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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 Good~, No no~, 그거 not good”

  • 등록일
    2008/11/15 23:54
  • 수정일
    2008/11/15 23:54
"안녕하세요! 오산라디오입니다."


언어 소통의 무게란 게 이런 것이구나. 오산이주노동자들과의 라디오 미디어교육을 시작한 지 벌써 2달여가 다 돼간다. 이젠 첫 시작마저도 일상의 일에 파묻혀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도대체 이놈의 뇌는 어떻게 된 게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가물가물하단 말이더냐.


첫 시작은 참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라디오 미디어교육을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초등학생에서부터 시작해 관악FM에서 1년여가 넘게 계속해서 교육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주노동자 밴드인 ‘스탑크랙다운’을 통해 이주노동자들과의 친분을 쌓아나간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경험은 다 소용이 없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스탑크랙다운’ 정도의 활동력과 한국어 실력을 가졌겠지, 라고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갔었던 게 가장 큰 실수였다.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다른 것이다. 한국어실력에서부터, 영어실력, 그리고 무엇보다 참여에 대한 의지가 천차만별이다.

 

 

교육 수위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도 모르겠고, 언어 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특히 교사의 영어 실력이 콩글리쉬도 빈약하기 때문에, 하나의 기능을 알려주려고 해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듣는 이는 ‘열심히 설명하는데, 일단 고개는 끄덕여줘야지’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머리 속으로는 그래도 침착하게 여유를 가지고서 참여자가 당황하지 않도록 하자고 다짐해보지만 쉽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첫 수업이 가져다준 당혹감은 다음 차시부터 영어로 된 교안을 만들게 했다. 물론, 배워야 할 기능과 내용에 대한 짤막한 교안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첫 수업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언어소통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소 쑥스럽지만 비공개되었던 나의 영어실력을 맘껏 뽐내게 되었다.


“자~ 여러분 OK? Good~~, 그 다음엔 Repeat practice하세요~. No no~ 그거 not good이에요~.”


웃음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소통이 원활하게 될 수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확신하냐고? 그들의 얼굴 표정과 행동이 어제와 달리 진실된 마음에서 끄덕이는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결과물 역시 교안에 따라 나왔기 때문에 참여자들의 이해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큰 몫을 했다. 그리고 진행하면서 인내와 절망에 대해 긍정하는 법도 다시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되었다. 매 차시 변화하는 참여자들. 그와 함께 언어 소통 역시, 그리고 차시별 교육 역시 변화하게 되는….


그래도 제일 기쁠 때가 언제였는 줄 아는가?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사람일지라도 좋았다. 컴퓨터를 잘 다룰 줄 알던가, 아니면 적어도 한국에 거주한 지 1년 이상은 된 사람들이 왔을 때의 그 기쁨이란…. 언어 장벽이 이렇게까지 높고 두꺼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교육기간이었다.


어쨌든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참여하면서 친분을 쌓게 되었고, 드디어 교육의 최종단계인 인터넷 방송을 하게 되었다. 컴퓨터 한 대에 헤드셋으로 하는 것이지만, 대략의 큐 시트도 만들어 실험적으로 방송을 했다.


진행자 1인에, 손님 2인으로 이뤄진 구성의 프로그램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찌나 재밌게 하던지…. 역시 이론적인 것보다 자신들이 직접 만들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아참! 그리고 중간에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말로는 많이 들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참여자 한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편으로 웃기기도 하고, 한 편으로 씁쓸한 이 한국 땅의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 회의 시간 : 모두 테이블 앞에 둘러 앉아 방송 소재를 무엇으로 잡을 것인가에 대해 논의를 하면서 소재를 이야기하다가, 한국말 가르쳐주는 코너를 만들기로 했다.

강사 : 한국에 와서 처음 배웠었던 것이나 많이 들었었던 말을 가르쳐주는 것도 좋을 듯 한데, 어떤 말을 많이 배웠고, 많이 들었어요?


(돌아가면서 이야기한다.)


○○ : (정말로 해맑게 웃으면서) 개새끼…. (모두들 뒤로 자지러진다.)


그 분의 말에 거기 있었던 사람 모두 어찌나 웃었던지. 물론, 그것은 그 욕을 한 사람에 대한 비웃음이자 해학을 통한 해소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새로운 만남은 참여한 모두에게 즐거움과 가능성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아마도 앞으로 있을 라디오 스튜디오 제작으로 가시화될 듯 하다. 30만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오산노동자문화센터 3층 방에 인터넷라디오 스튜디오를 만드는 것인데, 목재는 주변에서 구하고, 오디오는 녹색가게에서, 컴퓨터는 쓰던 것을 사용해 만들 계획이다.


그것도 함께 말이다. 이게 완성된다면, 이때까지 배웠던 것을 바탕으로 오산지역의 이주노동자의 소통을 위한, 그리고 이주노동자와 한국과의 소통을 위한 작은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뭐, 사실 당장은 그런 것들보다 우리의 손으로 작은 스튜디오를 만든다는 것일 꺼다.


안병천 / 오산이주노동자 미디어교육 교사(관악공동체라디오 대표)


오산 지역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미디어교육은 <안녕하세요! 오산라디오입니다>라는 제목의 라디오 미디어교육입니다. 오산노동자문화센터에 자주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8차례의 미디어교육을 계획하였는데, 현재 6차례까지 진행된 상태입니다.


직접 건물 3층의 조그마한 공간에 라디오 스튜디오를 만들어, 다국어 인터넷라디오 방송을 하는 것을 목표로 두 차례 수업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오산노동자문화센터에서는 센터 홈페이지(http://www.owcc.or.kr/)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직접 만들어가는 인터넷라디오 방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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