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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나무야나무야] 새삶의 문턱에선 당신에게.....

  • 등록일
    2010/03/16 16:31
  • 수정일
    2010/03/16 16:31

새삶의 문턱에선 당신에게.....

예비합격자 명단에서 당신의 이름을 보고 축하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여 왔습니다.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에서 수능점수 100점으로 예비합격한 당신을 축하할 자신이 내게도 없었습니다. 지금쯤 당신은 어느 대학의 합격자가 되어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있거나 아니면 기술학원에 등록을 해두었는지도 모릅니다만 어쨋든 나는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축하의 편지를 씁니다. 이제 대학입시라는 우리시대의 잔혹한 통과의례를 일단 마쳤기 때문입니다.

나와 같이 징역살이를 한 노인 목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노인이 내게 무얼 설명하면서 땅바닥에 집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에서 내가 받은 충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 집을 그리는 순서가 판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의 순서와는 거꾸로였습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붕부터 그려온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웠습니다. 나의 서가(書架)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낭패감이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책을 읽다가‘건축’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한동안 그 노인의 얼굴을 상기합니다.

차치리(且置履)라는 사람이 어느날 장에 신발을 사러 가기 위하여 발의 크기를 본으로 떴습니다. 이를테면 종이 위에 발을 올려 놓고 발의 윤곽을 그렸습니다. 한자(漢字)로 그것을 탁(度)이라 합니다. 그러나 막상 그가 장에 갈 때는 깜박 잊고 탁을 집에 두고 갔습니다. 신발가게 앞에 와서야 탁을 집에다 두고 온 것을 깨닫고는 탁을 가지러 집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제법 먼 길을 되돌아가서 탁을 가지고 다시 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장이 파하고 난 뒤였습니다. 그 사연을 듣고는 사람들이 말했습니다.“탁을 가지러 집까지 갈 필요가 어디 있소. 당신의 발로 신어보면 될 일이 아니요”차치리가 대답했습니다.“아무려면 발이 탁만큼 정확하겠습니까?”

주춧돌부터 집을 그리던 그 노인이 발로 신어보고 신발을 사는 사람이라면 나는 탁을 가지러 집으로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탁(度)과 족(足). 교실과 공장. 종이와 망치. 의상(衣裳)과 사람. 화폐와 물건. 임금과 노동력. 이론과 실천……. 이러한 것들이 뒤바뀌어 있는 우리의 사고(思考)를 다시 한번 반성케 하는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위로’는 진정한 애정이 아닙니다. 위로는 그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확인케 함으로써 다시 한 번 좌절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이 대학의 강의실에서 이 편지를 읽든 아니면 어느 공장의 작업대 옆에서 읽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어느 곳에 있건 탁이 아닌 발을 상대하고 있다면 상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당신이 사회의 현장에 있다면 당신은 당신의 살아 있는 발로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대학의 교정에 있다면 당신은 더 많은 발을 깨닫을 수 있는 곳에 서있는 것입니다. 대학은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종속의 땅’이기도 하지만 그 연쇄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가능성의 땅’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동안 못했던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겠다고 했습니다. 대학이 안겨줄 자유와 낭만에 대한 당신의 꿈을 모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얽매여 있던 당신의 질곡을 모르지 않습니다. 당신은 지금 그러한 꿈이 사라졌다고 실망하고 있지나 않은 지 걱정됩니다.

그러나‘자유와 낭만’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자유와 낭만은‘관계의 건설공간’이란 말을 나는 좋아합니다. 우리들이 맺는 인간관계의 넓이가 곧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낭만의 크기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우리들의 일상(日常)에 내장되어 있는‘안이한 연루(連累)’를 결별하고 사회와 역사와 미래를 보듬는 너른 품을 키우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그동안 만들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게 해준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만나는 연대의 장소입니다. 우리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발의 임자를 깨닫게 하는‘교실’입니다. 만약 당신이 대학이 아닌 다른 현장에 있다면 더 쉽게 그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수능시험성적 100점은 그야 말로 만점인 100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올 해 당신과 함께 고등학교를 졸업한 67만 5천명의 평균점수입니다. 당신은 친구들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중간은 풍요한 자리입니다. 수많은 곳, 수 많은 사람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 보다 더 큰 자유와 낭만은 없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늦은 밤 어두운 골목길을 더듬다가 넓고 밝은 길로 나오면서 기뻐하였습니다. 아무리 작은 실개천도 이윽고 강을 만나고 드디어 바다를 만나는 진리를 감사하였습니다. 주춧돌에서부터 집을 그리는 사람들의 견고한 믿음입니다. 당신이 비록 지금은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발로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한 언젠가는 넓은 길, 넓은 바다를 만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드높은 삶을‘예비’하는 진정한‘합격자’가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의 어디쯤에서 당신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신영복 선생 나무야 나무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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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칼럼] 노동의 추억

  • 등록일
    2010/03/16 16:27
  • 수정일
    2010/03/16 16:27

노동의 추억

“군대 삼 년을 마치면 / 십 년은 군대시절 얘기를 한다 / 몇 달 외국 여행이라도 다녀왔다면 / 허구헌 날 입만 열었다 하면 그놈의 얘기다 / 생각해 보라 그런데 / 우리에게 노동의 추억이 있는가 / 십 년 아니 삼십 년 노동을 해도 / 누가 그것을 그리운 추억이라 하는가 / 밥과 희망이며 목숨의 진한 흔적들이 / 어째서 아련히 돌아 보이는 추억의 누더기도 못되는가

백무산 시인은 「노동의 추억」이란 시에서 노동이 우리 삶에서 왜 자랑하고 싶은 추억이 되지 못하는지를 이렇게 아프게 묻고 있다. 어째서 노동이 묻어버리고 싶은 아픔이 되고, 비굴한 치부가 되고 원한이 되는지 묻고 있다. 백무산 시인의 말대로 거기서 밥이 나오는 게 노동이고, 거기서 삶의 희망을 만나야 하는 게 노동이다. 노동도 군대의 추억이나 여행체험처럼 힘들었지만 한 인간이 성숙으로 가는 과정이었다고 추억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일하지 않고 치부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문제이지 노동한 만큼의 대가를 받으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삶은 하나도 부끄러울 게 없는 법이다. 문제는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서도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사회구조와 노동 그 자체를 천시하는 태도에 있다. 그것을 바로잡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자 몸부림쳐 온 것이 노동운동이다.

산업혁명 이후의 영국은 농촌노동력이 도시의 공업지대로 이동하고 농업노동자들이 임금노동자로 전락하면서 주거환경과 작업환경은 열악하고 열두 시간에서 열여섯 시간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허덕이며 어린이들까지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1870년대와 1880년대 미국에서는 철도종업원과 탄광의 광부들이 대규모 파업을 일으켜 무장충돌로 비화하기도 했다. 이때 미국노동자들이 요구한 핵심 중의 하나가 하루 여덟 시간 노동이었다. 1886년 5월 시카고에서 벌어진 파업노동자에 대한 가혹한 탄압은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 노동운동사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데 이 시카고 파업을 기려 5월 1일을 메이데이 May Day로 선포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하루 여덟 시간 근무도 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싸워서 얻어 낸 것이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들의 단결권, 교섭권, 저항권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의의 기본 원칙인 자유ㆍ보통ㆍ평등선거권, 여성의 권리, 사상과 양심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도 노동자들이 한 세기 이상 싸우면서 얻어낸 것들이다. 이것들 중 어느 하나도 그냥 주어진 것은 없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가 갈수록 빈부격차와 불평등과 양극화의 골을 깊게 하고 청년실업과 고용불안정과 비정규직 양산 등 사회불안과 생존위기를 심화시켜 간다면 노동운동은 계속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의 지배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낳고 노동이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소외를 부추기며, 국가의 장벽을 넘나드는 초국적 자본의 흐름이 환경을 파괴하고 전쟁도 불사하려 한다면 노동의 저항은 인간의 당연한 권리인 것이다.

어떠한 조건 속에서도 인간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인 노동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의료혜택을 받을 권리,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등을 지키려 할 것이다. 분배와 복지와 평등을 위해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동운동이 백무산 시인이 말한 대로 어째서 ‘성숙의 기쁨’과 ‘전진하는 역사의 발자국 소리’가 못 되겠는가. 오늘이 메이데이다. 노동의 추억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가장 값진 추억이어야 한다.    


2006년 04월 30일  중부매일 칼럼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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