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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나의 이야기

  • 등록일
    2005/04/01 10:43
  • 수정일
    2005/04/01 10:43
다시금 써내려 간다. 수정을 거듭한다. 여성의 문제에 대해서 난 모른. 그러나 난 여성이 당해야 할 고통 그리고 겪어야 할 어려움에 대해서는 내 가족 아니 우리 어머니를 통해서 들쳐 보았다. 늘 나 때문에 가슴 어려 있는 한... 내가 서울에 올 수 밖에 없는 사연 때문에 한이라는 응어리를 지니고 살았던 우리 어머니 아니 인간 박경옥이라는 여성을 통해 비춰 보았다. 지금은 영면이라는 편안한 안식에 들어갔지만... 내 조그마한 가슴에 박힌 한은 가져가지도 못하고... 내가 서울에 와야 했던 것... 지금은 호주제다 뭐 그렇지만 난 재혼녀의 아들... 그리고 여성이며, 어머니인 그녀가 당했어야 할 고통 나로서는 감당이 안된다. 다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사냐고 물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난 안다 하나를 어머니는 불안했다. 혼자 살수 있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기대고 싶었던 것이 그렇게 관계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 또한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었기에.... 산동네 공터에 가서 힘들때마다 소리치거나 그냥 실컷 울었던 기억.... 나에게 만큼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의 흔적이다. 동생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혼자 이겨내야 했고, 혼자 생각해야 했던 당시... 그러나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은 나에 대한 눈초리 나로 인해 당해야 했을 고통을 잘 알고 해결책으로 나를 서울로 보냈다. 조금 낳아질거라고... 같이 보낸 시간이 그래서 짧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버려져야 했던 나... 그러나 버려진 나 때문에 또 혼자 근심에 사로잡혀야 했던 어머니인 박경옥이라는 여성이 사회 아니 내가 살던 마을에서 겪어야 했을 고통을 지금 머리가 큰 지금 조금은 이해가 간다. 늘 왜 재혼했냐고 어머니에게 화를 내야 했던 나(잘 알면서도 난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아니 기대고 싶었다. 주저 앉고 싶었다. 나 힘들다고 지켜달라고...)...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안주할 수 없음을 잘 알면서 그게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응어리요 상처였다. 치유할 수 없던.... 집에 있을 수 없어 멀리 유배되듯 떠날 수 밖에 없었고 내가 떠나야 문제가 해결 될 수 밖에 없었다. 어린 난 그렇게 쫓겨나듯 중학교를 서울로 보내져야 했던 나... 받아들였지만 떠나기는 죽어도 싫었지만 그게 해결책이기에 난 떠났다 아니 ㅤㅉㅗㅈ겨나듯 어린 내가 나와야 했다. 배다른 형과 누나가 있던 공간으로... 친구들과 떨어지기 싫었고 어머니와 살고 싶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그렇게 나를 내칠 수 밖에 없었다. 가슴속 깊이 각인된 상처... 난 이해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는 말만 듣고 살았다. 적과 증오 대상이 왜 나에게도 없겠는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왜 살면서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게 뭐 사회적 현상을 해결시켜 주는던가? 그렇듯 난 스스로 달래야 했고, 좋은게 좋은 것이지 하면서 살았다. 사회적 관계에서 철저히 이 사안은 감추어야 할 대상이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아니기에 적개심이라는 것을 쉽사리 들어낸다. 그러나 그건 당사자인 그들이 처한 상황을 조금 빗겨 나있다. 성이 달라서 고통 받는 것은 별로 없다. 쪽팔림 이외에는 ....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이 난 그냥 따라가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버려지지 않기위해 졸인가슴 쓸어내면서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혼이라는 가정이 겪는 시선에 대해서는 조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어머니가 미치도록 미웠다. 달동네....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하늘 바라보면서 울었던 기억... 어머니가 보고 싶었지만 그래도 보고 싶어도 사회적 시선 나로 인해 당해야 할 그 모든 수모들.... 동네에서 사람들이 싸움하면 근본도 없는 놈이라는 소리를 뼈속 사무치도록 듣기 싫었다. 어머니가 동네 사람들과 사소한 말타툼 또는 싸움을 하게 되면 들어야 했던 어린 나에게 아직도 기억되는 화낙녀라는 소리... 그 뜻 어릴땐 몰랐지만 지금 되새기면 소름이 끼친다. 위로 변명은 그곳에 없다. 적도 없다. 그곳에선 살아가기 위해 아니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보호본능만이 감돈다. 상처를 나눌 대상이 없다. 사회라는 통념과 장막이 그렇게 그물망 처럼 촘촘히 엮여 있다.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기대라는 위안....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낳아지겠지 라는 희망만이 존재하였을 뿐이다. 쉽지 않은 문제이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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