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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주는 즐거움

  • 등록일
    2004/08/20 01:47
  • 수정일
    2004/08/20 01:47

집이 주는 즐거움은 휴식과 재충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일은 하지 않지만, 사무실 공간과 집이 갖는 차별성은 분명이 있습니다.

집은 나만의 공간이며,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모든일을 관장할 수 있는 공간(가사노동이 주는 버거움과 먹거리를 직접 만들어야 하는 괴로움은 있지만, 요즘 달걀 간장조림을 해놔서 매일 달걀을 3에 밥 먹는 즐거움도 꽤 좋구요)이며, 하루의 1/4를 차지하는 하루일과를 구분하는 잠을 청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다른분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집에 들어오면 나른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나른하고 포근한 기분이 드는 나만의 공간인 나의 집이 좋답니다. 창밖으로 불어오는 산바람이 온몸을 때리며 시원하게 내몸을 감싸는 기분도 좋답니다.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내집을 난 무지무지 좋아한답니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요. 그래서 집이 주는 즐거움에 전 늘 밤의 유희를 즐긴답니다. 돈이 약간은 들어가지만.... 다음달 걱정이다. 상근비 받으면 이번달 쓴 카드값 메꾸기 버겁겠구나.... 그래보았자 한달에 술값 10만원 안팍이니까.... 마트에서 술을 사다놓으니 술집 갈 필요도 없어 좋습니다. 다른 구멍가게 보다 싸니까. 돈만 있다면 구멍가게에 가서 술과 반찬거리를 사고 싶지만 한달간 살다보면 마트보다 구멍가게 이용하였을 경우 대략 같은 품목을 산다면 4-5만원 차이가 납니다. 재래시장은 인간냄새가 그리워 좋종 가지만 그것도 마트보다 물가가 비싸서 그냥 돌아서곤 합니다. 자본의 독점적 종속화에 저도 길들여져 가나 봅니다.



비오는 날 음악을 크게 켜놓고 흘러나오는 노래소리와 비 소리를 섞어들면서 술(술을 많이 퍼마셔보았지만 술맛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다만 독한것은 향이 좋고, 소주는 알코올의 부드러움 정도 빼놓고는 술맛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난 철저히 안주발때문에 술을 즐겨먹습니다. 안주가 부실하면 술 맛이 나지 않음.)한잔을 하고 얼큰히 취하여 기분을 내는가 하면, 그냥 날씨 좋은 날은 불광천 산책로를 자전거로 달려 한강변에 가거나 걸어서 월드컵경기장에 찾아가 사람 구경을 합니다. 가족단위로 나오는 이.... 연인들.... 그리고 불량스러운 녀석들.... 그런데 예전엔 불량스러운 녀석들이 멋있었는데.... 요즘들어 불량스러운 아이들이 너무 어려보이더군요. 멋있어 보이기 보다는 요즘은 안스러워 죽겠습니다. 찾아가서 말이나 해줄까 해보지만 말 잘못했다 맞을까봐 근처에 가는 것 조차 두렵더군요... 무시무시해서 말도 못붙인 답니다. 나도 나이가 먹어가는 증거인가요....

이렇듯 집이 주는 즐거움은 내 공간을 벗어나 집 반경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퇴근하는... 정말 간만이다, 비가 몰아쳐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요새 하지 못하였는데.... . 날씨가 바람가 시원하고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한강변에 웬 연인들이 그렇게 많더군요.... 아우~~~~ 이럴땐 정말 결혼하고 싶다는 충동이 듭니다. 그러나 어쩌랴 결혼은 미친 짖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는 내가 곤조 하나와 독수공방이 주는 경제적 도음 그리고 결혼이라는 족쇄가 주는 부담감때문에 여기까지 버터왔는데... 그 부러움으로 나의 신조와 신념이 무너져서야.... 그런데 늑대의 본성은 속이지 못하나 봅니다. 이글거리는 피의 뜨거움.... 마냥 그 남자녀석이 부럽다. 여자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알퐁스 도테의 별에서 목동이 스테파네트를 보고 한말처럼,,,, 일반적인 남성(정확히 말해서 이성애자) 느끼는 감정은 어쩔 수 없더라구요.... 안 느껴지면 이상하겠죠...@.@

 

이렇듯이 내가 이동하는 경로는 집이라는 곳이 규정해 주기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좋아합니다. 비록 허름하고 낡은 집이지만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왕궁입니다, 세상 그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궁전에서 전 오늘도 불로그 질도 하고 담배도 꼬나물고 술한잔 옆에 놓고 음악들어가면서 하나도 영양가 없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이놈의 술잔만 들으면 왜 블로그에 들어와서 글을 쓰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 

 

오타를 방지하기 위해서 술 먹고 글을 쓰지 않겠노라 다짐해 보았지만, 안되는군요. 충동에 대한 절제가 필요한데 잘 안됩니다. 뭐 맨정신으로 글을 써도 오타가 나와 글을 읽다가 내가 당황스러울때가 많은데,,,,,, 그까짖 술먹고 쓴다고 대수겠습니까.... 가뜩이나 손가락이 두꺼운데 노트북 키보드로 이글을 쓸라니 허걱입니다.... 나의 오타의 끝은 어디일까,... 나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오타가 많은 세상에 살고싶습니다. 법을 하나 만들까요 모든 글에 오타가 있도록요... 그건 나만의 상상이겠지만요....

 

집은 나에게 안식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모든 일을 나혼자 할 수 있고, 간섭과 중압감이 없는곳 그곳이 나만의 공간입니다. 간혹 반찬거리 만들고, 집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이 있어서 그렇지만 혼자 지낸말 하답니다. 혼자 사는데 따르는 가사노동은 집이 주는 즐거움에 비해 그리 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청소하는 것도 좋아하고, 음식하는 것도 좋아하고, 빨래하는 것도 좋아한답니다. 단 나를 위한 일을 하였을 경우에만.... 말입니다.

 

오늘도 술한잔에 힘을 빌어서 또 하나도 영양가 없는 잡소리를 지껄여 보았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집이 나만의 공간이 듯이 이 블로그도 사이버상의 나만의 공간이니까요...집에 있을땐 누군가에게 들킬 일이 없지만 여기는 좀 들키지만 뭐 어떻습니까... 내가 사는 이야기 틀킬라고 이공간 만들었는데.... 하나도 사람이 않찮으면 뭐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공간으로도 전 좋구요.... 나를 돌아보는 공간으로 이 공간 만들어 볼려구요....왜냐구요 예전 통신공간에 올렸던 글을 지금 읽으면 그때 그랬구나 하는 나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에 이 짖거리 본격적으로 할려구 그럽니다. 이전에는 남의 공간에 기생하였지만, 이제 내집이 만들어졌으니까..... 집으로 따지면 집 임대했으니까 잘 살아볼렵니다.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간장 오타맨도 잘살아 보세.....

 

간장 오타맨이....

 

술이 받는 군요.... 술이나 본격적으로 먹어 볼랍니다. 그리고 요즘 코어스 노래를 듣는데 참 좋더군요.... 특히 Summur Sunshine 함 들어보셔요.... 전 술이나 먹고 잠 청할랍니다.

안녕 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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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等(평등)의 無等山(무등산)

  • 등록일
    2004/08/19 23:43
  • 수정일
    2004/08/19 23:43

처음으로 무등산을 찾아 간 날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이었습니다. 빙설로 덮힌 산행을 포기하고 다만 바라보기만 하려고 했지만 무등산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두번째 무등산을 찾은 것은 오월의 새벽이었습니다. 칠흑의 어둠 속에 무등산은 잠겨 있었습니다. 어두운 산길을 부지런히 오르다 망월동묘역의 참배일정에 쫓기어 입석대 아래에서 내려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쉬워하는 나에게 당신은 망월묘역에 참배하는 것이 곧 무등산에 오르는 것이라고 달랬습니다. 무등산을 무덤산이라고 불렀다고 했습니다.

 




다시 무등산을 찾은 것은 이번 장마속의 아침입니다. 다행히 비는 피하였지만 이번에는 짙은 안개가 무등산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어쨌건 무등산은 거기 있을 것이었습니다. 출입금지구역을 가로질러서 무등의 모습이 가장 잘보이는 곳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지척에 무등을 묻어 두고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해가 뜨고 안개가 걷히면서 무등산이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적어도 내게는 빙설과 칠흑의 저편에서 그리고 안개속에서 걸어나오는 참으로 어려운 산이었습니다. 해발 1천 2백미터에 가까운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그 높이를 조금도 드러내지 않는 산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것은 능선(稜線)이었습니다. 무등의 능선은 아무 욕심없이 하늘에 그은 한가닥 선이었습니다. 완만하면서도 무덤덤한 능선은 무언(無言)의 메시지였습니다. 당신의 말처럼 무등산은 최고의 산이 아니라 무등(無等)의 산,‘평등(平等)의 산’이었습니다. 하늘(天)과 땅(地)과 사람(人)이 평등하고 산과 들판이 평등하고 나무와 바위가 평등하다는 자연의 이치를 무등산은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무등산은 하늘을 향하는 산이 아니라 땅을 거두는 산이었습니다. 자신을 하늘에 높이 솟구쳐 올리는 산이 아니라 기쁨도 아픔도 모두 안으로 간직하는 산이었습니다. 스스로 대지(大地)가 됨으로써 아픈 역사를 그윽히 안고 있는 산이었습니다.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을 타고 걸어오다 잠시 멈추어 너른 벌판을 만들어놓고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는 산이 무등산입니다. 삼한(三韓)에서부터 백제, 후백제 그리고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그 긴 세월의 우여곡절속에서 모든 좌절한 사람들의 한(恨)을 갈무리하고 있는 역사의 덩어리였습니다. 과연 무등산 자락에는 곳곳에 사림(士林)의 고고한 뜻이 묻혀 있고 우국지사의 울분이 묻혀 있는가하면 유랑의 시인이 한많은 그의 생을 이곳에서 거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한(恨)’이 한으로 응어리져 있지 않고 어느것이나 빛나는 예술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적 정화(精華)는 역사의 격동기에 인내천의 평등사상으로, 식민지의 해방사상으로 그리고 군사독재의 총검에 맞서는 민주의 실체가 되어 역사무대의 한복판으로 걸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무등산의 너른 품이고 무등산의 무게입니다.

 

당신은 무등산에 묻힌 역사를 읽을 것이 아니라 우리시대의 무등산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다시 짙은 안개속으로 사라져버린 무등산을 마주하고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무등산은 이미 그 이름으로 우리에게 그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평등의 산’. 이것이 우리가 이끌어내야 하는 무등산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평등은 단지‘차별의 철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등이야말로‘자유의 최고치(最高値)’이기 때문입니다.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무지와 질병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오랜 역사를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과 방향에 있어서 우리는 실패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더 많은 자유는 언제나 더 큰 구속과 불평등을 동반함으로써 자유의 의미를 회의하게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소비하고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소유해야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예술과 문화소비마저 사회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을뿐 아니라 욕구 그 자체를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자본운동속에서 우리의 자유는 언제나 더 큰 욕구앞에서 목마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발전의 원리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유와 행복의 원리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그런 점에서 평등이 자유의 최고치라는 당신의 말을 믿습니다. 생각하면 이것은‘타인의 행복’을 자신의‘행복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평범한 양식(良識)에 다름아닌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등은 자유의 실체이며 내용입니다. 자유는 양적 접근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일뿐입니다.

 

당신은 무등산의 완만한 능선이 불평등에 대한 역설이고 풍자라고 하였습니다.‘미운 놈에게 떡 한개 더 주라’는 속담을 당신은 기만이라고 했습니다. 떡 한 개를 더 주는 것이 결코 + 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누적되어온 마이너스의 해소에도 못미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등산을 작게 읽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무등산이 안고 있는 것이 좌절의 한이 아님은 물론이고 무등산이 들려주는 무언의 메시지 역시 떡 한 개의 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불평등구조 그 자체를 해소하지 않는 한 그 곳이 어디이건 마이너스는 계속 누적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무등산이 결코 하늘에 치솟지 않고 그 덤덤하고 완만한 능선을 그어보이는 이유를 생각하여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그야말로 빛고을의 무등입니다. 대명무사조(大明無私照). 햇빛은 결코 사사롭게 비추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결국 짙은 안개속에 무등산을 묻어두고 내려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무등산을 뒤돌아보았을 때였습니다. 무등산은 안개속에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무등산은 어느새 자욱한 안개속에서 빠져나와 백마능선을 일으켜 흰 갈기 바람에 날리며 지리산을 지나 백두대간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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