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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걸음

설명을 하자면 길다. 암튼, 2003년 11월말인가 과기노조 산업기술평가원지부에서 6명이 정리해고라는 명목으로 해고되었고, 그후 노조의 끈질긴 투쟁에 힘입어 1년쯤 지나서 복직을 쟁취했다. 뿐만 아니라 대기발령, 개인별 휴업, 정리해고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근로기준법 위반이고 부당노동행위였다고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판결이 이어졌고, 그에 따라 산업기술평가원 당시 원장이던 김동철과 핵심보직자들(하상태, 김기원)은 약식기소를 통해 각각 벌금 삼백만원과 백만원쯤에 선고받았다. 김동철들은 이에 불복하여 법원에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오늘 당시 과기노조 위원장이던 나와 산업기술평가원지부장 안형수 지부장을 증인으로 하여 재판이 있었다.

 



연맹 중집위 하느라고 점심도 먹지 못한 채 달려온 나는

재판일정표를 보고서야 여유있게 웃음을 지었다.

음, 끝나고 점심먹어도 되겠구나.

 

2:00 절도 폭력 등등

2:10 횡령 강제추행 등등

2:20 사기미수 배임 등등

2:30 피고 김동철, 하상태, 김기원

       근로기준법 위반,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등

2:40 모욕 등

3:00 폭력행위 등

3:10 식품위생법 위반 등

3:20 모욕 폭력 등등

3:40 절도 횡령 등

3:50 사기 배임 등등등

 

그렇게 해서 금세 끝나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 아닌가.

실제로 우리 앞 순서에서는 5분 10분 간격으로 공판이 끝났다.

 

드디어, 우리 순서...

대표로 선서하세요, 판사의 말에

안형수 동지와 나란히 서서 진실만을 말하겠노라고 선서했다.

 

그리고는 안형수 동지의 증언 순서가 시작되었고

나더러는 복도에 나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곧 부르겠거니 하고서 선선히 기다렸다.

10분쯤은 각 법정에 나붙은 오늘 공판사건들의 제목을 일별하였고,

더하여 10분쯤은 복도에서 서성이는 사람들 구경하다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는데,

30분쯤 지나서부터는 좀이 쑤시고 의자에 앉으니 졸리기까지 하다.

 

언제 부를지 도통 알수가 없으니

1층에 내려가 커피 한잔 빼올 생각도 못하고

그저 하릴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다가 1시간 반이 흘렀다.

옆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의 원망도 높아지고 있다.

이거 이러다가 우리는 언제 하는 거야?

도대체 한건 갖고 언제까지 하는 것이야!

내가 괜시리 미안해 하던 차에

이성우씨, 하고 불렀다.

 

들어갔다.

판사가 대단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 사람 끝마치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미안하지만 다음에 한번 더 나오면 안되겠습니까?

어쩌랴, 밖에서 여러 사람들의 원성을 듣고 있던 차에

어렵게 시간내어 왔으니 오늘 하게 해달라고 하는 말은

차마 입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안형수 동지가 그런다.

아니, 이분이 연맹 사무처장으로 얼마나 바쁜데 또 오게 하냐고

따졌지만, 에고, 법원에 드나드는 사람들 중에서

나보다 안 바쁜 사람들은 또 누구 있겠나 싶었다.

 

그래서 한 나절이 훌쩍 지나갔다.

5시부터 회의를 하나 진행했어야 하는데

다행히도(?) 다들 사정이 생겨서 연기했다고 연락이 왔다.

안형수 지부장이랑

짜장면 한 그릇씩 먹고 헤어져서

사무실 와서 이딴 푸념이나 하고 있다.

 

증인 선서를 했던 나는 공치고

증언을 한 안형수 지부장만 교통비인지 2만원 남짓 받아서는

짜장면 값으로 냈다.

 

다음 재판은 1월 25일 오후 2시 30분인데,

그 날 가면

오늘치 일당까지 한꺼번에 청구해서

자장면에 소주 한잔 얹어서 먹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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