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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넘어선 의제를 남기자.

  • 등록일
    2005/04/02 00:58
  • 수정일
    2005/04/02 00:58
* 이 글은 미류님의 ["그" 포스터에 열받은 "둘째" 이유에 대한 의견]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의미심장한 글이다. 그러나 우리는 본래 하나이다. 우리가 떨어지고 싶어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자본이라는 것이 IMF경제위기(정확히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구조조정... 아니 정리해고라는 용어를 들이밀며 노동자들이 회사 경영에 있어서 돈을 많이 잡아 먹는 도구이기에 회사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고 선전전을 하였다. 그 당시 김대중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호도한다. 민주화 투쟁을 하였던 나를 믿고 경제회생의 길을 함께 해쳐가자고 그러나 그 믿음은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의 불안정성을 낳았다.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서 투쟁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지만 단사에 있어서 정리해고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이 단사에 도사리고 있는 사안이기에 쉽게 연대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힘든 용어로 전락하였다. 우리는 본디 하나인데 둘로 갈라 지게 한 요인....그러나 우리가 부정하고 투쟁하고자 하였지만 이 사안은 너무 광범위하게 너무 폭넓게 노동계에 침투하였다. 우리가 인식하는 이상으로 확대되고 그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이라는 바이러스는 다양성을 갖지 못하고 한 계급에게 촛점을 맞추게 된다. 노동자라는 대상.... 회사 정상화를 위해서는 불가피하는 논리... 정규직이 빠져나간 자리는 비정규직이 판을 치고 그 비정규직이 차지한 자리에서는 노-노 갈등이라는 불가피한 대립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비정규직을 논하기 전... 고용안정이라는 단어는 엿장수에게 팔려갔다. 싼값에 경총과 전경련에 넘어갔다. 정부는 그 고용안정이라는 고물을 경총과 전경련에게 무상임대해 주고 그 임대료를 갈고 닦아 노동자들 스스로가 노-노갈등이라는 것을 한편 부추기며.... 미안한 부분에 대해서는 근로감독관을 통하여 해소하기 위한 방편을 만든다. 이 문제에 있어서의 노-노갈등은 본질이 아니다. 정권이 자본이 어떻게 이를 이용하고 있는가 이다. 확대 비정규직을 증대하여야 한다는 말은 설득이 없다. 그들은 이 비정규직과 정규직이라는 하나된 노동자의 동일성을 노-노라는 갈등을 조장하여... 서로가 상처를 통해 망가트리고, 역사를 뒤로 돌리려는 처사임을 이미 여러사건에서 볼 수 있지 않았던가... 문제는 난 무수한 담론보다는 문제를 명확히 지적하되... 비정규직/정규직이라는 이분 구도가 갖은 노동운동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이를 통해 비정규직/정규직 문제라는 사안이 서로 동떨어지지 않은... 사안이고, 잠재적 비정규직인 정규직의 투쟁을 독려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 본다. 문제는 앞으로도 확산되고... 정규직은 이미 비정규직으로 가기위한 수순을 밝고 있다는것을 우리는 착목하여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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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나의 이야기

  • 등록일
    2005/04/01 10:43
  • 수정일
    2005/04/01 10:43
다시금 써내려 간다. 수정을 거듭한다. 여성의 문제에 대해서 난 모른. 그러나 난 여성이 당해야 할 고통 그리고 겪어야 할 어려움에 대해서는 내 가족 아니 우리 어머니를 통해서 들쳐 보았다. 늘 나 때문에 가슴 어려 있는 한... 내가 서울에 올 수 밖에 없는 사연 때문에 한이라는 응어리를 지니고 살았던 우리 어머니 아니 인간 박경옥이라는 여성을 통해 비춰 보았다. 지금은 영면이라는 편안한 안식에 들어갔지만... 내 조그마한 가슴에 박힌 한은 가져가지도 못하고... 내가 서울에 와야 했던 것... 지금은 호주제다 뭐 그렇지만 난 재혼녀의 아들... 그리고 여성이며, 어머니인 그녀가 당했어야 할 고통 나로서는 감당이 안된다. 다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사냐고 물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난 안다 하나를 어머니는 불안했다. 혼자 살수 있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기대고 싶었던 것이 그렇게 관계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 또한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었기에.... 산동네 공터에 가서 힘들때마다 소리치거나 그냥 실컷 울었던 기억.... 나에게 만큼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의 흔적이다. 동생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혼자 이겨내야 했고, 혼자 생각해야 했던 당시... 그러나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은 나에 대한 눈초리 나로 인해 당해야 했을 고통을 잘 알고 해결책으로 나를 서울로 보냈다. 조금 낳아질거라고... 같이 보낸 시간이 그래서 짧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버려져야 했던 나... 그러나 버려진 나 때문에 또 혼자 근심에 사로잡혀야 했던 어머니인 박경옥이라는 여성이 사회 아니 내가 살던 마을에서 겪어야 했을 고통을 지금 머리가 큰 지금 조금은 이해가 간다. 늘 왜 재혼했냐고 어머니에게 화를 내야 했던 나(잘 알면서도 난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아니 기대고 싶었다. 주저 앉고 싶었다. 나 힘들다고 지켜달라고...)...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안주할 수 없음을 잘 알면서 그게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응어리요 상처였다. 치유할 수 없던.... 집에 있을 수 없어 멀리 유배되듯 떠날 수 밖에 없었고 내가 떠나야 문제가 해결 될 수 밖에 없었다. 어린 난 그렇게 쫓겨나듯 중학교를 서울로 보내져야 했던 나... 받아들였지만 떠나기는 죽어도 싫었지만 그게 해결책이기에 난 떠났다 아니 ㅤㅉㅗㅈ겨나듯 어린 내가 나와야 했다. 배다른 형과 누나가 있던 공간으로... 친구들과 떨어지기 싫었고 어머니와 살고 싶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그렇게 나를 내칠 수 밖에 없었다. 가슴속 깊이 각인된 상처... 난 이해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는 말만 듣고 살았다. 적과 증오 대상이 왜 나에게도 없겠는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왜 살면서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게 뭐 사회적 현상을 해결시켜 주는던가? 그렇듯 난 스스로 달래야 했고, 좋은게 좋은 것이지 하면서 살았다. 사회적 관계에서 철저히 이 사안은 감추어야 할 대상이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아니기에 적개심이라는 것을 쉽사리 들어낸다. 그러나 그건 당사자인 그들이 처한 상황을 조금 빗겨 나있다. 성이 달라서 고통 받는 것은 별로 없다. 쪽팔림 이외에는 ....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이 난 그냥 따라가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버려지지 않기위해 졸인가슴 쓸어내면서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혼이라는 가정이 겪는 시선에 대해서는 조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어머니가 미치도록 미웠다. 달동네....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하늘 바라보면서 울었던 기억... 어머니가 보고 싶었지만 그래도 보고 싶어도 사회적 시선 나로 인해 당해야 할 그 모든 수모들.... 동네에서 사람들이 싸움하면 근본도 없는 놈이라는 소리를 뼈속 사무치도록 듣기 싫었다. 어머니가 동네 사람들과 사소한 말타툼 또는 싸움을 하게 되면 들어야 했던 어린 나에게 아직도 기억되는 화낙녀라는 소리... 그 뜻 어릴땐 몰랐지만 지금 되새기면 소름이 끼친다. 위로 변명은 그곳에 없다. 적도 없다. 그곳에선 살아가기 위해 아니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보호본능만이 감돈다. 상처를 나눌 대상이 없다. 사회라는 통념과 장막이 그렇게 그물망 처럼 촘촘히 엮여 있다.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기대라는 위안....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낳아지겠지 라는 희망만이 존재하였을 뿐이다. 쉽지 않은 문제이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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