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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열 아홉의 그녀 3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무언가를 나누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수다, 그것은 전화왔다고 알려주면서 자리를 비켜주거나 적어도 전화기 앞에서 아이들이 부담없이 머무를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녀의 집에 전화는 가게에 하나 있었고 그것이 브랏찌되어 안집의 거실에 하나 있었다. 그리고 전화는 오직 가게에서 먼저 받아 집안의 어른이 아닌, 조막만한 계집애에게 부러 목청 높여 전화 받아라아 하고 외쳐주고 그러고도 통화시간을 기다려 줄 만큼 아이에 대한 배려를 담은 매개는 아니었다, 그녀의 부모에게 있어서. 무언가를 먹어라. 하는 말은 하루에도 몇 번씩 했고 저 애는 입이 짧아서. 새앙쥐처럼 빼빼 곯아서도 제대로 먹는게 없다고 탄식을 했지만 그 외에 무얼 해 주어야 하는 지에 대해 그녀의 부모는 아무 것도 몰랐다, 정말로. 나중에 아이들을 보살피는 그녀를 옆에서 보면서 그녀의 아버지가 우리는 애들 데리고 놀이터 한 번 갈 줄을 몰랐는데. 하면서 비난인지 한탄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린 것처럼.

그녀는 항상 여보세요. 하고 낮고 무감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뭐 해? 하고 물으면 그냥 있어. 하고 밥 먹었어? 하면 응. 하고 바쁘냐 어쩌냐 해도 그냥, 뭐. 하고 짧게 끊어 대답했다. 화제를 잇지 말라는 듯. 용건만 간단히. 하라는 듯. 그 조차도 그녀에겐 여유가 없는 듯 했다. 송화기 너머 전화를 끊으라는 엄마나 아빠의 고함소리가 타 넘었고 수화기를 만지작 거리는 그녀의 불안함이 말끝을 재게 잇는 목소리에서도 느껴졌다. 몇 번인가 전화를 하다가 채 안녕.하지도 못 했는데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를 들으면서 진은 화법을 달리했다. 나야. 하고 말하고 시간 있느냐. 언제 있느냐. 어디로 나올테냐. 거기로 나와라. 몇 시에. 하고 그럼, 이따 봐. 하고 끊었다. 그녀가 숨을 돌리며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는 모습을 상상하니 저도 마음이 놓이는 걸 느끼면서.

그녀는 떡볶이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앞에는 짜장떡볶이가 유행했는데 그녀의 패거리들과 함께 먹노라면 항상 몇 번 들지도 않았는데 젓가락 집을 것이 없다고. 네가 느리니까 그렇지.하고 말 했지만 먹는 걸 보고 있으니 흡사 서른번 씹기 운동을 하는 비만녀와도 같다. 눈치 보는 그녀. 앞사람이 수저를 놓으면 곧 따라 놓는다. 기다려주는 것도 부담스럽다는 듯.

 

" 마저 먹어. "

" 아냐. 다 먹었어. "

" 흠..."

이 애는 매사에 제 욕심을 차리는 법이 없다. 하는건 돌려 말하는 거고 대체로 눈치를 너무 본다. 보통 친구들 사이에서 누가 점잖은 척을 하고 누가 사소한 양보를 하는가. 요리실습을 하면 누구나 도마와 칼을 잡고 싶어하지, 행주를 빨거나 설겆이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작은 키의 아이들을 앞으로 나오라 하여 번호를 정한다 하였더니 1번이 된 아이가 엉엉 울었다던가. 하여 그 자리로 밀려나오면서도 이게 창피해야 하는 일인가 싶었다는 그녀. 그럼 키작은 사람들은 모다 부끄러워하며 기죽어 살아야 하느냐구. 그녀는 세인들의 편견이 잘못된 것이니 그에 휘둘릴 것 없다고.

" 네 말이 맞지만 보통, 그렇게 사람들의 기준을 다 무시하고 살면..."

그녀, 눈을 들고 쳐다 본다. 슬쩍. 금방 시선을 돌리며.

" 외롭지 않아? "

" 잘난 척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녀는 제 말을 다 못 끝내고 진의 외롭지...하는 말 때문인지 허를 찔린 듯 낭패한 표정이 되었다.

" 글쎄... "

그녀는 외로와한다. 그조차 내색을 안 하면서. 세상 만사에 무심한 척을 하며. 네게 내가 무엇을 하였는데. 하고 말하고 싶은 듯. 그나마 꽃이라도 받았으니 상쇄할 수 있겠으나 고백을 하고 1년여가 지난 뒤였으니 의심을 못 버린다. 네가 내게 무엇을 원하는가. 하는 눈빛.

패거리의 친구들 얘기를 하면서 그녀는 너와 친구하는 것에 별 감흥이 없다 하는 듯하다. 일상의 여자애들은 오며가며 대화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다 떡볶이도 먹으러 가고 집에 와서 전화하면서 수다도 떨고 몇 더 끌어모아 나이트도 가고 그러다가 미팅도 한다는 듯. 학창시절의 친구들이란 그런 것이려니. 반이 갈리고 학교가 달라지면 자연스레 멀어지고 혹여 집이라도 가까우면 가끔 만나 근황을 주고 받기도 하면서. 다들 그렇게 친구를 갖고들 있지 않느냐며. 네가 나를 친구하고 싶어하는 건 의외이나 같은 중학교를 나와 우연히 몇 번 마주치다 몇 마디 얘기 나누다 서로의 집도 그닥 멀지 않고 하니 이리 같이 분식점을 올 수 도 있는 게지. 이렇게 친구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얼굴. 글쎄...

진은 조금, 아니 많이 늦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참 지나서도 계속 하게 되었다. 그녀는 마음을 열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의 첫 1년 동안 상처를 많이 받은 듯. 세상은 잿빛이며 인생은 절망스럽구나. 감성을 나누고 사상도 나누고 지와 사랑도 나눈다 생각하였던 짝궁이 미련없이 이과를 선택해 가는 것을 보고, 저 이가 어째 저러한가. 나와 함께 철학과 문학을 논했던 이가. 내가 써 보낸 수많은 편지와 거의 일기에 가까왔던 생각의 나눔이 저 이에겐 그저 사춘기의 방황이었을 뿐인가. 나르찌스처럼 데미안처럼 그리고 짜끄 티보처럼 저는 친우를 사랑한다 생각했는데 어찌하여 저렇게 무감할 수 있는가. 제가 알지 못하는 수학 2를 공부하고 그에 몰입하기에는 너무 건조하게 느껴졌던 물리와 화학을 공부하겠다 하는 짝궁을 이해하지 못 하면서 그녀는 내 슬픔에 동조하는 이가 없다. 내 절망에 함께 답을 구하고자 하지 않는 구나. 아직 세계와 인간에 대한 믿음과 진리를 얻지 못 했는데, 어찌 저렇게 구체적인 현실을 바라보고 미시적인 물리의 법칙을 탐구하겠다 하는가. 너는 이과를 가겠다 하나, 나는 그에 동반할 수 없다. 그것이 오히려 더 슬프나, 네겐 나의 동반이 아무러하지도 않구나...

" 여자애들은 보통 문과를 선택하지. 이과에선 남자애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

흠...말하나 마나다. 그녀는 현실의 구조에 관심이 없다. 진은 그녀가 아예 인식을 못 하는 것은 아니나 거기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중요한 것은 그 학문에 몰입할 만큼 애착이나 적어도 취향이 있는가 아닌가이다. 그녀는 물리를 선택했다. 보통의 문과 여자애들이 선택하는 생물이 아니라. 화학이나 지구과학을 쉽게 암기로 편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시준비에서의 효율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나마 물리가 공부할 만 하다하는 그녀는 특히 운동법칙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아인쉬타인에 대한 책을 읽었을 때는 잠시 원자의 반감기같은 것을 흥미롭게 들여다보았으나 핵문제와 과학자의 양심에 관한 장이 말미에 나오자 사회적인 문제와 과학의 학문성 같은 것을 고민하느라 더이상 즐겁지 않아졌다 했다.  그녀는 몰입할 수 없었다. 사회적 관계성을 떠난 학문에 대해서도, 예술에 대해서도,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에 대해서도.

그녀가 무엇을 욕구했을까. 보통의 여고생들이 그러하듯 주목받고 싶어했고 인정받고 싶어했으며 또 사랑받고 싶어했다. 청소년들의 심리적 특성, 그대로. 하지만 그걸 표현해 내는 방식은 개개인들의 성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직설적으로 혹은 은근하게. 외향적이거나 혹은 내성적으로. 그녀는 후자였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아주 극단적으로 그러하였다. 때때로 반동형성의 양상으로 나타날 만큼 그녀는 자기 억제의 성향이 강했다. 얼마나 강했냐 하면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잊어버릴 만큼. 그녀는 자신이 아무것에도 욕심이 없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녀를 만나러 온 것이 많이 늦었다고 생각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녀는 더이상 누군가를 동경하지 않았다. 사랑한다 느끼지도 않았고 욕심을 가져보려 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한다 해도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혹여 사랑 비슷하게 할 수 있다 해도, 그건 너의 착각이거나 다른 종류의 감성일 것이다. 각각의 개인들은 그 자신의 생이 있으니 자기 앞에 사랑이 필요할 때 사랑하는 것이지 타인을 위하여 사랑하는 것은 아닐찌니. 그녀는 영화나 소설 속의 연인들을 보면서는 음, 그네들 또한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궤가 맞아들었을 때 서로를 연인삼은 것 뿐이다. 하고 통찰했다.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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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열 아홉의 그녀 2

그녀는 열 아홉살이었다. 

입시 스트레스에 치여 지내야 했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의 두번 째 해에.

1학년 때부터 성적을 강조하는 분위기의 교실에서 혼자 딴짓하기만을 계속 하던 그녀는 전혜린을 함께 읽는 짝궁을 만나 한때 행복했노라 하였다. E.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읽으면서 사랑에 대한 열망을 키웠으며 소유냐 존재냐 혹은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고 있는 짝궁을 경외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수업시간 중에나 아니나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감상을 짧게 혹은 길게 휘갈겨 쓴 쪽지를 짝궁에게 보내고 또 받으며 사고를 진전시켰으며 점심시간 내내 서로 아무 말 없이도 운동장을 돌며 산책을 계속 하기도 했다. 교환일기, 그걸 쓰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제가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랑의 대상이 짝궁이 아니어도, 부드러운 센티멘탈리즘에 빠져 글을 쓰다 보면 제가 사랑에 대해 쓰고 있는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고 있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한없이 낭만적인 상념에 빠져들고 있었다. 청회색, 그녀는 자신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은 그런 색조로 물들어있었다고 말했다.

- 고등학생이 되면 다를 줄 알았어.

그녀는 열다섯살을 넘긴 중학시절에 사춘기를 졸업했고 인식은 꽃처럼 지평을 넘고자 했다. 사상, 자유, 학문과 사랑, 그런 것들에 대한 열망은 국어선생님과 작문, 세계사, 그리고 지리 선생님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졌으나 교과의 내용과 진도, 시험문제 따위를 통해서는 충족될 수 없었다.

- 국어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학교에 있지 않았을 지도.

그녀는 특히, 2학년이 되어 짝궁이 이과를 택해 다른 반이 되자 더더욱 외로움을 느끼며 그리 말했다. 선생님을 따라 스카우트활동을 했으나 교실보다 더 밀접하고 가까운 교우관계를 형성해야 할 단실에서 그녀는 더 두드러지게 외돌아졌을 뿐이었다.

- 군중 속에 묻혀있으면 말없이 있어도 티가 안 나는데...

그녀는 동급생들이 떠들어대는 어떤 화제에도 동참할 수가 없었다. 그 어떤 소재에도 그녀는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었기에. 티비를 보지 않았으므로 연예인의 이름을 몰랐고, 엄마가 사다 준 시장의 옷 외에는 입어본 적이 없으므로 브랜드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하다못해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상급생 오빠에 대해서도 함께 손 붙잡고 매점을 오가면서 수다하는 친구가 없으니 아는 척할 만한 이름이 없었다.  말참견을 할 수 없으니 입을 다물고 있을 수 밖에. 댓거리를 안 하는 그녀에게 아이들은 더 말 붙이지 않았고 떠들고 있는 아이들과 나란히 테를 만들고 있기는 점점 힘든 일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등을 보인 아이들의 테두리 밖에 혼자 앉아 있거나 앉아있다가 창 밖을 보거나 얘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는 하나 못내 궁금증을 못 이겨 아까 읽던 책을 다시 펴 들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어떤 아이였느냐 하면,  조용하고 책을 좋아하고 아는게 많은, 한마디로 공부 잘 하고 재수없는 여자애였다. 중학시절부터 고교시절에도 내내.

똑똑한 아이. 라는 레테르는 이미 중학시절에 붙여졌었다. 같은 반이 아니어도 진은 그런 말을 아이들이 아니라 선생님에게서 들었었다. 교무실이나 음악실을 오가면서 선생님들은 아주 유식한 애가 하나 있다고. 수업 중에 나오는 인명이나 지명을 다 알아 먹는 다고. 공부도 잘 하고, 괴테의 소설을 읽고 있던데 아주 문학소녀야. 하면서 문과계열의 선생님들은 수업할 맛이 난다고 하였었다. 덕분에 한때  교실에서는 선생님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하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스파르타요. 아테네요. 하고 대답하는게 유행이었다. 

그녀는 소통이 되는 토론식 수업이 가능했다면 학교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녀는 공부를 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걸 좋아했다. 알고 아는 것을 넓혀가고 넓은 지식의 세계에서 진리를 깊이있게 탐구하고 싶어했다. 세계, 인식, 영원한 것과 삶의 진리, 세계사의 필연과 결론에 대해. 인문계 고등학교란 아마 그런 것들을 알려주고 또 논구하는 곳일 것이다. 그녀는 독일의 짐나지움 혹은 프랑스의 대학과 같은 분위기에서 학문에 몰입하고 싶어했다. 알지 않고서 어른이 되는 것, 사회에 나아가는 것에 대해 그녀는 겁내 했고 경험하기 전에 먼저 인식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한국의 고등학교란 그런 곳이 아니다.

그녀가 성적을 떨어뜨린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고 어쩌면 그걸 통해 묻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수업을 잘 듣지 않았으나 그건 교과서 몇 페이지의 진도를 나가는 데 40여분의 수업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5분이면 읽을 수 있었고 읽은 것을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부연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험범위에 입각하여 공부를 하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무의미하거나 나아가 가식적이고 굴종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성의 없이 시험을 치르거나  답안지를 한 줄로 메꾸었고 한번은 이름만 기재한 빈 답안지를 낸 적도 있었다. 그리고 담임에게 불려갔고 원하는 내용의 피드백이 아닌 질타와 걱정만 한 아름 듣고 돌아와 이후 선생에 대한 기대를 끊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학교를 통해서는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에게 학교는 어떤 필요가 있는가. 대학을 가기 전에 거쳐가는 기관으로만 존재했다. 그런데 그건 이미 한국의 모든 학생들과 그 부모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걸 부러 깨닫거나 또 절망하는 것은 오직 그녀에게만 새삼스러운 일이었는데.

그럼에도 그녀는 절망했고 몹시 우울해했다. 그녀가 마음 둘 곳 없이 방황을 계속 하면서 그렇게 무미건조한 채 조금씩 웃게 된 것은 그저 실소였으나, 그 미소를 통해 아이들과 친해지게는 되었다. 2학년 시절 한 패의 친구들과 떠들고 웃고 떡복이집이나 나이트를 가게 되는 것. 그 속에서 그녀는 아이들과 친한 척 했으나 그건 그저 1학년 때의 짝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겐 무엇이 필요했을까.

마음을 나누며 동문수학할 벗이 필요했다. 혹은 연인이 필요했을 지도.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그때 열 아홉살의 물 오른 처녀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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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열 아홉의 그녀 1

그녀는 열 아홉살이었다.

입시를 칼처럼 목에 걸고 듣느니 네가 몇 점이냐, 보느니 재가 몇 등인가 하는 폴 인 스트레스의 상황이었으나 욕구를 유예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춘향이가 몇 이었고 길동이는 몇 이었으며 또 죽음을 결심한 쥴리엣은 몇 이었나. 고등학교를 이리 규방처럼 옥죄이고 머리로만 공부하라 할 양이었으면 여자들은 좀더 일찌기 취학하여야 했을 것이다. 대학이 길이 아닌 빈궁의 여식들은 상고를 다니며 화장하는 법조차 배운다 하고 음악시간엔 음악을, 미술시간엔 미술을, 그리고 무용을 안 해도 체육복을 터질 듯이 입고 햇살 아래 허벅지를 드러내며 신체활동을 즐긴다는데. 여대생이 되어보지 못 한 박탈감과 소외감을 후일 결혼하고 애 낳고 그 애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가슴 저변에 깔고 살다가 방통대를 기웃거리는 2프로 부족한 현모양처가 될 지 언정, 지금 그네들의 청춘은 자유롭다.

자유를 갈구하는 맘이 그녀를 밤에 나가게 한다.

경제력이 없고 용돈을 받아 늘 주머니가 풍족한 부잣집 딸도 아니었으니 그녀는 밤에 갈 데가 없다. 낮에도 교실에만 있었고. 집에 와서는 제 자그마한 방에 처박히고 싶으나 깔끔하니 치운 책상 위, 빨간 라디오 하나 구석에 놓고 93.1 메가헤르쯔의 에프엠 음악방송을 듣고 싶으나 지 선상의 아리아가 채 끝나기도 전에 고함소리에 떠밀려 집을 나오고 말았다. 아버지는 매사에 성난 고함소리와 욕지기로 제 속의 화를 쏟아내었으나 그걸 쓰레기처럼 뒤집어쓰는 엄마는 속으로 골병이 들고 정신이 피폐해져 갔다. 오늘의 스트레스 지수는 보통에서 약간 상위이긴 하나 폭력이 난무하는 고수위는 아닌 듯 하니, 그녀는 엄마가 매 맞지는 않으리. 허나 저리 정신적 고통과 괴롭힘 당하는 것에서 구해 나올 수 없고 그렇다고 함께 당하고 있을 수도 없으니. 하며 도망치듯 나온 것이다.

- 내가 무어라 했는가. 진즉부터 저런 남편을 버리고 이혼해서 살아도 굶어죽지는 않을테니. 함께 나가자. 하지 않았던가. 그리 하지 않은 것은 엄마이니, 저리 당하고 사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허나, 나는 필히 나갈 것이다.

그녀는 그런 말을 열 서넛 먹은 나이부터 엄마에게 해왔었다. 진지하게, 사정하며, 나중엔 비아냥거리며. 아빠의 손찌검을 피해 올라가 숨은 옥상에서. 쫓아오는 그림자를 피해 타넘은 남의 집 지붕 위에서. 깨어진 유리창 조각들 너머 움추렸던 어느 구석지에서.

울고 울면서 그녀의 눈물은 샘의 바닥을 끌어올리듯 항상 차 넘쳤고 조그마한 슬픔이나 마음의 상처에도 예민하게 연동했으며 그럴 수록 소리 없이 감정을 퇴적시켰다.

 

- 저 애가 낮에도 혼자 산책을 일삼더니.

진은 제과점 안에서 거스름돈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깥 창을 곁눈으로 보면서 행인들은 진열대의 케잌을 보기도 하고 유리에 비치는 제 모습을 확인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바쁘게 홱 지나고는 했다. 하기야 벌써 열 시가 다 되어가니, 귀가길이 아니어도 얼른 볼일을 마치고 돌아가 쉬고 싶어할 만한 때가 아닌가. 집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집이란 그런 곳이니.

쉬고. 쉬면서 먹고. 먹을꺼리를 내 입에 넣는 것보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입에 들어가는 걸 보는 것이 더 기꺼운.

- 저 애가 이 밤에 집에 안 있고 뭘 하러?

진열장 안의 케잌을 눈여겨 보는 듯 하나 먹고 싶어 그런 건 아니라는 듯, 금방 고개를 돌리고 휘익 지나가는 그 애의 발걸음은 그러나 별로 빠르지 않았다. 진은 거스름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은 채로 손을 찌르고 다른 한 손에는 식빵 봉지를 들고 제과점 문을 밀고 나와 섰다. 폭좁은 인도를 따라 죽 늘어진 가게들의 조명발에 늦은 밤거리는 어느 때든 상관없이 밝기만 하였다.  길 아래쪽 횡단보도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 애가 보였다. 방금 지나온 제과점 위쪽의 횡단보도가 더 가까웠을 텐데. 진은 그 쪽으로 건너 저의 동네로 돌아갈 것이었으나 동시에 신호를 받는 짧은 두 개의 횡단보도 사이의 거리를 사람들은 곧잘 사선으로 건너기도 하였기에 잠시 그냥 서 있었다.

저 애에게 아는 척을 하기에는 좀. 시간도 장소도 아닌 것 같았으나 무엇보다 그 표정이 아니었다.

- 대체 저 침울함의 정체는 뭐냐...

진은 고고학자의 수수께끼를 감춘 추리소설을 읽을 때처럼 시선을 떼지 않고 주의를 집중했다.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 같았다. 저 애의 실루엣, 저 표정에서 흐르는 슬픔? 냉소? 허탈감? 산산히 부는 바람 속에서 그냥 스러져 희미해지고 있는 듯한 느낌.

- 왜 저 애는 항상 혼자 걷고 있는 걸까.

진이 그 애를 눈에 담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의 넓은 교정을 가로 돌며 고등학교의 교사까지 이어지는 야트막한 언덕길을 키작은 꽃나무들 속으로 몸을 숨길 듯 걸어가는 모습에서부터였을까. 안 보이는 한 손에 책을 들고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무심히 지나쳐 붉은 벽돌담의 여고 쪽으로 걷는 그 애는 저는 그 쪽에 볼일이 있어 간다는 듯 하였으나 짧은 점심시간, 걸음은 빠르지 않았었다. 해가 중천에 있던 어느 이른 하교길에서도 그 애는 홀로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 진이 방금 헤어져온 아이들과 수다하던 가수의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서 있던 횡단보도를 멀리 두고 차도를 만드느라 쌓아올려진 뚝방길 위쪽으로 발꿈치를 숨기며 멀어지곤 했다. 가방을 멘 어깨가 무겁다는 듯 땅바닥에 붙은 민들레의 그늘 아래로 묻힐 듯 낮고 느리게 사라지는 그애의 혼자 가는 뒷모습이 눈에 남기도 하였다.

사실 남았을 뿐, 기억의 저장창고에서 어느 구석으로 밀려갔는 지 다시 생각하지도 깊이 숙고하지도 않았었다. 중학교를 미련없이 졸업하고 다가오는 여고생활이 기대 반, 짜증 반으로 귀찮게만 느껴지던 겨울, 2월의 그날에도 쵸컬릿만 빼어 식탁 위에 던져 놓은 채 진은 메모하는 걸 잊은 스냅사진들이 아랫 서랍 어딘가에 있다는 걸 가끔 떠올렸을 뿐, 그애의 혼자 걷던 실루엣도 선물상자 속의 편지도 차가웠던 손가락의 감촉도 하나로 꿰어 인식하지 못 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가슴에 뭐가 걸려있는 듯 답답증을 느끼기는 하였는데, 그게 뭔지 오래 생각할 여유가 없기도 했으니, 그건 엄마가 혼자 있는 뒷모습을 발견하는게 잦아지면서 자꾸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식사준비에만 소흘해 진 것이 아니라 엄마는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 것 같았다. 진은 식탁 위에 놓여진 잼이 조금씩 주는 것을 보며 식빵을 사 오겠다고 밤 늦었는데 뭐하러. 하는 엄마의 끊어지는 목소리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길 건너 제과점까지 부러 길게 걸어 나왔다.  행인도 많이 줄어든 골목길을 지나 혼자 걸으며 생각이 많아지고 있던 열 여섯의 여고 1년생. 진이 가진 레테르였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은.

왜 사람들은 혼자 걸으며 혹은 혼자 오도카니 식탁 앞에 앉아 혼자 만의 생각에 골몰하게 되는 걸까. 진은 저 자신이 그러고 있는 적이 많아지는 걸 미처 인식하지 못 한 채, 엄마를 생각하다가 또 그애를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저는 항상 친구들과 함께 있었는데. 둘러싸이듯 교실에서 거리에서 집에서도 늘 전화를 받으며 친구들 속에 있느라 그 무리들 너머에 또 다른 아이들이 있으나 역시 그네들도 누군가과 함께 웃거나 떠들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사춘기라 그런가 보다. 하고 진은 선생님들이 소녀시대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그 애를 휙 밀어놓았다. 동생도 사춘기고 여고의 동급생들도. 색기를 더해가는 정원도. 사춘기의 소녀들이려니. 하고 넘어가려 했다.

- 근데 저 애는 왜 맨날 혼자 저러구 다니냐구. 세상 고민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어깨 무거운 듯, 엄마의 등 돌린 모습에서 처음엔 화가 나고 속이 상하다가 나중엔 그 어깨가 미동도 없이 결연히 굳어지는 것을 보며 함께 마음이 다져지고 있던 진이었다. 엄마는 이혼을 할 것이고 또 취직을 할 것이었다. 그리고 어쪄면 처음으로 자기만의 길을 가게 될 것이었다. 결혼하고 거의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마흔의 나이에.

그 불혹의 나이에 세상을 처음 맞닥뜨리는 소녀처럼 결의를 다지고 있는 엄마는 안쓰럽기도 하고 또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진은 가족이 있던 없던, 그 가족이 남편이던 자식이던 자신의 생은 결국 혼자 만들어가는 것인가보다. 싶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왜 나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 하는 걸까. 하고 진은 오래 고뇌하게 되었다.

- 저 애가 저렇게 혼자 가다가 어느 순간 무너지지 않을까.

진은 그애가 주고 간 선물 상자를 서랍 어디에 두었더라. 하는 생각을 하며 횡단보도와 횡단보도 사이의 거리를 사선으로 건너 집으로 돌아왔다. 그애가 어둠 속을 가르며 네거리의 어느 쪽인가로 사라지는 것을 먼 눈으로 보고 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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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아이들 2

아이들, 그녀에겐 너무 힘들다.

마음 약한 그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어 제 몸 힘든 걸 무릅쓰나니.

" 안 가져왔다고 미주가 뭐라 할텐데. "

큰 아이, 제가 잊고 안 가져왔으니 어찌 하자 말은 못 하고 얼굴이 굳었다. 8시 40분인데.

그녀, 머리를 굴린다.

집에 돌아가는 건 비효율적이고. 9시부터 수업 시작이지만 학교는 20분 일찍 오도록 하고 있다. 10분 독서운동을 하고 있으니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는 아이들 가운데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 아침 시간에 먼저 얘기 나누고 있는 사이에 들어가기는 어색할 수 있으니 늦지 않게 오는게 좋죠.

담임은 학부모 면담시간에 큰 아이가 친구들을 잘 사귈지를 걱정하는 그녀에게 말했었다. 매일 40분 턱걸이하는 딸아이에게 이렇게 맨날 꼴찌로 들어가도 괜찮아? 하고 물었더니 그럴 수도 있지~하고 웃는 딸을 보니 뭐 그럭저럭.

" 문방구 가서 사 가지고 가자. "

하고 말한 것은 아이가 아니라 그녀였다. 수업 준비물도 아니고, 쉬는 시간에만 꺼내놓을 수 있는 장난감을 엄마가, 그것도 어제 사 주었는 데 안 챙겨 온 것을 그녀는 다시 사 가지고 가라 한다. 친구들과 약속을 했으니. 친구들 앞에서 그걸 꺼내 보이며 자신에게 스티커를 준 민서나 노승현이나 강민수에게 나눠주고 싶어하는 딸의 마음을 알기에. 게다가 미주는 딸아이에게서 받은 장난감을 노승현에게 뺏겼었다고 하지 않은가. 그노므 자식, 저도 딸아이에게서 같은 걸 받아놓고서. 혼자 많이 가지고 싶어한다. 근데 왜 미주는 딸아이에게 그러니까 또 다시 달라고 하는 거람...

그녀는 그런 식이다.

아이가 십분의 쉬는 시간에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스티커나 유행하고 있는 장난감을 서로 나누며 웃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렇게 아이들과 친교하는데 무리가 없기를 소망한다.

그녀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그런 매개들이 없어서 무리 지은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던 것을. 테두리 밖에 혼자 있기 뻘쭘하여 책상을 떠나지 않고 책을 읽었던 초등학교 시절을. 그렇게 섞여들지 못 한 채 이후의 학창시절에 늘 혼자 있었던 것을.

딸아이가 원하는 장난감은 2개 들이 500원 짜리이고 며칠 전부터 아이는 제 주머니 안의 500원짜리 동전을 소중히 간직했었다. 엄마가 1000원 짜리를 들어보였지만 그건 필요없다 하는 아이.

" 1000원짜리로 그 장난감 두 개 살 수 있어. "

하고 말하는 엄마를 보면서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

그녀는 아이에게 그 장난감을 사 주고 싶었고, 아침나절 아이들에게 평소보다 많은 것을 채근하느라 전날 저녁 아이가 제 장난감 상자 위에 올려 두었던 그 장난감을 가지고 오는 것을 잊은 것은 결국 제 탓이라 생각하였다. 하교 후에 아이들을 삼촌 집에 맡길지 할아버지 집에 맡길지를 고민하며 아이들에게 삼촌집에 가져갈 장난감들을 미리 다른 가방에 챙겨놓으라고 수선을 떨었던 것이 미안하다. 동생과 함께 장난감 가방을 따로 챙기느라 바빴던 큰 아이는 저의 학교가방도 직접 챙기라는 엄마 말씀을 따르느라 더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 집에 어디다 뒀는데? "

" 으응, 내 하트장 있쟎아. 그 위에. "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하트장 위에 손수건을 깔고 가지런히 모두어져 있다. 작은 병 안의 색색가지 구슬들.

그녀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다시 사 준 것을 기꺼워한다. 교실에는 8시 50분쯤에 입실했겠지.

교문을 나오는데 본 듯한 남자아이가 같은 장난감을 꺼내 보이며 지나간다.

" 어...너, 3반이지? "

" 네. "

" 너, 이름이 뭐야? "

" 박 현욱이요. "

" 너두 그 장난감 샀어? "

" 네. 아줌마가 사는 것도 봤어요. "

" 하하하...늦었어. 빨리 뛰어가. "

남자아이는 거의 9시 다 되어 입실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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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아이들 1

아이들.

그녀의 하는 양을 보더니 술 먹고 자고 가던 친구 왈

" 아주 시녀구만, 시녀. 왜 이러구 살아? "

혜정은 내가 뭘. 하면서도 좀 쑥스러운 듯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었다.

" 애들이 왜 이러냐구, 이건 다 네가 잘 못 키운거야. "

그런가? 그런가 보다. 하는 그녀.

- 내가 다. 는 아니고 반만. 아니야?  아빠에게도 반분의 책임이 있는 거지.

하지만 그녀는 결혼 십년차를 바라보면서 비로소 여자의 본분을 깨닫고 있었다.

-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으니 살림과 육아를 내가 다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애. 기왕 하는 것이니 잘 해야 하고.

뭐라 더 따지고 싶은 마음이 울컥 울컥 들었지만 논구할 시간도, 기력도, 의미도 없다는 생각이 또한 떠올랐다.

아침이면 등교하는 딸아이를 위해 밥상을 차려내었고 하는 김에 출근하는 남편의 수저도 같이 올렸으나 그러면서 청양고추  썰어넣고  따로 간 맞춘 찌개 하나를 더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결국 이른 아침의 노동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남편은 채 불리지 못 한 현미밥을 두번 째로 먹으면서 자기에게는 흰밥을 달라 한다. 감히.

딸 아이 밥상에 마지못한 겸상으로 얻어먹는 것을 한 달 이상 하다 보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 하고 웃는 그녀.

" 발아현미라서 많이 안 불려도 되는 줄 알았더니, 흰쌀 푸기 전에 미리 물에 담가놓아야 겠더라구. "

" 바라현미라구? "

그녀, 너는 무얼 먹고 사는가고 관심을 보일 듯한 눈길로 쳐다보며 웃는다.

" 발. 아. 싹을 티운 현미라구. 비타민 비이투가 많다고 현미나 오분도미 같은 거 많이 먹쟎아. 식감이 거칠어서 싹을 조금 틔우면 부드럽고 소화도 잘 된다고 해서, 발아시켜서 팔아. 직접 집에서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던데. "

그녀는 냉장보관이긴 한데, 압축포장도 아닌 것이 유기농제품하고 좀 틀리네. 하면서 마트세일에서 샀더니 음...하면서 불만스럽다 한다. 역시 싼것은...하면서.

반찬 하나 하기도 힘들어하던 그녀가 콩나물이며 시금치며 나중에는 부추까지 정갈이 다듬어내며 버리는 시간을 별로 아까워하지 않는다. 시간 반을 들여 겨우 한 접시의 나물무침을 만들어 내놓고는 큰 아이가 잘 먹어서. 하면서 또 미소를 지어 보인다.

"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엄마 최고~ 한다니까. 어디서 그런 제스츄어를 배워와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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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너를 두고 4

산을 보고 온 날,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녀와 그녀의 오랜 친우가 다투었다면 무엇을 가지고 그랬을까.

그다지 추측하기 어렵지는 않으나 상황이야 어찌됐든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듯.

 

" 내가 왜 ! "

그녀는 모질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녀가 이런 목소리도 낼 줄 안다는 것을 쟝은 처음 알았다. 정말로.

바닥 깊이 감정이 깔려 있는. 불만? 비난? 원망?

그런 느낌도 없지 않았으나 그걸 풀어내기보다 이미 덮었다는 감이 확연한, 이미 거절과 거부로 의사화된... 결론?

" 한번 하자고. "

쟝은 되풀이해서 말했다. 다시 한번 확인사살이 필요하다는 듯, 천천히 또박또박.

" 싫어. "

귀로 듣기 전에 입모양만으로도 벌써 다 들은 양 기다렸다는 듯, 바로 치고 들어오는 대답.

" ... ... "

그녀와 싸워야 할까? 쟝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녀는 섭섭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러는 게지. 알지만.

" 오랜 만에 만나서 왜 우리가. "

" 왜 이런 얘기 밖에 할 말이 없어? "

뭔 소리냐...아침부터 점심 지나 오후 세시가 넘어가는 지금까지 계속...

" 난 둘이서 조용히 얘기하고 싶다구. 따로...낮에 말고, 밤에 술 마시면서. "

그래...밤에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넌 나올 수 있다 했는데, 내가 그럴 수 없었지. 매일 매일을 내버려둔 아이들을 또 밤에까지 방치할 수 가 없어서. 쟝은 변명을 했다, 속으로. 충분히 설득력 있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그녀의 표정에는 판정패를 인정한다는 듯 비애가 서려있다.

" 나도 그러고 싶지만. "

" 네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아. 이해하고 또 인정해. "

쟝은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여기서 한마디 더 하면, 정말 끝장이다. 쟝은 재빨리 판단했다.

그녀가 마주 바라보고 있지 않으므로 쟝은 태연을 가장하고 몸을 돌렸다. 잠시 텀을 두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 어디 두었지. 쇼핑백 안에 담아 두었는데. "

굳이 집까지 데리고 들어온 표면상의  이유였던 아이들의 작아진 신발과 옷가지, 놀잇감들을 챙기는,  그녀가 혼자 따라 들어온 본래의 이유였던 둘째에게 물려줄 아이용품들을 가지고 가는 일쪽으로 쟝은 주의를 전환했다.

" 여기 있다. 들고 갈 수 있겠어? "

" 무거워? "

" 무겁지는 않지만 좀 부피가. "

" 괜찮네, 뭐. "

혜정은 별로 크지도 않은 쇼핑백을 가지고 왜 그러나. 하고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쟝의 애써 태연한 척 하는 얼굴과 마주치자 미끄러지듯 시선을 피했다.

안면근육이 굳어져있다는 것이 쟝, 자신에게도 느껴졌다.

" 그럼 갈께. 오늘 즐거웠어. "

" 그래. 잘 가. "

그녀는 큰 길을 향해 걸어가며 반쯤 돌아보며 또 인사했다.

" 다음에도 이런 스케쥴로. 둘레길 다음 코스, 응? "

" 응, 그래. "

안녕. 하며 손을 들어보이는 그녀. 마주 손을 들고 인사할 수 밖에 없었다. 쟝은 이게 뭐람. 하고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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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너에게 3

산은 너울지고 길은 이어진다, 구비구비.

아직 덜 여운 꽃망울이 소슬한 바람 속에서도 고개 내어민다.

흐뭇한 미소를 스리슬쩍 접어두고 혜정은 저만치 앞서가는 일행과의 거리를 가늠해본다.

음, 한 스무 발짝 정도? 땡기면 금세 어깨를 부딪끼겠으나 걸음을 재게 놓아 이 흥을 깨고 싶지 않다.  

- 네게 말 붙이고 답을 들으려니 자연 목청이 커지는 구나.

혜정은 몇 마디를 소리 높여 말하여 보고 가는 귀가 먹었는 지 작은 소리는 잘 듣지 못 하는 귀로 대답을 알아먹지 못 하는 몇 번의 텀을 놓치고 나서는 더 말 나누기를 포기하였다.

- 제가 둘레길을 걷자 하여 이리 나섰건만...

혜정은 서운함이 가슴 안쪽으로 슬며시 자리잡고 있었으나 채 자각도 하기 전에 포기하고 위안하였다.

- 네가 곁에 없어도 이 산이 내게 말을 거는 구나.

들과 차고 마른 흙이 발바닥 아래에서 반갑다 하고 있으니.

하늘과 처연히 낮게 내려앉은 구름들이 점점 잿빛을 띠어가니.

- 내 마음을 닮았구나. 아니, 내 마음을 담았구나.

혜정은 초봄의 물색으로는 너무나 채도가 낮은 암벽들의 솟을문을 바라보며  북한산 자락을 둘레둘레 따라 걸었다.

- 저 이가 내 걸음 늦은 것을 알던가 모르던가 아예 생각조차 놓았는가.

원망의 념이 꾸물거리나 동하지는 않는다. 감정을 만드는 것은 피곤한 일이려니.

미리 걱정했던 것보다 코스는 짧았고 한 구간을 다 가지 않고 중간치기로 내려오자 하는 대로 따라보니 익숙한 풍경이다. 아이들이 텃밭 농사를 했던 곳이 아닌가.

" 여기서 분양을 받아 1년 농사를 지어 보게. "

익숙한 표정과 이미 어깨 디밀어 고랑이라도 패어볼 품새인 쟝이 고개를 돌리고 바라본다.

금방 다시 고개 돌리고 저만치 밭 두덕과 두덕 사이에 앉혀진 작은 오막집을 살피는 쟝이 중얼거린다.

" 작년에 비해 밭을 넓혔네. 사람들이 많이 찾으니. 값은 안 올렸나 이거..."

팻말 꽂힌 웃자락에서 한길 가의 공터까지 텃밭의 경계를 물려놓은 것을 보면서 빈 자리가 별로 없다. 하는 쟝.

서둘러 오막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문간에 손님을 세워 둔 채 장부를 뒤적이는 여주인과 몇 마디를 나누고는 돌아나온다. 한 손에 팻말 하나와 매직을 들고.

" 자리 좀 찾아 봐. 이 쪽으로 들어 와서. "

앞장 서서 텃밭의 큰 울타리를 돌아 문으로 터 놓은 곳으로 찾아들어가는 쟝의 뒤를 시원스럽게는 아니나 짜증내지도 않고 곧장 따라들어갔다, 혜정은.

- 음...내겐 힘든 일인데.

혜정은 텃밭 농사가 아니라 이 비탈지고 울퉁불퉁한 밭둑길을 걷는 것에 대해 그리 생각하며 그래도 테 안내고 어정어정 따라들어갔다. 길고 좁다란 밭두덕을 지나 굳이 언덕배기 아래까지 쑤욱 들어가는 쟝의 뒷모습을 의아하게 쳐다보며.

- 나는 문외한이나 저이는 베테랑이니 무슨 이유가...

" 여기 어때? "

쟝이 가리키는 곳은 언덕배기 바로 앞의 비탈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텃밭을 만든 이 곳의 지형 자체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기는 하였으나...

" 이 앞에 평상도 넓게 있으니 쉬기도 좋지 않아? "

그러고 보니 텃밭이 끝나는 언덕배기 밑으로 채 한 평의 경계를 지우지 못 한 세모꼴의 땅이 남아있었고 거기에 외부수도 하나와 함께 평상 두개가 나란히 앉혀져 있었다.

" 어, 그래. 그러네. "

혜정은 비탈진 곳이라도 햇볕이 잘 들어서 안쪽까지 들어왔냐고 묻다가 말고 금방 희색을 보였다. 보아하니 새로 텃밭을 넓히느라 주인장이 경계만 지웠을 뿐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비죽비죽 내밀어진 밭뙈기들에 당장 가래질부터 해야할 판이나, 혜정은 손에 흙 묻힐 생각은 전혀 해 보지도 않은 채, 평상에 앉아 언덕의 그늘이 있는 동안 시원한 참외를 깍아먹을 생각을 먼저 떠올리며 반색을 하였다.

" 아니, 햇볕은 뭐 저 아래 쪽도 충분히 들어오는데. 이 밭둑길 걸어들어오기도  만만챦네. 저 한길 가까운 쪽으로 해야 할까? "

쟝의 농사인데, 제가 이리 두던 저리 두던 내가 뭔 상관이냐. 하는 맘이 들었으나 친구된 도리로 함께 고민을 해 주었다, 혜정은.

" 아, 그래? 글쎄, 일하다가 평상에 앉아 쉬기도 하고 그럼 좋을 것 같은데. "

" 음, 그렇긴 한데, 쉬는 거야 뭐 이쪽에서 일하다가 저쪽으로 모이자 해서 가 쉬면 되는 거고. 그 정도  쉬어가며 할 것도 없는데, 길에서 쉬이 들어와 얼른 풀 좀 뽑고 하다가 금방 내려가곤 할 것 같아서. "

쟝은 다시 길을 돌아 내려가 아랫쪽 밭을 살피더니 팻말을 꽂아 넣고 아이들 이름을 적어 둔다.

" 주인한테 정했다고 해야지. 또 다른 사람들이 자꾸 팻말 꽂으려 든다구 얼른 찍어두라 하더라구. "

결국 농사지을 땅을 결정하면서는 혜정에게 의견은 구하지도, 다 듣지도 않고 쟝은 또 앞장 서서 달려 나갔다.

- 그래, 저의 아이들과 함께 지을 텃밭 농사이니. 내가 무슨 상관이겠어.

혜정에게도 한 평 임차하여 애들 데리고 와서 텃밭 가꾸기를 하라고 재차 권하는 쟝을 바라보면서 혜정은 글쎄. 하면서 자꾸 말끝을 흐렸다.

" 자신 없어. 집에서 화초 하나도 못 가꾸는데, 언제 여기까지 애들 끌고 와서 농사를 짓겠어. 내가..."

" 내가 왔을 때 같이 물도 주고 다 할께. 이런 게 있어야 자꾸 오게 된다니까. "

쟝은 얼마 전부터 자꾸 말하고 있다.

- 이 동네로 다시 돌아 와. 지척에 있어야 오가며 들여다 볼게 아니야. 너 하나 보러 매일 택시 타고 오락가락 할 수도, 할 시간도 없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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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너를 위하여 2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녀가 말한다.

- 네가 하지 못 한다는 것을 알아.

옆얼굴을 보인 채, 괜찮아. 하고 말하는 듯 했지만 그러진 않았다.

- 쟝, 네겐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지. 싱글맘이고 연계가 많은 친족들이 주변에 있고 네가 할 수 만 있다면 돌봐드리고 싶은 홀어머니들도 있지. 네가 생계지책이자 의미를 갖고 있는 낮의 직업도 있는데, 주변을 챙기고 아이들을 건사하면서 그 틈바구니에서 애착할 만한 여가를 내기는 어렵고 또 가능하지도 않지.

 

" 오히려 내가 그애를 챙겨주어야 해. "

그녀가 그렇게 지칭하는 것을 보자, 이제 거의 다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진의 머리를 스쳐갔다.

" 근 열흘을 아이들을 챙길 시간이 없어 '방치'하고 있다고 말하기에 내가 봐줄까? 했지만... "

그녀는 자신이 그럴 필요가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고 한 번 말해봤다고. 역시나 지척에 사는 친지들이 있으니. 하는 대답을 들었다고. 언제부터였을까. 그의 가족들을 질투의 감정으로 표상하게 된 것은.

" 같은 동네에 살면서 자주 왕래하고 싶었지만 역시 같은 동네에 사는 친족들이 있어서. "

한때는 같은 건물의 아래위층으로 살면 누구보다 더 자주 내왕하며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 나아가 한 집에서 살고 싶어하기까지 했었지. 혜정, 너는.

진은 그녀가 마저 하지 않은 말을 혼자 들은 듯이 생각을 이어갔다.

- 네가 그런 순진한 꿈을 꿀 때에 쟝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 그애는 자신에게 손 내미는 사람들의 손을 일일이 다 잡아주느라고, 특별히 나한테만 오래 머무를 수가 없어. 왜 그러겠어. 내가 그에게 무어라고. "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그에게 무엇을 해 주었는지, 그가 자신을 만나 좋았던 것이 무엇이었을 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 오래는 아니었지만.

" 게다가 그애는 사람에게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야. 그 자신도 말했지만. 타인에게 자기를 투영하거나 혹은 의존하지 않으니까. 상대방을 인정하고 적절한 관계를 맺고 가능한 선린우호적으로 유지, 발전시켜 나가지. "

" 적절하다는 표현은 모호한데? "

진은 마치 상담자라도 되는 양, 내담자에게 생각을 명료화시켜보라고 주문했다.

" 예를들면, 현성은 짤렸어. "

" 뭐라고? "

" 현성이 지지부진하게 하소연만 계속하면서 제 이기심을 숨기는 것을 눈치챘을꺼야. 그애는 현성에게 자신으로서는 해 줄 말이 없다고 말했대. 그래서 현성은 더 이상 그애에게 상담하는 걸 포기했고. "

혜정은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꾸밈없이. 솔직하게.

" 현성은 어째서 그 애가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고 객관적인 조언을 잘 해 주는가고 내게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그건 그애의 탓이 아니라 현성이 잘못된 자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뭐...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거지. 좀 비겁하기도 하고, 부르조아적 이데올로기에...속물적이라서. "

그녀는 하하. 하고 웃는다.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경멸한다는 표현을 할 때에는 늘 그렇듯이. 악의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리기 위해.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다.

" 적어도, 물론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애에게 있어 현성보다 내가 더 호감가는 사람이라는 것이지. 뭐..."

금방 다시 풀이 죽는 그녀.

" 주변의 여러 사람들 중에서 특별히 더 그런 건 아니지만. "

진은 그녀를 위로하듯 말했다.

" 특별해. 특별히 더 자주 연락하고 다른 친구들을 거의 못 보고 있어도 너만을 달을 넘기지 않고 만나려고 애쓰쟎아. "

위로가 되진 않았을 것 같다.

" 달을 넘기지 않고. "

그래...하고 그녀는 지난 몇 개월 간의 줄다리기를 끝내기 위해 자신이 한 일은 그저 줄을 놓아 버린 것 뿐이었으며, 그 결과 달에 한 번 정도는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료히 했다.

" 나는 그애의 친족들보다 더 가깝지 않아. 물적 거리로나, 감정적 유대로나, 때론 관념적 의식으로도. "

그녀는 차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더 구부린다는 듯이 덧붙였다.

" 그애는 맑시스트가 아니야. 어쩌면..."

- 천막에서의 나는 그애가 투쟁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틈틈이 가족들과 주변을 챙기기 위해 외출하는 것을, 정세를 분석하고 판단할 수 없어 고뇌하는 내 앞에서 다른 이야기, 어머니의 생신이라던가 누구가 어때서 무슨 일이 있어서...뭐라고 말하고 있는 그애의 얼굴을 보면서 그래서, 그래서 넌 안되겠다는 거구나. 넌 할 말이 없다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애에게 그래, 그렇구나. 하고 대답은 해 주었지만 그건 다 너의 사생활이다. 왜 너는 이 투쟁의 와중에서 동지인 내게 그런 얘기를 하는 거니. 하는 속말을 했었다.

" 어쩌면 처음 그애에게 호감을 느꼈던 투쟁의 시기에서부터 나는 그애의 가족들을 질투했었는 지 모르지만. 그 때부터 항상 그애가 맑시스트가 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작업을 했지만 그애는 그렇게 되지 않았어. 마치, 언어를 배우는 아이들의 시기가 있는 것처럼, 이십대가 지난 사람들에겐 의식화가 안되는 것 같아. "

물론 시대의 영향도 있지. 하고 그녀는 덧붙였다.  

그리고 뭐 이 나이가 되어선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겠냐는 표정으로 그녀는 한숨을 쉬며 단언했다.

" 그애는 나를 사랑하지도 않아. "

그애가 곁을 주지 않고 자주 만나 함께 하지 않고 일상의 동행이 되지 못 하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니다. 진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있으랴. 진에게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도.

" 그애가 애착하는 성격이 아니므로 내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말은 할 필요 없어.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나는 사랑을 느끼지 못 하고, 받지 못 하기 때문에 나 또한 주지 않겠다 해서 뭐가 잘못이야. 그애에게나, 남편에게나. "

사랑받는다는 느낌없이 상대를 계속 생각한다는 것은 고통이다. 그건 그저 생각의 테 안에 있을 뿐, 교환을 통해 실재하는 사랑이 될 수 없으므로.

- 나는 슬프고 그리하여 불행하다. 하는 생각을 갖고는 일상이 너무 힘들다. 하는 그녀.

" 괜찮아. 그애는 바쁘고, 바쁜 와중에 내게 전화를 하고 언제쯤 만나자 하고 기약을 해 주니. 내가 그만큼의 의미로 그애에게 있으니. 남편이 그렇듯, 그애가 내 일상의 동행이 되어 늘 재미진 말만 곁에서 해 주겠다 하지 않는다 해서 버려버릴 순 없쟎아. "

- 그정도의 거리와 관계를 두고 그네들과 소통하겠다. 하는 그녀.

" 너를 사랑한다고 할꺼야. 그...는. 말로나...행동으로나. "

그녀는 한 번 치어다 보았지만, 곧 고개를 돌린다. 무심하고도 냉정한 낯빛으로.

" 나는 사랑하지 않아. 그애도, 남편도. "

- 내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시간 나면 하고 마는. 여유가 없으면 그냥 넘어가는. 나를 내처두고 내게 보답받기를 바랬더냐. 내가 서운타. 하고 몇 수 십번을  호소했건만 응분의 행위를 보여주지 않았는데, 내가 그걸 덮고 여전히 연인으로, 아내로 있을 줄 알았더냐. 네가 그리 자신만만하더냐. 내가 그리 얕보이더냐...

 

" 내가 다시 그애와 자는 일은 없을꺼야. "

남편에게 그랬듯, 그녀는 정서가 없으므로 몸을 함께 하지 않으리라 하였다.

쟝은 이런 그녀의 변화를 알까. 알아챘을까?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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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너와함께 1

맑게 웃고 있는 혜정을 보며 쟝은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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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내게 돌아보기가 가능할까?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쓰여진 플랭카드가 다시 생각하니 참 수세적이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건 농성하던 천막이 강제철거당하고 그 와중에서 투쟁주체들이 전부 구속이 되면서 소강되었던, 아니 그리 말하기엔 연투위의 동지들에게 너무 미안한 노릇이다. 왜 상관없는 사람들이 와서 출투를 하냐고 소리치는 구사대들에 맞서 매일의 선전전을 지켜주었던 그 연대의 정신으로 두 달을 버텨준 사람들에게.

그런데 소강되었던 투쟁을 구치소에서 나와 계속할 때에 내걸었던 그 슬로건은 방향이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주체들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일뿐.

그렇게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와 주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외화하는 이상 동력을 부여하거나 전선을 일보전진시킬 수 없었다는 것은, 투쟁의 원주체였던 세력 중 다수가 정리를 결의하고 소수파였던 정말 소수가 우리는 정리할 수 없다고 회의장소였던 대표의 단식투쟁천막을 나와 처음 낸 유인물의 헤드라인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었다.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건....아주 추상적으로, 계급해방을 완성하는 혁명의 시대에서도 그냥 쓰여질 수 있는 자기 규정이다.

반대로 아주 미시적으로, 운동을 완성하지 못하는 개인의 인생에서도 그대로 의미부여되는 자기 규정이다.

끝나진 않았지만, 계속 하고 있지도 않다.

삶을 역사 속에서 위치시킬 수 있을 때, 사는 이유를 그냥은 아니라고 그래서 돈, 권력, 명예로 대표되는 속물적 가치관에  자신을 매몰시키지 않고, 살아가는 것의 명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십대, 그렇지 않았으면 시작할 수 없었던 염세주의가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그런데 운동을 계속하고 있지 않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존경할 만한 사람을 갖고 있지 않음을 슬퍼하면서 십대를 졸업했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이 가치있음을, 그래서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함께 찾아야 한다고 그렇게

이십대의 운동을 시작했다. 인간의 역사가 그렇게 투쟁과 절멸을 반복하는 순환주의도, 모순이 무르익으면 어쨌든 올 수 밖에 없다며 그날을 기다리는 대기주의로 인생을 끼워넣어도 되는 그런 남의 것은 아니기에.

진보를 향해 나선형의 발전을 이어나가는 수레바퀴 아래서 한 개의 미는 힘으로 자신을 위치지워야 한다고, 그러니 힘써 투쟁해야 한다고, 조직해야 한다고, 대자적 계급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셀과 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나름 뚜렷한 자기 규정과 지침을 갖고 살아내고 있었다. 이십대에는.

그러나 함께 할 동지가 없었다.

우리들이 비판했던 엔엘도, 피디도, 사노맹도 그리고 여타의 계급주의적 정파들을 기회주의와 사회개량주의로 비판의 날을 세워, 꼬투리를 잡아 흠집내고, 쫓아내고 코드가 안 맞는 치들과 할 말은 없다고 치부하기에 바빴던 우리들의 조직, 그리고 나는 노동자들 속에  있었지만 아무것도 해낼 수가 없었다.

그 속에서 정치투쟁의 싹을 도출하여 조직과 전선을 계급적으로 격상시켜내야했던 경제투쟁에서 패배한 것도 노동조합주의와 쁘띠부르조아의 정치적 욕망 때문이라고 자평했지만, 함께 했던 우리들의 노동자동지들은 이길 수 없는 투쟁에 인생을 계속 붙박아둘 수는 없다고 정리했고 단지 차마 그럴 수는 없었던 소수는 마음을 정리하지 못 해서 결국 해산하고 말았다.

" 나는 더이상 못 하겠다. 빠질테니 맘대로 해라. "

내가 그리 말하자, 다음 회의에서 다시 얘기하자는 만류는 커녕, 자기고민의 시간도 필요치 않다는 듯 남은 자들은 언니가 그러하면 자신도 그만두겠다 한다. 다만, 순서의 차가 있을뿐 자신들도 그만두는 것이니 비판하지는 않겠다면서.

3년 간의 투쟁, 7년 간의 현장 생활에서 가장 크게 배신감을 느낀 것은 그 때였을 것이다.

내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렇게 어이없게 투쟁을 접었다.

그들은 그리고 나서 할 일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가야할 길이 있고 함께 할 동지나 친구가 있었을 지도.

나는 없었다.

정리되지 않는 마음, 의미를 부여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내 이십대가 그렇게 막을 내리고 아무도 없는 바다 한 가운데 홀홀 떠있는 것처럼 서른 이후를 살아내기는 너무 힘겨웠다.

내가 왜 염세주의를 떨치고 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달려왔던가?

서른이면 죽어야지 하고 사춘기시절 다 먹지 못한 타이밍을 병원에서 뱉어내며 만지작거리던 카터칼로 동맥을 끊지 못 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면서 그래도 한 번 살아보고 결정해야지, 설마 생이 그렇게 의미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되뇌이며, 맑스주의가 그 답을 줄 것이라고 가지 않은 길을 가 보면 뭔가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서른 넘어, 그나마 가지고 있던 기득권도 집도 젊음도 다 버리고 소진하였는데 내 옆엔 남은 것이 없었다. 버린 것은 아깝지 않으나 얻은 것이 없다면 이후의 생을 어찌 해야 하나? 사춘기 시절의 염세주의에서 달라진 것이 없는 이제, 서른이면 잔치도 끝났다는데 뭐 얻어먹을 게 있겠나... 그렇다고 죽자니 여전히 용기가 안 난다.

2002년, 나는 패배했어도 그들은 성공할 지도 모른다고, 설령 요구안을 쟁취하지 못 한다 해도 그들의 끈끈함과 용기와 젊음에 기대하며 지원 혹은 연대의 이름으로 지켜보았던 어쩌면 구조조정 국면의 마지막 계투로의 전환을 가능케 할 수 있었던 그들의 투쟁이 자진해산으로 끝나는 것을 보면서 목놓아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상처 때문이 아니라 내 상처 때문에.

더 이상 눈 들어 바라볼 곳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 후 바로 이어진 결혼과 육아와 가사노동에 치여 집에서 사십대를 보내고 있다.

오늘도 아이들을 두고 집 밖을 나갈 수 없어 자잘한 행복, 도서관에서의 글쓰기 강좌같은 거, 한 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내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생활에 굴레지어 있으면서 그래도 슬플 것도, 기쁠 것도 없는 현재를 유지하고 있다.

사고, 생의 의미, 움직이는 역사 속에 자신을 위치짓기? 그런 생각은 2002년에 멈춰진 채 잇대어지지 않는다. 8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기나긴 침체기에 있다고, 운동의 침체기는 한 오십년 쯤 계속 될 수도 있다고 그런 암흑기를 거쳐 1917년도 온 것이 아니었던가 하고 위안하기에 내 현재는 너무 초라하다. 파파 할머니가 되어 혁명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뛰어나갈 날만 바라보고 살아낸다는 것이 어찌 가당켔는가.....

현재가 정리되지 않으니 과거를 돌아볼 수가 없다. 미래를 세울 수가 없는데 어찌 자신을 긍정할 수가 있겠나...

쇼펜하우어에서 싸르트로로, 거기서 마르크스로 비약했지만 200년 전의 기억으로 현재를 사는 것은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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