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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5/10/01
    시리아 - 프레임의 혼돈(1)
    ou_topia
  2. 2013/08/07
    시리아 내전의 지정학적 접근(2)
    ou_topia
  3. 2013/08/06
    번역: 시리아[내전], 서구의 범죄다 - 2(1)
    ou_topia
  4. 2013/08/03
    번역: 시리아[내전], 서구의 범죄다(42)
    ou_topia

시리아 - 프레임의 혼돈

나비드 케르마니(Navid Kermani)

 

“엄격한 세속주의 [정책을 펴고], 아비투스의 모든 면에서 서구적인 [시리아] 레짐에 주요 후원자로 [이란이라는] 이슬람 신정이 있다. 반면 서구는, 어쨌든 부분적으로, 속속들이 종교적인 야권의 편에 서 있다세상 어디에 가도 아무런 어려움없이 살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을 주는 (vollkommen weltläufig wirkende),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시리아인들이 권의주의적인 구조를 인민이 자유를 누리기엔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논거로 변호하고, 위스키를 마시면서 군대가 반군을 철의 빗자루로 시리아 밖으로 싹 쓸어내야 한다고 요청한다. 반면 굴레수염을 기른 남성들과 [히잡으로] 온 몸을 가린 여성들이 그들의 희망을 민주주의에 두고 인권에 호소한다.” (나비드 케르마니: 비상 사태, 동요하는 세계로의 여행 , 2013, 독일 일간 쥐드도이체짜이퉁에서 재인용, http://www.sueddeutsche.de/kultur/ausnahmezustand-von-navid-kermani-hinter-der-naechsten-ecke-brennt-die-welt-1.1603701)

 

"Das strikt säkulare, seinem ganzen Habitus nach weltliche Regime hat als Hauptsponsor eine islamische Theokratie, während der Westen auf Seiten einer Opposition steht, die jedenfalls in Teilen dezidiert religiös ist; vollkommen weltläufig wirkende, perfekt Englisch sprechende Syrer verteidigen die autoritären Strukturen mit dem Argument, dass das Volk für die Freiheit noch nicht reif genug sei, und fordern beim Whisky, dass die Armee die Aufständischen mit eisernem Besen aus dem Land kehrt, während bärtige Männer und streng verschleierte Frauen ihre Hoffnung auf die Demokratie setzen und an die Menschenrechte appellieren." (Navid Kermani: Ausnahmezustand. Reisen in eine beunruhigte Welt. Verlag C.H. Beck, München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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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의 지정학적 접근

"Wissen ist Macht - Geographisches Wissen ist Weltmacht."

(지식은 힘이다 - 지리적 지식은 세계를 지배하는 힘이다.)

 

소련을 종주국으로 하는 사회주의권의 붕괴 후 이른바 “대중동”(Greater Middle East)이라는 이름아래 진행된 미국의 대러, 대중, 그리고 대근․중동 지정학적 정책의 일환으로 시리아 내전을 설명할 수 있을까?

 

미국의 “대중동” 정책은 민주주의 개입을 빙자하여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런 비판이 시리아 내전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까?

 

 

1. 러시아 에너지 강국으로 부상

 

□ 서막

0 2003.10.25 유코스 회장 호도르코프스키 체포, 이어 유코스 강제 매각

0 이유

- 보통 호도로프스키의 정치적 포부였다고 하나

- 독일외교정책협회 DGAP EU-러시아 포럼 조정관 알렉산더 라르(Alexander Rahr)에 따르면

- 본질적인 이유는 호도로프스키가 유코스를 미국 엑손모빌에 넘겨 시베리아 석유보유량의 40-50%에 대한 통제를 러시아가 상실할 위험에 빠지게 됨에 있었다는 것 (2003.11.24 유라시아 매거진 http://www.eurasischesmagazin.de/artikel/Ruszlands-Orientierung-zur-EU-ist-alternativlos/110403),

- 그리고 호도로프스키의 첫 유죄판결은 합법적이라는 것(2010.12.27 독일 방송,   http://www.dradio.de/dlf/sendungen/interview_dlf/1351040/)

- 독일 경제 일간 한델스블라트는 유코스가 서시베리아 유전의 석유와 가스를 블라디보스톡으로 연결되는 가스관으로 태평양 연안 국가에 공급하고 중국은 우선 열차를 사용하여 유연하게 한다는 푸틴의 구도에 맞서는 등 푸틴의 지정학적 외교를 훼방했다는 점을 지적(2003.10.25 한델스블라트  http://www.handelsblatt.com/politik/international/yukos-chef-chodorkowskij-weiter-in-u-haft-der-kreml-zieht-durch-seite-3/228153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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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에너지 지정학

0 EU의 나부코(Nabucco) 가스관 사업

- EU가 러시아의 가스공급으로부터의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중앙아시아 등 다른 공급루트를 모색

0 러시아 공급 다각화정책으로 대응

- 이에 대응하는 정책으로 러시아는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등

- EU의 공급에만 종속되지 않는 다각화 추진 (2007.3.28 한델스블라트  http://www.handelsblatt.com/politik/international/kampf-um-energiereserven-der-lange-marsch-nach-moskau-seite-all/2788636-all.html)

 

2. 시리아의 지정학적인 의미

 

□ EU의 이해관계

 

0 나부코 가스관 사업 부진(2012.4.24 FAZ http://www.faz.net/aktuell/wirtschaft/wirtschaftspolitik/energiepolitik/zu-teuer-erdgas-pipeline-nabucco-steht-zur-disposition-11729458.html)

 

0 나부코 가스관 사업 부진의 핵심적인 문제는 아제르바이잔 외의 다른 가스 공급원을 확보하지 못한데 있음

- 러시아가 다른 공급원을 확보하고 경쟁사업  „South-Stream“ 을 추진

- 이란이 시리아와 협력하여 독자적인 가스관사업을 추진하고, 러시아 south stream 사업이 관철되면 유럽의 나부코 사업은 완전 실패할 위험에 빠짐 (http://www.propagandafront.de/1137020/syrien-ist-dreh-und-angelpunkt-wichtiger-gaspipeline-projekt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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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가스관이 통과․교차하는 지역으로 시리아에 대한 관심 부상

 

- 수년전부터 에너지 공급원천 다각화에 노력

-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위협, 소말리아 반도의 해적출몰로 해로를 이용한 석유공급 불안정화 (2012.2.14 독일 연방정치교육원, Kinan Jaeger/Rolf Tophoven(테러전문가), “시리아-분쟁: 국제행위자, 이해관계, 분쟁라인”,  http://www.bpb.de/apuz/155114/internationale-akteure-interessen-konfliktlinien?p=all)

 

□ 카타르의 이해관계

 

0 세계 3위 천연가스 보유국

0 EU에 가스 수출 희망 (2013.5.28 독일경제소식http://deutsche-wirtschafts-nachrichten.de/2013/05/28/eu-lockert-waffenembargo-in-syrien-geht-es-um-erdgas/comment-page-1/)

 

0 LNG 가스시장 포화

 

- 호주가 2014부터 2020년 사이 가스 로딩 터미널 8개를 신설하고, 미국이 프래킹방법 도입으로 과잉 생산된 가스를 아시아 시장에 공급할 계획 등으로 아시아의 가스시장에서 가스가격의 하락이 예상되는 가운데 카타르 EU 가스공급에 주력

 

0 카타르의 2009년 가스관 건설계획에 시리아가 지정학적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됨.

 

- 사우디 아랍에서 출발해 요르단과 시리아를 거쳐서 터키로 이어지는 가스관을 터키를 통과하는 EU의 나부코 가스관과 연결하여 가스를 공급한다는 계획

- EU는 적극 호응하였지만 아사드 정권은 좋은 계약조건에도 불구하고 카타르의 제안 거부

 

0 카타르 시리아 반군 지원하여 아사드 정권 타도에 나섬

 

- 지원액: 30억 USD (독일 Finacial Times)

 

□ 이란과 시리아의 이해관계

 

0 시리아의 해안지역에 거대한 가스 매장량 발견

 

0 이란과 시리아의 전략적 제휴

 

- 2011년 6월 시리아와 이란이 가스관 건설에 관한 전략적 협약 체결.

- 협약내용은 이란의 사우스파스 가스를 시리아를 경유해서 EU에 공급

- 사업규모 약 100억 USD

 

(2013.5.18 Junge Welt http://www.jungewelt.de/2013/05-18/026.php)

(브라질 기자 Pepe Escobar의 분석 2012.8.8 http://www.larsschall.com/2012/08/08/syriens-pipelineistan-krieg/)

 

그외 참조:

http://www.diss.fu-berlin.de/diss/servlets/MCRFileNodeServlet/FUDISS_derivate_000000002616/4_kap4.pdf?hosts= (베를린 자유대에 제출한 논문, 일부만 게재, 저자 알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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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시리아[내전], 서구의 범죄다 - 2

막중한 전쟁범죄와 반인륜범죄를 분쟁 양측이 대대적으로 범했다. 그러나 그 시작에는 봉기군들 역시 책임이 있다. 그건 무엇보다도 [제공된] 무기를 마다하지 않고 덥석 거머쥔 봉기군들의 심히 사악한 결정이 전모를 드러내면서 시작됐다. 멋모르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이에 대한 모든 반론들을 다 잘 알고 있다. 첫째, 항의시위가 처음엔 평화적이었는데, 국가권력이 그걸 과도한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하자 비로소 급진적으로 되었다고 한다. 이건 진실이다. 그러나 이게 그 이후 불거진 수년간 자행된 살육의 정당화에 기여하는 건 정당화란 바지의 끝자락도 없다.

 

이런 살육이, 둘째 반증을 따르면, 봉기군들이 맨 처음엔 예견조차 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의도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살육은 잔인한 국가권력과 정당한 항쟁간의 분쟁이 지속되면서 순전히 단계적으로 확산된 결과일 뿐이라는 것. 이건 진실이 아니다. 어떤 기준을 갖다 대도 무력수용의 모든 끔직한 결과들은, 그 희생자 하나하나는, 상황이 어떠했던지 간에, 또한 봉기군들의 [잘못으로] 전가되어야 한다. (물론 그들만의 잘못으로 전가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런 결과들의 예견은, 수많은 사람들이 내다보고 경고했기 때문에, 맨 처음부터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럼 아사드의 잔인을 다 감내해야 했었냐는 격앙된 목소리의 셋째 반증이 있다. 평화로운 시위대를 가차 없이 진압하는 잔인성에도 불구하고 계속 평화시위를 유지하고, 군사적 무력으로 대항하는 걸 삼가고, 그럼으로써 폭군의 지속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드려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진정성 있게 주장하는가라는 말이다. 그렇다. 바로 그걸 주장한다. 아사드와 같은 정권들은 만민의 재앙이다. 그러나 내전은 더욱 악한 재앙이다. 폭군을 제거하는데 내전을 치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생각은 이상야릇한 도덕적인 탈선이다.

 

여기로부터 서구의 태도에 -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서구를 지배하고 유엔 안보리 상임국가로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그 평화를 담보하는 규범질서 준수에 각별한 책임이 있는 미국, 영국, 그리고 프랑스란 서구패권국가 3국의 태도를 냉정하게 조명하는 빛[이성]이 있다. 사우디 아랍, 카타르, 그리고 터키의 야비하기 그지없는 정치는 간과하겠다.

 

세계여론의 눈을 가리고 아옹하기

 

저[놈]들은 시리아 주민들과 상관이 있는 도덕적인 이유가 아니라 이란과 상관이 있는 전략적인 이유들 때문에 빤히 보면서도 대참사 [발생의 절대] 전제조건을 성립시켰다. 재앙을 가능하게 한 무기[공급]이다. 이건 다 밝혀진 사실이다. 더 이상의 확증이 필요 없다. 더 말해야 할 것은 만민법을 어기면서 시리아에 직접 개입하는 [세력/국가들을] 서구 패권 3국이 어둠을 틈타서, 알아볼 수 없게 변신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지원한 사실이다. 시리아 내전을 이처럼 밖에서 불질하는 게 최소한 워싱톤의 ‘내 맘에 들어’ 하는 묵인 없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엔 어려운 일이다.

 

첨언하자면 말문을 닫고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2012.3 미국 국무성의 “법자문인” 해롤드 코(Harold Koh)가 미국 만민법학자들의 연례모임에서 시리아-분쟁에서의 아랍리그의 “건설적인 조치들”을 “지원하고 찬사한다.”고 밝혔다. 당시 그 조치들이 야기한 것은 시리아 내전의 첨예화/확전 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봉기군을 항상 단지 “비치명적인” [교전]수단으로만 지원했다는 미국의 주장은 세계여론의 눈을 가리려는 빤히 내다보이는 시도이며, 그게 안 먹혀 들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운운하는 걸 보면 저들이 정말 헷갈리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하는지 의심이 가게 한다.

 

더욱 철면피한 짓

 

2012.3.24 “New York Times”지에 “시리아 봉기군에게 무기 공급 확산 - CIA 지원으로”라는 제목아래 자세한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전쟁무기를 적재한 160 차례의 항공화물을 증명한다. 2012년 초 이후 사우디 아랍, 카타르, 그리고 요르단에서 보낸 무기가 터키 공항 에선보가(Esenboga)에서 하역되어 국경을 넘어 시리아로 운송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다 CIA의 물류거점과 그 외 다층적인 지원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게 보여주는 것은, NYT가 엄숙하게 확언하기를, 미국이 정부의 공식발표와 달리 “내전이 치명적으로 치닫게 장려하는” 아랍 동맹국들에게 손을 빌려주었다는 게 매우 확연하다는 점이다.

 

7월 초, 적절한 빌미와 함께, 이젠 봉기군에게 직접 무기를 공급하겠다는 오바마의 공개통고가 있었다. 이건 확실히 일괄적인 자세다. 그렇다고 해서 덜 철면피하지 않다. 영국과 프랑스가 분쟁의 “치명적인 면”을 지원한 정도는 사학자들이 밝힐 것이다. 양국의 지원이 미국의 지원 이하일 거라는 개연성은 없다.

 

이 모든 것이 절망적이다. 그리고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시리아에서 [민주라는] 목적을 외세에 기인한 내전을 사주하고 장려하는 양식으로 추구하는 민주개입주의의 실질적인 성공[가능]전망만을 보더라도 상황은 더욱 절망적으다. 성공가능 확률은, 이제 다 알다시피, 거의 0 이다. 그 이유는 전혀 비밀스럽지 않다. 군사적으로 강제된 정권교체의 찬스에 관한 연구논문들이 그 이유들을 논증하고 있다. 나폴레옹 전쟁이후 약 100번 외부에 의한 전복시도가 있었다. 그 중 다수가 민주주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성공의 가장 중요한 척도들은 개입국의 패권(Macht)도 아니고, 투자정도도 아니라, 어디까지나 해당국가에 존재하는 특정한 전제조건들이었다.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주민, 골 깊은 인종적 혹은 종파적 분쟁 부재, 도시화 정도, 충분하게 기능하는 행정, 민주제도에 관한 역사적 경험, 사회구성원 대다수의 경제적 안녕, - 한 마디로 거의 모든 것들이 시리아에 없는 것이다. 시리아는 어떠한 민주개입도 반드시 실패하는 본보기케이스다.

 

십만 명을 넘는 사망자는 성공적인 혁명을 위해서 치러야하는 대가로는 너무 높다.

 

여기다 내전을 치르고 정권교체를 강행하겠다는 걸 감안하면 앞의 진단은 가망이 없는 상황을 우려하는 진단으로 첨예화된다. 다년간의 잔인한 행위들, 그걸로 인해서 난무하는 증오, 셀 수없는 희생자, 이 모든 것들은 여러 세대가 지나도 아물지 않을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다. 민주적인, 법치국가의 미래를 [담보한다는] 낭만적인 기대들 그 어느 하나도, 그런 기대들을 빙자하여 이곳의[=서구의] 천진난만한 여론이 시리아 봉기군의 야심을 이상화하지만, 그런 기대들 그 어느 하나도 우리가 내다 볼 수 있는 미래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미래는 더 이상 살인마 [내전의] 결과에 달려있지 않다. 아니 한 번도 그것에 달려있지 않았다.

 

마직막으로 시리아 무장봉기에 대한 판정을 구성하는 마지막 요소를 이야기하겠다. 이런 개입은,  봐주고 또 봐줘서, 이성적이라 할 수 있는 성공전망이 있어야 한다. 이건 그저 실용적인 관점을 넘어서는 것이다. 성공전망이야말로 정당성의 참된 전제조건이다. 현재 [근거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에 비춰보면, 시리아에서 그 전망은 없고 또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수십만을 넘는 사망자는 성공적인 민주 혁명을 위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로는 너무 높다. [그런데] 성공적이지 못한 혁명이라면 그 대가는 [어떻게든 정당화될 수 없는] 정치적인, 윤리적인, 인륜적인 대참사다. 나는 미래의 역사기술이 서구를 시리아 내전의 공범으로 유죄판결을 내릴 거라고 의심하지 않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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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시리아[내전], 서구의 범죄다

ou_topia님의 [번역: 포스트구조주의.사회.비판 (7)] 에 관련된 글

출처: 독일 정통보수 일간 FAZ 2013.8.2 (원문)

글쓴이: Reinhard Merkel

 

민주혁명의 대가가 이렇게 커도 되는가? 시리아에서 유럽과 미국이 대참사에 불질했다. 시리아 내전에 어떤 정당화도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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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a, 정부군에서 노획한 무기를 선보이는 봉기군)

 

서구, 이런 싸잡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서구는 시리아에서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 흔히 이야기되는 것처럼 서구가 폭군지배의 저항을 지원하는데 너무 엉거주춤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바로 그 저항을 아무런 정당성이 없는 살인마 내전으로 치닫게 그 가능성을 제공하고, 촉진하고,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10만 명 이상이, 이중 수만 명의 시민이, 허구적인 도덕을 빙장한 편들기로 인해서 생명으로 그 대가를 치렀다. 이 죽음의 춤이 언젠가는 끝날 것이지만, 그때까지 사망자는 더욱 불어날 것이다.

 

[서구의] 이 전략은 10년 전 이라크 침공 후 “민주적 개입”으로 불리는 전략의 한 변형이다. 즉 민주통치 확립이란 목적을 위해서 군사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정권교체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라크에서는 저들이 자기 손을 [더럽히면서] 그 일을 수행했다. 그때 전쟁사유는, 우리가 알게 되었다시피,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었고] 도중에 자유자재로 바꿔치기 되었다. 무기를 사용하건 말건, 억압된 인민을 해방한다는 목적도 침공을 정당화한다는 것이었다.

 

가장 사악한 놀이유형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일은 정권 타도를 그에 저항하는 국내야권에 맡기고 밖에서 무기만 제공하는 - 거침없이 말하자면 사주하는 - 겉으로 보기엔 온화한 형식의 침공이다. 그러나 진실은, 이런 침공이야 말로 가장 사악한 침공의 놀이유형이다. 이 이유는, 사람을 죽이는 일과 함께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맡겨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전쟁의 가장 참담하고, 가장 혐오스러운 형태인 내전이 난무하게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개입하는 자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채하면서 모순으로 범벅된 역할을 자기 것으로 한다. 이건 세계의 눈앞에서 자기행위의 정당성의 문턱을 현혹적인 [사기극으로] 낮추는 행위다. 시리아에서 사람 죽이는 일을 하는 건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억압된 인민을 도울 뿐이다. 이렇게 하여 도덕이란 야바위를 도둑놈처럼 뒤집어쓰는 것이다. 불가사의한 것은 이런 일이 별다른 반박 없이 통한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 근본적인 질문은 제기되기는커녕, 그에 대한 대답도 없다. 바로 시리아에서의 무장봉기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이다. 억압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그런 지배에 대한 정당한 저항이 거리낌 없는 내전으로 이행할 수 있는가? 시리아에서 소요가 시작했을 때 과연 상황이 이런 문턱에 와있었던가?

 

생명과 고통으로 치른 대가

 

만약 상황이 그러지 않았다면, 밖에서 봉기에 불질한 것은 [폭력을 사용한] 봉기 그 자체보다 더 사악한 것이다. 아사드와 같은 독재자에 대항하는 정당한 내부저항은 항상 폭력 허용을 포함한다고 전제하고 이걸 자명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이건 옳지 않다. 여기서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잘해봐야 봉기군과 억압자 및 그의 권력기구와의 형평성만이 관건이 된다고 가정했을 때다. 이런 가정아래선 단지 공동의 정당방위가 문제되고, 그것의 정당화는 독재의 유형에 따라 근거지울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법철학은 폭군살해란 제목아래 바로 폭군살해를 토론했다. 그러나 내전에서 정당과 부당의 문제가 단지 분쟁당사자의 관련해서만 제기된다는 가정은 진정한 정당화성문제에서 빗나가는 것이다. 폭력을 불질하여 전면전으로 난무하게 하는 것은 적어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무관한 [동지]시민(Mitbürger/fellow citizen)들 앞에서 정당화되어야 한다. 이들은 독재자의 편에 서지 않으면서 견실한 이유로 봉기를 거부할 수 있다. 어쩜 그들은 처자식이 있어 내전이 불거지면 그들이 생명이 위협받을까봐 두려워하는 처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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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a, 요르단 난민촌의 아이)

만약 그렇다면 이들은, 그들이 보호해야 하는 가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봉기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걸 무조건 사악한 것으로 물리쳐야 하는 도덕적인 의무가 있을 것이다. 수만 명의 여성과 아이들이 시리아 내전에서 죽임을 당했다. 과연, 무엇이 내전에 앞장 선 자들에게 죽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이와 같은 희생을 강요하게끔 정당성을 부여하는가?  

시리아 봉기가 앗아간 생명과 그 고통을 치러야 하는 대가는 대부분 제3자에게 전가되었다. 이게 과연 정당화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도통 제3자의 목적[안녕]을 위한 강제연대 부과를 정당화하는 법의 윤리적인 원리를 알고 있다. “공격적” 긴급피난(„aggressive[r]“ Notstand)이라 불리는 원리로서, 이같이 불리는 이유는 자신의 위기를 제거하기 위한 비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지에 반하여서도, 전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건 물론 오직 엄격한 범위 내에서 허용될 수 있다. 시리아 독재자 아래에서의 삶을 일종의 긴급피난이 [성립되고] 그게 지속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무관한 제3자에게 자발은 요구할 수는 없고 오로지 강제될 수밖에 없는, 연대적인 함께고통하기(Mitleiden)의 정도를 규정하더라도, 그 정도가 얼만  큼 전쟁과 내전을 [빙자하여] 평화적인 사회에서 요구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해도, 한 가지는 요구할 수 없다는 건 분명 의심의 여지가 없다. 즉 자기생명을 희생하라는 요구다.

 

이 질문을  답이 맘에 안 든다고 모른 채 할 수 없다.

 

“His life is the only one he has.”라고 다른 맥락에서 미국 철학자 로버트 노직이 말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왜 아무도 자기 삶을 남의 목적을 위해서 강제연대적으로 헌신하는 의무를 질 필요가 없는지 그 근거가 있다. 이건 어떤 폭력적인 봉기가 되었든지 그 정당화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게 아닌가? 칸트는, 물론 우선적으로 다른 이유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대고 그랬지만, 근본적으로 어떤 봉기의 권리도 배척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어떤 정당화 개념을 유효한 것으로 여기는 것에 달려 있다. 미국 철학자 존 롤즈는 1971년 “정의론” 에서 “불순한”, “비-이상적인” 정당성이란 이념을 스케치하고 후기작 “만민법”(1999)에서 더 발전시킨다.

규범적으로 극도로 불순한 내전이란 영역에 대한 [이른바] “순수”이성의 위와 같은 양보 없이는 아마 내전의 역사적 사례 그 어느 하나도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무튼, [정당성 부여]의 문턱이 아주 높아야만 한다는 점이다. 오로지 극히 드문, 예컨대 인종말살 테러통치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에만 아마 [내전을 마다하지 않는 개입이 정당성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정당성문제를, 그에 대한 답이 맘에 들지 않기 때문에, 모른 채 해서는 안 되다는 점이다. 시리아 봉기의 목적이 봉기와 무관한 제3자의, 기대하라는 더 좋은 미래의 그 무엇도 취할 수 없는 제3자의 생명의 강제희생을 정당화하든지, 아니면 그런 봉기 자체가 부당하고 사악한 것이다.

 

국제법이 여기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리아 봉기를] 외부에서 지원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은, 까놓고 말하자면, 더욱 더 높은 수준에서 사악한 것이다. 이게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다. 서구의 시리아-논쟁은 이 문제를 정치적 계산이라는 뒤죽박죽된 뇌[주름] 뒤에 숨기거나 아니면 [이른바] “자유투사”를 위한 때로 얼룩진 동감 뒤에 사라지게 하는 대신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만민법이 여기서 우리를 돕지 못한다. 이건 내전 허용과 관련된 질문을 담당하는 법이 아니다. 그래서 만민법은, 견실한 이유에 준거하여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봉기의 어떠한 군사적 지원도 원리/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기는 하지만, [내전 정당화 관련] 단숨에 먹혀들어가는 그 어떤 규범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철학에 이 비난은 해야 한다. 칸트 이후 정치철학은 내전 정당화 문제를 의아스러울 정도로(왜 그랬는지 알 수 없게) 소홀히 했다.

그래서 오늘날에 와서, 버벅거리는 시도를 제외하곤, 근거 있는 해결책을 제공하는 납득이 가는 제안이 없다. 이런 결함은 현재진행중인 시리아 대참사에 대한 흐지부지한 공론장의 잡담에서 느낄 수 있다. 오로지 “실익정책”이란 나팔쟁이(야바위도덕주의자: [Trompethiker/불어 ‘tromper/속이다’와 ‘Ethiker/도덕주의자’를 합하여 만든 신어])만이 어떤 손놀림을 해야 하는지 항상 안다. [이들은] 모든 확신들이 천진난만하고 현실에 어두운 거라고 한다. 이미 비스마르크가 알았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다. 여기서 천진난만한 것은 오로지 바로 이런 반증이다. 천진난만한 것은 오늘날의 국제사회(Staatenwelt)와 같은 복잡한 시스템의 지속적인 안정을, 세계가 합의할 수 있는 원리들에 준거한 국제적인 규범체제/질서에 의하지 않고, [단지] 권력, 위협, 그리고 무력으로 담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양측의 막중한 전쟁범죄 및 반인륜범죄

 

한마디 더하자면, [앞의 원리들의] 참된 의미는 이것들이 현실에서 이행된 실천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적인 실천이 그것들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들이 대거 학살되지 않는 전쟁, 나아가 그런 내전은 더욱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규범들이 특정한 영역에서 항상 깨진다는 지적보다 더 나은 우리의 규범들을 파기하는 근거들이 필요하다는 데에 변하를 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상의 것들이 시리아 봉기와 관련해서 말하는 건 뭔가?  아사드 정권은 암흑한 폭정이었고  현재  또 그렇다. [그러나] 갑자기 “민주개혁”을,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시리아의 민주개혁에 솔깃하면서 그 민주개혁을 봉기군에 무기를 공급함으로써 악몽으로 만든 몇 걸프국가들보다 덜 시커먼 아사드 정권이지만 모든 시민저항을 정당화할 만큼 시커먼 정권이다. 허나, 10만을 넘는 사망자를 야기한 내전을 불질할 만큼 시커먼 폭정이었나? 분명 전혀 그렇지 않다. 나에게는 이 판정에 어떤 이성적인 반증이 있는지 안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dpa, 파괴된 알레포)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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