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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우렁각시 이야기

오늘 아침에 금강일보에 보낸 글.

내일 날짜로 나갈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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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우렁각시 이야기

 

옛날 옛적에 가난한 나무꾼이 나무를 베러 갔다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우렁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나무꾼은 그 우렁이를 집으로 갖고 가서 항아리에 넣어 두었다. 그 날부터 나무꾼의 집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날마다 누군가 나무꾼의 집에 찾아와 음식을 차려놓고, 청소와 빨래까지 해놓고는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다. 나무꾼이 못내 궁금해서 집을 나가는 척하고는 집안을 살폈더니, 항아리 속 우렁이가 사람으로 변해서 하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담 가운데 하나인 우렁각시 이야기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로 치부하면서도 우리는 생활 속에서 곧잘 우렁각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가령 이런 식이다. 몸이 고달프고 힘들 때, '집에 우렁각시 하나 키웠으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맞벌이를 하는 동료의 집에 청소와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는 걸 보고는 '우아, 우렁각시라도 키워?' 하고 농을 건네며 웃는다.

 

요즘 시대에 실제로 우렁각시가 있다면? 남들이 보지 않을 때 우리 주변 청소를 말끔히 하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흔적도 없이 생활하고, 일하는 모습이 혹여 사람들에게 발견될까 싶어서 몸을 사리는 사람들, 영락없이 민담 속 우렁각시의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우렁각시들의 모습은 영 말이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로 산다. 임금 수준은 426개 직업 중에서 419위, 대부분 5~60대(평균 나이 57.2세), 다섯 중에 넷은 여성(여성 81.6%), 혼자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들이 절반(49.7%), 이것이 청소노동자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임금노동자 가운데 청소노동자는 43만명으로 상점판매원, 경리, 총무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대전지역은 1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일주일에 남성은 62.5시간 일하고 여성은 52.7시간 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이 일을 하거나 쉬거나 밥을 먹는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다. 자신의 신분을 스스로 감추었던 민담 속 우렁각시와는 달리 우리 시대의 우렁각시들은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드러내지 말도록 강요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출근하기 전에 청소를 모두 끝내야 하니까 새벽 일찍 집을 나서야 한다. 초라한 행색을 남들한테 들키면 안되니까 쉬는 곳도 지하실이나 화장실 구석 자리이다. 최저임금(시급 4,110원)으로 구내식당에서 밥을 사먹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어서 어두컴컴한 지하실이나 화장실 근처에서 차가운 도시락을 먹는다.

 

그들이 일하는 곳은 대학교, 정부청사, 공기업, 연구소 등 겉보기에도 제법 번듯한 곳인데, 근무환경이 이토록 열악한 이유는 무엇일까? 비용절감을 내세워 청소 업무를 용역업체에 위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역업체는 최저가 낙찰제로 정해지고 거기에서 최대의 이윤을 뽑아내기 위해서 인건비는 최소한으로 지출하는 것이다. 그러니 인권이며 복지가 자리잡을 틈새는 없고 오로지 청소노동자에 대한 착취만이 존재한다.

 

보다 못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청소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청소노동자들이 따뜻한 밥 한끼를 먹을 수 있도록 원청 사용자가 식권과 휴게공간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대전에서 민주노총과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서 대전지역 캠페인단을 결성했고 때맞추어 지역 언론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을 현실화하고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2007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청소노동자의 외주화에 따른 문제 확산을 막기 위해 준공영화 방안 등 공공부문 청소노동자 인권개선 권고를 한 적이 있지만 3년이 지나도록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우리 시대 우렁각시 이야기는 정부가 법과 제도 개선으로 끝맺어주기를 촉구한다.(2010.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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