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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 등록일
    2004/08/07 16:37
  • 수정일
    2004/08/07 16:37

노동운동에 꿈을 갖고 학교를 졸업하고 노동단체 활동을 한지도 언 6년이란 시간이 흘러갑니다.

처음 인천이란 동네에서 단체와 현장일을 해보았지만 무르익지 않은 인식의 부재로 현장생활과 노동단체 활동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뜻을 접었고, 지금 활동을 지향할 수 있게 만든 단체에 머문지도 언 2년하고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일 한것도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시간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서울에 위치한 노동넷이라는 단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나 풀리지 않는 갈증과도 같은 고민만 날로 증폭되어만 가고 있습니다.(투쟁은 무형의 산물이라 믿었고, 노동자의 헤게모니에 의해 정세는 규정되어지고 투쟁지형은 만들어진다는 말이 지금도 유효한가라는 의구심이 들더군요.)
 다름아닌 활동의 방식에 대한 저의 부재가 가져다준 또다른 문제점이죠.
 
 학교때 생각한 사고는 활동이라는 공간과 잘 접목이 되지 않더군요.(남들은 학생운동을 운동에 속하지도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 이유는 부모님으로 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으면서 생존의 위협에 자유롭고 또한 학생이라는 인털리겐챠의 특성을 들어가며 말하더군요... 치열함, 열정, 투쟁은 있으나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좌절하는 학생운동에 대한 따끔한 질책이라 믿습니다. 학생운동이라는 말 자체의 궂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80년대의 학생운동 복원에 촛점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운동이라는 것은 활동가라는 자임의 오만에서  나오는 실천이 아닌 지향성이라는 과정의 단련속의 성숙이 아닐까 개인적 생각을 해봅니다. 활동가는 많지만 운동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적다는 개인적 생각을 해봅니다.)
 
 정보통신운동을 하면서 드는 딜레마는 활동을 지향하는데 많은 의문을 저에게 던져주었습니다.
 표현의 자유운동을 하면서 정말 산전수전 수중전을 겪고 다양한 방식의 사업들을 펼쳤으나, 결과는 냉혹했습니다. 그러나 더욱이 문제시 되어졌던 것은 법안이 통과가 정말 쉽다는 것이고,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고 대중적 운동으로 활동을 하고자 공대위를 구성하였지만, 이 문제는 역시 해결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해야 할지... 뭐라 할말이 없습니다. 정확히 초기에 비해 결합도가 낮아진 저로서는 무어라 말 할 자격도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이를 위해 고전분투한 분들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저는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업습니다. 그리고 공대위 같은 느슨한 운동체는 시기에 의해 만들어지는 비상설투쟁체이기에 이러한 운동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개인적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유의 준거는 저는 우리의 운동 이 언제부터 대중적이고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매너리즘과 대리주의 빠져 운동보다는 공대위 안의 힘의 역관계에 의해 공대위 활동이  파행되어지고 있기에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인터넷공대위가 이렇게 운영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정말 저를 뺀 나머지 운영위원과  운영위원장님의 헌신적 활동이 있었기에 아직도 투쟁은 유효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후 활동을 하더라도 공대위 같은 방식의 활동은 대중화시키는데 결코 유효한 전술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올해 7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이 난 전기통신사업법 53조 개정안이 정통부의 국회로비로 통과되었다라는 글귀, 헌신적으로 활동을 진행하던 한 활동가의 이야기를 통해 정말 무기력함과 투쟁이라는 말은 말처럼 쉽지않다는 것을 또다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하기에 누가 겆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어렵다라는 말과 투쟁을 함께하자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하지 못하였습니다.   같이하지 못한 죄스러움과 동지를 혼자 그 힘든 역정에 내몰았다는 자책감에 그냥 말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저에게만 벌어지는 현실이 아니라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투쟁은 무형의 창조물이라는 의미를 다시금 알 수 있었습니다.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의원 로비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활동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무기력함이 들더군요. 비판의 대상이 칼자루를 들고  있기에 그들을 설득하여야 한다라는 말에서 서글픔 또한 들지만 지금 처한 현실 조건이기에 더욱 냉혹하게 다가옵니다. 법이 만들어지면 폐지하기 힘들고, 그 법이 우리를 옥죄오는 것을 막기위한 최소한의 방법임을 알고 있지만... 우리의 선택이 아닌 최선의 수단이 국회로비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만 듭니다.
 시민운동 다양한 운동단체들이 늘어났지만 운동의 진일보가 아닌 퇴보가 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자들은 다양한 영역에 운동이 진행되고 있어  시민단체들의 사회적 참여와 시민권력이 형성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많지만 그 다양성에 의거 분열과 반목을 어떻게 설명할지... 다양성이라는 것은 시민이라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말장난에 불과하지 않을지...
 
 얼마지나지 않아 노동운동 또한 국회와의 로비가 이루어질까? 과연 노동운동 정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막연하지만 엄혹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저의 무르익지 않은 인식은 위의 국회로비, 공대위, 대중운동의 매너리즘이 만연 되어지고 지속된다는 미래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제가 인식으로 부재로 상황을 판단을 잘 못 할 수 있으나, 전술을 취함에 있어   저는 이후 운동에 미칠 파장력과 원칙이라는 기조에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개인적 생각을 갖게 되더군요. 그래야 저또한 운동이 존속됨속에 운동을 삶으로써 지향할 수 있으니까요... 요즘 집앞의 냇가에 나있는 길을 자주걸으며... 무서운 상상을 해 봅니다. 운동이 없어진다... 일본의 극우파 대두... 운동권의 시민세력화 등등.. 그냥 엄울한 상상만을 해봅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운동의 주제이고, 주체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지 않고 지도와 피지도의  수직적 관계설정... 대중과 활동가라는 이중적 잣대의 태도는 또다른 대중과의 괴리만을 증폭시킬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말이 떠오르더군요.
 관계의 최고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이라고, 과연 우리는 "입장의 동일함"을 획득하면서 운동이라는 일상적 행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간장 오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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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전집中 중등학생들에게...

  • 등록일
    2004/08/07 16:22
  • 수정일
    2004/08/07 16:22
  우리는 학생 여러분의 정력적인 창의력을 진심으로 환영하면서 다음과 같은 동지적 충고를 드리려고 합니다. 학습하고, 자기자신을 확신으로 가득찬, 꿋꿋하고 견고한 사회민주주의자로 단련시키는 것을 여러분 조직의 주요목적으로 삼도록 노력하십시오. 이 대단히 중요하고  필요한 준비활동을 직접적인 실천활동과 가능한 엄밀하게 구별 하십시오.
 
  야전군에 입대할 때에는(입대 이전이라도) 여러분의 사업을 홀로 시작하지 않도록, 지금까지 해온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거듭 다시 시작하기 보다는 지방, 또는 전러시아 사회민주주의 조직들과 가장 긴밀한(그리고 가장 비밀스런) 연계를 갖도록 노력하여, 대열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단번에 확보하고 운동을 추진하여 보다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십시오.
 
                                                             [ 이스크라 ]  제 9호, 1902. 12. 1
                                                                                             [전집] 제 6권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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