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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금융시장, 그리고 민주주의

금융시장의 횡패에 맞서는 메르켈 정부가 권력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메르켈 정부는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아래 2010.5.22 „안정화메커니즘법“(Stabilisierungsmechanismusgesetz)을 제정하고,  2011.10.9 동법을 개정하여 9명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Sondergremium)가 연방하원의 권한을 대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관련 의회의 권한이 축소된다는 우려와 비판이 정파를 막론하고 제기되었다. 특히 기민당 소속 연방하원의장 람머트(Lammert)의 거센 반발을 받았다.
 
마침내 사민당 소속 연방하원의원 두 명이 연방헌법재판소에 항소하였고 헌재는 2011.10.27 잠정적 권리구제절차(Eilverfahren)에서 연방하원의 권한을 9인-특별위원회에게 양도해서는 안 된다고 가처분하고, 2012.2.27일 판결에서 특별위원회의 권한을 축소시켰다 (예컨대 국채를 제 2시장에서 - 까놓고 말하자면 쓰레기를 돈으로 만드는 시장에서 - 사들이는 것으로).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연방헌법재판소가 특별위원회의 존재사유는 인정했다는데 있다. 즉 „특별한 긴급과 기밀이 요구되는 상황“(in Fällen von besonderer Eilbedürftigkeit und Vertraulichkeit)에서는 연방하원의 권한이 연방하원이 선출하는 몇몇 의원에게 양도될 수 있는 것을 근본적으로 인정한데 있고, 보통 정보기관, 테러 등과 관련해서 이야기되었던 기밀과 긴급이 금융시장정책에 적용된다는데 있다. 은행, 헤지펀드 등이 소유하는 쓰레기 채권을 사들이는 정책을 세우는데 연방하원이 참여하면 기밀이 누설되기 때문에 참여범위를 축소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마치 정보기관을 감독하는 의회통제위원회와 같은 것을 만들고 거기서 이야기된 것을 기밀로 삼아 권력 수뇌부외 아무도 모르게 한다는 것이다.

긴급과 기밀은 권력이 민주주의에 요구되는 투명성과 공개성을 제한할 때 항상 사용하는 말이고 나아가 권력유지의 핵심이기도 하다.

긴급과 기밀이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되었고 권력유지의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했는지 한번 샆펴보자.

타키투스 연대기 1권 6장을 보면 아우구스투스 뒤를 이어 황제자리에 오른 티베리우스가 자신의 안녕을 위해 아우구스투스의 손자 아그리파 포스투무스를 살해하라고 명령한 이야기가 나온다. 티베리우스는 명령을 이행했다고 보고하는 백부장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뚝떼고 원로원에 보고하여 문제해결을 봐야 겠다고 한다. 이에 물적증거로 이와 연루된 쌀루스투스 크리스푸스는 참말을 해도 거짓말을 해도 어떻게든 책임을 뒤집어 쓰게 될 거라고  판단하고 티베리우스의 계모 리비아에게 이렇게 사정한다.

„[아우구스투스] 집안의 기밀, 친근들 사이의 합의, 군인들의 서비스 이 세가지 중 그 어느 하나라도 아무나 다 알게 해서는 안된다.“ (ne arcana domus, ne consilia amicorum, ministeria militum vulgarentur.)

 

[이걸 자본주의하의 민주주의에 적용해 보자면, arcana domus는 자유민주주의가 자본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기밀이 되겠고, concilia amicorum은 신자유주의 정경유착이 되겠고 ministria militum은 신자유주의의 장려로 횡패를 부리는 금융시장의 용병 헤지펀드 정도가 되겠다.]

왜 다 알면 안되나? 사건의 중심에 항상 뭔가 꺼림칙한 게 있고, 정당화 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다 알면 안되겠지. 기밀을 운운하는 건 권력행사를 정당화문제와 상관없는 것으로 만들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긴급은 권력이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개연성을 열어 놓겠다는 것이다.

이건 언제든지 민주주의의 공론장에서 빠져나와 딴 짓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 놓겠다는 말이다.  


참고문헌: Eva Horn, Der geheime Krieg – Verrat, Spionage und moderne Fiktion, Ffm 2007, S. 10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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