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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5
    [대표칼럼] 정운찬 총리의 용산방문이 남긴 씁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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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칼럼] 정운찬 총리의 용산방문이 남긴 씁쓸함

시기에 대한 조급성을 버리고 투쟁을 조직해야

이승에서 인연을 마감한 다섯 분의 열사들이 한해의 3분의2가 넘도록 저승으로 향하지 못하고 구천을 맴돌게 하는 건 어떤 경우에도 납득하기 어렵다. 긴 고통이 누적되어 절망의 시간을 보내는 유족들은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못한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으나 열사들에게 ‘살인죄’라는 누명이 씌워졌으니, ‘누명을 벗겨야한다’는 강박관념과 ‘장례를 치러드려야 한다’는 심적 압박으로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앵무새는 아니길 기대했지만
정운찬 총리가 용산 남일당 분향소를 찾았다. 총리 방문에 대해 몇 가지 우려하는 바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범대위는 용산학살에 대한 성격규정을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하며 ‘이명박정권 퇴진’을 걸고 책임자처벌과 진상규명, 철거민의 생존권 등의 요구를 걸고 투쟁해왔다. 따라서 총리가 참사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고, 학살의 본질을 왜곡한다는 우려와 비판이 있었다. 그럼에도 추석명절을 맞고 9개월이 임박하는 시기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유족들의 처절함과 간절함 또한 외면할 수 없다는 점들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정운찬 총리가 학살현장에 와서 면담한 내용은 유족들을 위로하기 보다는 이명박대통령의 앵무새 역할을 벗어나지 못했고, 양심과 개혁의 참신함으로 치장한 그는 결국 참과 거짓의 갈림길에서 결국 거짓을 선택했다. ‘중앙정부가 용산참사 해결의 직접적인 주체로 나서기는 어렵다는 입장’이었고 ‘정부가 당사자 간 대화를 주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한 게 유족들에게 위로삼아 한 말의 요지였다.

오리발도 정도 것 내밀어라
정운찬 총리의 ‘중앙정부 제3자론’은 결과적으로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말았다. 용산재개발로 생존의 벼랑에 서서 망루로 올라가 생존권을 요구했던 철거민들에게 ‘경찰특공대투입’을 명령하고 지시함으로서 참사가 발생했고, 3천 쪽을 숨긴 채 진행되는 재판에서도 진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는데 참사의 당사자가 제3자인 양 행세하는 건 국가권력을 장악한 그들이 꺼낼 오리발치고는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어쩌면 정운찬 총리에게 일말의 양심을 기대했던 유족과 범대위가 어리석었는지 모른다. 이명박정권의 첨병을 자처한 그가 이명박정권의 공안탄압과 민중억압기조를 바꾼다는 건 기대하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현재의 상태에서 만약 총리가 용산학살문제에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낸다면 그건 순전히 왜곡된 형태의 해결방법이 될 것이 분명하다. 철저히 이명박정권에게 역사적 면죄부를 주는 선에서 마무리하려고 할 것이다.
범대위의 요구는 하나도 수용되지 않았음은 물론, 요구할 자유조차도 봉쇄됐다. 용산학살 이후 추모제, 문화제조차도 모조리 불법으로 규정하고 모이기만하면 협박으로 일관해왔기 때문에 요구는 늘 구석진 곳에서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탄압은 이명박정권이 용산문제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고, 전열을 재정비해야
용산참사투쟁에는 형식적으로 모든 진보, 변혁세력이 함께하고 있는 역사적인 투쟁이다. 시기에 대한 조급성을 버리고 투쟁을 조직해야한다. 참과 거짓이 너무도 명백한 이 투쟁에 승리하지 않고 ‘반MB전선’, ‘사회연대전략’은 그 자체가 모순일 수밖에 없다.
‘추석이 지나도록 용산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큰일이다’라는 유족들이 내 뿜는 한탄의 목소리가 가을바람을 타고 가슴을 짓누른다. 추석이 끝났다. 그러나 용산학살은 담담하게 남일당 주위에 긴 아픔에 여운을 드리우고 있다. 누적된 아픔을 분노로 모아내고 진보, 변혁진영의 자존심을 걸고 다시금 전열을 재정비하여 위력적인 투쟁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임무일 것이다.

양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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