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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6
    노무현은 정말 탈권위주의 대통령이었는가?
    PP

노무현은 정말 탈권위주의 대통령이었는가?

소탈함 속에 가려진
유아독존의
권위주의 리더십




슬픔 속에 묻혀버린 역사와 진실  
‘죽은 노무현과 산 이명박의 싸움’, ‘죽은 권력 앞에 살아 있는 권력이 벌벌 떤다.’ 등의 자극적인 수식어구가 난무하고 있다. 소탈한 성품으로 권위주의 정치를 무너뜨린 전직 대통령과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현직 대통령 간의 권력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처럼, 노동자·민중들을 허위의 수렁으로 빠뜨리고자 하는 수식어구들이다. 
수백만의 추모객과 조문객들은 탈권위주의적이었던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였고, 전직 왕의 남녀들은 애도정치와 추모정치를 앞세워 죽은 노무현의 그림자를 즈려밟고 정국의 주도권을 빼앗은 양 이명박 정권을 향해 민주주의의 화살을 쏘아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진보정치세력들도 마찬가지이다. 전직 대통령이 자살까지 해야만 하는 한국정치의 악폐를 걷어치우자고 소리 높이면서 이명박 정권에게 그 책임을 묻고 있고, 노동자·민중의 정치를 외치지만 몸과 마음만은 영정 앞에서 머리 숙여 슬픔을 조아린 고뇌 가득한 진보주의자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그렇다. 한 시대의 역사와 진실을 자신의 죽음으로 묻어버린 노무현의 리더십이 진정 탈권위주의적이었고 민주주의를 강화시켰는가의 문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왕의 죽음에 대한 슬픔만이 흥건하다.
민주주의의 이행과정에 있는 사회일수록 동의에 기반을 둔 탈권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지도자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많은 사람들은 죽은 노무현을 이러한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노무현이 죽고 난 이후에는 아예 역사적 사실로 화석화시키려 하고 있다. 또 다른 역사의 왜곡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억압과 강제에서 벗어나지 않은 노무현식 탈권위주의
탈권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리더십은 소탈하고 겸손하거나 퇴임 이후에 고향으로 내려가서 인터넷 소통을 잘 했다는 현상만으로 규정될 수 없다. 그러한 리더십은 최소한 사회구성원에 대한 억압과 강제를 기반으로 하지 않아야 하고, 권위주의적인 법과 제도에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법과제도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을 동원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죽은 노무현은 탈권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리더십을 구성하는 요건 중에서 어느 하나도 충족하지 못하였다. 죽은 노무현은 항상 노동자·민중 학살정책을 추진하면서 국가의 물리력을 폭력적으로 사용하였고, 이라크파병이나 한미FTA를 관철시킬 때는 항상 권위주의적인 법과 제도에 의존하였다. 
또한 그는 사립학교문제, 언론문제, 국가보안법 문제 등을 개혁하겠다고 의기양양했지만, 의회 내 다수 의석의 힘조차 활용할 의지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당정분리가 민주적이라고 내세우면서 민주적 사회개혁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정당과 의회로 떠넘긴 무책임성까지 보여준 지도자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전직 대통령의 탄핵을 사회구조적인 지배세력의 힘에 저항하다가 발생한 것으로 보았고, 그 이후 고통 받는 외로운 투사에게 의회의 다수 의석을 선사하였다. 하지만 죽은 노무현은 탄핵에 반대했던 사람들의 개혁의지를 실현시킬 힘이나 의지가 없었고, 기득권 세력에게는 권위주의적인 법과 제도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완성하기 위해 노동자·민중들에게 권위주의적인 법과 제도의 폭력을 사용했던 것에서 충분히 볼 수 있다. 

그가 보여준 탈권위주의적인 모습은 단지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고민하지 않고 내뱉었던 막말 리더십이었고, 사회구조적인 기득권 지배세력의 힘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고 아예 권력에서 일탈해 개인의 존재만을 부각시킨 유아독존 리더십이었다. 1988년 청문회 스타로 부각된 엘리트 정치인은 사회구조적으로 고착화된 군부독재의 틀을 바꿔야 할 소명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역사의식을 저버리고 개인의 영욕만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소탈하고 겸손하다는 죽은 노무현의 성정을 따랐던 전직 왕의 남녀들이 또 다시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이명박의 권위주의 리더십을 공격하자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역설의 미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권위주의적이고 유아독존적인 리더십을 탈권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지도자로 둔갑시켜 가고 있는 우리 안의 봉건주의적이고 사대주의적인 근성이 또 민주주의의  질곡으로 존재하는구나.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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