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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이 조중동

찌질이의 뜻이 궁금해서 사전을 뒤적거려 봤다. 없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런 말이 나온다.

„찌질이라는 뜻은 다른 사람과 잘 어울려 놀지 못하는 아이를 찌질이 또는 소위 일진회 아이들을 가르키는 말 강자에겐 비굴하고 약자에겐 강한 모습을 하는 아이들“

„강자에겐 비굴하고 약자에겐 강한 모습을 하는 아이들“이란 말이 조중동에 적합한 말인 것 같다.

근데 어디서 이런 자세가 나오지?

사람이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게 되는데, 그러려면 자기자신을 „얼굴에 얼굴을 대하듯이“ 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 철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자기성찰을 배워야 한다. 

자기성찰은 늘 해오던 일이 위기에 빠질 때, 심히 햇갈려 내가 뭔지, 누군지 모르게 될 때 흔히  발생한다. 그러면 자아는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된다. 돌이켜서 뭘 보는가? 자신의 중심에 있는 바탕을 보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다시 한번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더듬어 보고 길을 바꾸는 것을 성찰이라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이걸 회개라고 한다. 길을 바꾼다는 말이다.

조중동에는 이런 성찰이 없다. 지들이 신봉하는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이런저런 기사를 읽어보면 위기의식은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자기성찰은 없다. 왜 그럴까? 처음부터 아예 자기바탕이 없고 권력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나 기생식물이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의 보수가 자기바탕은 없고 권력을 숙주로 삼아 늘 기생해온 까딹에 자기성찰이 있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기생충 보수에 기생하는 조중동은 더 말할 나위 없고…

조중동을 욕하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에 참다운 보수가 아쉬어서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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