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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공방을 둘러싼 저속하기 짝이 없는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작태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서독의 정계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 분단 독일과 분단 한반도 상황의 유사성과 상이성을 넘어서, 즉 구체적인 정책이 어떠했는지를 넘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그들이 통일문제에 어떻게 임했는가에 있지 않나 한다.

 

1972.12.21 체결되고 이듬해 동서독 의회의 비준을 거쳐 1973.6.21 발효된 ‘동서독 기본조약’(이하 기본조약)으로 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기본조약은 동서독 양국의 관계를 개선하고, 특히 독일 민족이 상호 이질화되는 것을 극복하고 그 갭을 좁히는데 기여하였다. 장벽붕괴 후 “우리는 한 민족이다.”라는 동독 시민의 구호는 쑥밭에서 자라난 게 아니었다.

 

그 과정을 돌이켜 보면 대충 이렇다.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구호아래 먼저 동유럽권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었던 과거독일영토문제를, 즉 동독과 폴란드의 국경을 오더-나이쎄 강으로 확정하는 문제를 모스크바 조약과 바르샤바 조약으로 (둘 다 1970년 체결) 해소하고 동서독 양국이 접근할 수 있는 틀의 기초를 다졌다.

 

국제사회는 이런 긴장완화정책을 지지했지만 서독 여론은 지지와 반대를 두고 분열되었고, 전후 줄곧 정권을 장악하다가 얼마 전 정권을 상실한 기민/기사연합은 모스크바 조약과 바르샤바 조약이 “독일이득을 염가 대매출”(Ausverkauf deutscher Interessen)하는 이적행위라고 주장하고 브란트 “정부가 독일 이득을 적에게 넘겼다.”(“Die Regierung hat deutsche Interessen verraten”)고 공세를 가했다. 이런 분위기는 브란트 연정의 주니어파트너였던 자민당 우파가 야당과 합세하게 만들고 기민/기사연합을 이끄는 라이너 바르젤로 하여금 정권탈환이 승산이 있는 걸로 판단하고 건설적 불신임안을 시도하게 만들었다. 우여곡절이 많은 이 건설적 불신임안은 249대 247 2표차로 부결되었다.

 

여야의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브란트 정부 및 진보세력:

독일 통일 문제는 민족의 문제다. 동서 양국 분단현실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민족의 이질화다. 독일 민족 이질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분단현실을 받아들이고 “작은 발걸음 정책”(Politik der kleinen Schritte)으로 갭을 좁혀나가 민족대단결이 이루어 질수 있게 서로 인정하는 평화체제가 확립되어야 한다.

 

기민/기사연합 야당 및 보수세력:

동독은 주민에게 자결권을 부여하지 않는 ‘불량국가’로서 통독 이전에 해체되고 통일되어야 한다. 독일 영토와 최종국경문제는 이렇게 통일된 독일이 최종결정한 사안이다.    

 

이런 대립하 건설적 불신임안은 부결되었지만 모스크바 조약 및 바르샤바 조약 비준과 함께 여야는 국론을 더 이상 분열시키지 않는 방안으로 상기 양 조약의 내용은 건드리지 않고 그 기본정신 및 해설에 관한 ‘공동결의’를 거의 만장일치(찬 491표, 기권 5표)로 채택한다.

 

공동결의’는 핵심내용은 여야의 기본입장을 반영한 것이었다. 즉,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영토문제는 통일독일이 최종적으로 다룬다는 것이었다.

 

현재 NLL를 둘러싼 새누리당과 박근혜의 작태와 사뭇 다르다.

 

브란트 및 진보세력이 지향한 평화체제구축은, 칸트에 기대에 해설하자면, 모든 통일정책을 규제하는 규제적 이념(regulative Idee)과 같은 것이었다. 즉 평화체제가 현실도 아니고 현실과 괴리된 이상도 아니라, 모든 통일정책이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지도적 이념이라는 것이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와 같이 평화체제와 무력사용금지가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NLL을 사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만 높일 일이 아니다.

 

한반도 통일에는 다행이도 칸트의 규제적 이념에 상응하는 원칙이 있다. 바로 7.4 공동성명이다. 민족대단결의 원칙이다. 더 이상 민족 이질화에 불을 지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박정희대통령이 무덤에서 나와 딸에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근혜야, 난 갸들이 내 판에서 놀게 했는데, 넌 뭐하냐? 갸들이 만들어 놓은 판에서 놀고 있는데, 그럼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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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원한 통일 - 통일의 걸림돌 국정원

팔을 뻗어 손을 내밀면 잡힐 듯이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의 양식을 독어로는 “da”라는 부사로 표현한다. 저 멀리 창공에 떠있는 달도 “da”의 양식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마음이 다다를 때다.

 

한반도 통일은 요원하지만 그래도 “da”의 양식으로 존재할까?

 

언제 어디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되지 않는다. 1989년 12월 드레스덴이었나? 암튼, 빌리 브란트가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통일을 몸소 경험할 수 있게 해준 하나님께 감사한다.” 1913년에 태어나 1992년에 별세한 빌리 브란트는 아마 격동하는 20세기 독일 역사를 몸소 경험한 인물 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일 거다. “짧았던 20세기”를 다 살고 별세했다. 20세기를 때 이르게 종식시켰던 통독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독일 통일은 빌리 브란트에게 “da”의 양식으로 존재했을까? 아니, 과거 독일 영토를 영구히 포기하겠다는 내용의 모스크바 조약 및 바르샤바 조약 체결 연방하원 비준 전야에 국론이 분열되고 동방정책을 추진하는 적황연정을 이탈하는 의원들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건설적 불신임안을 시도한 라이너 바르젤(Rainer Barzel)에게 독일 통일이 “da”의 양식으로 존재했을까? 둘 다에게 분명 그랬다.

 

한반도 통일의 존재양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그런가?

 

현재 새누리당의 작태는 시대에 - 게을러서 그런지, 발에 쥐가 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 발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과거 냉전이데올로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기사/기민 연합이 그랬듯이. 하지만 그들은 결국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수용하고 1982년 재집권했을 때 더 확대하지 않았던가? 통일이 될 때까지?

 

근데, 박근혜와 국정원의 작태는 어떠한가. 그나마 진행된 통일정책을, 그 사람들을 내통하는 “외부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보기관은 적에게 전략적 전술적으로 해롭게 사용될 수 있는 정보를 생산한다. 전술적이라 함은 타이밍이다. 적절한 시기에 정보를 유출하는 것이다. 국정원의 작태는 고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를 이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박근혜가 편승하고 있다. 대통령 권위를 상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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