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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문제와 사회주의

주택사회화와 민주참여적 계획경제가 답이다



투기와 수탈의 공간이 된 주택
주택은 ‘주거공간’이다. 즉 주택(집)이 없으면 사람은 죽거나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 주택은 안정된 주거공간이 아니다. 자본과 소수 땅(집)부자에게 주택은 황금알을 낳는 이윤창출처이자 앉아서 떼돈버는 투기수단이다.
이에 반해 대다수 노동자민중에게 주택은 뼈빠지게 일해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자가 소유 노동자민중들은 뼈빠지게 일해 주택융자를 갚는데 허덕인다. 주택값이 폭락하거나 실업(반실업) 상태에 처하면 융자금을 못 갚아 파산한다. 이도 안되는 사람들은 치솟는 전월세값에 신음한다. 우리사회에서 지하집·비닐집 등에 사는 빈곤층은 68만 가구나 되고,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거대건설자본의 이윤욕에 노동자민중은 졸지에 철거민신세로 내몰린다. 한국은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을 매개로 거대한 이윤창출 및 수탈구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주택문제가 워낙 심각하긴 하지만, 이는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가 보여주듯이, 자본은 노동자민중의 내집 마련에 대한 열망마저 자신의 수탈구조 아래 깊숙이 편입시켰다. 주택거품을 형성시키며, 주택마저 수탈의 매개로 삼는 것, 이것이 21세기 자본주의의 현주소이다. 땅과 주택에 대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금지하지 않는 한, 불로소득을 0으로 만들지 않는 한, 한국에서만도 800조원에 이르며 투기처를 찾아 떠도는 막대한 유동자금을 제어할 힘은 없으며, 자본과 가진자들의 수탈을 멈출 수 없다.

주택문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만약 공기와 물을 누군가 사적으로 소유하고 독점하여, 만인의 숨쉴 자유와 물 마실 자유가 없어진다면? 사람들은 부당하다 외칠 것이다. 그런데 땅과 주거공간(집)이 ‘사적 소유’라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도 당연시한다. 그러나 공기나 물과 마찬가지로, 집과 땅도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가 아니라 만인의 소유(사회적 소유)로 만들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에 대한 이용권을 줄 수 있다면, 집없는 설움도 없을 것이요, 집을 마련하기 위해 뼈빠지게 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소수 투기꾼들의 불로소득도 가진자들의 수탈도 없어질 것이다.
그것은 가능한가? 가능하다. 역사적으로 이미 시도되었다.

사회주의국가가 추진한 주택사회화의 의미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에서는 토지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소유를 사회화시켰다. 그리고 이에 기반해 주택사회화를 실시하였다. 즉 국가(지역소비에트, 국영기업 등)가 국민에게 집을 제공하고, 주택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였다. 국가 주택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관리비에도 못미치는 저렴한 임대료(월수입의 5% 정도)를 내고 주거권을 얻었다.
그렇다고 소련의 주택 소유와 관리권이 모두 국가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소련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private ownership)와 구별되는 개인적 소유권(persnal ownership) 개념을 통해, 주거와 사적 농업생산에 할당된 소규모 토지에 대한 개인소유를 허용했다. 개인소유는 자신의 사용만을 위한 것에 한정시켰고, 수익을 불러올 수 있는 처분권을 주지 않았다. 주거의 임대는 법적으로 보장받았지만, 그 수준은 강력히 제한되었다. 즉 구소련은 사회적 소유를 기본바탕으로 해 개인적 소유권을 결합시켜, 토지와 주택을 매개로 한 착취·수탈의 구조를 없앤 것이다. 다른 몰락한 구사회주의국가와 쿠바 역시 주택문제에서 소련과 유사한 방식의 사회화정책을 펼쳤다.

사회주의 국가의 주택사회화 정책의 한계
물론 소련의 주택 사회화정책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직장에 다녔을 때 주택이 제공됨으로써, 주택제공이 노동자의 안정적 거주공간 제공의 의미를 갖기 보다는 국영기업의 노동력 확보의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1930년대 스탈린의 중화학공업 우선투자정책, 2차대전, 1970년대 이후 경제성장 둔화 등으로 국가가 책임지고 국민에게 안정적 주거권을 보장한다는 원칙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주택부족’으로 한 집에 두 가구가 산다든지, 열악한 주거환경 문제가 생겼다. 다른 사회주의국가도 비슷했다. 북한은 계층에 따라 주택이 차별배정되는 문제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지방기관 간부급 이상의 주택보급율은 100%이나 일반노동자의 경우 한 집에 두 가구가 동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온전한 주택사회화만이 주택문제 해결의 길
사회주의 국가의 주택문제는 주택사회화 정책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주택사회화를 ‘온전’하게 실현하지 못함으로써 나타난 문제다. 사회주의국가가 관료적·명령적 계획경제가 아닌 민주적·참여적 계획경제로 운영되었다면, 직업(노동)과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안정적인 주거권을 보장한다는 ‘인권’ 개념으로 주택문제에 접근하였다면, 국방비 증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사회구성원의 기본권이라는 관점을 가졌다면, 국가관료층이라는 새로운 지배계급의 등장을 막아내고 노동자민중이 국가의 실질적 주인이 되었다면, 국가(사회)가 책임지고 전체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한다는 주택사회화의 원칙은 보다 실질화됐을 것이다.
어느덧 투기와 수탈의 거점이 되어 버린 주택을 모든 사회구성원의 안정적인 주거공간이라는 본래적 의미를 갖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현자본주의가 낳은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길이자 사회주의국가의 실패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다.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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