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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의 시 "Lied Vom Kindsein" 번역시도

좌파적인 베를린 관광을 구상하다가 오늘 페테 한트케(Peter Handke)의 시 “Das Lied vom Kindsein”을 번역하게 되었다. 좌파적인 베를린 관광의  첫 대상으로 “Siegessäule”를 골랐는데 이것이 한국에서는 빔 벤더스(Wim Wenders)의 영화 “Der Himmel über Berlin”(“베를린 천사의 시”)가 오버렙되어 “천사의 탑”으로도 불리는 것 같다.

그래서 “군국주의 상징으로서 독일에서 가장 쓸데없는 시대착오적인 기념물”(기민당 전사무총장 하이너 가이쓸러)로써 제거해야 할 대상인 전승기념탑이 천사의 탑으로 둔갑한 배경을 조명하고 지나가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근데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Der Himmel über Berlin”이 정신현상학을 거꾸로 읽는 것 같았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페터 한트케의 시가 정신현상학의 “감각적적 확신”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번역 첫 시도는 다음과 같다.




어린이존재에 대한 노래

[내 안에 있는] 아이가 [온통] 아이였을 때

아이는 [의식의 지배를 받지 않는] 팔을 덜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웅덩이를 보면 물고를 틀어 물이 흐르게 하고] 

그 도랑물이 강이 되고

그 강이 대하가 되고

바로 그 웅덩이가 바다가 되는 [욕망의 세계에서 살았다.]


[내 안에 있는] 아이가 [온통] 아이였을 때

  아이는 자기가  [온통] 아이라는 걸  몰랐다.

아이에겐 모든 것이 살아 숨 쉬는 것이었고

살아 숨 쉬는 것은 모두 하나였다.


[내 안에 있는] 아이가 [온통] 아이였을 때

  아이는 그 어느 것에도 굳어진 생각이 없었고,

몸에 베인 행동이 없었다.

종종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가

뜬금없이 뛰기도 했고

  머리엔 가마가 [그대로 보였고]

사진 찍을 때 표정관리를 하지 않았다.


[내 안에 있는] 아이가 [온통] 아이였을 때

이런 질문을 하기 전[야]였다.

  왜 나는 나지? 왜 네가 아니지?

왜 나는 여기에 있지? 왜 저기에 있지 않지?

언제 시간이 시작했지? 어디에 공간의 끝이 있지?

태양아래 산다는 것이 단지 꿈일 뿐이 아닐까?

내가 보고 듣고 냄새 맡는 것이

   단지 [다른] 세계 앞에 [놓여있는] 세계의 가상일뿐이 아닐까?

악의 존재와 정말로 악에 속한 사람들의\

존재가 사실일까?

어떻게 지금 이렇게 존재하는 내가 이렇게 되지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과

이렇게 존재하는 내가 언젠가 더 이상 이렇게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가능하지?

 
[내 안에 있는] 아이가 [온통] 아이였을 때

  아이는 시금치가, 완두콩이, 우유쌀죽이,

그리고 데친 콜리플라워가 밥상에 올라오면 억지로 먹었다.

근데 아직 이런 모든 걸 먹는다. 챙겨서 먹기도 한다.


[내 안에 있는] 아이가 [온통] 아이였을 때

아이는 언젠가 낯선 침대에서 깨어났다.

이젠 반복해서 그런다.  

[그땐]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게 보였지만 

이젠 운이 좋아야만 그렇다.

그땐 천국을 분명하게 그릴 수 있었다

이젠 잘해봐야 어렴풋하게 느낄 뿐이다. 

그 땐 無를 생각할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는 無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내안에 있는] 아이가 [온통] 아이였을 때

아이는 신바람이 나게 놀았다.

이젠, 그때와 같이 하는 일에 푹  빠지는 경우는, 겨우

하는  일이 밥벌이일 경우다.


[내안에 있는] 아이가 [온통] 아이였을 때,

양식은 사과와 빵으로 충분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안에 있는] 아이가 [온통] 아이였을 때

  딸기가 아이가 벌린 손에 딸기만의 [독특한] 촉감으로 떨어졌다. 

그건 아직도 그렇다.

싱싱한 호도를 먹으면 혀가 떨떠름해졌다. 

  그건 아직도 그렇다.

아이는 어떤 산에 오르더라도 그 다음으로 높은 산을 동경했고

어떤 도시에 가더라도 더 큰 도시를 동경했다
그건 아직도 그렇다

나무 꼭대기에 올라 팔을 뻗어 버찌를 딸 때의 [짜릿한] 흥분은 

지금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수줍어했다

아직도 수줍어한다. 

첫눈을 기다렸다

아직도 그렇게 첫눈을 기다린다.
 
[내안에 있는] 아이가 [온통] 아이였을 때

아이는 막대기를 하나를 창 삼아 선악과나무에 던졌다 

그 창이, 꽂인 그 자리에, 지금도 파르르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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