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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다.

  • 등록일
    2005/06/20 01:15
  • 수정일
    2005/06/20 01:15

오늘 잠을 청하지 않고 그냥 컴퓨터 모니터에 앉아 있다. 늘 그렇지만 일요일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게 흘려보낸다. 오후부터 일정.... 영상미디어센터에서 내려와 교육을 받기 위해 준비하는 것을 우두커니 지켜보다. 아침 몇몇 이주노동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교육이 있으니 참석하라고 하는 전화로부터 시작되는 일요일.... 평일보다 일요일이 바쁘다. 그렇다고 내가 그 교육에 참석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센터에서 하는 몇가지 프로젝트 챙기기 위해 새로산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가 하면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지켜보며 일주일에 한번씩 오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간단히 악수를 하거나 목례를 한다.

 



단속으로 인해 혹시나 출입국관리소에 의해 잡힌 동지들은 없는지 그게 제일 중심사안이다. 오던 이주노동자들이 오지 않거나 전화가 불통이 되면 참으로 이상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한주 지나면 어김없이 오는 동지들을 보면서 그래도 아직은 괜찮은가 보다 하며 졸인 가슴을 쓰러내린다.

 

오늘 이주노동자 한분이 무심코 한 말... 잡히면 집에 가죠.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심정을 생각해 보았다. 무심코 이야기 한 그 푸념썩인 말에서 그/녀들의 불안감과 그 동안 가슴 속에서 간직한 비수 꽃힌 가슴을 열어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주노동자센터에서 일하지만 과연 그/녀들과 가슴을 맞대면서 함께 노동운동 그리고 사회변혁운동을 위해 함께 달려가기 위해 무엇을 하였는지 반문 또한 해보았다.

 

이주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 그리고 밑바닥 노동자이며, 정권과 필연적으로 투쟁할 수 밖에 없는 현실만을 이야기하였을 뿐이지, 그/녀들의 시선으로 이 사회를 보고 그/녀들의 목소리로 노동운동을 과연 이야기하였던가? 일이 바쁘다 다양한 사안이 있다 말하였지만 과연 책임을 갖고 무엇하나 속시원하게 함께하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며 맞대고 있지 못한 상황임을 직시하게 되었다.

 

말보다는 행동을 이야기하지만 그 실천의 이면에서 난 이주노동자 그/녀들과 조금은 빗겨나 있었던 것 같다. 아니 나만이었으랴.... 도움을 주기 위해 이 길에 들어와 함께하지 않으라는 다짐을 하였건만 지금의 나는 도움을 위해 그/녀들에게 다가가고 있지는 않았는지....  세상에 중요하지 않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시작한 일이 많은 들 무엇하랴... 한사람을 구제하지 못하면서 많은 것들을 품어 않으면 무엇하랴... 다 부질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나하나의 알갱이 밑바닥의 정서를 품어 않을 수 없는 무책임 함 그것으로부터 파생될 필연적 회피를 살면서 무수히 봐왔건만.... 그/녀들의 투쟁에 난 지원이라는 이름 함께 연대하여야 한다는 당위를 상실하였음을 직시하게 된다.

 

소소한 것부터 함께하여야 겠다. 왜 노동자인가? 왜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하는가? 왜 이주노동자가 정부와 투쟁을 하면서 노동조합을 통해 활동할 수 밖에 없는지를 더욱더 구체적으로 하여야 한다. 그 연대 속에 그들은 하나둘 주체로 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내가 이주노동조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러나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주노동자 투쟁의 정당성을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그리고 자본가 정권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함께 일깨워 주며 어깨걸고 가야함에도 그러한 사실은 일상과 사업이라는 교차점에서 하나둘 이탈을 시켜가 버린 것 같다. 주체만 내세웠지 뭐하나 함꼐 연대한 것은 없다. 다만 가슴알이를 하였을 뿐 그/녀들과 마음과 마음으로 대하지 못하였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시간은 아직도 많다. 그 잘못됨을 연대라는 이름으로 활동이라는 공통분모에서 하나둘 확장을 열어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지금 이주노동자운동을 인권이라는 측면과 지원이라는 측면으로 외형적 확장을 하고 있는 센터나 단체들이 시각은 분명 교정되어야 한다.

 

그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며 인권으로 바라보기엔 그/녀들이 당하는 현실은 다른 시각을 요구받고 있다. 그/녀들에게 있어서 최소한  노동기본권 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그 시혜는 고작 근로기준법이라는 잣대와 산업재해보상법이라는 법이 다이다. 이도 최소한 그/녀들 주변에 센터나 이러한 지원단체들이 있으면 그만이다.

 

이제 이주노동자센터의 전망에 대해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안산 의제21에서 한 교수가 말한 말... 이제는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나서야 한다. 인권의 사각 그리고 다양한 지원을 통한 시혜의 시기를 넘었다는 말.... 노동기본권 노동자가 임노동을 하지만 그 임노동을 위한 최소한 기본적으로 시혜를 받아야 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현실에 인권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반문에서 부터 우리 스스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문화적 지원, 사회적 지원이 아무리 많으면 무엇하랴...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으로 치부하거나.... 그/녀들의 현실 삶을 단체가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성과로 남기기에 급급한 현실임을....

 

우리는 잠시 만나고 친하게 지내기 위한 공간으로서 이 공간에 머무르지 않지만... 관계라는 것이 당사자가 아니기에 그리고 함께 그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적이기 보다는 그/녀들의 문제로 아니 주체이기에 연대와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이탈을 꿈꾸는 것은 아닌지.... 나를 돌아보며 물어본다. 그건 아니지만 보이는 것은 그/녀들이 당장 겪는 고통과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한 거쳐로서 지나치는 것은 아닐까?  그건 아니라고 말하기도 그렇다. 내가 이 바닥에 경험이 적어서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추구하는 것은 그/녀들이 투쟁할 때 적극적으로 투쟁하고 동지들을 모을 때 함께 팔을 걷어 부치고 나가는 것이다. 이도 그렇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문제이다.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하지만 이주노동자 주변을 둘러싼 연대를 위한 단위들의 준비와 태도는 분명 호의적이지 않다. 그리고 운동사회에서도 이주노동자 그/녀들에 대한 문제를 차등화 시켜 중요순위에서 배재하거나 아니면 투쟁의 메리트가 없어 적극적이지 않은 현실이다.

 

그래도 주체로서 열심히 꾸려가려는 그/녀들의 투쟁의 의지가 이전보다는 작지만 그 희망의 증거들은 지역에서 찾아본다. 하나둘 결의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녀들에 대한 연대의 손길 그리고 투쟁에 대한 지원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녀들의 투쟁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정도만이 확인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센터가 우후죽순 늘어나지만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다. 이전 재정적 지원을 빌미삼아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서 실시한 정보화교육을 위해 정보통신단체들이 우후죽순 처럼 생기거나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 출범이후 재활지원단체 지정으로 인한 지원에 의거 지역에서 생긴 자활센터 처럼 정부에 의존적 단체가 생기는 것은 결코 이주노동자 그리고 운동에 바람직하지 않다.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시선에서 함께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며,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현실 그렇지는 못하다.

 

아직 잘 모르겠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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