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평화운동을 하는 인권활동가들이
모두 [인권운동사랑방]에 소속된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사회에서 [인권운동사랑방]은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곳까지 세심하고 폭넓게,
폭력적 연행과 구속을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평등한 인권과 평화로운 사회를 위해 움직이는 대표적인 단체이지만
우리 모두가 그 곳에 가입해서 활동할 수도 없고
그 곳이 우리 모두에게 활동가가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인권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활동방향은
여러가지 분야로 세분화되어있고 그 모임도 다양하다
비정규직철폐, 이주노동자차별철폐, 병역거부운동에서부터 지문날인거부,
체벌 및 복장 두발 검열 거부, 미군기지확장저지...
그 중에서 가장 절박하게 다가오는 어떤 문제에 공감한다면
말이나 글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펼치거나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독립영화 혹은 대안적 미디어를 제작, 배급하는 감독 혹은 영상활동가들이
모두 [한국독립영화협회]에 소속된 것은 아니다
미디액트도 있고 미디어문화행동도 있고
[불타는필름의연대기]처럼 한시적인 프로젝트팀이 생기기도 하며
각 노조 영상패나 각 지역 영상소모임, 각 학교의 영화동아리도 있다
어떤 조직에 내가 가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 혹은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반드시 어떤 조직에 가입해야 가능한가, 하는 문제는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가, 만나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일상적 관계의 문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조직이든 사람이든 관계의 시작은 선택이다
보다 지속적으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려면
그 뜻과 그 일에 가장 적합해보이는 조직을 선택하면 되고
굳이 조직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하고자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혼자, 혹은 때때로 다양한 동지들과 연대해서 그 일을 하면 된다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이 펼쳐진다
최근들어 집회에 참석하다보면, 그리고 인터넷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다보면
1인 활동가들, 그 어디에도 소속하지 않았지만 하는 일이 뚜렷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성차와 지역과 연령의 구분없이 개인활동가들이 늘어난다는 사실은
만날 때 마다 명함(소속과 직함)을 요구하던 사회생활 경험을 가진 내게
숨통이 트이는 경험이면서, 반가운 발견이기도 하다
왜 한독협에 가입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몇 년전, 처음 독립영화 작업을 시작할 때
그 곳에 가입하고 싶어서 신청서를 작성했던 적이 있으나
당시에는 자격미달이어서 회원승인이 되지 않았다
독립영화를 한 편 이상 연출했거나 두 편 이상 스탭으로 일한 자, 로
회원가입규정이 명시되어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한독협 사무국장이었던 한 분으로부터 '다음 기회에 다시...'라는 말을 듣고 나서
잠시 민망했다가 그 뒤로 지금까지 어찌저찌 '다큐나루'라는 이름을 걸고 버텨왔다
한독협 회원인 친구들이 촬영이나 모니터링 스탭으로 내 작업에 잠시 참여하기도 하고
내가 그 친구들 작업에 임시 스탭으로 참여하기도 하면서 별문제없이 지내왔다
지금은 한독협도 회원가입 규정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들었고
사석에서 가끔 지인들로부터 지금이라도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기도 하는데
아직은 꼭 그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여성영상집단 움, 처럼 여성활동가들끼리 모이는 팀을 만들고 싶기도 하고
해마다 한시적으로 주제를 정해서 프로젝트로 활동하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이미 어느 정도 조직력을 갖춘, 그리고 나름의 역사를 가진 모임에
굳이 내가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1인 활동가들이 반전집회나 한미 FTA 저지를 위한 집회에 참여해서
자신의 의견이 담긴 피켓을 들거나 구호를 외칠 때
'그런 개인적인 의견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밀어내는 사람들은 없다
1인 활동가들이 어떤 매체를 통해 이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때
'니 글은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니까 무효'라면서 삭제하는 경우는 없다
1인 활동가가 불합리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다 부당하게 해고되었을 때
'너는 노조원이 아니라서 보호할 수 없으니 그냥 참아라' 하고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주로 혼자 일하는 독립영화 감독이다
그러나 늘 혼자일 수는 없고, 늘 혼자여서는 작업이 완성되지 않는다
특히 사운드믹싱, 작곡과 편곡 등 음악, 그래픽 작업 등은
내가 훈련받지 못했고 소질도 부족해서 혼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때문에 후반작업 기간에는 여러 스탭들과 함께 북적북적 움직이게 된다
이 북적북적에 포함된 사람들은 전문적 훈련을 받은 기술자들 뿐만
가편집 내용을 보고 조언을 해주거나
완성된 영화를 보고 극장이나 상영회에서 소감을 들려주는 관객들도 포함된다
이들 모두가 중요한 스탭, 혹은 후원자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영화를 둘러싼 관계망의 일부이자 핵심이다
우리는 이 영화의 탄생과 보완에 참여하는 동지이자 가족이 된다
결과적으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가끔 내가 혼자라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 있다
KBS 독립영화관에서 [돌 속에 갇힌 말]을 방영취소한 사건도 그렇다
방영이 취소된 표면적인 이유들은
선거관리위워회의 외압과
프로그램 제작진의 판단과 방영일정을 중심으로 한 일방적인 업무관행과
계약서 내용을 공유하지 않다가 방영예정일 하루 전날 공개한 것,
방영예정일 오전까지도 계약서 내용에 대해 합의하지 못한 상황 등을 지적할 수 있지만
말이나 글이나 표정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그쪽의 속내를 생각해보면
내가 한독협 회원이 아니라는 것과
내가 번듯한 역사와 명성을 가진 독립영화제작단체의 일원도 아니라는 것이
그들이 '나' 혹은 '돌 속에 갇힌 말'을 대하는 납득할 수 없는 태도의 배경으로
교묘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혐의를 말끔하게 벗어던지기 힘들다
그들은 정말로 그 혐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가
그렇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나
자신이 있나
그들이 이번 면담에서 그 자신감을 입증해보이길 바란다
내가 제시한 두 가지 조건(이관형 피디 참석, 선관위 공문 공개)이 확보되어서
면담이 성사되었을 경우에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독립영화와 관련된 그 어떤 조직에도 가입하지 않았지만
독립영화를 덜 존중하거나, 독립영화 감독을 덜 존중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나는 모든 독립영화 작품, 모든 독립영화 감독들의 이름을 걸고 싸울 것이다
내 생각과 내 비판이 정당한 것이라면
그 생각이 비롯 너무 오랜 시간을 거쳐 너무 늦게 표현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지지하고 함께 움직여줄 사람들이
내가 사는 곳을 넘어 내가 일하는 분야를 넘어 얼마나 많이 존재하고 있는지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나는 표면적으로 혼자이지만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가 영화를 만드는 동안 결코 혼자가 아니다
개인을 존중하라
백 명이 넘는 개인 지지자와 여러 단체들의 연대서명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좋은 결과를 맺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런데 역시, 좀 외롭긴 하군요, 하하
댓글을 달아 주세요
69569 조합상으론 한끗 차이네... 힘내요, 나루.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지 "소속"을 강조함으로써 "개인"을 무력하게 맹글려하지요. 힘있다고 휘둔 자기들의 폭력을 가려야 하니깐. /1인 활동가들이야말로 (20세기식을 넘어가는) 더 유연하고 더 역동적이며 더 강력한 연대의 기반을 형성할 수 있는다는 희망의 근거지인 것 같아요....
ㅎㅎ 지지자와 연대서명말고도~~ 이렇게 이벤트에 열광하는 블로거들이 있으니 외로워하지 마세요! 69625 두근두근^^
69689 아깝네요.~ 근데, '1인 활동가'라는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을 칠까요?^^
너부리, 그랬으면 좋겠어요
re, 당첨 축하...(괴롭혀줄거야...으흐흐)
스캔 플리즈, 춥고 배고프고 졸리다는 점이 늘 가슴을 쳐요, 헤
조직 중심의 운동 문화가 참 짜증날 때가 많았는데,
(물론 모든 조직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한번도 그런 조직론에서 벗어난 운동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스캔...아마 저도 그럴걸요? ^^;;;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벗어나는 게 맞는 건지는
아직 저도 모르니까요
모두가 벗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벗어나고 싶었던 거에요.
그런데, 벗어나면 무얼 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가 되었으니...
(집회에 가도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경험을 몇 번 겪으면,
다시는 가고 싶어지지 않는다니까요.)
나루~~~힘내~~~ 까이껏!
스캔, 집회는 차라리 나아요,
어쨋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으니까 든든해지는 것도 있고...
뭔가를 선택해야할 때, 저 많은 일들 중에서 내가 가장 먼저 다가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결정해야할 때
혼자서 정하고 움직여야 할 때
그럴 때 좀 난처해지거든요
꼭 조직에서 벗어날 필요도 없고 벗어난다고 대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일단은 지금 있는 곳에서 지금 옆에있는 사람들과
더 잘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슈아/^^ 쪼아!
ㅋㅋ 지금은 조직 같은 거 없어요. 즉,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셈이죠.
현재 군복무 중이에요.ㅋㅋ 계급은 병장. 이것도 (휴가 포함해서) 한달 정도만 하면 끝이지만...
서울로 돌아가면 어떻게 살까? 사실 이게 젤 큰 문제죠.
현재의 생활이 이따위라서, 옆에 이런 거 얘기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_-
집회를 가도 같은 생각을 갖고 모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던데요.
그저, 그때의 사안에 대한 결론만 같을 뿐이죠.
내가 절대로 동의할 수 없는 구호들을 집회에서 볼 때면, 특히 그런 생각이 들어요.
으윽...군인...(위축되는 중...)
아무 것도 안하는 건 아니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스트레스 엄청 받을텐데...
그래요, 집회가 늘 공감대를 형성하는 건 아니니까
모였다는 자체에 만족해야할 때도 있으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한달 뒤에 천천히 합시다
몸조심하시고...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