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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사태, 공공의료의 부실이 가져온 예견된 재난

신종플루사태를 통해 본 한국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

 

신종플루에 대한 국가재난대책이 지난 11월 3일 ‘경계’에서 ‘심각’단계로 격상되었다. 이에 따라 범정부 대책기구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설치되어 운영중이다. ‘심각’단계로 격상되었다고 해서 정부차원의 대책이 눈에 띌 정도로 크게 달라지는 점은 그리 많지 않다. △정부대응체계 강화 △중증환자 진료체계 강화 △학교예방접종 조기 완료 △항바이러스제 적극 투약 등의 대책을 발표했는데, 사실 중앙차원의 대책본부가 부처별 업무를 조정하고 상황을 통합, 관리한다는 것과 지역차원의 대책본부가 꾸려지는 게 달라지는 점일 뿐이다.
신종플루의 감염속도에 비해 치사율이 일반 계절독감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높지 않은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정도로 그동안 정부의 대책은 한심한 수준이었다. 인플루엔자의 대유행이 예견된 2005년에 정부는 이를 인지했음에도 4년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정부는 올해 들어 신종플루가 대유행하고 있음에도 우왕좌왕하고, 국민들에게 너무 동요하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 결과 감염확산을 막기 위한 백신 공급이 지연되거나 부족을 초래하였고, 치료제인 항바이러스제의 비축이 필요한 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는 치료거점병원만 지정한 채 나몰라라 하여 병원현장의 혼란만 야기하여 국민의 불신과 의료인에 대한 불만만 키웠다. 이러한 정부대책의 문제점에 의해 생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지게 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신종플루를 통해 드러난 의료체계의 문제점
정부대책의 미비함에 더하여 더욱 중요한 점은 신종플루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보건의료시스템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표출되었다는 점이다.

첫째, 보건소를 비롯한 공공의료기관이 일찌감치 신종플루에 대처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비중이 부족하고 역할이 부실했다는 점이다. 격리병상과 음압시설을 갖춘 병원은 몇 개 지나지 않았고, 병실도 환자를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영남과 강원, 충남북에는 국가지정 격리병상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신종플루 중환자가 크게 발생했을 시 국가가 강제로 대책을 실행할 수 있는 공공의료기관이 10%에도 못 미친다는 점이다. 전염병 같은 질병에 대한 대책에는 일정부분 국가의 행정력이 힘을 발휘해야 하는 데, 민간의료기관에는 이를 강제할 힘이 재정지원같은 인센티브 말고는 없다. 정부가 아무리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현재 한국의 공공의료 비중은 이를 실행할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둘째, 거점병원 및 1차의료기관의 혼란으로 인해 신종플루의 확산을 방지하기는커녕, 병원에서의 감염마저 낳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환자와 신종플루 의심 환자가 섞이는 걸 막아야 하는데, 도무지 방법이 없다” “오늘 신종플루 진료를 봤던 의료진이 그 다음날 일반 병동 환자를 진료하기도 한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 환자는 폭증했고 의료진은 그대로이니 방법이 없지 않나” 등이 직접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의 하소연이다.
또한 1차의료기관인 동네의원은 신종플루환자를 보건소로 보내고, 보건소에서는 병원으로 보내고, 병원에서는 다시 보건소로 보내는 등의 혼란이 발생하는 등 의료전달체계는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였다.

셋째, 지역사회에서 1차의료기관의 혼란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사람이 모여있는 학교와 직장에서의 보건시스템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이 드러났다. 학교에서는 기껏해야 교문앞에서 효과가 의심스러운 발열검사를 하거나 휴교조치를 취할까 말까 갈팡질팡하는 등 체계적인 감염 및 위생관리, 발생환자에 대한 보호조치, 감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 등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업장 노동보건도 마찬가지이다. 신종플루 대책마련을 위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다. 심지어 병원에 근무하는 노동자 중에서 비정규직은 예방백신접종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등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넷째, 치료 및 검사, 예방접종에 드는 비용의 상당부분을 국민이 부담한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국가 의료기관이다 보니, 신종플루 검사비가 다른 병원에 비해 싸다. 그러다보니 전화로 검사비가 얼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렇게 묻는 사람들은 거의 검사비도 댈 수 없는 어려운 사람들이다. 우리는 목소리만 들어도 ‘아, 이 사람은 돈이 없어서 못 오겠구나’하는 느낌이 든다. 결국 진짜 검사를 받아야 하고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병원에 오지 못한다.”(“밖에서 떠는 환자들... <대장금> 방불 인력 태부족... 공익이라도 배치해 달라”, 오마이뉴스, 2009.11.3)

즉 돈이 없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백신을 접종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인해 더욱 더 전염을 확산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정부는 거점병원지정을 하고, ‘동요하지 말라’는 립서비스와 상황관리만 하고, 병원은 병원대로 불만을 표출하고, 의료인은 아무것도 안하고 책임을 넘기는 정부를 욕하고, 건강보험체계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고, 언론은 스포츠 중계하듯 늘어나는 사망자수를 보도한다. 무책임한 정부의 대응 속에 국민은 불안해하면서 각자 나름대로의 대처법을 마련하는 지혜를 짜내느라 골몰하고 등의 모습이 신종플루를 통해서 드러난 한국보건의료시스템의 모습이다. 

강동진(포럼 [사회복지와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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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의료재난, 우리의 해법은?

의료의 공공성과 노동자민중의 건강은 정비례

 
국가적 재난 수준의 신종플루사태는 한국사회의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과연 대안은 없는 것일까. 무엇보다 전염병이나 신종플루같은 감염성질환의 경우는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방, 치료, 건강증진 같은 서비스를 수행하기 위한 의료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공공의료 비중을 높여라
우선 무엇보다 공공의료의 비중을 높이고, 공공의료기관의 규모에 따라 걸맞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 공공의료의 비중은 10%가 채 안된다. 이런 비중으로는 신종플루같은 대유행을 하는 전염성 질환에 대한 대책이나 관리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최소한 30%정도는 되어야 한다. 1차 의료를 담당할 도시보건지소를 확충하고, 지역별로 거점 공공병원을 확대하고, 국립대학교병원같은 경우는 광역단위 거점중심병원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건지소에서는 환자상담 및 일차적 수준에서의 검사와 치료, 정보제공 등을 수행하고 거점병원에서는 격리병실 등의 운영을 통해 입원치료를 담당하고, 대학병원에서는 광역차원에서 치료기술지원 등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주치의제도를 도입하자
둘째, 1차의료시스템이 구축되고, 강화되어야 한다. 1차의료는 ‘동네의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환자들이 질병을 치료하거나 건강에 대해 의뢰할 시 제일 먼저 만나면서도 가장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의료체계의 ‘첨병’이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수준에서는 주치의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평소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의사가 필요하고, 자신에게 걸맞는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의사의 입장에서도 일회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료의 책임성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진료의 지속성, 책임성, 포괄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가 주치의제도이다.
아울러 집단적으로 건강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데에 학교나 사업장 수준의 학교보건, 노동안전보건 시스템이 확충되고 체계화되어야 한다. 지금은 양호실에 보건교사를 갖춘 정도이거나,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발생한 사업장에서의 재해와 질환을 관리하는 차원에 머물고 있는데 예방, 치료, 재활 등 건강증진 및 관리의 제 단계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1차의료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는 나라가 쿠바이다. 쿠바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1차의료시스템이 잘 구축된 결과 국민들의 건강수준이 미국보다 더 높아서 1차의료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으며, 1차의료인력은 베네수엘라, 콩고 등 의료체계가 열악한 나라에까지 파견되고 있기도 하다. 신종플루에 대한 대책에서도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미국과 멕시코와 비교되기도 한다.

정부와 사회가 비용을 부담해야
셋째, 전염병의 예방 및 치료에 드는 비용은 개인이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항바이러스제의 투약 및 백신접종에는 개인이 부담하는 비용을 두고 있다. 비록 몇만원이라 할지라도 이마저도 부담이 되어 접종과 치료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더군다나 검사비용에는 수십만원이 소요되어, 확진이 안될 경우 신종플루환자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가 있다.
이와 더불어 전염병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은 민간제약회사가 아니라 공공적으로 개발되고 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소한 지금의 신종플루대유행처럼 질병의 확산과 환자의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제약자본의 배만 살찌우는 현재의 특허제도를 일시 중지시키고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강제실시의 요건이 대폭 완화되어야 한다. 제약자본의 돈벌이에 국민의 건강이 좌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의료민영화의 가속화는 더 큰 재앙을 부를 것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윤추구 중심의 민간의료체계가 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신종플루사태를 겪으면서 공공의료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있긴 하지만 일회적인 수준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더군다나 현재 정부는 이윤추구를 더욱 확대하는 의료민영화를 ‘선진화’란 이름으로 포장하여 추진하고 있다. 신종플루사태가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확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의료민영화추진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길 바라지만 정부는 눈과 귀뿐만 아니라 머리마저 사고하기를 멈춘 듯하다.
 
강동진(포럼 [사회복지와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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