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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 오버페이스, 외박, 그리고 체육행사

* 이 글은 한심한 스머프...님의 [역시 진보 블로그닷!!] 에 관련된 글입니다.


 

1.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이상한 일이었다. 술이나 마구 마시려고 모인 자리는 아니었는데, 술을 제법 마셨고 보란 듯이 취했다. 서울의 술자리는 소주잔을 마구 돌려대는 대전과는 달라서 느긋하고 여유가 있더라, 그래서 크게 취할 일도 없더라며 네오에게 한 말이 씨가 되었을까, 아침에 깨어나서도 내가 왜 취했지 하고 갸우뚱했다. 전날의 수면부족으로 인한 극심한 피로가 이유일 수도 있고, 저녁밥도 먹지 않고 내리 소주만 들이켰던 것이 화근이었던 듯도 하고, 한 사람이 새로 등장할 때마다 짠~ 하고 잔을 부딪혔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긴장이 완전히 풀리게 만든 불로거들 탓이 아니었을까?^^ 올해 들어 서울에서 술마시는 자리는 거의가 업무와 연결된 긴장의 연속이었던 터에, 얼굴을 마주 하기 전부터 이미 친밀해진 불로거들과 어울린 자리에서 나는 처음부터 마음이 아예 풀어져 버렸던 것이다.

 

2. 해 살라 먹고 달 살라 먹고.

 

4월 4일 오후 5시 55분에 나는 막내회집에 도착했고, 8명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10분쯤 후에 몰롯이 도착했고, 그 10분쯤 후에 네오에게서 전화가 왔다. 6시에 만나기로 한 것 맞냐고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이내 도착할 줄 알았던 네오는 조금 있다가 한번 더 전화를 했다. 경찰청 담벼락 대신에 서대문경찰서를 한바퀴 돌고 왔다고 했다. 소주 2병 시켜놓고 홀짝홀짝 마시고 있던 우리는 네오가 도착하고 나서 곧장 모듬회를 한 접시 주문했고, 그 때쯤 스머프가 빼꼼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실속있게 차려진 회접시가 나오자 술잔들의 움직임이 나비처럼 활발해졌고, 6시 45분쯤 새롭게 파마를 한 jineeya가 등장했을 즈음엔 그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었다. 7시쯤에 온다는 미갱이 20분쯤 지나서 왔고, 그 전엔가 후엔가 하은기자가 와서 jineeya 옆에 앉았다. 맥주를 마시는 동무들이 늘어났고, 네오도 그 참에 소주에서 맥주로 전향했다. 미갱은 오자마자 네오에게 선물꾸러미를 챙겨주었고, 하루종일 한끼도 먹지 못하고 일만 한듯 하은기자는 먼저 공기밥을 한그릇 먹었다. 자일리톨이 와서 준비된 여덟 자리를 모두 채운 것은 8시가 되기 전이었다.

 

8시쯤 오겠다던 미류가 8시 30분이 지나서 와서 끝자리에 앉았다. 회는 큰걸로 두 접시가 모자라서 작은 것을 하나 더 시켰고, 내 뒷자리로 내려놓은 빈 술병들도 그만큼 늘어났다. 3시간을 한자리에서 죽치고 있으니까 얘깃거리도 분권화되어 두셋씩 짝지어 저마다 떠들썩하다. 이쯤이면 1차는 끝내야겠다 싶은데, 회의를 막 끝낸 붉은사랑이 바람처럼 달려와서 미류의 옆자리에 앉았다. 해삼과 멍게를 두 접시 주문했는데, 다 떨어졌다고 한 접시분량으로 두 접시에 나누어 주었다. 9시 20분쯤 1차가 끝났다. 계산대에 서 있는데, 몰롯이 주인한테 한마디 한다. 아저씨, 끝자리는 잘라 주세요. 주인 왈, 어, 누구시라고, 허허 웃으면서 계산서를 고쳤다. 말한마디로 몇천원 벌었다.

 

2차 역시 몰롯의 안내가 필요했다. 두군데나 이미 끝났다고 퇴짜를 당하고 나서야 김치찜을 전문으로 하는 집에 자리를 잡았다. 선택은 훌륭했다. 10시가 좀 지났던가, 현근이 이 집에서 합류했다. 스머프가 막차도 타지 말고 계속 술마시라고 부추겼는데, 나는 이미 막차를 타기에는 너무 많은 술을 마셨다. 몇시에 3차로 옮겨갔는지도 잘 모르겠다. 산오리와 작은나무가 나타났던 순간 내 얼굴이 활짝 폈던 것은 선명히 기억하지만, 곧 산오리를 따라 자리를 떴고, 잠에서 깨어나니 산오리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급하게 연락했던 행인과 azrael은 아쉽게도 만나지 못하고 밤이 깊었다.

 

3. 수다가 사람 살려.

 

몰롯과 서울대병원지부가 보건의료노조를 탈퇴해서 우리 연맹에 가맹신청한 것부터 얘기를 시작했다. 나중에 온 하은기자는 오프더레코드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 네오의 긴 여행계획은 거듭해서 화제에 올랐다. 자금 부족을 걱정하는 네오에게 우리는 모금이라도 하라고 부추겼다. jineeya가 일하고 있는 보육노조의 교섭 전망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었더니, 여기 와서도 공장얘기냐고, 네오가 말했다. 비정규투쟁 포스터와 관련해서 연맹에서의 배포중지 결정의 배경에 대해서 얘기했을 때 미갱이 잘한 일이라고 했다. jineeya와 하은기자의 어릴 적 덩치값 한 얘기들이 유쾌했다. 나와 스머프는 술 때문에 얼굴이 빨개졌고 미갱은 얘기 도중에 두어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일일이 다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얘기와 수다가 즐겁게 이어졌는데, 그것은 도중에 합쳐지기도 하고 나눠지기도 하는 아마존의 물길 같은 것이었다.

 

붉은사랑은 선배에게서 들었다며, 한 십년전쯤 내가 학생회 홈커밍데이에 갔다가 한마디 하라니까 시를 읊었다는 얘기를 내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고, 처음 만난 미류에게는 성을 묻고 이름을 마저 물어서 예쁜 이름 석자를 내 뇌리에 새겼다. 하긴 불로거들에게 이름이 뭐가 중요하겠나. 스머프, 미류, 붉은사랑, 자일리톨, 산오리, 이런 이름이 번듯하게 저마다의 생김새와 성격들을 잘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몰롯에게는 기자 근성이 느껴진다. 어제 특별히 느낀 것이 아니라 작년에 처음 만났을 때 그랬다. 몰롯이 추천한 술집들은 가끔 가 볼만하다, 이것은 어제의 결론이다. 아, 처음부터 나와 술마시는 속도를 맞추었던 몰롯은 나만큼 취하지 않았을까.

 

네오에게는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어제 그런 얘기를 했더니 네오는 아니라며 도리질 했지만 그건 겸손이다. 네오의 박학다식함과 성실함은 세상이 안다. 네오는 분노할 것에 대해 분노할 줄 알고 혁명에 대한 꿈을 간직하고 있다.  

 

스머프는 사람을 좋아한다. 술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술이 아니라 술잔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이다. 사람을 그토록 좋아하면서도 사람에 대해 자주 실망하고 사람들과 싸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스머프는 자기를 이해하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할 뿐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jineeya는 블로그를 통해서도 그렇고 노조 활동을 통해서도 그렇고 볼 때마다 새롭다. 보육노조가 아무리 힘든 상황이 되더라도 쉽게 지치지 않을 사람이다. 훌륭한 노조 활동가가 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노동조합의 벽에 갇혀 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연맹 소속이라서 띄우는 게 결코 아니다.

 

미갱은 어제 입었던 옷의 이미지만큼 좋은 것들을 잘 버무린 성격의 소유자인 듯 싶다. 적극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작은 일에 수줍음을 타고(나도 그래요~^^), 밝으면서도 조심스럽고, 자상하고 섬세하면서 쾌활하다.

 

하은기자는 내가 가본 집회 현장에서 거의 100% 만난 듯하다. 기사를 보면 발로 뛰면서 현장에서 쓴 기사라는 것이 나타난다. 참 열심이고 참 성실하다. 블로그를 만들기만 했지 글을 올리지 않아서 특별한 선입견이나 인상은 없다. 만나면 반갑기만 하다.

 

자일리톨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이런저런 끈들을 통해서 진보와 변혁의 기운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하는 것이 역력히 느껴진다. 예전에 대학생들을 만나면, 당신들이 아무리 큰소리쳐도 졸업하고 사회에 뛰어들면 금세 거기에 빠져들어서 찍소리 못하고 살게 될 것이야, 그러고 싶지 않으면 적어도 5년은 대학교때 꾸었던 꿈을 되새겨주는 끈들을 만들고 거기에 매달려 살란 말이야, 그렇게 말하곤 했는데, 자일리톨은 아마도 예외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나서서 큰소리치기보다는 묵묵히 실천하는 타입으로 보인다.

 

미류는 처음 만났는데 전혀 낯설지 않은 인상을 가졌다. 블로그의 글을 통해서 익숙해진 탓만은 아닌 듯하다. 80년대 함께 활동했던 여러 동무들의 모습이 한꺼번에 겹쳐서 친근하게 다가온다. 술이나 토론이나 밤새도 지치지 않을 듯한, 미갱의 말처럼, '매력적인' 여성 동무이다.

 

붉은사랑은 작년에 거리행진에서 인사를 처음 나누었고, 술자리에서는 어제가 처음이었다. 주장이 분명하고 맘먹은 것은 행동으로 뒷받침할 실천파가 아닌가 싶다. 조만간 술 한잔 더 하자구요.

 

나중에 나타난 현근, 산오리, 작은나무에 대해서는 생략해야겠다. 잠도 자야 하고, 내일 회의자료도 챙겨봐야 한다. 그래도 한마디, 산오리는 어제 정말 구세주였다. 너무 너무 감사한다. 나는 술이 취하면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안정적인 자리에 도망쳐 버리는데, 어제 산오리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내가 어디로 도망갔을지, 정말 낭패였을 것이다.

 

5. 남은 얘기들

 

어제 만난 모두에게 감사!

혼자서 너무 열심히 술을 마셔서 대단히 죄송!

다음에 기회가 되면 오버페이스 하지 않고 적당히 긴장하면서 밤새도록 많은 얘기 나누도록 하지요.

 

사진은 비공개사진이라고 찍었는데 올려도 되나 모르겠네요...

어쨋거나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사진은 일단 생략.

 

어제 이후 행적은-

산오리집에서 잘 잤구요, 아침에 산오리님이 밥상 차려놓고 깨우길래, 세수하고 밥 맛있게 먹고, 산오리차를 타고 행신역까지 가서, 8시 30분차를 타고 대전역으로 와서, 좌석버스를 타고 유성으로 가서 내 차를 끌고, 집에 도착하니까 11시.

2시까지는 집에서 쉬다가, 풍물패 식구들 체육행사 한다고 해서, 연구소에 나가서는 족구랑 축구랑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땀을 한바가지 쏟고 저녁 먹고 아이들과 서점도 갔다가 엊그제 사다둔 반찬거리들 손질해서 밑반찬 만들고, 그러다 보니 지금에야 어제의 흔적을 이렇게 남깁니다.

내일 읽어보고 나서 걸리는 대목들은 고치도록 할께요.

불로거들에 대한 인상을 내멋대로 썼다고 서운해하거나 화내지 마시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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