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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22
    고향과 정체성
    ou_topia

고향과 정체성

ou_topia님의 [어린이를 뮈토스화하는 독일 개혁교육학 비판] 에 관련된 글.

 

"Der Mensch lebt noch überall in der Vorgeschichte, ja alles und jedes steht noch vor Erschaffung der Welt, als einer rechten. Die wirkliche Genesis ist nicht am Anfang, sondern am Ende, und sie beginnt erst anzufangen, wenn Gesellschaft und Dasein radikal werden, das heißt sich an der Wurzel fassen. Die Wurzel der Geschichte aber ist der arbeitende, schaffende, die Gegebenheiten umbildende und überholende Mensch. Hat er sich erfaßt und das Seine ohne Entäußerung und Entfremdung in realer Demokratie begründet, so entsteht in der Welt etwas, das allen in die Kindheit scheint und worin noch niemand war: Heimat." (에른스트 블로흐, 희망 원리, 마지막 부분)
 
"인간은 어떤 곳에 살든지 아직 역사의 문턱 바깥에서 살고 있다. 아니 전체와 그 구성요소 하나하나가 아직 세계창조를, 올바른 세계로서의 창조를 기다리고 있다.  참다운 창조는 태초가 아니라 끝[장]에 있다. 이 창조는 사회와 현존재가 급진적이 될 때, 즉 자신에게 손대는데 있어서 뿌리까지 내려갈 때 비로소 착수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근데 역사의 뿌리는 분명 노동하는, 창조하는, 주어진 것을 뒤집어 바꿔 새로 짜 맞추는 가운데 그것을 뛰어넘는 인간이다. 그가 자신을 스스로 움켜쥐고 자기주변을 외화와 소외 없이 현실화된 민주주의 바탕에 굳게 세우고 그것이 완성될 때 비로소 세상에 생성되는 것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번득이면서 유아기로 비춰 내려가는 것, 하지만 아직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 바로 고향이다."(ou_topia)        
 

 

 

이 말이 일부가 거짓임을 알게 된 것은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될 때였다. 이 희망의 세계가 참작하는 욕망이 아무런 매개 없이 충족되는 유아기는 어린이를 감싸고도는 부르주아의 유년기임을 한 순간에 깨닫게 되었다. 왜 거짓이냐고? "모두에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 한 사람을 내 주장의 증인으로 세울 수 있다.    


한국에 나가면 가능하면 바로 시골 고향에 간다.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라 상수도, 하수도가 없고, 화장실도 물론 재래식이다. 그러나 전혀 불편하지 않다. 모든 것이 좋다.


어렸을 때 말 안 듣고 부잡하기로 유명했다. 매를 때리려고 해도 도망가 버려서 맞지 않았다. 그런데 나에게 먹히는 주문이 하나 있었다. “계속해서 그러면 00에게 장가보낸다.” 란 말이었다. 옆집에 동갑내기 여자아이가 살았는데 정말 못 생겼었다 (미안해!). 장가간다는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건 나에게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다.
 
그 여자아이를 몇 년 전에 만났다. 얼마만인가? 머리가 희끗희끗한 가정주부였다. 그녀의 언니가 아직 시골 고향에 살고 있는데 내가 고향에 갈 때마다 늘 00이가 날 보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래서 큰맘 먹고 전화했다.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다. 너무나 반가와 한다. 짝지랑 같이 만났는데, 짝지에게 양해를 구하고 저녁을 같이 하는 동안 내내 내 옆에 앉아서 내 손을 잡고 놓지 않는다. “내가 니를 언만큼 조아했는지 니 아냐. 00댁은 참 행복하시겠어요." 숨어서 날 훔쳐봤단다. 내가 피해 도망 다녀서. 이젠 죽어도 한이 없단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갔다. 00이는 식구와 함께 일찍 고향을 떠났다. 어떻게 살았는지 자세한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손은 시베리아에서 벌목하다 독일로 이주하여 공장에서 막일하는 독일계 아저씨의 손, 석면제거공사장 막일노동자의 손과 다름없다. 거칠다.


00이네는 정말 못살았다. 이건 내가 그 당시 알았던 것이 아니다. 당시 알 리가 없었다. 배고픔이 무엇인지, 힘겨운 일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 집에서 빌어먹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런 걱정 없이 자란 내개 알 리가 없었다. 지금 안다는 것도 한국의 70/80년대에서 무산자가 어떻게 살았을 거라는 추상에 근거한 것일 뿐이다.


고향을 떠난 후 고향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한 번도 없단다. 그리고 가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단다. 그때 순간적으로 고향이 다 고향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 정체성의 본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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