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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의 고견

엄마가 딸들에게 말한다.

" 너는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는 것 같니? 그리고 엄마는 엄마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것 같니? "

 

여덟살.

" 음...나는 내 마음대로 하는 것 같애. 엄마는 못 하는 것 같애. "

 

기대했던 대답이 나오자 반색하며 엄마.

" 그래 ! 그러니까 네가 어떻게 해야 하겠어 ? "

 

가만있는 여덟살, 뒤에서 따라오던 여섯살.

" 엄마를 힘들게 하지 말아야 해. "

 

오옷 !!!!!

역쉬 둘째는 천재가 틀림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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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그녀의 일상

어여쁜 그녀.

안고 싶어. 안고 싶어.

오지 말까? 하길래 오지 말라 했더니 진짜 안 온다. 아니, 전화 한 통 없다.

하루 기다려보고 이틀째 아침, 전화 했다. 그녀 없이 맞는 사무실의 아침. 정말 재미 없다.

말단신입사원 흉내를 내면서 아침마다 커피를 타 주는 걸, 거리낌 없이 받아 먹다가 홀로, 멍청히 책상 앞에 앉아 있으려니 슬슬 열 받는다. 이 여자는 왜 틈만 나면 꼬리를 감추나...

아이들이 방학을 했으니 천상 집에 붙잡혀있을 수 밖에, 아니 어쨌든 집에 머물러있을 터인데 통화 중의 대답이 영, 시원챦다. 예, 아니오로 끊어지는 콜드 스피치는 아니더라도 대답이 짧다. 그리고 기다린다. 뭔가 더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듯이.

 

" ...그랬어. "

" 응, 그렇구나. 하하하. 그때부터도 게임에 빠져있었어. 조합원들과 친하려고 스타크래프트 한다더니 ! 하하하. "

 

그래도...이혼했다는데, 그렇게  크게 웃을 일은 아닌것 같은데. 이 여자가 주변에서 실패한 결혼 사례를 많이 보더니?

 

" 불임이 평균 십프로이고, 이혼율도 십프로이고, 한부모가정이나 재혼가정이나 다문화가정 등등 하면 소위 정상가정의 프로테지는 더 떨어질 것 같은데? "

" 아? 정상...? "

" 그래, 노멀한, 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여타의 다양한 소수자들을 비정상이라고 밀어내는 사람들. 그들의 자기방어적인 레테르. "

 

그녀는 말을 길게 하기 싫은 듯, 얼버무리지도 않고 뚝 끊었다. 그리고 또 기다린다. 다른 화제를 꺼낼꺼냐는 듯. 용건이 있는 건 아닌거지? 하면서.

 

" 왜? "

" 아, 나 나가야 해. 시간 약속이 되어 있어. "

" 그래? 그럼 나중에... "

" 까칠 아줌마라, 늦으면 눈치보여. "

" 하하. 까칠아줌마? 알았어. 그럼 끊어. "

 

오후 늦게 문자가 왔다.

 

' 반론의 근거가 겨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쟎아. 라고 말하는 상대. 계속적인 대화상대가 되지 못 해. '

 

조금 있다 또 문자가 왔다.

 

' 연락 바랍니다. '

 

흠...이건 그녀의 외화가 아닌데.

아니나다를까 짦은 문자가 연달아 온다. 질문.

그녀는 몇 번인가 회의 중이라는 문자를 받으면서 통화연결에 실패한 이후, 직접 전화거는 걸 자제했다. 그리고 문자를 찍기 시작했다. 잘 못 찍으면서. 미싱도, 바느질도 그렇게 들여다보면서 손가락 놀리고있으면 협심증이 생기는 것 같다고. 그녀는 어린시절, 테트리스도 잘 못 해서 오락에는 당췌 흥미를 붙이지 못 했다고...대체로 그 손으로 빨리 할 수 있는 건 자판 두드리는 것 밖에 없는 게지. 후.

 

전화 걸었다. 편하고 즐겁게 받는다. 앞에 둔 듯 수다를 떨지만 그래도 되는 상황인지 파악을 못 해서 불안해하며 빠르게 지껄인다. 영화 보러 가자고. 요지는 그것인데 가능한 날짜를 찾아 한참을 말 주고 받다가 결국 못 가겠다고 대답했다.

 

" 그래, 그럼 다음에 가지, 뭐. "

 

그리고 곧 통화를 끊었다. 빨리 포기해 주고, 별 중요한 거 아니니 상관 없다는 듯이 다른 화제를 꺼내고 그렇게 상처받지 않은 양을 다 못 해서 어색하게 전화통화를 종료하는 것이다. 그녀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녀와 외출하기 위해 무리를 할 수는. 아이들을 두고 밤에 나올 수도. 일에 매여 있는 몸을 빼낼 다른 시간대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그녀가 집에 있는 오전시간을 찝어서 알바하라고 꼬셔서 사무실로 불렀겠는가...

 

오지않게 된 방학 이후의 오전 시간, 그녀도 나름대로 바빴다고 한다.

방학식을 하는 둘째네 반에 과자보따리를 만들어주느라 아침부터 일했다고, 반대표를 하는 다른 엄마들이랑.

방학한 첫날에는 즐겁고 알찬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문화센터에 접수하러 가느라 바빴다고, 땡볕에. 전업주부로서 본분을 다하여 유능한 엄마가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까칠엄마랑 손잡고.

의외로 엄마들과 잘 지내고 있는 듯.

그, 깊이 없는 사교생활 속에서 그녀는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주의할 점은 오직, 생각하고 있는 것을 한 마디 더 하는 것만 자제하면 된다고. 그래서 결국 마음 차지 못 하여 냉소 뒤의 외로움을 절감할 수 밖에 없지만. 그녀는 니도 내게 다르지 않다. 하는 듯 말을 끊고 돌아선다. 단지...영화보러 갈 시간을 못 냈을 뿐인데.

그래도 캠핑은 같이 갈 껀데. 그녀가 남편은 못 온다 하였고 또 부르고 싶지도 않다 하였으니. 어쩌면...

아이들을 한 텐트에 몰아넣고 다른 텐트에서 그녀와 술을 마시게 될 지도. 그녀는 술을 원하나 또 다른 것도 하게 될 지도 모르지. 어여쁜 그녀를 안고 싶은 자가 대작을 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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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그녀의 일상

그녀의 다리 사이를 닦아주었다. 물티슈 왕창 쓰면서. 

우리들의 홈이라면 함께 목욕이라도 할텐데.

도질까, 무섭다. 집을 갖고 싶은.

욕망, 그보다 더 진한 감수성.

 

창 넓은 베란다를 갖고 싶어. 아니 발코니를.

연한 초록의 잎들이 무성한 나무, 풀, 낮은 꽃나무. 듬성듬성 내보이는 흙더미들.

그녀는 가꾸지 않은 정원이라도 흙을 밟으며 걷고 싶어한다. 발이 아프게 되고부터.

 

- 강화마루, 아니 원목마루인가. 암튼 마룻장 때문이야. 넓고 딱딱한.

 

그녀는 발이 아프게 되기 직전, 통증을 느끼면서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그래도 관심두지 못 하고  바쁘기만 했던 아이들의 세살, 다섯살 적을 보냈던 아파트에서의 넓은 마루가 생각난다고 한다. 그 마루 끝에서 울었던 일. 아이 돌보기에 힘이 부쳐 괴로웠던. 남편에게 화내다가 하소연하다가 속이 끓어 슬픔이 북받쳤던 일. 그 집을 슬픔으로 기억한다. 그 넓고 딱딱했던 마루. 청소하기에 힘에 부쳤던. 늘 어질러진 집기들을 집으러 다니느라 발이 아팠던,  제 몸을 돌아보는 것이 너무 늦었던, 그 집을 떠나고 또 다른 집에서 맞벌이하면서도 채 일년을 살아내지 못 하고 결국 집을 줄여 이사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제서야 그녀는 몸이 예전같지 않음을 알았다고. 더이상 무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음을, 그녀는 금방 되풀이되는 스트레스와 피로에 처지는 몸과 불안정한 정신을 수습하지 못 하면서 눈물 많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아, 못 하겠다. 하였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남편에게 끊임없이 화를 내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신을 제어하지 못 하는 자신을 비로소 돌아보면서 그녀는 말하기를 멈췄다. 그렇게...화내면서 살 무엇이 있는가고.

그리고 버릇처럼 되뇌었다. 괜찮아. 하고.

원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지. 하면서.

내가 그에게 너무 큰 것을 원했다. 하고.

그를 사랑하지 않았으니 상처받지 않을 테지.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새로 상처입을 가능성은 없을 테니.

 

" 우리, 연애하자. "

 

그녀의 벗은 어깨 위로 린넨셔츠를 걸쳐주면서 속삭였다. 팔을 끼워 옷을 다 입고,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려 손을 내어민다. 붙잡아 일으켜 달라고. 항상 어리광을 부린다. 곁을 주는 모든 사람에게.

" 혜정아. "

그녀, 못 들은 듯 바지를 꿰어입고 바클을 채우고 매무새를 다듬는다. 시계를 흘낏 거리며.

 

" 너, 빨리 옷 입어. 나는 다 입었는데 뭐하고. 웃기쟎아, 너만 홀랑 벗고 있으니. "

 

그녀의 작은 입이 웃음을 떨구고 있다. 제가 주도하여 갖고 놀았으니 이만 가 볼란다. 하는 선비처럼. 그런 마음의 자세로 내려다보며, 어서 일어나라고 채근한다. 그녀가 무릎으로 어깨를 친다, 톡톡.

 

" 혜정아, 우리 연애하자. "

 

더 크게 또렷이 말했다. 그녀의 무릎을 감싸안으며. 매어달리는 주막집 과부처럼 비통하게, 애절하게, 아니 진솔하게.

그녀는 진지하지 않은 건 아니나 그리 심각해할 만한 얘기는 아니라는 듯.

 

" 어, 참, 빨리도 얘기하네? 키스하고 포옹하고 자고 난 담날 아침에야 대사 치는 게 요즘 청소년들의 연애순서야? "

 

그녀, 올려다보며 미안함 반, 간절함 반으로 눈길 꽂았으나 마주쳐 주지 않고 손길 내민다. 일어나라궁...시계 좀 보구...나, 얘들 데리러 가야 해. 너두 할 일 많쟎아.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 옷 입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

 

" 혜정아, 우리 연애하자. "

" 아, 97번만 더 말하면 백번째야. 너 백 한 번째까지 프러포즈할꺼야? "

" 응. "

" 왜 그래? "

 

그녀, 비로소 눈 들여다보며 가만히 섰다. 그녀가 모르지는 않는다. 무슨 뜻인지. 우리. 라고 말했는데. 그녀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앞으로도 그럴 의사가 없는 것에 대해. 그러면서도 이리 강짜부리듯 규정을 하자 하는 것에 그녀는 따지고 들며 부당하다 할 지도. 허나, 누가 따지리. 사랑하면서 사랑해선 안된다는 당위론을 들먹이는 게.

 

" 연인이라고 인정해 줘. "

" 그게 무슨 소용인데? "

" 나한테 솔직하게...욕구를 보여 줘. "

" 니가 그러고 싶은 거겠지. "

" 너도 그러고 싶쟎아. 싶을 때 있쟎아. 오늘처럼. "

 

그녀, 잠깐 생각을 하려는 듯 말을 멈춘다. 눈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맘이 읽히지가 않는다.

 

" 그래. "

" 혜정아. "

" 하고 싶을 때 얘기할께. 내가 그러듯 너도 그러면 되지. 우린 연인이야. 됐지? "

" 혜정아, 내가 성욕만 얘기하는게..."

" 네가...대체 뭘 해 줄 수 있어? 내게. "

 

그녀, 똑바로 쳐다보고 있지만 분노 혹은 슬픔이 없다.

 

" 네게 미안하다고 말하진 않을 꺼야. 하지만 사랑해. "

 

그녀, 감흥없이 듣고 있다. 이런 고백을.

 

" 내가 더 사랑해. "

 

그리고 돌아선다. 시간 없어. 갈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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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그녀의 일상

그녀의 두 손이 손바닥을 맞잡듯 떠받치고 있다. 손바닥 안에 움푹 패인 화상 자국이 무슨 신주단지라도 된 듯.

상상력이 풍부한 그녀, 가스렌지 위에서 번지는 불길을 눈 앞에서 보는 듯, 황망히 불꽃 위로 내젓는 두 손이 미처 느끼지 못 한 뜨거움을 대신 느끼듯 눈쌀 찌푸러진다. 속 상하고 속 상해서 그 마음 베어져 건너올 것 같은 찌푸린 얼굴, 꾹 다물어지다 못 해 질끈 깨물어지는 입술, 동글게 오무리며 다가온다. 호. 하고 불어줄 듯.

 

" 흉 지면 어떡해. "

" 손바닥인데 뭘. "

 

그예, 입술 다가와 더운 숨결을 떨군다. 살짜기 벌어지며.

저절로 손바닥이 닫아진다. 손목 비틀며 빼내려는 데 그녀, 작은 두 손 와짝 감아잡고 놔주질 않는다.

하아.

이 여자가.

 

" 놔. "

" 싫어. "

 

이 여자가, 상황 판단 못 하네. 안 하는 건가.

그녀의 어깨로 자유를 가지고 있는 다른 한 손이 건너온다. 둥근 어깨, 작고 좁다. 한 손가락만 걸쳐도 다 가려지는.

그녀의 두 손 안에 잡혀있는 한 손에서 힘을 빼며 그 시각, 그녀의 어깨를 타넘는 다른 손에는 힘이 들어간다.  결코 의도한 바 없다. 누가 이런 세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단 말인가. 애드립이 난무하는 예능프로의 작가처럼 사랑의 순간에는 예측이 불허하다.

 

" 그럼, 다른 데선 싫다고 하면 안돼. "

" ... "

 

그녀, 무슨 말이냐고 다시 묻고 싶으면서도 눈을 들지 않는다. 손바닥의 상처에서 시선을 떼지 못 하고, 그에 팔린 정신이 다른 눈치를 채면서도 수습이 안되고 있다. 그런 것이다. 알면서도 거절하지 못 하는. 사랑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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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그녀의 일상

그녀가 우니까,  감정 흐트러진 틈을 타서 어찌해 보려는 게 아니다.

지난 주부터 하루 걸러 사무실에서 보면서 그녀, 감정 살지 않고 있는 것도 느껴 알고 있다.

언제 니를 사랑하였다고? 하는 듯 무심한 표정, 무심한 눈길, 무감하게 스쳐 지나가면서 그녀와의 거리가 이전 그 어느 때보다도 멀어져 있다는 걸 새록이 되새겼다.

지난 해 가을에서 겨울까지 있었던 일들이 아득한 과거처럼, 태고의 화석처럼 감흥이 없다. 누가 그녀를 이리 만들었는가. 눈 들어 바라보는 시선 끝에 허망함이 흩어질 뿐. 주저리 수다를 늘어놓은 들 어느 한 대목에도 힘이 실리지 않고 있는데.

 

- 양평으로 가는 건.

그녀의 눈길, 탁자의 가으로만 흘러다니는 시선을 마주치지 못 해 약간 고개를 숙이며 쟝은 물었다.

- 이젠 포기한거지?

- 뭐.

그녀는 동기와 함께 있는 자리이니 머쓱해하는 듯 흘려말한다.

- 현실성이 없쟎아.

 

그리고 알바하러 오라는 말에 반색하듯 대답했으나 표정은 전혀 기쁜 빛이 없었다. 잘됐네 !  파트타임 일거리 찾고 있었는데, 유아영어 지도하는 거 할껄 그랬다고 후회하고 있었쟎아. 하고 동기가 말하는 중에 뭐라 맞장구 치지 못 한채 시선을 헤매이던 그녀. 바로 담날 문자를 보내왔다. 오늘부터 사무실 나갈까? 하고.

생각없이 나오라고 했다. 바로 회의 있다는 게 생각나서 다시 전화했지만 이미 오고 있는 중이라고.

만나서 30분 만에 헤어졌다. 그녀, 불평 없이 돌아간다. 다음날 다시 오겠다며. 회의가 연짱 있었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회원들 땜에 1박 2일 연수까지 겹쳐서 그녀, 사무실에서 찬찬히 볼 수 없었다. 하필, 그녀가 오는날 운영위원장까지, 단체 사람들이 드나드는 통에 그녀에게 겨우 사무적인 말만 몇 마디 했을 뿐. 그녀는 사수에게 지도받는 도제처럼 얌전히 업무용 싸이트를 눈과 머리에 익히는 데 집중했다.

 

- 행정업무가 맨날 쌓여서리.

컴 쳐다보다가 가스렌지에 찻물 올려놓은 걸 잊어버려 화재날 뻔 했다고. 물 뿌리면 안된다는 걸 기억해서 주변의 두터운 옷가지로 덮어 껐는데. 제법 큰 일이라 얘깃거리 삼아 떠들어댔다. 그러다가 손바닥에 화상 입었다고 슬쩍 보이며. 그녀, 미간을 찌그리며 금세 수심에 찬다. 어디 봐, 많이 다쳤어? 하는 그녀의 눈길과 손길 사이에 내놓았던 손을 뺐다. 피부 스치는 것도 어색하다. 그녀의 동기가 바로 앞에 있는데.

 

손길 피했던 것을 맘에 담은 그녀.

사무실의 옆자리에 앉아서도 한 번 다시 보자는 말 않더니, 찻잔 가져다 책상 위에 놓아주는 데 시선이 걸렸다. 빤히. 꽂아넣을 듯 시선을 박은 그녀, 찻잔에서 떨어지는 손을 쫓아 고개를 든다. 곱슬머리, 파마를 해서 웨이브가 더 강하다. 이마를 가리고 눈썹을 묻었으나 눈꺼플이 떨리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괜찮아? 하는 말에 뭘? 하면서 모르는 체 했다. 손길 피했던 것에 맘을 다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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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그녀의 일상

그녀가.

자판을 치다가 멈춰 있다.

아까 가져다 준 감잎차를 여즉 반 넘어 남긴 채.

그 눈길이 화면을 향해 있지만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 손, 다쳐서 어떡해.

- 뭘.

 

그녀가 다친 손바닥을 보려고, 만지려고 하는데 접촉을 피하듯 팔을 치웠다. 눈치챘을 것이다. 피한다는 것을.

그리고 마음에 담았다.

마음에 담겨 어쩌지 못 한 채 출렁이고 있다.

 

" 뭐 해? "

" ... "

 

대답 안 한다. 못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들었대도 대답할 성격 아니다, 그녀는.

그녀가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자판 두드리는 소리를 내기가 멋쩍다. 아니..불편하다. 무척.

삐진 그녀.

 

의자를 밀어 그녀의 옆으로 다가 앉았다.

" 왜 그래? "

그녀의 대답이 없을 것이니 기다리지 않고 책상 위로 손을 뻗어 자판 위에 얹혀진 채 가만히 있는.

" 손 대지 마! "

낮지만 무게가 실린 목소리. 하지만 끝이 떨리고 있다. 분함을 감춘.

그녀의 손등 위로 손가락을 걸쳤다. 그냥 가만히 있다. 손등이 조금 뜨겁다.

" 넌...."

목이 메였다. 금방도 운다. 어느틈에 눈물이 찼을까. 곧 떨어질 것 같다. 말을 잇지 못 하나 그녀의 뜻을 안다.

" 왜 못 만지게 하냐구? "

그녀의 손등 위에서 손을 뒤집어 손바닥을 보여주며 속삭였다.

그녀가 눈을 크게 뜬다. 그러느라 고였던 눈물이 툭 떨어진다. 그러나 펼쳐진 손바닥 안에서 꽤 넓게 살갖 벌려진 채 부풀어있는 상처를 보느라 그녀는 경황이 없다.

" 어떡해 ! "

그녀는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상처가 있는 손을 감싸안듯 모아 쥔다.

그녀에게 한 손을 내어맡긴 채, 다른 한 손을 들어 그녀의 등 뒤로 올렸다. 등에 닿지 않게 조심하여 의자 등받이 위로 걸쳐올리며.

" 괜찮아. 아프지도 않고. "

그녀는 속이 상해 어쩔 줄을 모른다. 상처 위로 손을 올렸으나 차마 대어보지는 못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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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 vs 부업주부

그래도 고민이 되네.

자기실현을 주부생활만으로 할 수 있을까?

경제력의 정도에 따라 우아하게 혹은 좀 구차하게 전업주부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문제는 이러한 주부생활로 개인의 자기실현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뭐, 임노동에 종속되어 처자식 먹여살리기에 고역스러운 남자들의 직장생활이 자기실현을 하면서 하는거냐 하면 물론 아니긴 하지. 기든 아니든.

남편이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니 주부생활이 적성에 안 맞아도 해야 한다. 라든가 부모가 고생하고 살았으니 자식도 그 자식을 위해 평생을 사는 건 당연하다 혹은 피장파장이다. 뭐 이딴 식으로 맞대거리하는 건 논외로 하고.

어차피 중요한 건 자기 앞의 생이다.

내 상황과 조건 속에서 전업의 길을 계속 갈 것인가, 아님 부업이라도 할 것인가.

물론 주변엔 슈퍼우먼, 워킹맘들도 있지만 나의 능력과 조건으로는 비교불가능하니 논외로 하고.

부업이...일하고 또 일하는 것에 몸은 힘드나 보람은 느끼고 사는 듯한 시골동서처럼 집안일 다 하면서 전자회사의 부품 받아다 조립하거나 남의 농장에 품일 나가는 일은 아니니까 고민된다. 사실 부업, 할라치면 김밥을 말거나 마트나 식당의 파트타임을 하거나 아파트청소를 나갈 수도 있다. 문제는 나의 저질체력으로는 그 일을 하고서는 집안일을 더 못 한다는 것에 있다. 예전에는 해봤지...만, 그리고 병났고 전반적으로 체력이 저하되었다.

부업을...마지막으로 했던 학습지교사생활처럼 보습교사활동같은 걸 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지난번 취업연계교육을 함께 받았던 삼십대 맘들이 주 1, 2회의 강사활동이라도 하면서 어린이집다니는 자기 아이들 돌보니까 훨씬 살 것 같다고. 수입이야 뭐 전부 비정규직의 파트타임페이니까 얼마 안 되지만, 삶의 질이 좀 나아진다는 뜻이겠지.

에휴...

반상근으로 와서 일하라는데...도저 자신이 없다. 낮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일인데, 두 아이가 모두 1시면 공교육에서 방출되어 나오는데, 이후 사교육스케쥴로 따라지하는게 전업주부의 일상인데...학기 중의 지금 시점에서 아이들을  1시에 픽업하는 공부방으로 보낼 수도 없고. 그러기도 마뜩챦다. 초딩은 가능하다 해도 유치원생을 다시 어린이집으로? 5세까지 어린이집을 다섯번 옮겼는데...기록갱신할 일 있나...진짜로 둘째 학대한다 그러겠다....

포기해야쥐...

반상근은 무슨...아침에만 잠깐 왔다 가라 하면 모를까...

근데,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나?

사실은 돈도 없다, 좀 많이 부족스럽지...남편 외벌이로 애들 교육시키며 살기는. 돈도 벌었으면 좋겠다.

전업주부의 소외감은 가사노동에 임금이 없기 때문이다. 남편 월급의 일부가 임금이라고 우긴다면...생활비 빼고 뭐 남는게 있어야...용돈 이십만원 쓰라더니...딱 한 달 주고...당장 담달부터 체불이란다. 그럼 뭐 내 노동은 그냥 먹고 재워주는 걸로 때우는 팔려온 노비냐...

가사노동의 임금은 누가 주나? 국가한테서 받아야 한다구 어느 사노윈가 사노련인가 회원이 말하더만...어찌 좀 강령에라도 넣어볼라나...

자기실현이 아니라 임금을 못 받아서 가사노동의 소외감을 느끼나, 내가?

음...암튼 고민스럽.

제안하는 사람은 기다려줄 시간은 없다는데, 내가 어떻게 당장 일하러 가냐구....밥은 안하고 사 먹는다 쳐도, 애는 누가 봐야 할꺼 아니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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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의 소외

노동자의 인생이 퇴근 후에 시작되는 것처럼

주부의 인생은 (가족들의등교혹은) 출근 후에 시작된다.

내일의 노동을 위해 너무 늦은 시각까지 술을 마시면 안되는데. 하고 직장생활 중에 생각했듯이

점심 후에 곧 들이닥칠 아이들을 생각하면 오전의 여유는 너무 늘어져서는 안된다. 흠...좀 짧네.

초딩 딸랑구의 동급생 엄마는 초2오빠와 함께 아이들이 하교후 피아노-영어-수영을 마치고 오면 네시가 넘는다고, 어느때여섯시가 넘기도 한다고. 다섯살 막내가 있지만 어린이집에서 제일 늦게 온다나. 그러니까 알바를 하잔다...헐.

나는 왠지...그게 안된다. 일하고 또 일하고 또 일하고 푹 잠들었다 일찍 일어나서 또 일하는거.

아침밥 차려 가족들 내보내고 나면 오전시간은 무조건 혼자 있어야 한다.

점심밥 먹을 시간도 없이 하교하는 아이들 맞이하러 초등학교로 간다. 다행히 환상적으로 스케쥴맞춰 둘째를 큰애 초등학교의 병설유치원 입학에 당첨되었으니 망정이지. 1시 하교 혹은 하원하는 아이들을 맞아 잠시 학교의 놀이터에서 놀게 하고, 2시에 큰애가 영어센타(학교부설의 저렴한...)를 가면 작은애를 델구 조금 더 놀다가 3시에 작은애 유치원으로 특별활동을 보낸다. 정부에선 종일반이 아닌 아이들에겐 유료로 특별활동을 하게 해준다. 음악,미술,체육,과학. 월 7만원정도 들어가는데 사설어린이집의 특기활동비수납상한액과 비슷하니 뭐, 수익자부담 중심의 복지정책의 실례랄까. 3시반에 큰애를이동시킨다. 학교 밖의 청소년수련관에있는 수영장으로. 4시에작은애를 데리고 집으로 와서 방치한다. 1시간쯤, 그 동안 수영장으로 큰애를 데리러간다. 집에오면 5시반. 곧 저녁식사를 준비해야하는데.

7시에 노가다를 하고 돌아오는 남편은 식사준비가 안되어있으면 매우 고통스러워하므로. 식사-설겆이-뒷정리-간식제공-아이들치카하고 책읽어주며 재우기. 10시까지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노동. 청소시간이 좀 줄었다. 남편이 청소기 돌리고 스팀 미는걸을 하면서.

주중 매일은 아니고 월수금이 이러하다. 화목토일은 이보단 훨 여유롭지. 뭐...오십보 백보다. 빨래, 장보기, 기타 공사다망한 일이 있으므로.

여기에다 내가 추가해서 하는 일은 오직 방통대 공부 뿐인데.

이 이상의 추가는 불가능하다. 그나마 오전의 몇 시간을 나는 방통대공부에 쏟지도 않는데.

알바라니.

아침밥 하기 혹은 오후시간의 아이돌보기 혹은 저녁시간의 가사써비스 중 어느 하나라도 빼준다면 모를까.

아침 먹고 출근해서 노가다하고 배고프다 하면서 돌아와 저녁밥 먹고 티비시청 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남편을 동거인으로 갖고 있는한 가사노동에서의 동료는 불가하다.

출근 혹은 등교 및 등원하는 가족들의 리싸이클되는 하루를 준비하고 보조하고 실제 그것이 가동되도록 하는 것이 주부의 일이다, 전적으로.

조금이라도 이 리싸이클의 노동량을 줄이기 위해 나는 밥을 잘 안 먹는다. 나를 위한 식단을 준비하지 않고 나를 위한 지출을,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하지 않는다. 집에서 하는 머리염색을 미루고 미루었더니 큰아이의 반친구들이 할머니라고 ...더이상 미루지 말아야겠다.

대안이 없다. 탈출...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도 쪽팔리다. 내가 강제노동수용소에 있나?

성별분업의 이데올로기가 공고한 이 가족주의적 사회에 살면서 감내하기로 한다. 막말로 그래서 나가서 돈벌이는 안 하고 있지 않은가. 전적으로 주부생활만 하면서.

돈이 좀 부족하긴 하다. 그건 뭐 큰 문제는 아니다. 노인들도 집을 저당잡혀 죽을때까지 생활비를 빚내서 살아가는데...우리집 저당잡혀 매달 100만원씩 빚져도 향후 이삽십년은 버틸것 같다. 대충 계산해도 70에 죽으면서 전재산 탕진하면 딱 맞는구만. 유산상속이 안되는게 문제인가? 그럴줄 알고 오천만원짜리 생명보험 들어놨다. 흐...울 딸랑구들이 엄마 죽고나도 집은 없어도 돈 오천 정도는 손에 남겠지....ㅋㅋ

근데 현재가 문제다.

아침밥을 짓고 상을 차리고 애들 가방챙기고 머리빗겨 학교 델다주고...오후 내내 아이들의 뒤에서 시중을 들고 저녁시간의 연속적인 노동을 하면서 계속 무언가를 기획해야 한다. 찬거리를 뭘로 할지에서부터 아이들의 준비물이나 숙제, 스케쥴 조정하기, 공과금 처리, 오월은 가정의 달이라 부모님선물, 선생님...꽃이라도...기타등등. 오늘도 고민 중이다. 꽃바구니를 엄마들이 모여 하나 샀는데, 전업인 엄마 둘이서 갖다주랜다. 흠...차려입고 가야하는데...수영장에 흘리고 온 수영가방도 가지러 가야하구, 카드값이 연체되었으니 어디선가 돈을 융통해와야하고. 시골에서 보내준 헌옷들을 정리하여 건질 꺼 건지고 보낼꺼 보내야 한다. 아름다운가게에 들고 가는 것도 일이다.

골치 아픔....딸랑구의 사랑하는 햄스터에게 물과 모래를 갈아주어야 하고....으...미치겠다.

이 모든 자잘한 기획과 실행을 혼자 해야 한다. 의논할 사람도, 수다떨 사람도, 손 거들 사람도, 쉬면서 차나 한잔 할 사람도 없다. 완전히 혼자 하는 노동이다.

성격 문제도 있지. 올케나 이웃이나 아이들의 친구엄마와 수다를 떨지 않으니. 이들과 수다 떨면 더 피곤하다, 정신적으로.

오십보 백보다. 주부의 노동은 한 가정을 책임지고 가족구성원들의 사회생활을 리싸이클시키는 단독행위다. 기관사가 한 명 밖에 없는 서울 메트로처럼.

환장하겠네...입에 침이 마른다. 혼자 일하면서 지나가는 말로 너스레 한 번 칠 동료가 없으니.

임금노동자의 노동이 소외되는 것처럼, 남편의 월급으로 생활을 꾸려가는 전업주부의 노동도 그와 다르지 않다. 일하고 왔으니까 하면서 던져주는 월급봉투에 생존을 의지하면서 소외되고, 자신을 뺀 가족구성원들을 위한 노동을 통해 소외되며, 동료 없이 혼자 하는 노동 속에서 또한 소외된다.

둘째가  유치원숙제를 하는데 가족들의 취미생활을 쓰는 난에 설겆이.라고 쓰란다. 흠...그 애를 너무 방치했나. 둘째는 엄마의 뒷모습만 본 것이다....늘 뭔가를 하고 있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을 주부생활의 한 항목으로 분리배치해야 하는데...언제?

오늘 내가 심신의 스트레스가 심한 것은 요며칠 시골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4일 동안을 보내면서 매우...매우 소외감을 느꼈기 때문.

또 하나는 뭐 여성의 에너지가 재순환되는 달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이 아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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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열 아홉의 그녀

나중에 그녀가 대학에서 데모를 하러 다니고, 낮에.

밤에는 세미나를 하러 다닐 때. 학교를 벗어나서 알 수 없는 여러 대학의 여러 남녀들과 어울려 세미나를 하느라 그녀는 주로 밤에 모였다. 룸이 있는 카페들이나 아니면 누군가의 자취방에서. 그리고 지하철이 끊길 때쯤 막차를 탔고 여느 대학생들처럼 남자들은 여자들을 바래다주지 않았다. 물론 커플이 된 여자애들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몰라서 그렇지, 커플이 되어가는 중이었던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을 집까지 바래다주었을 지도.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여자동기는 항상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집이 큰 길가에 있어서 자기는 위험한 골목길이라는 걸 잘 몰랐다고. 하지만 그 여자동기는 그녀의 학창시절 친구들이 많이 그랬던 것처럼 조용한 주택가에 집이 있었다고. 그렇게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여자 혼자 가는 건 위험하다고. 운동을 하는 남녀 대학생들은 서로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사회가 만들어놓은 차별을 간과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는데.

그런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가던 동기는 정말로 집 근처에서 성폭행을 당했었다. 나중에. 한참 나중에 그 사실을 그녀에게 말해 주었는데 그녀는 뭐라 위로해야 할 지. 그냥 담담히, 그런 건 그냥 사고같은 거니까. 너무 상처받지 말라고. 우리들은 모두 그런 현실에 분노하고 너를 사랑한다고. 다행히 친구는 많이 힘들었지만 많이 도와주었던 친구가 있어서 잘 극복할 수 있었다며. 그리고 그 친구와 결혼하게 되었다고 하였었다.

 

그녀는 여자들은 위험해. 하고 다시 중얼거렸다.

" 힘으로는 남자들을 당해낼 수가 없으니까. 공정한 싸움이 안돼. 싸우면서 크는 아이들이라거나, 몸으로 한 판 붙고 나면 더 친해진다거나 그런 건 여자애들에겐 해당이 없지. "

그리고 나서 그녀는 한참 말이 없다. 여자를 향해 진심으로 완력을 사용하는 어떤 남자들의 무지함과 천박함을 생각하는 듯. 비참한 표정, 그늘이 이마에 드리웠다.

그녀는 남자들의 더 강한 완력을 싫어했다. 더 넓은 어깨도. 더 크고 굵은 가슴이나 팔뚝. 나중엔 오동통한 돌쟁이 사내아이의 더 무거운 체중조차. 무거우니까 더 힘들어. 하면서. 골목길을 뛰어노는 남자아이들의 빠른 달리기솜씨나 욕지기와 함께 거칠게 내뱉고 가는 남자아이들의 고함소리에도.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걸 남자다움이라고 말하는 혹은 말하고 싶어하는 아줌마들, 할머니나 할아버지, 빙그레 미소를 걸고 아들을 쳐다보는 퉁퉁한 뱃살의 사내들을 피해 그녀는 시선을 멀리 두고 걸었다. 알고 지내고 싶지 않으니 말 걸지 말라는 듯이.

 

그래서일까,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다 샤프했다. 마른 체형에. 순한 표정,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아무리 화가 나도 상욕을 하지 못 하고 혼자 툴툴 거리는 소심가들. 츱...오래 사귀지는 못 했다. 쪼잔해서들.

 

그녀는 조용히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는 걸 좋아한다. 커피를 마시면 꼭 비스켓을 하나. 피아노연주가 들어있는 음악이 있으면 더 좋다. 튀는 음악, 노랫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가요, 비트가 있어 배경으로 깔기에는 부담스러운 곡이 나오면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귀로 상대방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 해 표정은 점점 멍해져갔고 결국 빨리 헤어지기를 원하며 시간을 확인하곤 했다.

" 다른 음악 없어? "

 하고 그녀가 요청하는 일은 드물었다. 진은 그녀와 사귀며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또 연극을 보며 덕수궁이나 프랑스문화원을 돌아다녔으며 그러지 않는 더 많은 시간을 정독도서관의 잔디밭에서 보냈다. 나중에는 그녀가 다녔던 대학 캠퍼스의 호수 주변, 오래된 문과대의 허름한 외벽 아래 그리고 고전음악감상실에서 홀로 앉아 있는 그녀를 찾아내고는 했다. 그리고 학교 앞의 작은 찻집들을 찾아 전전했다. 주로 조용한 음악을 틀고 있는 곳으로.

그녀가 상대방에게 자신의 요구를 전하기보다는 빨리 헤어져 혼자가 되는 쪽을 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진은 그녀가  떠나고 싶어하지 않을 만한 장소를 찾기에 집중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어린 왕자

이런 제목의 간판을 달고 있는 카페들이 대체로 그녀의 취향에 맞았다. 크고 넓은 창과 함께, 테이블 구석엔 밤시간이 아니라도 곧잘 사용되는 낮은 촛대와 밝은 색깔의 초가 놓여있고.

그녀에게 가장 추천해서는 안되는 데이트코스는 스포츠경기 관람이었으며 두번째로는 액션영화였다. 그녀는 거의...고문을 견디는 표정으로 자리을 지키곤 했다. 그것도 꼭, 정말로 그 동행했던 사람과 헤어져서는 안되는 불가피한 목적성이 있었을 경우에만. 결국 그런 것들이 그녀를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할 수 없는 요인이 되었다. 너무나 어색하게 참고 있는 그녀를 사람들은 편하게 느끼지 못 했으므로. 티비 앞에서 그녀는 시선을 멀리 혹은 빗겨두고는 했고, 드라마 속의 배역들을 변별해 내지 못 했으며 주변사람들의 수다 중에 등장하는 이름이 극 중 인명이 아닌 연예인의 이름인 것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워했다. 결국 티비보기를 포기하고 노래방가기를 꺼려하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 아닌 술자리를 기피하는 그녀는 학창시절 이후에도 편하게 알고 지내는 지인을 얻지 못했다. 거기다...남자의 완력과 여자의 순종, 돈 벌어오는 기계와 같은 남편과 하녀처럼 가사서비스에 몰입하는 부인들을 보면서는 결코 그네들과 말 나누기를 하지 못 했다. 그녀가 누구와 대화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집에서도. 결혼한 시댁의 사람들과도. 그들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남편과 공유하는 자신의 집에서도. 그녀는 항상 혼자 있고 싶어했다. 열 아홉살에도, 그 이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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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열 아홉의 그녀

여성은 불안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에게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하다고 했다던가.

 

그녀를 뒤에서 안는 것은 금지되었다. 이수 때문이 아니라 그 이전에.

진이 그녀에게 다그쳐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녀의 불안증과 비명과도 같았던 그 외침이 자꾸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넋을 놓고 잠들지 못 하는 그 수면장애와 함께.

 

" 왜 그러니? "

그녀의 어깨에 한 팔을 두르면서 초딩 때부터의 동무인 양 물었다. 그녀의 친구, 기억하는 한 집에서 학교 가는 길 중간 어디쯤에 집이 있었다는 5학년 때의 친구는 두 명이었다.

한 명은 골목과 골목을 누벼 한 가운데, 다른 한 명은 큰 길 가까운 아담한 단독주택에. 골목 속의 집도 단독주택이었으나 가내공장을 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엄마, 언니들, 그외에 한둘 더 있는 여공들 사이에서 그녀는 동무와 함께 부엌 위 다락방에서 놀았다고 했다. 열 두어살 먹은 계집아이들이니 소꿉놀이를 한 건 아니고 주로 만화책을 함께 봤었다던가. 그 친구와 무얼 더 했는 지는 기억에 없다고, 저에게는 좋아하는 만화책을 함께 읽고 얘기 나눌 수 있는 것이 좋았었다고, 같은 반에 또 다른 아이가 한 명 같은 만화를 즐겨 보며 다음 편이 언제 나오는지 출판사로 전화를 하기도 하던 여자애가 있었지만 그 애와는 친할 수가 없었다고. 부티나는 차림새와 사람을 깔보는 듯한 말투로 얘기하는 그애와 저는 누가 더 공부를 잘 하나 하는 걸로 비교되긴 했으나 친하지는 못 했다면서. 만화 좋아하는 애들이 공부도 잘 해. 하는 말을 하던 그애보다 마당까지 평상과 지붕을 이어놓고 요꼬기계를 늘어놓은 사이로 만화방에서 빌려온 꾸러미를 가슴에 안고 통과하여 다락방으로 기어올라가 함께 배깔고 만화를 봤던 그 친구는 공부를 못 했는데, 친하기는 쉬웠다고.

아담한 쪽의 단독주택에 살던 친구의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지만 진은 자신과 중학시절 같은 반이었던 그 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그녀를 이해했다. 초등학교의 친구가 중학시절까지, 그래서 사춘기적 감성으로 계속 벗이 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그녀는 편하게 추억하지 못 했다.

 

" 중학교 때 별로 친하지 않은 동급생이 우리 동네에 살았는데. "

그녀는 너도 보아서 알지 않느냐며 자신의 집은 시장통에 있는 상가건물이라고. 시장통을 조금 벗어나면 조용한 주택가가 있는데. 하면서.

거기 줄 지어있는 낮은 단독들 중의 한 집이 그애네 집이라고. 자신이 알게 된 건 장사를 하시는 부모님이 그 집딸이랑 같은 학교라며? 하시더니 같은 반이라며? 하시더라고.  서로의 부모님들이 동네 이웃이지만 주택가의 회사원 혹은 전업주부와 시장통의 장삿꾼 내외와는 별로 왕래가 없었다고. 그 가게에 뭘 사러 혹은 왜 우리 가게에 안 오나. 하는 둥의 혼잣말을 하는 경우 외에는.

진은 이 애가 왜 그 친하지 않았던 중학시절의 동급생 이야기를 하나 싶었지만, 그냥 참고 들었다. 왜 그녀가 뒤에서 불쑥 나타나는 사람 그림자에 그렇게나 놀라는 지, 놀라고 나서 안전을 확인한 후에 그렇게나 슬퍼하는지.

" 그 집 앞에서 어떤 남자가 뒤에서 확 껴안는거야...."

" 그런 일이 있었어? "

진은 가슴을 꾹 누르며 짐짓 태연하게 말을 받아주었다.

" 대문이, 왜 지붕이 있어 화분이나 뭐 채소같은 걸 심기도 하쟎아. 장독대랑 이어서. "

" 응, 그래. "

" 그래서 대문 앞에 구석진 곳으로 서 있으면 잘 안 보여. 거기 사람이 있는 줄 몰랐는데...어두워서...새벽이었거든. "

" 새벽에 왜? "

왜 새벽에 골목길을 돌아다니냐구...진은 머리가 아프다. 이 애가...다 자란 처녀 아이가.

" 새벽에 왜 그 집 앞을 지나갔는데? "

그녀는 아니 뭐. 하면서 주저주저하더니 생긋 웃어보인다. 밤산책이 이어져서. 라는 말이라도 할까 싶었으나.

" 신문배달 하느라. "

" 신문배달? 네가? "

그녀는 이젠 내어놓고 웃으며 어색함을 얼버무리려 한다. 왜? 내가 키가 작으니까? 하고 따질 것 같은 눈으로.

" 여자애들도 많이 해. 고등학생들이나, 뭐 남자애들은 중학생들도 하쟎아. "

" 그래, 그래서? "

진은 그녀가 왜 신문배달을 해야 했는지도 의아했으나 그 새벽에 더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침이 말랐다.

" 아냐, 별 일 없었어. "

" 그래? "

" 응, 내가 놀라서 소리를 빽 질렀더니 그...남학생도 놀랐는지 금방 도망가더라구. "

" 남학생이었어? "

" 응. 고수머리의, 고등학생이나 아님 재수생? 뭐 그런 것 같던데. 그냥..."

그녀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어 말했다.

" 신문배달은 되게 일찍 시작해. 거의 한밤중에 보급소에 가서 신문을 받아다 난 몇 부 안 되어서 다 돌릴 때 쯤에 겨우 새벽빛이 조금 대문들의 색깔을 알아보게 해 주거든. 그 남자애는..."

진은 말대답해 주는 걸 잊었다.

" 내가 모자도 쓰고 점퍼에 바지입고 긴 머리도 잘 안 보였는데, 키가 작아서 여자애라는 걸 눈치챘나 봐. 아마...미리 거기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는지..그냥, 여자애를 한 번 안아보고 싶었던 가 봐. 근데 소리를 지르니까 너무 놀랐나 보더라구."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내가 비명지르면 좀 찢어지는 목소리지. 하면서.

진은 웃음이 안 나온다. 뭐라고 대답 치기도.

" 큰일날 뻔 했네. "

" 응. "

그녀는 바로 그 신문배달을 그만 두었다며. 여자애들은 너무 불안해. 하고 중얼거린다.

 

" 신문배달해서... 돈 벌어서 뭐 할라구? 학생이? "

" 글쎄... 유흥비 마련? 학생이니까? "

하면서 막 웃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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