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만화영화책 - 2005/08/28 02:03

무위님의 [펭귄 - 위대한 모험] 에 관련된 글.

만약 내가 이 영화를 뜯어고칠 수 있다면, 성우 빼고 나레이션도 빼고
찰리 채플린 영화식으로 화면 중간중간 간단한 설명 깔아주고 끝내고 싶다.
물론 펭귄들의 소리와 근사한 배경음악은 필수~!

 

어디서 읽은 바로는
영화감독 자신이 성우를 꼭 썼으면 했다고 하고 프랑스판 역시 성우가 나온댄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동물의 의인화에 반대하여 실제 나레이션만 넣다고 한다.
감독의 의도는 대략 알 것도 같은데 동의는 안되고, 매우 미안하지만 차라리 미국판 구해보고 싶다 -.-#



인간의 음성들을 제외하고 화면만 평하자면 그야말로 장관.
내 평생 영하 40도의 남극과 살을 애는듯한 겨울바람, 한번이라도 만져보고 싶은 황제 펭귄과 오로라를 체험하지 못할 것이며,
펭귄들이 물 속에서 얼마나 멋진 새처럼 날아다니는 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할 것이며,
그들이 새로운 생명을 위해 자신에게 닥쳐오는 생명의 위협을 몇 고비나 넘기는지 지켜보지 못할 것이다.

이 영화를 보지 못했더라면
같은 하늘 아래 그다지도 지독하게 아름다운 곳이 존재함을, 펭귄의 아름다움을, 그들이 함께 뭉쳐 이루어내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이 영화의 컨셉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어느덧 스며들어 있는 인간 중심의 사고, 편협한 정상가족 개념에 대한 집착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4살이 넘으면 짝짓기를 위해 추위와 천적을 피해 얼음이 단단히 어는 오모크까지 한참을 걷는다.
그리고 짝짓고 알 낳고 품고, 수컷에게 알 넘겨주고, 암컷은 먹이 구하러 가고, 수컷은 자기들끼리 몸을 촘촘히 붙여 바람을 막고, 암컷이 돌아올 때쯤 새끼 펭귄이 나오면 먹이 주고, 수컷은 또 떠나고...
이 사이에 칼날같은 겨울 바람이, 물표범이, 새가 시시때때로 그들을 위협하고 목숨을 앗아간다.

 

그들은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한다. 뭍에서 걸을 때도, 짝짓기할 때도, 추위를 막을 때도, 바다에서 먹이를 구하고 새를 쫓을 때도 그들은 언제나 무리지어있다.
늦가을에 만나 초여름에 모두 뿔뿔이 헤어질 때까지 그들은 거대한 공동체 그 자체이다.
함께 모여 무언가 헤쳐나가는 모습, 감격 그 자체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들의 1부1처제에 주목하고 아빠, 엄마, 아기 펭귄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옆집 아저씨 펭귄이 없었다면 과연 추위에 살아남았을까?
앞집 아줌마 펭귄이 없었다면 아빠,엄마가 모두 먹이 구하러 간 아기 펭귄은 새의 먹이가 되지 않았을까?


실제 새끼가 적당히 자라 각자 제 갈 길 떠나는 걸로 위대한 한 단락을 마친 펭귄들의 모습에 (매우 폭력적인) 정상가족 개념을 각인시키고 가족애를 환기시키는 것은 감정이입을 완전! 방해하신다.
왠지 위대한 자연의 섭리를 인간의 잣대로 재다가 뭔가 제대로 된 모습을 못 보게 된 꼴이라고나 할까?

 

기간동안 펭귄이 보여준 모습은

그저 삶을 치열하게 살아나가는 존재들의 위대함이며,
그야말로 '모험'이라 불리울 만한 거대한 노정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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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02:03 2005/08/28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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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펭귄의 위대한 모험(The March of the Penguins)

    Tracked from 2005/11/02 00:26  삭제

    올해는 보려고 마음먹었으나 못본 영화들이 몇 편 있다. 못본 이유는 개봉하자마자 바로 닫아버려서이다. 그래도 오늘로써 가장 아까웠던 두 편은 다 보게 되었는데, 하나는 [태풍 태양]이고

  1. 뎡야핑 2005/08/28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의인화 즐. 대사가 좋지도 않던 걸요. 저는 프랑스판을 자막이랑 봤는데 시나리오 왜 쓴 건지 실망..=ㅅ=

  2. 무위 2005/08/28 2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홋, 미국판은 그랬군요. 훨 나았겠다. 성우들을 쓴 것도 마음에 안들었고 대사 내용은 더 맘에 안들었거든요.
    난 '우리 나비와 나' 같은 형태의 가족만이 '정상가족'이라는 편협한 가족관을 갖고 있는데요 ^^

  3. jineeya 2005/08/28 2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덩야핑,무위/감독에겐 정말 양가적 감정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