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중간에 휴식 시간, 롬백작 일가의 섬생활을 보여주는 세트.
학생들이 준비하고 공연한 훌륭한 크라이턴 (The Admirable Crichton).
피터팬의 작가 J.M 배리 (J. M. Barrie) 가 희곡을 썼고 1902년에 초연되었다고. 분명히 주인공이지만 크라이턴에 가려 공연 내내 조연으로 머물고 말 운명에 처한 롬백작은 설득력 부족한 이야기를 떠들어대며 주변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경박한 인물. 어찌보면 전형적인 민폐 캐릭터다. 티파티에 느닷없이 집안 하인들을 불러들여, 귀족들과 같이 서로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라고 권하는 초반부는 가관이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분들이 떨떠름한 얼굴로 하인들에게 차를 건네고 케잌을 권하지만, 하인들과 한번 악수를 할 때마다 손수건을 꺼내 손바닥을 문지르는 분이 있는가 하면, 그들과 같은 의자에 앉는 것도 불편해서 주위를 빙빙 돌며 난처해하는 분도 있다. 평소에 원하던 일이 아니었기에 그저 명령에 충실할 뿐인 하인들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먹 고 사는 것에 관련된 모든 험한 일을 하인들이 묵묵히 수행한 덕분에 우아하게 살 수 있었던 백작은, 섬에 난파된 이후 생존을 위해 해야할 일들 중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걸 깨닫고 (평소 백작일가보다 더 현명하고 우아해보였던) 크라이턴에게 복종한다. 크라이턴이 거기서 평등한 세상을 구현하며 가족같은 공동체를 건설한다면 재미없는 코미디가 되었을텐데, 지금까지 자기가 당한 그대로 톡톡히 백작일가에게 되돌려준다. 하인들 사이에 서열을 정해 조금씩 권한을 늘여 서로 경쟁하게 하는 것도 똑같다. 여기까지만 봐도 의미심장한 대목이 곳곳에 숨어있는데 이들이 구조되어서 다시 상류사회에 복귀하는 후반부에선 크라이턴이 아니라 작가의 입김이 기어이 관객들의 코 앞으로 다가와 다그친다. 너희들, 제법 책도 많이 읽었고 학교도 길게 다녀서 세상을 좀 안다고 착각하는 너희들 말이야, 이 백작 일가랑 다를 게 뭐 있어? 귀찮은 일은 과묵하고 헌신적인 부모나 집사람이나 누나나 오빠나 언니나 동생들, 혹은 후배나 제자들이 다 처리해주길 바라면서 다 미룬 다음에, 자기만 어떻게든 멋지게 살아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지 않아? 평등? 네가 정말 평등을 원해? 이 포장지만 바뀐 신분 사회가 영원히 계속되길 바라는 게 아니고?
공연이 끝나자 모두가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다. 등줄기에 쭈욱 돋은 소름을 애써 털어버리려는 듯.
- 공연 마치고, 무대 사진 찍어도 되냐고 안내하시는 분께 물었더니, 원래 못찍게 하는데 그날은 학생공연이라 괜찮다고. 위 사진은 백작 일가의 거실 세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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