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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의 정치공학과 가우크 대통령후보

역시 메르켈답다.

정치가 다수를 조직하고 그 중심에 서는 거라면 정치공학 달인 메르켈을 따라 갈 사람이 [아직] 없는 것 같다.

위기의 국면을 항상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유도하는 면에서 탁월하다. 이 탁월함은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유연성에 기초하는 것 같다.  

크리스타안 불프 사임 후 메르켈은 사실 위기의 국면에 처했다. 흑황연정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었다. 흑황붕괴의 개연성 순간은 불과 30분, 아주 짧았지만 말이다.

2009년 총선에서 „감세, 감세, 감세“라는 순수 신자유주의 슬로건으로 14.6%라는 사상 최대득표를 이룩했던 자유민주당(FDP)이 금융위기가 심화됨에도 불구하고 고객관리정치를 일삼아온 결과 신뢰가 폭락하여 현재 연방의회 진출 컷트라인인 5%를 한참 밑도는 2-3%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민주당 수뇌부는 고육지책으로 [연정을 판돈으로 걸고] 메르켈 기민당이 받아들일 수 없는 가우크를 대통령후보로 결정하고 메르켈과 협상에 들어갔다.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흑황붕괴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었다.

요아힘 가우크(Joachim Gauck)는 구동독 인권운동가 출신으로서 이미 2010년 6월 대선에서 야권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대통령 후보로 추대된바 있다.

이건 물론 야권이 여권, 특히 자유민주당의 균열을 유도하려는 정치적 계산이었다. ‚책임 속에 있는 자유’(„Freiheit in Verantwortung“)라는 슬러건 아래 시민사회의 확장과 장려를 최대 안건으로 삼는 가우크를 대통령후보로 추대함으로써 자유민주당을 균열하려는 시도였다. 자유민주당으로 할 것 같으면 지금은 신자유주의 세력이 당권을 장악한 상황이지만 시민사회와 인권에 뿌리를 두는 세력이 시장주의 세력과 균형을 이루었던 정당이다. 야권은 자유민주당의 시민사회 세력을 흔들리게 할 계산이었다. (그리고 사실 흔들렸다. 가우크가 여권과 야권의 표차가 압도적이었음도 불구하고 3차 투표까지 갈 수 있었던 원인이 여기에 있다.)    

자유민주당이 가우크를 대통령후보로 추대하게 된 경위를 보면 우선 자유민주당내 시민사회 세력이 (특히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주 자유민주당지역대표 쿠비키 등이) 가우크를 내걸고 나섰다. (여기서 자유민주당의 당권이 시민사회 세력권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메르켈 기민당은 가우크 후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유 설명은 생략) 근데 범정당회의를 30분 연기하고,  그 30분만에 다시 한번 곡예사를 방불케하는 번복의 묘미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관건은  „책임속에 있는 자유“(Freiheit in Verantwortung)가 얼마나 „사회연대“를 (헤겔적 의미로) 지양하고 금융위기로 폭락한 정치인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는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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