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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여인’이 신음한다

황우석 교수 연구팀에 자발적으로 난자 기증했던 한 미혼여성의 충격
과배란 후유증 호소에 홀대하던 그들, 제공자 선의까지 무너뜨릴 줄은…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차라리 하루가 다르게 속속 밝혀지는 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때마다 “설마 그럴 리가….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바뀌겠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판단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난치병 환자들의 ‘구세주’로 복귀할 가능성은 희박해져만 갔다. 끝내 <사이언스> 논문이 철회되면서 ‘줄기세포 선구자’는 ‘나라 망신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환자 맞춤형 세포 치료제는 실현 가능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2004년 <사이언스> 논문으로 0.01%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2005년 논문으로 1%의 희망을 가졌던 환자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자신이 감내해야 하는 몸과 마음의 상처는 환자 축에 끼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 12월21일 위아무개(27)씨는 황 교수 휴대전화 번호를 눌렀다. 황 교수와의 ‘인연’은 난자 기증을 하려고 연구실에 연락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통화를 시도할 때마다 황 교수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런 답신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날이 바뀌어도 통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뒤늦게 울분을 토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자신의 몸 밖으로 나간 난자가 무엇에 쓰였는지에 대해 한마디 들으려 했을 뿐이다. 가족조차 모르게 진행한 일이 과학적 진실 앞에서 너무나 초라했다. “서울대 조사위원회에 출석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에 연락을 주시기 어렵겠죠. 설령 시간적 여유가 있다 해도 저 같은 사람에게 마음을 쓰기 힘들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가 상처받은 것은 난치병 환자들이 감내해야 할 아픔의 터럭만큼이나 될지 모르겠네요.”

 




국보급 과학자의 절박한 호소에 가족 몰래





△ 황우석 교수는 난자 기증 여성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위아무개씨가 지난 12월21일 진료를 받으려고 강남 미즈메디병원에 들어서고 있다.


그러니까 위씨의 마음을 헤아리려면 1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위씨의 손에 <나의 생명 이야기>라는 책만 잡히지 않았어도 처절한 아픔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황 교수는 ‘배아 줄기세포를 통한 재생의학이 난치병 극복의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이른바 치료용 복제를 이용해 환자가 스스로의 유전물질을 이용해 당뇨병을 치료하는 췌장세포나 손상된 척수를 복구하는 신경세포 등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여성의 난자가 필수적이라는 데 있었다. 이전에도 배아 줄기세포의 놀라운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국보급 과학자’가 난자의 필요성을 전하는 절박한 호소를 외면할 수 없었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연구가 의학적으로 과장됐다고 밝혔다. 이들의 뒤늦은 고백에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다. 배아 줄기세포를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많다는데 제가 병원 수술대에 누울 때까지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위씨가 난자를 기증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환자에 적용되리라 기대한 것은 아니다.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추출한 상황에서 환자 치료를 위한 연구를 시작하는 게 급선무라 생각했다. 언젠가 자신의 난자를 이용한 연구가 밑거름이 되어 배아 줄기세포가 다양한 종류의 세포로 분화돼 환자의 체내에 주입될 수도 있다는 희망사항은 위씨의 발걸음을 서울대 수의대 황 교수 연구실로 향하게 했다.


정보없이 미혼녀가 수술대에 오르기까지


사실 위씨는 다른 난자 기증자하고는 사뭇 달랐다. 집안에 맞춤형 줄기세포 치료제가 필요한 사람도 없었고, 난자 매매로 급전을 마련해야 할 처지도 아니었다. 단지 대학을 휴학하고 간 이식 수술을 받은 외삼촌 내외를 간병하면서 환자들의 절박한 사정을 한 달여 동안 경험했을 뿐이다. 더구나 위씨는 출산 경험은 차치하고 결혼 근처에도 가지 않은 미혼녀였다. 그런 직장 여성이 황 교수 연구실을 찾은 것은 뜻밖의 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황 교수를 만났을 때 이것저것 꼼꼼히 따지셨어요. 혹시 여성단체에서 난자 수급 과정의 문제를 밝히려 함정을 파놓으려는 게 아닌가 의심하는 눈치였죠. 그러다가 안규리 교수를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고 ‘기증자가 환자와 혈연관계가 없을 때’라고 표시된 난자 기증 동의서에 서명했어요.”

그것으로 연구 목적의 난자 기증에 관련된 준비는 마무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 교수 연구실에서 마련한 난자 기증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따로 없었다. 지난 2001년 인간 배아 줄기세포 추출을 시도해 배반포 단계까지 진행시킨 미국 어드밴스드 셀 테크놀로지만 해도 난자 기증자를 ‘24살에서 32살 사이의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여성’으로 제한했다. 게다가 난자 기증자들의 심신이 건강한 상태인지를 확인하는 심리 검사와 감염성 질병 등을 포함한 건강 검진을 했다. 이런 기준이 위씨에게 적용됐다면 자발적인 난자 기증자가 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불임을 염려해야 하는 미혼인데다, 동의서 작성 2년 전부터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 항우울제를 처방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위씨는 난자 기증 절차를 밟았다. 황 교수를 통해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지난 1월23일 강남 미즈메디병원에 도착한 위씨는 노 이사장을 만나 간단한 진찰을 받았다. 국내에서 불임 치료 전문가로 꼽히는 노 이사장의 진료는 미혼인 위씨를 불편하게 했다. “나름대로 연구에 보탬이 되려고 기증자를 눕히고 다소 신경질적으로 질 내부를 쑤시는 듯했다. 노 이사장이 ‘올해 1, 2월에 난자 기증자에게 금품 제공이 있었다’고 밝혔는데 내가 거기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공정가격’인 150만원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는지도 모르겠다. 만일 난자 매매를 하는 사람이었다면 아주 기분이 더러웠을 것이다.”

실제로 위씨도 난자 기증 과정에서 합법적인 ‘금품’을 제공받았다. 노 이사장에게 받은 것은 아니다. 난자 기증 동의서를 쓰는 날 안 교수에게서 교통비 명목의 실비로 현금 30만원을 받아 영수증 처리한 것이다. 시술비는 직접 받지 않고 미즈메디병원 부담으로 처리한다고 했다. 설마 시술비를 받지 않은 것을 두고 금품 수수 운운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따지고 보면 30만원은 교통비도 되지 않았다. 난자 생성을 촉진하는 ‘과배란유도제’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이동에 불편을 겪어 한동안 흔들림이 심한 버스 대신 택시를 타야 했다. 게다가 난자 흡입술 이후 몸고생을 하면서 들어간 치료비를 생각하면 ‘짜디짠 실비’였을 뿐이다. 만일 위씨가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를 기대했다면 수천만원을 준다 해도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 위씨는 난자 기증을 위해 수술대에 오른 뒤 크고 작은 고통을 겪었다. 위씨는 자신의 진료기록부를 보고서야 29개의 난자가 채취된 것을 알았다.



어쨌든 위씨는 난자 기증자로 전문의를 만나서 과배란 유도제를 투여하기 전에 각종 검사를 받았다. 여러 검사라 해서 심도 있는 검진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혈액과 소변으로 10여 개 항목을 살펴봤을 뿐이다. 그것도 1차 검진에서 특정 수치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오자 병원 의료진이 “난자 기증을 시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 다른 항목을 추가해 재검진을 실시했다. 생리가 불규칙한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없는 여성이라면 과배란 유도제로 인한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는 게 의료진의 생각이었다. 다음날(1월25일) 특이사항이 없다는 검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과배란 유도제 투여가 시작됐다. 위씨는 나머지 9일치 약제를 받아서 돌아온 뒤 난자 흡입술을 받기 전날까지 집에서 투여했다.


난자를 무려 29개나 내놓다


“과배란 유도제를 투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복부 팽만감이 나타나고 열이 심했다. 그래도 의료 기술의 진전을 위해 누구라도 감수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며 참아냈다. 난자 흡입술을 받으려고 수술대에 오르기 전까지 부모님을 비롯한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그만큼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맹목적인 확신만 있었던 것이다.” 난자를 무려 29개를 내놓고 수술대에서 내려왔다. 서서히 의식이 들면서 숨쉬기가 힘들고 배가 불러왔다. 이내 설 연휴가 시작됐지만 고향에 내려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명절 때 내려가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연휴 첫날 안 교수에게 고통을 호소해야만 했다. 연일 야간까지 하는 근무 여건에 과배란 후유증이 심각해졌다. 병원에 가서 고통을 호소했지만 의료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무리 난자 기증자로서 ‘임무’를 마쳤다지만 병원 쪽의 홀대는 위씨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설 아침을 병원에서 맞았는데 “적당히 쉬었으면 돌아가줬음 좋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해 서둘러 퇴원 수속을 밟아야 했다. 이날치 위씨의 진료 기록에는 ‘안규리 선생님 통화 뒤 입원 원함. 휴식을 위해 입원함’이라고 적혀 있고, 12일치에는 ‘다리와 배가 불편하다. 외음부가 부어 있음. 초음파상 난소는 5cm 커지고 복수는 많이 줄어듦’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정리됐다. 그리고 2월17일에 ‘진료 기록 복사해 한양대로 보냄’이라고 적혀 있는데 한양대 기관윤리위원회의 검증은 어떤 절차로 이뤄졌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설령 위씨에 대한 검증이 이뤄졌다 해도 난자 기증 동의서 한 장이 대신했을 뿐이다.


각종 여성질환으로 지금도 병원 신세


지금까지 보고된 과배란 후유증의 대표적 사례로는 빈혈이나 나팔관 염증·복막 감염·간 기능 저하·폐 응고 등을 꼽을 수 있다. 심할 경우 난소암 위험이 높아지고 불임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지만, 국내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해마다 난자 흡입술이 1천여 건이나 이뤄지는 대형 병원이 있지만 대체로 최후의 임신 수단으로 선택하기에 불임의 인과관계는 따지기 어려웠다. 위씨는 복수가 차서 배가 3인치가량 늘었다가 원상태로 돌아갔지만 지금껏 각종 여성 질환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게다가 체중이 난자 흡입술 이전보다 7kg이나 줄기도 했다. 위씨 같은 미혼의 난자 기증자는 불임 가능성을 추적 조사해야 할 것이다. 만일 난자 기증의 임상적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만든다면 미혼여성 항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 "제 고통이야 시간이 지나면 치유되겠지만…." 미혼여성인 위씨는 난자 기증을 위해 처음으로 산부인과 진료를 받았다.



그렇다면 위씨의 난자는 어떤 경로를 밟은 것일까. 지난 5월 황 교수가 영국 런던에서 환자 맞춤형 배아 줄기세포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했을 때 위씨는 급성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으로 응급실 신세를 지면서도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서울에 돌아온 황 교수는 전화상으로나마 위씨에게 “이번 연구에 선생님이 많은 공헌을 했다. 기자회견에서 위 선생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가장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황 교수는 185개의 난자 가운데 31개를 배반포로 분화시키고, 여기에서 11개를 줄기세포로 확립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른다면 위씨의 난자에서 줄기세포가 2개쯤 확립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잘해야 배반포로 분화됐을 것이고, 아니면 사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언젠가 황 교수는 위씨에게 체세포 핵이식 과정을 비롯해 배반포에서 줄기세포를 꺼내 배양하는 실험의 전 과정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끝내 그런 날은 없었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실험실 문턱을 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공동 연구자끼리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모습에 인간적 아픔을 느끼는데, 실험 장면까지 거짓이었다면 마음이 갈래갈래 찢겨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자발적으로 난자를 기증했는지조차 모르게 됐다. 당분간 산부인과 치료를 받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만 마음에 입은 상처는 쉽게 지워질 것 같지 않다. 왜 그렇게 과학적 속임수를 써가면서 서둘렀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일이었는데….”






“백의종군보다 더 큰 결심을”



난자 기증 여성이 황우석 교수에게 띄우는 편지


황우석 교수님께

먼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아직도 제 눈에는 병상에 누워 계시던 교수님의 까칠한 모습이 선합니다. 어떤 언론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미지 연출’에 능란하신 분이라는 것도. 눈문을 비롯해 연구 성과의 상당수가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진 지금도 저는 여전히 교수님, 아니 선생님이라 부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무엇이 언제부터 왜 이렇게 엇갈려버린 것일까요. 생명에 관한 순수하고 맹목적인 열정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했던 제 믿음은 이제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빈 껍데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교수님의 어떤 말로도 이제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죠.

저는 사실 교수님이 난자 수급 문제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자리에서 ‘백의종군’ 하겠다고 밝히셨을 때 누구보다 반가웠답니다. 그동안 연구자로서 본연의 모습보다 정치적인 색채를 띠는 것 같은 교수님의 행보를 보면서 안타까움 비슷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겸손과 성실로 무장한 듯 보였던 교수님이 명예욕에 사로잡혀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극의 주인공이 되시다니요. 제 충격과 상심은 이루 말로 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난치병 환자들이나 일반 국민들과는 다른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참담한 감정은 인간적인 신뢰가 깨어지는 아픔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더구나 제 소중한 난자들을 채취해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는 데 사용한 것인가요? 저는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지만 바로 이런 것이 생명이구나, 하면서 살붙이에 대한 정이 무엇인지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답니다. 제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자부심을 처음으로 느낀 것이 난자를 기증하면서부터였기 때문에 이후에 어떤 고통과 후유증도 그럭저럭 이겨낼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보탬이 되고자 기꺼이 제 작은 생명을 내어주었는데 그 생명의 온기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적지 않은 여성들의 피와 눈물은 정녕 이대로 스러지고 마는 것인가요? 난치병 환자들과 그 가족도요?

본질을 호도하는 언론의 보도와 궁지에 몰리고 나서야 발뺌하기에 바쁜 관련자들의 모습도 나를 아프고 힘들게 합니다. 교수님, 이제라도 좋으니 진실된 모습으로 쓰러진 신뢰를 조금이나마 일으켜주세요. 잘못을 시인하고 백의종군보다 더한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줄기세포 연구에 혼신을 다해 성과를 거두어주세요. 그것만이 저와 다른 많은 이들을 그리고 교수님을 살리는 길입니다. 날씨가 무척 춥습니다. 마음만은 꼭 따뜻해졌으면 좋겠습니다.

2005년 12월23일

난치병 극복을 기원하며 난자를 기증한 여성


2005/12/31 00:26 2005/12/31 0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