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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0/15
    질긴 노동문화, 그 변화와 모색
    PP
  2. 2009/10/15
    노동문화가 무엇입니까?
    PP

질긴 노동문화, 그 변화와 모색

[22회 인천노동문화제]

가을로 접어들며 지역마다 지자체와 예총이 주관하는 지역 문화제 또는 예술제를 흔히 볼 수 있다. 지역색이나 전통에 따라 이런 문화제들의 성격은 천차만별이라서 무턱대고 한통속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지만 그런 문화제들은 대략 구리다. 하지만 인천노동문화제는 그 이름부터 여느 지역문화제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인천노동문화제는 올해 22회를 맞았고, 지난 10월 10일~11일 인천 부평공원에서 ‘이 땅에 우거지고’란 주제로 열렸다.

내부에서 외부로
인천노동문화제가 운동사회의 문화 예술계에서나 문화에 관심있는 노동자들에게는 유명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겐 생소할지 모르겠다. 동시에 ‘노동문화’ 또는 ‘노동자문화’라는 말조차도 생소할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22돌을 맞이했다는 것은 그만한 저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노동’이라는 주제명과 22돌은 민주노조운동과 그 역사를 함께한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것은 인천의 지역성에 기반한 노동운동의 독특한 역사이며, 그 영향은 인천 지역을 넘는 문화운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인천노동문화제란 이름을 쓰기 전에는 1997년까지 가을문화제였다. 현장의 문화패들이 모여 체육대회하고, 장기자랑하는 독자적인 내부 행사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1998년부터 인천노동문화제로 이름을 바꾸고 시민들과 만나기 위해 외부로 방향을 바꾼 것은 당시 민주노조운동이 가진 사회적 힘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더 넓은 지평으로
인천노동문화제 조직위원회는 크게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인천노동문화연대, 인천 민예총이라는 3조직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조직위원회 구성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초기의 주요한 동력은 현장의 문화패와 문화단체들이었다. 그러나 노조의 힘도 사회적으로 약화되고, 현장 문화패들도 차츰 사라지는 추세에 인천노동문화제는 내부적인 어려움을 안게 되었다.
올해도 첫날 민주노총 인천본부가 부평공원 근처에서 집회를 한 뒤 집회대오의 집단적 참여가 예정되었지만, 그 집회가 무산되는 바람에 인천지역 노동자들이 참가하는 문화제는 되지 못했다. 이런 분위기는 이미 오래되고 익숙하다. 한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인천노동문화제는 이제 노조의 집회 동원을 통한 연결이 아닌 다른 방식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노동운동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지금의 중요한 화두이듯이, 노동문화도 정규직 노조의 현장 문화패 보다는 조직되지 않았거나 조직하기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그리고 다양한 소수자 운동과 소외된 운동의 저변을 넓히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이런 흐름은 한편에서 이야기되는 현장의 노동문화가 사라진다는 우려에 대한 문화운동의 대담한 역공이거나 노동(자)문화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올해 문화제에서도 그러한 단편들을 다각도로 포착할 수 있다. 이미 몇 해 전부터 조직위에서는 그 이름에서 ‘노동’을 대치할 단어를 찾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내부적인 행사가 외부적인 행사로 탈바꿈하며 이름을 바꿨듯이, 인천노동문화제가 더 넓은 지평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한번 더 이름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이름과 상관없이 실험은 이미 진행중이다. 인천 땅에 이 실험이 어떻게 우거질지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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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살아있는 풍경 “미래를 돌아보다”
 

재개발로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재래시장의 일상 풍경을 담은 사진전. 친숙한 일상모습들로 보이지만 지역공동체 문화의 말살이 전제된 암울함을 함께 읽는다.

 

공연, ‘마리오네따의 역사’
베네수엘라에서 온 극단 Ponix의 공연.
두 사람은 친구로 보였지만, 곧 권력투쟁의 상대가 된다. 여기서 권력은 꼭두각시를 조정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권력관계가 바뀌기도 하지만, 나중엔 조정당하는 꼭두각시가 더 작은 꼭두각시를 조정한다. 이 무서운 이야기를 코믹한 몸짓으로 연기해 많은 웃음과 박수를 받기도 했다.

 

공연, 거리예술단 빵빵유랑버스의 거리공연
환경, 노동, 여성, 이주민의 문제들을 저글링, 타악, 무용, 연극, 국악, 큰 인형(Backparpuppet)극 등을 접목시켜 독특하고 새로운 형태의 거리공연을 시도하고 있다. 운동권 집회문화의 틀을 깨고 직접 거리의 시민을 찾는 실험.

 

참여마당, 도시농업 ‘유기순환 이야기와 상자텃밭 나누기’
퀴즈) 저 근처엔 꾸리꾸리한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젊은학생들의 표정이 밝은 이유는?

 

공연, 김중배(현대제철 색소폰 동호회) 색소폰 연주
노동문화제에 웬 뽕짝? 토요일 밤 공원 산책을 나온 노친네들 무척 좋아하셨다. 사실은 남녀노소 다 좋아하더라.

 

공연, 공생을 염원하는 풍물굿
풍물패 더늠, 인하대 청소용역 노동자 풍물패, 서울에서 연대 온 풍물패 터울림 등의 공연으로 22회 인천노동문화제의 막을 내렸다. 한마당 끝날 때마다 땀으로 범벅이 된 풍물패에게 “한판 더 해라”라 “첨부터 다시 해라”고 농을 던지는 것이 죽이려는 것인지, 같이 살자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완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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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화가 무엇입니까?

[인터뷰] 최기수
인천노동문화제 조직위원회 상임활동가


문화가 뭐냐? 어려운 질문이다. 노동문화가 뭐냐? 가을 서리같은 무서운 질문이다. 이 어려운 장르를 붙들고 사는 최기수씨에게 이 질문을 약간 돌려서 던졌다.

오래전부터 활동을 했지만, 노동문화라는 것이 뚜렷하지 않았던 것 같다. 노동문화가 뭐냐, 노동자 문화가 뭐냐, 민중 문화가 뭐냐는 질문이 추상적으로 떠 다니지만, 구체적인 근거들이나 물질성에 대한 확인을 못했기 때문에 그 질문 주위를 항상 맴돌았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보고 싶다. 노동문화가 뭔지, 그 속에서 우리가 긍정할 수 있는 현상은 뭔지, 또는 우리가 지향해야할 방향은 뭔지 이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인천노동문화제이기도 하다. 올해 무대를 세우지 않았고, 행사장도 좁혔고, 문화패가 아닌 아마추어 동아리들을 출연시킨 이유가 모두 노동문화가 뭔지 찾으려는 목적이다. 이틀 공연하고 보여주는 것 보다 이 자리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이다.

이 문화를 노동문화라 해얄지 노동자문화라 해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중문화와는 다른 점이 있을텐데, 가장 중요한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나?

자발성이라 생각한다. 스스로 만들어내고 스스로 향유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 본다. 스타시스템과 거대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대중문화를 잡고 있는 현실에서는 문화적으로 대상화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촬영현장을 찾아가 의견을 피력한다는 게 불가능하진 않지만,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어제 왔던 색소폰 연주자의 경우, 자기가 좋아서 동아리를 스스로 만들고 즐기고 그것을 통해 활동을 만들어낸다. 이에 비해 예전 노동자 문화패들 같은 경우엔 너무 의식적이었다. 자신에게 맞고 안맞고를 떠나 의식적으로 했기 때문에 돌아보면 남는 게 없다. 예전 표현으로는 건강성, 연대성을 노동문화의 성격으로 이야기했는데, 자발성은 건강성과 비슷한 말이다. 내가 정말 스스로 원해서 하느냐? 그게 내 생활과 어우러지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이런 문화적 양식들을 만들어가고, 문화적 비전들을 제시하는 것들에서 기업에 비해 많이 위축돼 있다. 문화적 인식이나 조직 관리 방식 같은 건 기업이 더 앞서 있다. 아쉽다.

노동문화 말고 다른 이름을 찾아본다면? 그런 논의도 있었다고 들었다.

나는 이름을 바꾸기 보다는 노동문화의 해석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쪽이다. 어쨌든 ‘공동체문화’란 표현이 자주 언급된다. 삶의 관계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공동체 아닌가? 관계도 생겨나고 공간도 재배치되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생기기도 한다. 서로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통해 그 삶의 내면들을 함께 통찰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공동체다. 그러나 경제적 조건이라든지 여러 가지 교란 요인들이 많다. 우리는 아직 교란 요인들을 회피하거나 감내하는 방법에 대해 배운 것이 별로 없다. 그 방법을 잘 찾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문화 운동도 좋다. 그러나 나는 노동문화의 해석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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