런 비슷한 무늬의 옷을 입고 교실을 들어서는 일은 없었다. 여느 선생들보다 균형잡힌 각선미를 자랑하며 그녀는 깔끔한 투피스와 굽높은 구두, 그리고 끄트머리만 컬 진 헤어를 단정하게 묶어올린 모습으로 교단에 서곤 했다. 그리고 6월이 되기 전 어느날 칠판 가득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를 적어주었다. 혜정은 중학시절 국사선생님이 한일합방에 대해 열강하는 걸 들었을 때 치올라왔던 분노와 격정의 느낌, 비슷하게 감동받았지만 뭔가  서걱거리는 불쾌감을 지울 수 없었다. 같은 민족에 대해 원수라고까지 표현되는 적개심? 죽음에 대한 지나친 수용? 그토록 뛰어난 희생정신을 공감하기에 열 일곱, 열 여덟의 정신들은 세상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개교 3년 밖에 안된 공립고등학교였지만  철칙처럼 지켜지는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그리고 제 1 회 졸업생의 서울대 진학률을 초미의 관심사로 한 입시경쟁의 무드는 변함없이 전 교정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 교정에서 혜정은 점심시간이면 채 나무심기도 마치지 못 하여 맨 모래와 흙먼지 밖에 없는 운동장 갓길을 빙 둘러 걸으며 혼자 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담장을 높게 둘러올리기는 하였으나 막을 수 없는 개천가의 연탄공장에서 끊임없이 미세한 검정가루가 날아들었지만 주거용건축이 불가한 지역에 들어선 공립학교 덕분에 완충지대를 가지게 된 주민들 대신, 아침마다 책상을 닦는 수고도 깔끔한 성격으로 오해되는 탓에 불평할 생각은 나지도 않았다.

그 산책에 동행이 생긴 것은 1 학기가 다 가기 전이었다. 교련 담임이, 입학할 때 학급석차 5등이 중간고사 40등이 뭐냐며 교무실로 불러 불안과 불만의 눈초리로 혜정을 쳐다보던 면담이 있고 난 후, 혜정은 더욱 신물이 난 교과공부에 아주 손을 놓아버리고 한눈만 팔았다. 소설책 읽기도 지겨워지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에서 녹다운 당한 후 전환한 현대소설엔 도대체 취미가 안 붙어 방황하고 있을 때였다. 한 학기가 다 가도록 혜정처럼 말 없이 자기 자리만 지키다가 하교하는 그 애에게 혜정은 자꾸 눈길이 갔다. 혜정처럼 그 애도 쉬는 시간마다 교과서가 아닌 다른 책을 읽고 있었다. 적당히 급우들과 말을 섞는 혜정과는 달리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그 애를 아이들은 불편해 했고, 귀찮아 했으며 결국 잘난 체 하는 애라는 누명으로 왕따시키기에 이르렀다. 고등학교 1학년에 불과했으나 아이들은 무섭도록 현실적이었고 조직적이었으며 이기적이었다. 새로 생긴 공립학교이었기 때문인지 흔치 않았던 남녀공학에서 여자반 아이들은 같은 학년의 남자반이 아닌, 입시에 홀릭해 있는 3학년 오빠들을 쫓아다녔고 그 중에서도 총학생회장 출신에 육사지망이라는 정보가 아는 것의 다였지만 주저함 없이 일등신랑감으로 찍혀올려진 민둥머리의 멀대같은  남자를 보기 위해 창문에 붙어서곤 했다. 여자애들은 한별단이나 스카우트 같은 공식적인 써클활동을 통해 남자애들을 만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인근 남고에까지 발이 뻗어있는 뚜들의 미팅주선에 못 이기는 척 참가하며 이성교제의 문을 넓혀갔는데 이는 아~주 특출나게 공부를 잘 하는 여학생과 어떻게 할 수 없이 못 생겼다고 자인되는 소수를 제외하곤 일반화된 통과의례처럼 취급되었다. 왜?

혜정은 동급생들의 이 절대적인, 이성에 대한 호기심의 범람을 곁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입학한 이 학교에서의 수업 첫 날에도 여자반만 있는 2층으로 밀려 내려온 남학생들이 자신의 반 창문에 매달려 들여다보던 그 왁자했던 사건이 실은 또래의 아이돌스타가 같은 반에 있기 때문이라는 걸 듣고서야 통로 건너편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긴 생머리를 착 올려묶은  소녀를 살펴보았지만 비교적 피부가 깨끗하고 이목구비가 단정하다는 것 외에 별 감흥이 없었다. 티비보기를 허용하지 않았던 아버지 덕분에 드라마하곤 담을 쌓고 사는 혜정은 그 소녀탤런트의 이름을 듣고도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해서일까. 동급생들처럼 매체 속의 그녀를 알지 못 하는 혜정에게 그녀는 그저 좀 예쁜 아이였을 뿐이었다. 한 주 마다 한 줄씩 바꾸는 지라 그 녀와 짝궁이 되었을 때 혜정은 그 애에게 " 넌 어떻게 탤렌트가 되었어? " 하고 묻자 그 예쁜 아이는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방송국에 데리고 다녔다고 말했다. 뭐...그렇겠지, 어련하겠어.

중학교 때와 다르지 않게 학급의 회장도, 학교의 총학생회장도 아이들의 의사를 묻는 법 없이 어디선가 결정되어 공표되었다. 대통령도 직접 안 뽑는데, 무슨 선거씩이나... 그리고 이상하게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집도 부자였고 이런 저런 상도 잘 탔다. 그리고 아이들은 몇몇 인기있는 아이를 중심으로 패거리지었고  패거리에 복색의 차이는 비교적 잘 드러나는 편이었다. 브랜드점퍼나 가방, 나이키신발 같은 것으로. 시장통에서 튀김을 파는 집의 맏딸인 어떤 아이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성적도 좋았지만 선생님의 관심이 덜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아이를 중심으로는 절때 공부도 잘 하고 집도 부자인 아이들은 모이지 않았다는? 오해나 착각처럼 보이지만 촌지를 밝히는 선생으로 알려진 역사선생이 담임이 되자 대다수의 아이들이 진저리쳤으며 결국 부모의 시장통 가게까지 다녀온 그 선생이 그냥 오지는 않았을 꺼라는 소문이 그 아이를 부끄럽게 했다면? 혜정은 이 모든 불의와 타협, 말 뿐인 진리를 암기하라고 소리치는 학교와 선생과 아이들에게 분노했다. 뻔뻔스럽게도 여자애들은 대학을 가려는 이유를 묻는 혜정에게 " 시집을 잘 가기 위해서 " 라고 대답했다. 그런 인식이 그들에게 있었다. 어쩌면 남자반 교실을 들어갔을 때와 또 다른 이유로써 입시공부를 강조하려던 어느 선생의 입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었다. "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신랑감을 만나지! " 하고 공립고등학교의 늙은 남자선생들이 힘주어 말하는 건 정말 쉽게 상상되지 않는가?

그 모든 부패스러운 풍경 속에서 그 애는 고고한 한 마리 학처럼 조용히 앉아 서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 애와 혜정은 짧은 쪽지를 가끔 교환하게 되었다. 그 애가 혜정에게 빌려준 책은 회색노우트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고 그  책을 감명깊게 읽었던지 그 애는 혜정에게 교환일기를 제의했다. 혜정은 솔직히 회색노우트보다 수레바퀴 아래에서나 데미안, 나르찌스와 골드문트에 더 감동했고 그보다 더 불새의 늪이나 북해의 별에 더 심취해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애는 만화는 보지 않는 아이였다.  그 후의 여름방학 중에 그 애의 집에 놀러가서 만난,  " 친구 데려오는 거 처음 봤다" 면서 반기던 그 애의 오빠는  딴따라가 취미이고 그 애의 여동생도 끼가 있다는 데 당췌 이 아이는 낭만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어서 수학이 더 낫다면서 2학년 때는 이과를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애는 혜정이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는 친구였다. 그 애는 회색노우트를 함께 읽은 외에도 지와 사랑이라던가 파우스트라던가 백년동안의 고독, 압록강은 흐른다에 대해 얘기했으며 전혜린의 에세이를 읽을 때에는 아주 미쳐서 수많은 편지와 일기를 교환하게 하였으며 비판과 환멸의 수사로써 세상을 치부하고 절대의 지와 진리가 존재하는가를 두고 실망과 의혹의 언사로써 생을 비관하게 하였다. 일천구백팔십육년, 그 때 우리들의 청춘은 절망적이었고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시와 좋은 결혼이라는 미래를 추구할만한 가치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혜정은 그 애를 동지로 인식했다. 그리고 그 애는 지난 겨울 끝나버린 중학시절의 첫사랑을 대치하는 치유의 소울메이트였다.  생각의 되새김조차 아프기만 한 그, 끝내 바라보는 것 이상 나아갈 수 없었던 사랑을 가슴 한 켠에 묻고 혜정은 마음이 가는 친구를 사귀는 데 조금은 적극적이 되어있었고 더 많이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문제를 일으킨 것은 그 애였고 상처받은 것은 혜정이었다. 그건 아직 오전수업 중이었던 물리시간에 일어났다. 아무런 징후도 없이 드르륵 의자를 밀고 그 애는 일어났다. 아이들을 등지고 판서 중이었던 물리선생이 누가 화장실이라도? 하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듣지 못 했고 뒤돌아선 그대로 교실문을 나가는 그 애의 뒤통수만 볼 수 있었다. 뭐라고 물어볼 틈도 없이 일어난 사태에 아이들도, 보다 더 물리선생은 충격을 받았다. 수업거부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왜? 부러 시사성 있는 발언을 절대 안 하면서 오직 수업만, 수업을 재미있게, 예상문제를 진도 나가면서 꼭꼭 집어서 나름 학생들을 돕는 선택과목의 선생으로서 성의를 다 하고 있었는데 !

혜정은 국어와 지리 다음으로 그 선생을 좋아했었다. 수학을 2차 방정식 이상 이해할 수 없었다는 난관이 아니었으면 물리의 세계로 입문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정도였는 것이, 고등학교에서 좋아할 수 있는 선생님은 극소수여서 그는 그저 설득력 없이 반공을 주창하며 지리 선생님이 간첩혐의로 잡혀가자 " 그 놈은, 왠지 눈빛이 이상했었어 ! " 하고 학생들 앞에서 뇌까리던 윤리선생이나 촌지를 밝힌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역사선생에 비해 싫어하지 않을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물리선생은  그애 때문에 상처받았는 지 그 애에게 무슨 개인적인 일이 있는가를 아이들에게 물었으나 아무 성과가 없자 그 애가 돌아오면 교무실로 오라는 말을 전해달라 하고는 짐짓, 괜찮다는 듯 수업을 속개하였다. 대체, 그 애는 수업 중에 벌떡 일어나 나가서, 어디로 갔단 말인가? 혜정은 심히 불쾌했다. 그 애가 수업을 참아낼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계속 계속 되뇌이고 있었던 세상에 대한 실망, 분노,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 찬 현실세계, 진리와 지에 대한 사랑을 신뢰할 수 없었던 철학사 - 그 즈음 우리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던가,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 그리고 전혜린에 파묻혀있었다. -속에서 그 애가 입시경쟁이데올로기의 이단자로서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은 너무나 잘 이해되었다. 그러나 왜 혼자만 !  혜정은 그 순간 자신도  수업을 박차고 함께 나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물리선생은 그 정도는 아닌데....학교에 대한 거부를 왜 그 선생의 수업시간을 택해서 표현한단 말인가? 그리고 적어도 내게는 언질을 줘야 하는 거 아니었나 말이다 ! 점심시간에 그애 대신 혜정은 담임에게 불려갔지만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종례 후에야 혜정은 그애가 유일하게 입을 떼는 동급생이라는 특권으로 심문하듯 당당하게 물었다. " 그래서 나가서, 어디 있었어? " " 체육실..." 혜정은 왜 체육실의 문이 잠겨있지 않은지 의아해서 그 후 어느날 4층 복도 끝에 있는 체육실의 문을 당겨보았다. 과연...열려있었다. 문단속을 잘 안 하는군....혜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애는 단지 수업을, 무의미하게 자리에 앉아있는 그 부동의 행위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애가 학교를 그만 둔 것은 아니었다. 그 애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여전히 수업에 수동적이었다. 그건 하루 종일 엎드려 자거나 끊임없이 딴짓을 하면서 혹은 아무리 해도 성적이 오르진 않지만 그저 피동적으로 수업에 앉아있는데 익숙해져 있는 것과는 달랐다. 그 애는 2학년이 되자 자신의 선택대로 이과를 갔고 물리선생님과 친해졌으며 입시에도 무난히 성공했다. 그때 우리는 왜 그다지도 우울했을까, 사춘기여서 그랬던게 아닐까 싶어 하고 대학을 들어간 천구백팔십팔년에 그 애는 중얼거렸다.

 

끼많던 그애의 여동생은 대학로의 극단을 따라다닌다 했고 군대를 가서도 딴따라를 했다던 그 애의 오빠는 개그콘테스트에 나가느라 엄마와 싸움 중이라고, 입상을 해서 안방극장에 나올꺼라는 얘기를 들은 건 조금 더 후였다. 하지만 꿈많은 팔팔학번으로 86년 애학투련 사건 이후 엔엘의 아성으로 불렸던 학교에서 데모에 여념이 없었던 나는 개콘에서 김국진과 짝을 이루고 인기상승 중이던 그의 오빠, 김 용만의 개그를 잘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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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의 친구들

혜정은 조숙했다. 늘, 동급생들에 비해.

그건 순전히 아이들보다 한 살, 때로는 두 살 많았기 때문이다.

 

혜정은 유심히 그 아이를 주목했다.

다른 아이들이 계속 수군거리는 것에 무심한 척, 그러나 참지 못 하고 씨발을 중얼거리며 그 애는 지각과 조퇴, 그리고 땡땡이를 반복했다.

점심시간까지도 기다릴 수 없었던 그 아이의 날라리친구들은 복도 끝에 있는 혜정의 반 앞을 지나면서 " 야, 배선희이이, 빨랑 나와~"  하고 소리쳤고 뒤미처 까르르 웃는 소리는 수업에 열중하던 선생님과 급우들을 당혹시키곤 했다.  그럴때면 배선희는 차마 꼰대가 지켜보고 있는 상태에서 나갈 수는 없고 글타고 제 친구들을 모른체 할 만한 뻔뻔함도 없어서 곤혹스럽게, 그러나 자기는 저네들과 한편이라는 듯 기쁨의 미소를 입가에 걸고 " 씨바, 미친 년들 ! " 하고 또 중얼거리곤 했다. 그네들은 곧 교사를 빠져나간 듯 잠잠해졌고 아무도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수업은 재개되었다.

점심시간을 지나서도 그 애가, 모두가 잠드는 5교시 이상의 수업을 버틴다는 것은 육체적 한계를 시험하는 것같은 고문이었다. 종례시간이면 체육과 출신으로 중학교 교편이라도 잡고 있는 것이 대단한 출세인양 담임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는 늙은 여자 체육선생은 배선희의 착석 여부를 눈으로 먼저 확인했다. 그리고 교무실에서 오늘 수업을 들어갔던 동료교사들이 한 마디씩 하고 갔던 배선희에 대한 얘기들 중 어느걸 지적하고 훈계하고 지도해야 할 지를 고민했지만 결국 암말 않고 평소보다 더 길어진 잔소리만 늘어놓고서야 아이들을 풀어주곤 했다.

혜정은 선생님들이 왜 질책하지 않는 지 알 수 가 없었다. 그들은 숙제검사를 했고 질문에 답하지 못 한 아이들을 일어선 채 수업을 듣게 하였으며 떠드는 아이들을 복도로 쫓아내고 용의복장 검사를 재소자들에게 하듯 모욕적일만큼 철저히 하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교훈을 모토로 매주 학원의 전교생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성스럽고 거룩한 예배를 진행하고 주 1회의 성경시간을 두고 국정교과서보다 품위는 없어보였지만 재질 좋은 백상지의 성경교과서를 펼치게 하고, 시험까지 보게 해서 학기말 평균에 반영하는 기독사립학원에 특별히 채용된 사람들이 아니던가.

초딩들은 애사당만큼의 존재도 못 된다는 듯, 이 사립학원의 정원과 운동장과 예배시간을 공유하는 고등학생들만큼 심리적으로 격상된 여자중학생들은 선생들의 성적지상주의와 각종 경시대회에서의 입상에 집착하는 정책에  잘 부응하지 않았던가. 불과 몇 달 전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초딩티를 저 멀리 내던져버리고 담임의 설득과 칭찬과 애원을 들어주기 위해 하교시간을 훨씬 지나 정문수위가 문단속을 하러 올 때까지 환경미화대회의 우승을 위해 교실에 남아 찣고 오리고 붙이고 그리고 다른 반의 디자인과 컨셉을 탐색하곤 했었다. 늙은 여자 체육선생은 최우수는 아니었지만 우수상을 받으러 학급회장이 연단에 오르자  한껏 작은 어깨를 치켜올리곤 했다. 1학기의 첫 월말고사에서도 1학년의 열 두반 중 상위에 링크된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특히 전교1등을 비롯해 상위 10%이내의 학생들이 자기 학급에 적쟎이 있는것에 훨씬 더 안심하는 듯 했다. 물론 공부 잘 하는 영악한 것들은 담임이 수학도, 영어도 하다못해 국어나 세계사 선생도 아닌 것에 불만이 많은 듯 했지만. 뭐...엄마들이 선생을 만나는 것엔 더 좋았을 지도 모르지만.

첫 월말고사에서 담임들은 올 한 해 자신이 맡은 반이 어느 정도 성취할 지를 가늠했고 임용고시에 패스하고도 적체된 신입교사지원자들이 서울명문대의 알오티씨 정도는 달고 있어야 돈을 좀 아끼고 들어올 수 있는 이 사립학원에서의 교직과 보직을 유지하기 위해 중점적으로 관리해야 할 두 종류의 학생들을 선별해내었다. 혜정은 교정에 만개한 백목련이 그 추한 자태를 드러내며 모멸 속에 지고 있던 4월 어느날 담임에게 호출당해 교무실에 들어섰다. 몇몇 낯익은 선생들이 분주히 책상 앞을 왔다갔다 하다가 문을 들어서는 혜정에게 아는 체 하는 눈길을 던졌다. 학생들은  모르는 어른들의 공간, 그닥 넓지도 않은 교무실의 한 쪽 끝에는 꽤 넓은 책상을 갖고 양쪽의 여유공간에 커다란 화분을 두고 교사들을 감시하고 있는 교감의 모습이 보였다.  매일 아침 교문 앞에서 노란 완장을 차고 매끔한 복장으로 위엄있게 서 있던 선도부 언니들을 진두지휘하던 생활지도부선생은 그 날의 교칙위반자들의 명단을 노려보다가 흘끔 혜정을 보고는 곧 눈길을 돌렸다. 좋게 보면 전원주같은 인상의 담임은, 그러나 악다구니를 할 때의 전원주같은 이마의 주름을 늘 펴지 못 한채 젊은 여자들과 진중한 남자선생들 사이에서 혜정을 손짓해 불렀다.

" 어. 이리 와라. "

한결 풀어진 여자체육선생의 얼굴에 옆자리의 선생님이 슬쩍 관심을 갖는다.

" 누구? "

" 응, 우리반 엘리트."

옆자리 선생은 혜정을 흘끗 보면서 미소를 흘렸다.

" 사월인데, 여즉 스웨터를 입고 있니? 덥지 않아? "

혜정은 철마다 입을만한 몇 안 되는 허섭한 옷가지 중에서 비교적 맘에 들어하는 화사한 분홍색의 털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여름보다 겨울이 늘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혜정은 겨울옷을 일찍 꺼내입었고 또 늦게까지 벗지 않았으며 자주 갈아입지 않아도 괜찮은 만큼 비교적 번듯한 옷을 자주 입다 보니 늘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혜정의 자랑스러워하는 웃도리에 칭찬 한 마디 없이 담임은 그렇게 상처로 면담을 시작했다. 교무실에 들어오는 두 종류의 아이들 중 혜정은 문제아가 아닌 모범생 축에 끼었지만 전자나 후자나 선생의 앉은 자리 옆에 서서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짧게 수업이나 학교생활에 대한 적응여부를 묻는 형식적 언사에 이어 담임은 본론을 슬며시 꺼냈다.

" 너, 배선희랑 친하게 지낸다며 ?"

" ... ... ? "

" 혜정아, 네가 그 애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또 짝궁이니까 잘 지내는 건 좋은데..."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엄마도 없고 작년에 가출하느라 출석일수를 채우지 못해 유급하여 1학년을 다시 다니면서 위층의 2학년 교실에 친구들을 놔두고 초딩냄새 풀풀 풍기는 1학년 교실에서 늘 낯선 타인처럼 굴고 있는 그 애에게 친절하고 착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주고 있는 내게 칭찬이나 아니면 뭐 그 애에 대한 상담이라도 하려는 걸까? 혜정은 언뜻 자신이 어디선가 본 불우한 친구를 돕는 장한 어린 시절을 기록한 위인전의 주인공처럼 생각되었다.

" 너, 근묵자흑이라는 말 아니? "

혜정은 당근 알아먹고 있다는 표정을 해 보였다.

" 그래,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말이란다. 넌 아직 어리고 또 착하니까...공부도 잘 하고. "

그가 혜정을 본 한달 반 동안 알게 된 것은 마지막 말 밖에 없을 것 같지만....

" 그애하고 너무 가까이 지내는 게 너한테는 좋지 않을 것 같다. 그애한텐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겠지만...백로들 속에 있다고 까마귀가 희어지는 건 아니란다.... "

교무실을 나오면서 혜정은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 지 알 수 가 없었다.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고 무엇보다도 놀랍기만 했다. 키 작고 늙고 인상 구기고 있는 이 깐깐한 여자 체육은 처음부터 비호감이었다. 학급석차 순서대로 반장, 부반장을 뽑고 나서 보통의 부장들과는 격이 다른 지육부장을 맡고 있는 혜정에게 체육과 출신의 담임은 모종의 경외감을 보이고 있었다. 그건 교실 복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전교석차 50등 이내의 아이들에게 그닥 경쟁의 상대로 인식되지 않는 중간층 이하의 성적군의 아이들이 보이는 눈빛과 비슷한 것이었는데, 그래도 그는 선생님이 아니었던가? 담임이었고 학생이라는 시절을 겪고 있는 자들에게 스승이라는 어쩌면 인생을 길게 혹은 깊게 함께 할 수도 있는 영향력 있는 어른이 아니던가? 혜정은 교무실을 나와 교실 안 쪽에서 바라보던 화단의 백목련나무 앞에 섰다. 중학교의 교사 옆으로 나즈막한 언덕 위로 예배와 성가대회같은 행사를 하는 강당건물이 있고 그 옆으로 여고와 여상이 있는 고등학교 교사가 병풍처럼 둘러친 끝에는 그린벨트지역 안의 학교답게 야외음악당이 무지개처럼 반호를 그리며 엎어져있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언덕은 학교의 배후를 빙 두른 산으로 가는 길이었고 아이들은 곧잘 그 어둠침침한 학교 뒷산에서 여자 팬티가 발견되었다는 둥, 수업을 땡땡이 깐 날라리들이 담배를 피우러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둥의 얘기를 재잘거리곤 했었다. 선희는 지금 어디 있을까?

 

 

혜정이 그 애와 친하게 지낸다는 건 다소 아니,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누구나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고 배선희도 움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었다. 혜정은 그 비범한 행동을 자신이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혜정은 갓 입학한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오도카니 홀로 앉아 볼터치를 한 것이 분명한 핑크빛 얼굴과 억지로 만든 쌍커풀에 어색한 인상을 만들어내며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그 애에게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야, 누구한테 반말이야. 젖비린내 나는 것들이...언니라고 불러. 난 작년에 들어왔다구, 씨발 "

그 애의 함부로 내뱉는 욕지기와 핀컬퍼머를 한 풍성한 짧은 머리 아래로 반짝이는 귀걸이에 주눅이 든 아이들은 새 학교, 새 학급의 이 특별한 친구를 어찌 대해야 할 지 당황하고 있었다. 언니지만 본받을만한 선배는 아닌 것이 분명한 이 중학교에서 상급학교에서 날라리라고 불리우는 이 급우는 가까이 하지 말라고 주의받는 나쁜 친구, 즉 비행청소년이라는 범주에 속해있었다.  그들은 대체로 집안 환경이 어렵거나 그렇지 않으면 결손가정이라는 배경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었으며 늘 나쁜 소문을 몰고 다녔다.  그들은 화장과 짧은 치마를 즐겨 입었고 교문에서 이미 명단이 확보된 생활지도부 선생의 검문을 벗어나지 못 했으며 용의검사에서 오래 주목의 대상이 되었고 임의로 추출되어 가방을 뒤지는 소수에 꼭 걸려들었다. 그리고 가끔 화장품 나부랭이와 함께 담배를 몰수당하는 멍청함까지 보여주기도 했다. 남학교의 그것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겠지만 그네들의 작고 여린 뽀사시한 뺨이 우악스러운 남자선생의 손바닥 자국으로 벌개지거나 그보다 더 하드할 수 없는 검정색의 출석부에 머리를 맞고 아침 내내 드라이하며 매만졌을 머리카락을 흐트리는 것을 아이들은 경악과 공포 속에서 지켜보며 관찰학습의 효과를 톡톡히 재현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모멸과 경원을 당하던 이른바 날라리가 한 명 혜정의 반에 배속되어있는 걸 보고 담임의 속깊은 고뇌와 분노와는 달리 아이들은 어쨌든 하루 8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는 배선희를 뭐라고 불러야 할 지 몰라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  어휴, 젠장...나갈 수도 없고...1학년 때 다 배운 걸 또 보고 있어야 하니, 씨발..."

단지 한 번의 가출로 출석일수가 모자라 친구들과 함께 2학년 교실에 갈 수 없었던 배선희에게 수업은 고통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버티는 건 중학교는 나와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리라. 대학생 오빠들을 만나는 것 이상 나아가긴 힘들었겠지만 여느 중학생들보다는 세상을 많이 알고 있는 소치였을 것이다. 그리고 친절하게 배선희는 아이들에게 언니라고 부를 것을 명령하며 교실에서의 생활에서 자신과 다른 아이들의 위치와 행동방식이 다르다는 것, 자신에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수업을 들어오는 선생들에게도 잘 주지시키는 데 성공한 듯 했다. 일부 몰지각한 신입교사들과 생활지도부 선생과 담임만이 사명감과 역할에 강제받아 가끔 한번씩 지적질과 매타작을 번갈아하며 우왕좌왕했을 뿐.

혜정은 그 애의 옆자리에 앉게 된 것을 난감하게 생각했다. 하루종일 그 애와 말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고 다른 아이들처럼 그 애를 언니라고 호칭할 수도 없었다. 혜정이 열 두살 쯤 되었을 때 확실히 알게 된 것이지만 자신은 학급의 대다수의 아이들보다 한 살이 많았던 것이다. 생년월일을 얘기할 때면 아이들은 앞으로 혹은 뒤로 1년 정도 태어난 해의 차이가 있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보통은 학교를 빨리 들어와 나이가 한 살 적은 경우가 많았다. 혜정은 자신처럼  한 살 많은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라는 것을, 자신이 아는 대부분의 아이가 한 살 적거나 때로는 두살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혜정이 공부를 잘 하기 시작할 때 즈음이었다. 혜정은 그래서 더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도 같다. 다른 모든 아이들보다 더 뛰어나도 자신은 또래들보다 1년 늦은 집단에 속해 있음을 자각할 때마다 창피했다. 늘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 그건 자신이 5학년 아이들과 놀때 6학년으로서 초딩을 졸업해야 했다는 것, 진즉에 중학교생활을 하고 있었어야 한다는 것, 지금 배우고 있는 교과서의 내용 같은 건 이미 작년에 다 알고 있었어야 한다는 것 등이 혜정의 자괴감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배선희에게 언니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 너...몇 년생이야? "

" 뭐? ... 천구백육십팔년생이지. "

" 나두..."

" ?......"

혜정은 주위의 다른 친구들이 들을 세라 조그많게 말했다.

" 나두 천구백육십팔년생이야. "

선희는 실패한 쌍커풀 수술로 사뭇 삐에로처럼 보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한참 혜정을 바라보았다.

 

선희는 준비물을  챙겨오는 법이 없었다. 짝궁으로서 함께 물감을 쓰거나 바느질 도구를 빌려주거나 하는 것으론 안 될 때도 있어서 혜정은 그를 대신해서 체육복을 빌러러 옆반을 기웃거려야 했다.

그의 날라리친구들은 그런 혜정에게 " 네가 선희 체육복 빌려다 주었다며? " 하고 친한 척 말을 걸어 오기도 했다. 그 애의 도시락은 누가 싸 주는 걸까. 혜정은 나중에 어렴풋이 그 애에게 새엄마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불행히도 친엄마를 사별하거나 좀더 점잖게 이혼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어느날 엄마가 집을 나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드라마의 사연깊은 소녀들처럼 부잣집 딸래미도 아닌 것이 그 애의 옷차림이나 소지품은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아 선희는 용돈을 조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도 보였다. 혜정은 소문처럼 그 애가 거칠거나 퇴폐적이거나 고약하지도 않다는 것,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른스럽지도 않다는 것을 알고 내심 정감이 갔다.  선생한테 맞으면 분해서 눈물을 쭉쭉 흘렸고 고맙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잘 했다. 깡패들 이야기에 흔히 나오듯 동급생들에게 삥을 뜯는 것을 본 적도 없었다. 한 번, 혜정에게 돈 있으면 좀 빌려달라며 집 근처까지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혜정은 얼마 안 되는 주머니 돈을 주면서 배선희가 함께 온 날라리 친구 앞에서 좀 창피해 하는 듯해서 자신이 가진 돈이 별로 없는 것이 적잖이 미안스러웠다. 그애는 아마도 친구들과 명동이나 아니면 나이트같은 데를 가려는 듯 했다.

어느 일요일, 선희가 자기네 동네로 놀러오라고 했다. 그 애네 집은 혜정의 집이 있는 동네의 옆에 옆에 동네여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만 가면 되는 곳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애는 골목시장으로 혜정을 데리고 갔다. 혜정의 동네에 있는 시장과 다르지 않은 풍경의 그 곳, 어물과 나물과 과일, 정육점 등을 지나 구경을 하다가 길가로 내어놓고 조리해 파는 떡볶이, 오뎅, 순대, 튀김 등을 파는 가게 앞에서 선희는 먹으라고 했다. 혜정은 무슨 맛인지도 모르게 우물쭈물 하며 그애의 곁에 나란히 서서 뭔가를 씹긴 했다.

" 왜 그래? "

선희는 짜증스럽다는 듯 눈을 흘겼다.

" 하나도 맛 없고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

그리고 나서 선희가 혜정을 다시 부르는 일은 없었다.

친하게 지내기에는 비슷한 구석이 너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혜정은 그렇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혜정은....그 애가 자기를 데리고 나이트에 가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자기를 앞에 놓고 혼자만 담배를 피우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불량친구를 사귀면 그 불량스러움을 따라 배우는 것이 수순이 아니었던가?

이래서야 담임의 엘리트가 그 패거리를 벗어나서 다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저 아래의 성적을 기록하며 사춘기의 방황을 계속하고 있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혜정은 사귀고 있는 내내 그 애가 자신의 날라리친구들과는 다르게 자신을 대하고 있다는 것, 다르게 말하고 있다는 것, 다른 것을 공유하고자 한다는 것 아니 자신의 영역에 혜정을 들여놓지 않고 있다는 것에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꼈다. 혜정의 그 애의 세계를 알고 싶었고 그 애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그 애가 자신을 통해 달라지기를 바랬다. 예를 들면 자신과 함께 공부를 잘 하는 성실한 학생이 되는  것 같은?

열 다섯살에 우리들이 알고 있는 성공하는 성장으로 그 이외의 것을 상상할 순 없었다.

어쩌면 선희는 다른 성장을 알고 있었는 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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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수정? 도대체 답이 없다...

피곤하다.

아침 7시부터 일어나 밥 차려주고 행주삶고 딸래미 머리감겨 이 잡아주고 숙제시키고 얼집까지 걸어서 데려다 주고 오니 도저히 공인중개사 셤공부를 하겠다고 도서관까지 갈 기운이 나지 않는다.

집안은 난장판이고 내일 딸랑구 어린이집 송편빚기 어쩌구를 위해 앞치마를 사러 이마트에 가야 하는데...이런저런 잡다한 쇼핑을 해야 하고... 돈도 없는데 돈 쓰는 것도 일이고 고민이다.

이래서야 나의 조잡한 올 하반기 스케쥴도 성사시키기가 어려울 듯 하다.

방통대 공부는 졸업학년에 이르러 엉망이 되고 있고 조악하게 짜깁기하고 있는 사십대의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도 전망도 불투명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야 하나 어쩌나에 헤매고 있고...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하면 딸랑구 따라다니랴 작은 애 어린이집 새로 알아보고 적응시키랴 분주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만 들고...

남푠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아침식사를 챙겨주려 일찍 일어나니 며칠도 못 가 내 도서관 출근은 펑크가 나기 시작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아이들은 늦게 자니까 늦게 일어나고 더불어 나도 매일 한 시까지 잠 못 들고 당연 아침밥은 아무도 먹지 않게 되었는데.... 남푠을 밤에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아빠로 만들기 위해 아침밥을 챙겨주고 저녁에 함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일찍 자게 만드려는 내 계획은 초기단계에서 내게 고난을 주고 있다. 희생이 따르지 않으면 성공은 없는 것이려니...아이들을 일찍 재우지 못 한 상태에서 내가 일찍 일어나는 이 과도기에 내 한낮의 여유는 제물로 바쳐지고 있다.

하아...배 고파 죽겠다. 아빠와 아이들은 무사히 출근과 등원을 마쳤지만 나는 내 손으로 또 밥 차려 먹을 생각을 하니 몸이 안 움직여진다.

집에서 시험공부를 할라니 이불이며 옷가지며 삶다 만 행주꺼리며 난장판인 집안 상황이 시야를 가려 어찌할 수가 없다. 집을 다 치우고 나면 나는 분명히 배고픔과 피로에 지칠 것이다. 지병인 발각화증이 악화되어 오래 서 있기도 힘들다. 아프다. 발바닥. 중력과 맞서 내 몸무게를 버팅기고 있는 22.5센티의 내 발바닥이 불쌍하다. 늘 각질과 피멍이 들어있는...아무도 만져주지 않고 족욕은 커녕 목욕탕에 들어갔다 나올 때도 두 아이의 시중을 드느라 한 번 쓰다듬어 주지도 못 한 채 버림받은 내 발바닥.

남푠은 죽도록 일하고 떡이 되서 퇴근하면 집에서 밥 먹고 드라마 보다가 청소기 한 번 밀고 이불 펴고 잠자다가 한 밤에 일어나서 아이들 쉬야 시키고 열린 창문 챙겨 닫는 것 이상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면서 재우는 것까지 하는건 너무나 힘든 일이라고 한시간 반에 걸쳐  항변했다. 그것 밖에 못 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면 이혼할 수 밖에 없다면서.

인간관계 개선을 위한 도서관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나는 배운대로, 먼저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경청하고 나서 그의 욕구인 아침밥 먹기를 채워주고 저녁시간의 한가함을 확보시켜 준 뒤에 아이에게 책 읽어주며 일찍 재우기를 시도하고 있다. 언제나 아이들이 10시에 잠들까, 그래서 내가 7시에 일어나는 걸 힘겨워하지 않을까...

일찍 일어나기.

이게 싫다.

학창시절, 자율학습을 위해 7시에 일어나서 8시까지 등교하는 것도 나는 잘 못 했다. 아침밥을 먹은 적이 없다. 서둘러 학교를 가 보니 책가방을 안 가져온 적도 있었다. 내가 냅다 들고 뛴 것은 커다란 도시락가방이었다. 사교육이니 입시니 뭐니 암껏도 모른채 학교만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조차도 힘에 부쳐 했던 내 엄마가 열씸히 챙겨주신 도시락, 없는 돈에 비싸게 사 주신 보온도시락통.

내가 갓난아이 둘을 키워내면서 보온병 하나 못 산 걸 보면, 그 당시에도 코끼리표 보온도시락은 무척 비쌌을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조지루시라는 브랜드를 구입하지 못 한다.

푸하하...암튼 나는 열심히 챙겨온 보온도시락만으로 걍 하루치의 수업을 때웠다. 교과서 한, 두권 안 가져오는 건 일상다반사였고 옆교실에 가서 체육복이며 온갖 준비물을 다 조달해 왔는데 7교시분의 교과서를 안 가져왔다는게 뭐 대수랴....쉬는 시간에 좀 자주 옆교실을 가면 되지...어차피 책을 보는 것도 아닌데....

책상 위에 그 수업이 아닌 교과서를 촥 펼쳐놓고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가끔 칠판 쪽을 한번 봐 주면 된다. 어차피 모든 교과서  아래에는 똑같은 소설책이 있을 뿐이다. 벌써 수년 째 계속되어 온 습관이다. 선생들은...중학교때도 그랬지만 고교에선 특히 더  전교석차의 일정부분 안에 있는 각반의 아이들을 대충 눈에 꿰고 있었고 자신의 수업에 주목하는 그 소수의 아이들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입시준비를 위해 존재하는 인문계고교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지만, 어차피 대입정원에 들지 못 하는 전국 70%의 고교생은 그렇게 소외되었다. 책상 위에 엎드려 자던 말던, 수업을  땡땡이 친 것이 분명한 빈 자리를 발견해도 못 본척... 수업을 포기한 학생들보다 그들에게 더 나쁜 건 중간도 못 가는 것들이 떠들어대면서 수업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상위30%의, 대입진학이 가능한 소수에게 주입하고 있는 암기포인트의 전달 -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교육활동인- 을 방해받는 것, 그건 선생들이 가장 싫어하고 그나마 제지해야 할 선생역할이었다.

공부도 잘 하는 내가 열심히 코박고 책을 보다가 가끔 자신들의 교단에 눈길을 던져주는 것만으로도 선생님들은 흡족해 했다.

젠장...내가 키가 너무 작아서, 너무 앞줄에만 앉지 않았어도  교과서 밑의 다른 책을 발견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과서 밑을 휙 들춰 책 제목을 쓱 보더니 나를  한번 흘낏 보고 그냥 지나갔다. 아이들도 무슨 일이 있었는 지 모르게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내가 공부를 잘해서? 책 제목이 너무 거창해서였는지도. 그건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입문이었다.

정독도서관, 그 넓은 정원이 있는 정독도서관을 사랑했다.

세상의 지식을 모두 내 것으로 하고 싶었던 나는 그 도서관의 커다란 서가가 너무나 좋았다.

100원 내고 들어가서 300원짜리 우동을 사 먹는 것에 가끔 어려움을 느끼기는 했지만....

내가 그 시절 열람실에서 책을 읽으면서 오리무중이었던 것은 왜 사람들이 서가의 책이 아닌 듯한 두꺼운 수험서 같은 걸 펼쳐놓고 있냐는 것과 왜 전부 어른들만 있냐는 것이었다. 심심하게시리....

도서관의 로맨스도 생길 틈도 없이 말이다.

아...암튼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싫다. 자율학습 시간에 피곤에 쩔어 엎드려 자는 건 너무 꿀맛같고 지난밤 너무 늦게까지 소설에 빠져있었던 지라 오전 4교시 내내 도시락도 안 까먹고 엎드려 자고 있을라면 너무 허리도 아팠다. 어쩔땐 점심시간을 지나 5,6교시까지 내처 잔 적도 있었다. 그럼 7교시엔 턱 괴고 눈을 반쯤 뜨면서 집에 갈 정신을 수습하며 종례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나~중에 직장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나오는 빈혈, 저혈압, 주의요망 어쩌고를 보면서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없는 체질이라는 걸 알았다. 난....점심 때쯤 되어야 제정신이 들고 겨우 입맛을 따라 밥을 먹고 난 오후에야 에너지를 소비하여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뭐...그렇다고 내가 늘 밤중까지 정력적으로 뭔가를 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밤에는 또 피곤해서리....걍 만화책이나 보면서 공상에 빠져 잠드는 것이 행복하지...

결국...하루 8시간 노동도 겨우 해낸다는 뜻이다.

그런 내가 무슨 새벽밥을 지어 식구들을 내보내고 퇴근시간에 줄달음쳐 아이들 픽업해서 저녁밥 해 먹이고 설겆이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애들 노래불러 재우고 밤 열 두시에 내가 오늘 한 게 뭔가 하는 자괴감을 느끼며 피곤에 지친 잠에 빠져드는 맞벌이생활을 하겠나...결혼한 이후 꼭 2년 6개월을 일했지만 도저히 못 해 먹겠더라...

남는건 약간의  저축이고 서술형으로 일했다는 것 외에 의미 담을 게 아무것도 없는 걍 인생의 낭비였을뿐이다.

아, 그리고 남푠과 지독하게 싸워대면서 바닥까지 드러냈다는 것 뿐이다.

고로....맞벌이는 불가하다. 누군가....우리 가족의 밥을 해 주지 않는 한.....

누가 밥만 해 줬으면 정말 좋겠다.

나의 염원, 윤리시간에 비난과 함께 배웠던 북한의, 마을마다 있다는 밥공장....그런 공공식당이 있었으면....오늘 도서관에 가서 3000원짜리 밥을 사 먹으면 좋을텐데, 라면 끓여 김치랑 먹어야 하나....난 라면 안 좋아하는데....

제법 괜찮은 식당을 가지고 있는 울 동네 정보도서관이 좀 가까웠으면 식구들의 저녁식사도 거기서 해치울텐데....

오직 저녁밥만 짓기로 마음 먹었었는데 책읽어주며 일찍 재우는 습관 형성을 위해 남푠의 아침식사를 차려주다 보니 도대체 하루 일을 시작을 못 하겠네...라면 먹고 힘내서 청소하고 마트갔다가 은행도 가야 하나...으....

언제 셤공부를 하나...애들 챙기고 밥 해 대면서 직장 생활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취업준비를 해야 하나....전망이 어둡다....걍 전업주부로 사십고개를 넘겨야 하나...그럼 무슨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인생의 플랜이 이렇게 안 짜지기도 참 처음이다. 세부적으로 실행되진 못 해도 대강의 윤곽과 방향은 가지면서 지금껏 살아왔는데....이건 당췌 그림이 안 그려진다.

가사노동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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