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수요일 저녁.
고향에선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고, 서울선 신문기사로만 봤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영화의 한 장면 혹은 사진 몇 장으로 살풋 스쳐간 할로윈 Halloween. 언젠가 직접 호박등 (Jack O lantern) 을 만들기도 했지만, 속을 다 파내 그냥 버린다는 걸 알고 멈칫했다. '호박죽을 끓이면 적어도 다섯은 실컷 먹을 수 있는데...' 싶어서, 하하.
해마다 이날, 출근 버스에서 동물 분장 혹은 영화/소설의 주인공 분장을 하고 얌전히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분들을 발견하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다가, 작년과 올해,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519 센터 (The 519 Church Street Community Centre) 에서 새 친구들을 만나서 그렇기도 하고 (이들 중 몇은 여기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은 저마다 다른 나라, 다른 환경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할로윈을 대하는 태도가 다 다르다), 우리 풍습 중에도 비슷한 게 있었지 않나, 싶어서다. (예를 들면, 가면극, 달집태우기,다양한 귀신설화 등등...근데, 어린이들에게 단 것을 주는 날은 따로 없었... ^^;;)
물론 상업적인 행사가 많다. 맥주집이나 레스토랑 운영자들이 주축이 된 모임들에서 무슨 무슨 거리, 무슨 무슨 마을에 연중 행사를 기획하고 공들여 광고한다. 누가 누가 멋진가 대회를 열어서 부상도 듬뿍 안겨준다. 하지만 그런 공개행사에 참가하거나, 적어도 친구들과 함께 어깨 힘주고 그 날을 신나게 보내려면 돈이 많이 든다. 당연히 소외되는 이들이 있고, 그늘진 이야기가 쏟아진다. 많이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더 가졌다고 뽐내는 날이 되고 말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원래 그런 날이었을까?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세상, 오히려 뒤로 가는 것 같은 어른들, 답답한 일상과 의미없는 삶을 게워내던 인간들이 하루 날을 잡아 거리로 뛰쳐나오고 싶었던 아닐까. 눈치 보느라 못입던 것, 못먹던것, 말못하던 것을 다 쏟아낼수 있는 날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아이도 어른도, 여자도 남자도, 이반도 일반도, 이날만큼은 서로 경계를 짓지 않고 떼를 지어 우루루 몰려다니며 해방감을 만끽하는 거다. 특히 LGBTQ 들에게 이 날은 한여름의 행진 Pride Parade 만큼 기다려지는 명절일 지도 모른다.
하루쯤 어때, 하는 마음으로 들떠있는 이들에게 처음으로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 지난달부터 3-4명의 자원활동가들이 같이 진행하고 있는 수요일 저녁 그룹 (같이 사진을 찍고 보여주고 이야기하면서 영어공부를 하는 이민자들) 에서 할로윈 풍경을 촬영한 것. 내년에는 뭔가 재밌는 장난을 꾸며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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