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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한 달 넘긴 예선노동자 파업

9월 3일 울산시청 앞. 예선노동자들은 72시간 노숙농성을 마치고 ‘예선노동자 파업 승리를 위한 울산노동자 총력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 울산노동뉴스

부산과 울산항 예선 노동자들의 파업이 한 달을 넘어섰다. 예인선 또는 끌배라고 불리는 예선(tugboat)은 대형 화물선 등을 끌거나 밀면서 항구에 정박시키거나 출항시키는 선박이다. 예선노동자들은 보통 새벽 4~5시면 일어나야 한다. 오전 5시30분에 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평일 근무는 오후 5시30분까지. 한 달에 일곱 번 있는 당직에는 꼬박 36시간을 예선 안에서 작업해야 한다. 비좁은 예선 휴게실에서 작업 지시가 떨어지는 VHF(초단파 송·수신기)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기 때문에 당직 때 잠을 자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밥 때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밥 먹는 시간이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200톤이 안되는 예선 두 대가 수만 톤급 선박을 앞뒤에서 밀고 끌면서 평행을 맞춰야 하고 조그만 실수도 용납이 안되는 예민한 작업이기 때문에 연속 밤샘작업에 따르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는 가중된다. 따로 명절이나 휴가가 없다. 한 달에 다섯 명이 돌아가면서 5일을 나눠 쉬는 게 전부다. 한 달 350시간 이상을 일하고도 손에 쥐는 임금은 쥐꼬리만하다. 상여금은 기본급에 승무수당을 합친 통상임금의 600%다. 이 상여금도 1998년 IMF 때 300%로 삭감됐다가 최근에야 회복됐다.
예선노동자들은 그동안 선원법도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한 채 장시간 저임금노동에 내몰려왔다. 그동안 예선사들은 선원법을 근거로 예선이 항내만을 운항하는 선박이므로 선원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며 승선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근로기준법을 적용한 것도 아니었다. 2007년 여수·광양항 예선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에 들어가자 예선사들은 입장을 바꿔 예선노동자에 대해 선원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왔다. 법제처는 지난 1월 예인선은 항내만을 항행하는 선박이므로 선원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법령해석을 내렸다. 국토해양부의 관리 아래 지난 6월 치러진 전국 항만 투표에서도 예선노동자들에 대해 근로기준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다. 그러나 부산, 울산, 마산항 예선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에 들어간 뒤 국토해양부는 지난 8월26일 사실상 예선은 선원법 적용 대상이라는 기준을 정해 예선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노동부도 대법원 판례와 노동위원회 판정을 무시하고 선장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질의회신을 해 예선사 편을 들었다. 예선사들이 선장들에게 ‘법(국가)에 도전하지 말고 노조 탈퇴하고 복귀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노조 탈퇴를 강요하고, “민주노총만 탈퇴하면 모든 걸 다 들어주겠다”며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아도 노동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항만예선지부 울산지회 노동자 119명은 지난 8월7일 파업에 들어간 뒤 예선사들의 직장폐쇄에 맞서 울산항 매암부두 파업현장을 사수하며 울산노동지청 규탄투쟁, 예선사 순회투쟁, 울산해양항만청과 울산항만공사, 울산시에 대한 중재 촉구투쟁, 9월1~3일 울산시청 앞 72시간 노숙농성 등을 벌여왔다. 운수노조는 예선 파업을 전국화·국제화하겠다며 투쟁 수위를 높여갈 태세다. 노동조합을 인정하라는 소박한 요구를 내걸고 한 달 넘게 파업을 벌이고 있는 예선노동자들은 예선사와 노동부, 국토해양부, 국가정보원이 한통속이 돼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단결권을 깡그리 부정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계급적 본질’을 하나씩 온몸으로 자각하고 있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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