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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07
    추운 하루
    손을 내밀어 우리

추운 하루

1.

꽃이 핀다

 

                            문태준

 

뜰이 고요하다

꽃이 피는 동안은

 

하루가 볕바른 마루 같다

 

맨살의 하늘이

해종일

꽃 속으로 들어간다

꽃의 입시울이 젖는다

 

하늘이

향기 나는 알을

꽃 속에 슬어놓는다

 

그리운 이 만나는 일 저처럼이면 좋다.

 

2.

올해 들어 제일 춥다는 날

대전역 집회(11:30)에 갔다가

여의도 집회(14:00)에 갔다가(끝나고 도착)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비정규권리선언자대회(16:00)에 갔다가

저녁도 먹고 술도 마시고 돌아왔다.

 

아내는 이렇게 추운 날 서울까지 집회를 가야 하느냐고 했고

누구는, 복잡한 서울에서의 일은 서울사람들한테 맡기자고 하며 웃었는데,

몹시 추운 날이라서

이렇게 추운 날엔 나 하나라도 더 가서

다같이 추위 좀 녹여보자는 심정으로 기어이 갔다.

 

춥더라.

추워도 다들 열심이더라.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 채울 만큼

촛불집회 한창일 때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연설이나 노래가 끝날 때마다

하나씩 플랭카드를 펼쳐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선언을 다함께 읽어갈 때

뭉클한 그 무엇이 내 혈관을 타고 흐르더라.

 

열심히 팔뚝질을 했다.

 

3.

너무 춥다고

우리 노조 동지들 여럿이 몸 좀 녹이자고 도중에 자리를 비웠는데

끝나기 직전에 경찰들이 덥쳐서

행사장이 엉망이 되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욕해봤자 내 입만 더러워지니 끙끙 참자.

 

<사진: 참세상>

 

4.

오랜만에 교보문고에 갔다.

4권의 시집을 샀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하나하나 읽었다.

그 중의 한 편이 위에 소개한 것이고.

 

오늘 이벤트 중에

비정규직 철폐의 염원을 담아

꽃을 하나씩 꽂아 글씨를 꾸미는 것이 있었는데

나도 한 송이 들고 가서 정성껏 꽂았는데

경찰이 여지없이 군화발로 짓밟았다.

 

<참세상 사진 일부 편집한 것>

 

짓밟힌 꽃들, 짓밟힌 꿈들, 짓밟힌 권리들, 짓밟힌 사람들,

그래도 다시 피는 꽃들, 일어서는 사람들,

생각하며 시를 다시 읽는다.

 

우리에게 '볕바른 마루'같은 날은 언제나 올까?

 

5.

그래봤자 비정규직 투쟁에서 나는 아직 아무 것도 아니다.

내 주변의 비정규직 동지들의 절실한 요구들도 알아채지 못하고

온몸 던져 같이 싸우지도 않고

무엇 하나 제대로 쟁취하지도 못하고

빙글빙글 제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자책하고 자괴감에 빠진들 어찌 용서가 되리...

 

6.

비정규직노동자 권리선언

○ 하나, 분할당하고 차별당하지 않을 권리
○ 하나, 비정규악법을 폐기하고, 비정규직이 일반화되는 사회를 거부할 권리
○ 하나, 비정규악법으로 인해 주기적으로 해고되지 않을 권리
○ 하나, 불안정 노동 철폐와 비정규악법 폐기를 위해 ‘스스로’ 나서서 투쟁하고 연대할 권리
○ 하나, 죽지 않고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
○ 하나, 초과노동 없이 생활 가능한 임금을 받을 권리
○ 하나, 실질적인 사용자가 노동법상 책임을!
○ 하나, 노동하는 모든 이들에게 근로기준법, 사회보험 적용!
○ 하나,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받을 권리
○ 하나, 정치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할 권리
○ 하나, 노동하지 못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생계를 보장받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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