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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6/30
    6월
    손을 내밀어 우리
  2. 2006/06/09
    어제와 오늘(4)
    손을 내밀어 우리
  3. 2006/06/01
    개미와 악어(2)
    손을 내밀어 우리

6월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어느 핵발전소에서 방사능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기술적 판단으로는 발전소 가동을 즉각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대외적인 신인도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정부는 현장의 과학기술자들의 소견을 무시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고는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봐라, 과학기술자들의 말을 듣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더란 말이다! 그 후에도 기술적 판단보다 정치적 판단이 핵발전소의 안전관리를 대신하기가 일쑤였다. 핵발전소에는 대개 과학기술부의 관료와 핵 규제기관의 연구원들이 조를 이루어 체류하고 있고, 주요한 사항에 대한 판단과 보고는 관료의 몫이다.


기억이 어렴풋한데, 아마 97년 여름쯤이었던 듯, 경기도 일대에 폭우가 쏟아졌다. 비로 인한 피해가 상당했는데, 그해엔 특히 전방부대의 막사들이 산사태 등으로 인해 대거 매몰되고 젊은 장병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한 연구기관에서 정부의 의뢰를 받아 그 원인을 조사했고 곧 보고서까지 작성되었다. 그러나 보고서는 끝내 공개되지 못했다. 추측하건대, 막사의 자리를 잡고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재해에 대비한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판단들이 일방적으로 무시된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 국방관료들의 농간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엇비슷한 사례들이 많은데, 이런 사건들은 대체로 노동조합을 통해서 뒤늦게라도 밝혀지고 문제가 제기된다. 내부의 양심선언이나 고발도 있긴 하지만, 이렇게 구조화된 사건에서 한 개인의 양심과 소신에 찬 행동이란 참 무력하기 짝이 없다. 직장에서 내쫓기거나 왕따를 당해서 외톨이가 되거나! 간혹 이런 얘기를 하면 과학기술자 사회도 그러냐고 반문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과학기술자 집단 또한 사회, 정치적인 맥락에서 구성되고 유지된다는 점에서 이 사회의 한 축소판일 뿐이다. 금강산 댐 건설 목적이 서울을 수몰시키는 것이니 성금을 모아 평화의 댐을 쌓아야 한다고 국민을 우롱했던 인간들 중에는 교수며 과학기술자들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던가.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구조적인 모순과 비리에 저항하고, 과학기술은 자본의 이익창출의 도구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삶의 질을 골고루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믿으며, 과학기술자들이 스스로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노동조합으로 뭉친 지 벌써 19년이 다 되었다.


그 때 그 노동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자본의 이해에 놀아나는 갖가지 프로젝트 더미에 짓눌려 신음하는 자신의 삶을 이따금 돌아보는지, 연구현장을 채우고 있는 비정규직 과학기술자들을 정규직 관리자의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지는 않은지, 투쟁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의 기억이 까마득하게 옛일은 아닌지, 과거 한 때 자신을 분노하게 했던 관료적 통제와 억압이 지금 자신에게 가해진다면 정면으로 맞장뜰 자신이 있는지! 다시 6월 항쟁의 기억과 마주하며, 나 자신에게 또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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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1.

어젠

한달 전에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건강을 워낙 헤쳐 병원에 입원한 아느와르 이주노조 위원장도 만나고

(얼굴이 아주 반쪽이다)

이미 금속노조의 국제사업 담당자로 자리를 옮긴 정모 동지 환송모임도 겸하고

오랜만에 와서 자리를 함께 한 노모 동지도 있었고

잠시 자리를 비껴나 휴직 중인 한 동지와의 만남도 있었고

그 한편에서 밤새워 일할 수밖에 없었던 몇몇 동지들 있었고

나는

여러 종류의 술과

그보다 더 복잡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가까스로 밤을 지나보냈다.

 

2.

오늘은

회의도 있었고 만남도 있었고

멀리 가 있던 후배가 십수년만에 만나자는 전화도 있었고

대전에서 술마시고 있으니 오라는 전갈도 있었다.

술,

마셨다.

 

술 마실 시간도 없다고 하면 엄살이라고 하겠지만

진짜 술마실 시간이 없고 덩달아 술마실 마음도 저버리고 살고 있는 이 즈음,

차라리 술이나 마시자는 충동이 일 때

나는 나를 경계한다.

 

3.

어떤 경우에도 나는

드러내 놓고 얘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한 동지가 말했지만,

팔뚝에 작은 생채기 하나 생겼는데

그걸 감추려고 부벼대고 약바르고 긴팔 옷으로 감추어대고

그러다가 상처만 덧나게 하고 상처를 크게 키우는 어리석은 행동이

철든 어른이든 철들었다고 착각하는 인간들에게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일에 절망하여

도시를 저버리거나 세상과 등지고 사는 사람들, 의외로 많다.

 

어떨 때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그냥 나 하고 싶은 얘기나 퍼붓고 쓰러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했었다? 그래서?

이 밤새 고민하고 판단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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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악어

 

어느 교수가 FTA 교육을 하면서 말랬다. 악어와 개미가 덩치에 비해 깨무는 힘이 세다. 그러니까 둘이서 번갈아가며 상대방을 한 번씩 깨물어주기로 하자. 그게 공정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나. 한미 FTA는 이처럼 악어와 개미가 서로 깨물기 놀이하는 것과 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킥킥 웃었다. 악어의 큰 이빨 사이에 개미의 몸뚱아리 하나 숨기지 못하겠는가, 개미 한 마리 잡겠다고 연신 큰 턱을 앙다무는 악어의 모습이 떠올랐다. 제발, 이 쬐그만 땅덩어리 삼키려다가 미국이란 나라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기를.


그런데 현실은 상상과는 사뭇 다르다. 미국 국제무역위의 시장조사보고서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낱낱이 분석해서 개미새끼 한 마리도 놓치지 않을 기세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아직 한미 FTA가 한국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각 분야별로 일일이 파악하지 못했다. 10개의 IMF가 한꺼번에 밀려오고 있다고 경고하지만, 공공서비스 부문만 하더라도 포괄범위가 너무 넓어서 세세한 분석과 대응방안을 마련하기에 아직은 힘이 부친다.


과학기술 분야는 어떨까? 한미 FTA가 과학기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수소문했다가 별 소득이 없어서 직접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 과학기술부 홈페이지에도 가보고, 과학기술 관련 시민사회단체 게시판을 두루 살펴보았지만, 한미 FTA에 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과학기술은 한미 FTA의 무풍지대? 그러다가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펴낸 정책자료 한 편을 간신히 찾았다.


2004년 8월에 낸 이라는 보고서였다. ‘한국・일본, 한국・싱가폴 FTA 협상을 중심으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보고서의 흐름을 대강 정리하면 이렇다. WTO 협정에서 한국, 일본, 싱가폴의 과학기술 양허와 요청 현황을 분석했다. 이를테면, 자연과학과 엔지니어링에 있어서 연구 및 실험개발 서비스는 3개 국가가 모두 양허하지 않았지만, 대체로 한국의 개방수준이 높다. 그러나 WTO 협정에서 개방하지 않았더라도 (일본・싱가폴) FTA로 들어가면 개방의 강도가 훨씬 높아진다. 따라서 FTA 협상을 할 때 다른 나라가 개방한 것만큼 우리 양허안을 제출하든지, 우리가 개방한 것만큼 다른 나라가 양허안을 제출하도록 하든지, 우리에게 양허를 요청한 나라가 자기 나라에서는 동일 분야에서 양허하지 않은 경우 동일분야 및 관련분야를 양허하도록 하든지, 잘 알아서 해라!


이게 뭐냐? 어렵사리 쓴 보고서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너무 심하다. 그런데 이것이 한미 FTA에 직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준이고 현실이다. 차라리 과학기술부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더 설득력이 있다. “미국 기술사 취득자(합격율 65-70%)는 국내에서 2차 면접시험을 통해 인정하고, 그보다 더 어렵게 시험을 통과(합격율 2-10%)한 한국 기술사 합격자는 미국의 제도와 다르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미국의 오만과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왜 그들한테 구걸해야 하나. 당당하게 협상하라.” 아, 개미가 악어를 물어서 상처라도 입히려면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려야 할까. (2006. 5. 30. 월간 네트워커에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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