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 거친다는 사춘기(思春期).
10대때 겪는다지만, 그닥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한자만 보면 봄에 관심을 갖는 시절? 살짝 확장하자면 성(性)에 관심 갖는, 인생의 시작에서 인생이나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갖게되는 시절 정도인가?
그래도 대부분 '사춘기'하면 무슨 현상인지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으나 마냥 불안하고 불완전해보이고 어른이 되기 전에 겪는 무슨 관례같이 느끼기 마련이다.
최근 현대미술계는 예전처럼 야수파니 인상파니 라고 경향성을 짚어내기 힘들 정도로 포스트모턴하고 비제도권적 문화에 관심이 많나보다.
이번 전시는 제도에 편입되기도 싫고 주변부에 맴돌고 있는 이 시대 작가들의 상황과 인생의 '사춘기'라는 시절의 공통점을 잡아내고 있다.
동시에 성숙이라곤 눈씼고 찾아보기 힘든 이 사회에 대한 사춘기적 징후에 대해서도 슬쩍 내보이고 있다.
임민욱의 [뉴타운 고스트](2005)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초록색 세모인 새마을 깃발엔 '새마을'이 아니라 '뉴타운'이 적혀있다.
깃발 옆에는 '입장하신 후 반드시 출입문을 닫아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힌 문이 있는데, 문 자체가 작품인 것 같기도 해서 열어도 되는 지 잠시 갈등하게 만든다.
그래도 열어봤더니만 역시 빙고!
벽면 하나 가득 야외공연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트럭 위에서 두사람이 영등포로터리를 한바퀴 돌며
끊임없이 흐르는 드럼의 비트와 확성기에 대고 외치는 자기독백적 말들에서 엄청난 파워가 느껴진다.
외치는 내용은 도시 개발하듯 자신의 얼굴을 상대로 새마을 계획을 하는 내용.
"살기좋은 내 얼굴 우리 함께 만들어요~"
개발에 묻힌, 결국 개발이 아닌 개발을 하고만, 그리고 하고 있는 그런 세상.
최민화의 1993년 [분홍-개같은내인생]
두 명의 남자가 해변가에서 소주병을 부여잡고 있다. 7,80년대 한 시절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분홍색에 뒤덮힌 채 점점 사라질 것 같은, 표정은 밝지만 왠지 서글픈 느낌이다.
오형근 작가는 사춘기로 추정되는 10대 소녀들의 사진을 찍었는데,
찍은 인물들은 매우 거대하면서도 화면 주도력도 없고 그저 배경과 전혀 융화되지 못한 상태라고만 느껴진다. 마치 자신 이외의 모든 세상과는 엄청난 거리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진희 17세](2003)는 아름다운 소녀의 무표정한 모습이 거대하게 배치되어있다. 배경은 있지만 마치 그녀만 따로 오려붙인 듯 괴리적이다.
[강소영 16세]는 한강변의 그녀가 역시 거대하게 있지만 [한진희 17세]보다는 인물이 화면에 잘 녹아있는 듯 하다. 오히려 구름이 일부러 만들어진 느낌.
배영환의 [유행가](2000)는 잘 짜여진 쇠창살 뒤로 바닷가에 노니는 젊은이들의 영상이 비추어지고 있다. 흘러나오는 'Knockin' on the heavens door'.
이렇게 사춘기는 마음 한켠에 갇혀있는 것?
서도호의 [나/우리는 누구인가?](1996)는 60벌의 교복이 5열로 나란히 서있다. 그 빽빽하게 빈틈없고 천편일률적인 배열 속에 개인은 없다.
이 속에서 과연 나, 우리는 진정 '나, 우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일까?
배영환의 [청춘](1999)이란 작품은 위장약을 본드로 덕지덕지 바른 글자들이 표현되어있다.
글자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영가가 구슬퍼
가고없는 ....들을 잡으리'
왠지 위장약, 본드, 솜 같은 것들과 진탕 어울려 막 사는 인생이 하루라도 있어야 청춘이라 부를 수 있다고 하는 듯 하다.
장지아의 [작가가 되기 위한 신체적 조건-둘째, 모든 상황을 즐겨라!](2000).
머리에 침을 뱉고 계란을 던지고 사정없이 쥐어박히는 모습, '모든 상황을 즐기기'엔 너무나 폭력적이다. 장지아는 일상에 퍼져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 성폭력에 대한 일종의 역설을 행하고 있다. 으... 오래 보고만 있어도 기분 상당 나빠짐.-.-
박진영의 [변두리의 여름방학](2004)은 정말 신비한 느낌의 사진이었다.
강가의 두 소년이 서있는 모습인데, 강가에 흐르는 강물이 마치 산 정상에서 지나가는 구름떼를 보는 것 같다.
[추석 귀성차량과 외국인 노동자 메르씨와 그의 딸](2003)은 좌우로 긴 사진의 가로 길이만큼 늘어져 막혀 있는 교통 체증이 보이고 그 옆길로 자전거에 딸을 태운 메르씨가 보인다.
왠지 여유로운 메르씨들이 원하는 곳에 먼저 도착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새침한 와이피의 [새침랜드](2006)는 한 벽면 가득 거대한 아크릴 벽화가 그려져있다. 화산 폭발을 배경으로 여러 에피소드의 그림이 강렬한 색상으로 채워져있다.
때론 손목이 잘린, 눈(eye) 속에 다시 사람의 모습이 거듭되는, 뱀과 벌레 등등...
독특한 캐릭터가 정말 인상적이다.
플라잉시티의 [블록스터디#2 - 사춘기](2006)도 꽤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10년간의 서울 각 구별 아파트 값, 시세, 실업률, 주택종류, 월평균소득, 장만 기간 등을 구조물로 형상화하였다. 역시 용산과 강남 아파트 시세는 월등하구만.ㅋㅋ
김홍석의 [와일드코리아](2005)는 16분간의 영상인데,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증만 제시하면 총기를 지급하고, 얼굴이 빨갛다는 이유로 사상범으로 몰려 사형당하기도 한다.
폭력이 일상화된 현실.
진부해보이는 작품들도 있었지만
현실적, 구체적이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도 눈에 띄어 재미있었다.
폭력, 부동산 과잉, 본드나 약, 시대와 동떨어져가는 개인 등을 통해 점차 농후하게 퍼지는 이 사회의 사춘기적 징후.
그런데 작품 수가 너무 적어. 좀 돌다보니 끝이었어. 아쉽다 아쉬워...-.-
*사진출처 : 로댕갤러리(http://rodingallery.org) 팜플렛을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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